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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를 유혹하는 제품의 패션

빨간색 포장에 눈길 가는 이유

같은 종류의 제품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서본 경험이 있는가. 충동적으로 물건을 구매해본 기억은 없는지?‘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듯 제품에도 날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포장이다. 사람의 심리를 뒤흔드는 포장, 그 속에 숨어있는 과학을 만나보자.


대형 할인매장에 가면 눈이 즐겁다. 독특하고 예쁜 포장으로 신비로움을 물씬 풍기며 소비자를 유혹하는 물건들. 보는 즐거움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이해한다는 듯 여기저기서 ‘날 선택해달라’며 손을 끌어당긴다. 원형으로 포장된 껌이 맛있을까 네모로 포장된 껌이 맛있을까. 비닐에 담긴 우유가 신선할까 유리병에 담긴 우유가 신선할까. 노란색 포장의 자유시간이 맛있을까 파란색 포장의 핫브레이크가 맛있을까. 마치 모든 것이 신기해 망설이는 아이들처럼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고민한다. 형형색색의 포장에는 소비자가 언뜻 눈치채지 못하는, 그러면서 미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과학적 계산이 치밀하게 숨어있다. 과연 그 비밀은 무엇일까.


색채심리학자인 피버 비렌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색깔로 파란색과 초록색을 꼽았다.



파란색 음식은 불쾌감 조성

과자나 라면의 포장지를 유심히 살펴보자. 빨간색, 주황색, 오렌지색 등 빨간색 계열의 색깔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느낌도 강렬하다. 포장지를 돋보이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빨간색을 많이 사용한 것이다. 과연 빨간색은 돋보이는 색깔일까.

우리 눈의 시세포에는 물체의 자세한 모양과 색을 판단하는 원추세포, 그리고 명암을 인지하는 간상세포가 있다. 어떤 물체가 우리 시야에 들어와 망막에 상이 맺히면 이 두세포가 반응을 함으로써 빛의 자극을 신호로 변화시킨다.

원추세포에는 빨간색 계열을 보는 장파장 세포인 로우(ρ)세포, 노란색 계열을 보는 중파장 세포인 감마(γ)세포, 그리고 파란색 계열을 보는 단파장 세포인 베타(β)세포가 있다. 정상인의 경우 이들의 분포 비율은 40:20:1로 알려져 있다. 빨간색 계열의 색깔이 눈에 가장 잘 띄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빨간색이 눈에 잘 띄는 것은 아니다. 밝은 곳에서는 주로 장파장 세포가 활발하게 활동하며, 어두운 곳에서는 단파장 세포가 활성화된다. 따라서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이동할 경우 빨간색은 어둡게 되고, 파란색이나 초록색은 상대적으로 밝게 된다. 가령 어두운 곳으로 내려가는 비상계단이나 비상구 표시는 파란색이나 초록색 계통의 색깔을 사용하는데, 이런 원리가 반영된 사례다. 만일 과자나 라면을 어두운 곳에 진열해야 한다면 파란색 계열의 포장지가 훨씬 더 많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미국의 한 초콜릿 회사에서는 파란색을 사용해서 초콜릿을 꾸밈으로써 대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파란색 포장지를 쓴 초코바 핫브레이크가 인기를 끈 바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독특함’을 포장 전략으로 내세워 성공한 사례이긴 하지만, 위험도가 큰 모험이다.

한편 빨간색은 눈에 띌 뿐만 아니라 식욕을 자극하는 색으로도 알려져 있다. 명란젓을 먹음직스럽게 보이기 위해 빨간색으로 착색하는데, 이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과학적으로 정확한 근거가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관습적으로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반면 파란색 계열은 식욕을 자극하는 힘이 약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색채심리학자인 피버 비렌에 따르면 파란색과 초록색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색이며, 신경과 근육의 긴장을 완화시킨다. 푸른 잔디와 파란 하늘을 바라봤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보자. 녹색이나 파란색 계통은 분명 눈에 좋다. 하지만 ‘입’과는 거리가 멀다.

굳이 포장이 아니더라도 파란색을 띠고 있는 음식은 거의 없다. 색채심리 전문가들은 인체에서 파란색이라곤 시퍼런 멍이나 정맥과 같이 불쾌함을 떠올리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파란색 음식’을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비싼 껌이 많이 팔린 비결

이번엔 껌이 쌓여있는 진열대 앞에 서보자. 평소 같으면 어떤 껌이 좋을지 몇번을 만지고 고민하지만, 오늘은 ‘이게 과연 껌일까’ 의문이 드는 동그란 통에 바로 손이 향한다. 다른 껌들보다 좋은 향이 나는 것도 아닌데 왜일까.

일단 색다르고 독특한 포장으로 덮여있는 제품은 눈에 띈다. 직사각형 포장 일색인 껌들의 세계에서 원형 통으로 포장된 껌이 신기하고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눈에 띄면 ‘신제품인가보다’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게 되고, 이어 ‘좋다 나쁘다’에 대한 인상이 확실하게 남는다. 몇번 이런 인상적인 경험이 반복되는 동안 우리는 ‘한번 사볼까’하는 심리적 충동을 느낀다. 굳이 구매하지 않더라도 ‘어머, 이런 껌도 있더라!’라는 제품 광고를 소비자의 입을 통해 여기저기로 전달케 한다. ‘입소문’의 포커스는 단연 껌의 내실이 아니라 포장에 맞춰져 있다.

또하나의 비밀은 제품의 포장에 새겨진 글씨,‘자일리톨’이라는 용어에 숨어 있다. 자일리톨은 ‘자기 전에 씹는다’를 TV 광고의 모토로 삼을 만큼 충치 예방의 효과가 있는 천연 감미료다. 물론 과학적 데이터도 갖추고 있다. 사람들은 이 글씨에서 적지 않은 신뢰를 얻게 된다. ‘이 껌을 씹으면 아마 치아가 더욱 건강해질 거야’내지는 ‘이 껌이 내 치아의 충치를 막아주지 않을까’라는 암시를 은연중에 하게 되는 것이다. 포장 제작자들은 이런 시나리오를 미리 치밀하게 계산한 후 포장을 만들어낸다.

자일리톨껌의 히트로 ‘제2의 껌 전성기’를 이룩한 롯데제과 측은 차별화된 포장이 자일리톨껌의 성공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롯데제과는 지난 1997년 9월 한차례 자일리톨껌을 ‘자일리톨F’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바 있다. 당시 이 껌은 일반 껌보다 67%나 비싼 5백원에 책정돼 ‘비싼 껌’이라는 인식만 남긴 채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후 롯데제과는 포장에 가장 주안점을 두고 마케팅 전략을 펼쳐나갔다. 자일리톨껌이 기존의 설탕껌에 비해 품질이 우수하다는 확신을 가진 만큼 포장도 그 사실을 표현해줄 수 있도록 일반 3백원짜리 껌 포장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롯데제과 마케팅팀 최경인 과장은 “자일리톨껌을 본격적으로 출시하기 3-4개월 전에 알약 형태의 껌을 영양제 병에 담아 치과에 납품했고 신뢰성을 확보했다. 1997년에 제품을 냈을 때와 품질은 같았지만, 포장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폭발적인 매출 증가를 기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껌을 통에 넣어 판매한다는 것은 과거엔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집에서나 직장, 또는 이동중 차량에 항상 껌을 비치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이 변화를 제대로 잡아내 포장에 적절하게 반영함으로써 성공한 것이다.

물론 무조건 색다르고 독특하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나쁜 이미지로 기억돼 시장에서 사라진 사례도 상당수다. 독특한 포장의 목적은 일단 ‘튀기’ 위한 것이다. 포장뿐 아니라 내실도 좋아 또한번의 구매를 유도한다면 확실하게 성공한 제품으로 탄생한다.


비싼 껌이 많이 팔린 비결



광고 효과 높이는 전략

음료가 모여 있는 공간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1.5L 콜라가 6개씩 묶여 한꺼번에 포장돼 있다. 한꺼번에 팔아보려는 욕심에서 이렇게 묶어놓은 것일까. 같은 제품을 한꺼번에 몇개씩 묶어놓은 멀티플 포장은 단품보다 가격이 저렴해 구매욕을 자극한다. 또한 상품의 수송과 취급을 편리하게 할 수 있고, 소비자가 들고 운반하기에도 좋다. 하지만 순전히 이런 이유로 멀티플 포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노리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진열 효과와 POP 광고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

대형 할인매장에서는 효과적인 광고를 하기에 부담스럽다. 수많은 물건들이 치열하게 ‘자리다툼’ 경쟁을 벌이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멀티플 포장은 단정하게 정돈된 상품 자체가 광고가 된다. 소비자가 굳이 구매하지 않더라도 깔끔하게 포장된 제품을 보고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그리고 또한번의 쇼핑을 할 땐 가지런히 쌓여있는 그 때 그 제품이 ‘한번 사보세요’라고 손짓을 한다. 진열 효과라는 말 그대로 매장에 물품을 진열함으로써 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또한 멀티플 포장에는 포장 자체에 홍보 문구를 새기는 POP 광고를 할 수 있다. POP 광고는 ‘Point Of Purchase advertising’의 약자로, 매장의 입구나 내부에서 직·간접으로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행하는 광고 표시물의 일체를 말한다. 본래 POP 광고는 제품 회사가 매장에 배부한 선전물이며, 구매시점에서 소비자의 구매를 촉진시키는 현장 광고다. 여러개를 묶어서 덩치가 커진 제품의 포장에 문자나 그림, 또는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소비자의 흥미와 주의를 끌고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생활용품 코너에서는 블리스터 포장이 상품을 홍보하는 1등 공신이다. 블리스터란 전투기 등 비행기 동체에서 둥글고 투명하게 튀어나온 자리로, 보통 사격수가 자리하고 있다. 블리스터 포장의 명칭은 이 블리스터와 비슷한데서 유래했다. 즉 제품의 모양에 맞는 틀을 제작한 다음, 플라스틱 재료가 가열시 부풀어오르는 성질을 이용해 그 형태에 맞춰 포장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렇게 포장한 제품은 매우 입체적인 형태가 되기 때문에 브랜드와 홍보 문구를 인쇄하면 광고 효과가 커진다. 또한 대지에 구멍을 뚫어 걸어놓으면 많은 상품을 간편하게 진열할 수 있다. 여러개의 제품을 흐트러지지 않고 멋스럽게 포장함과 동시에 포장의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블리스터 포장 면도기나 칫솔의 경우 같은 제품을 겹겹이 쌓을 수 있기 때문에 매장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데 일조한다.
 

광고 효과 높이는 전략



도난 방지 위한 아이디어

하지만 원래 블리스터 포장은 미국 시어즈라는 대형매장에서 도난 사고를 막기 위한 발상으로 처음 탄생했다고 한다. 시어즈는 매장의 크기가 커지고 제품의 종류가 늘어감에 따라 상품의 도난 사고가 늘자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고객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상품의 도난을 막을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실제의 상품보다 더 크게 포장한다’는 묘책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블리스터 포장은 도난방지 효과뿐만 아니라 안전 포장, 그리고 광고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포장으로도 인기를 끌면서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물건을 사기 전에 일단 눈으로 먹어보고, 눈으로 마셔보며, 눈으로 써본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판매자는 물건이 잘 팔리지 않는다면 앞뒤 가리지 말고 포장부터 자세히 뜯어봐야 할 것 같다. 사람의 모습이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무척 달라 보이듯 같은 제품이라도 무엇으로 포장했는지, 어떻게 포장했는지, 그리고 어떤 색깔로 포장했는지에 따라 그 느낌이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 제품의 포장을 볼 땐 멀찌감치 떨어져 심각하게 고민하자. 과연 저 안엔 무엇이 들어있을까. 색깔만 독특한 건 아닌지, 모양만 근사한 건 아닌지, 재질만 좋은 건 아닌지, 그리고 나는 그런 갖가지 유혹에 끌려 계획에 없던 구매를 하게 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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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장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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