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콘다에게 먹혀 뱃속을 촬영한다’는 엽기적인 상상이 현실이 됐다. 지난해 12월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이튼 얼라이브(산 채로 먹히다)’에서 야생동물 전문가 폴 로서리는 직접 아나콘다에게 먹히는 모험을 감행했다. 10년 동안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활동을 펼치며 아나콘다를 연구해온 로서리는 이번 실험을 통해 아나콘다의 먹이사냥 과정을 밝히고자 했다. 주인공은 페루의 아마존 정글에 서식하는 몸길이 6m, 무게 113kg의 암컷 아나콘다였다.
돼지피 바르고 먹이를 자청하다
로서리는 몸에 돼지피를 바르고 아나콘다를 자극했다. 그에게 다가간 아나콘다는 긴 몸으로 칭칭 감아 그를 옥죄기 시작했다. 아나콘다는 이처럼 살아있는 먹이를 먹기 전에 질식시킨다. 아나콘다가 먹이를 죄는 힘은 코끼리가 밟고 지나가는 힘과 맞먹는 90psi(프사이, 압력 단위). 비유하면 둘째 손톱 위에 6.5킬로그램(kg)의 추를 올려놓는 압력과 맞먹는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아나콘다는 대형에 속해 옥죄는 순간 힘이 100psi를 넘었다. 심장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로서리의 의식이 희미해지기 시작하자 아나콘다는 본격적으로 ‘먹이’를 삼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팔을 무는가 싶더니 이내 머리를 찾아 입 안에 넣었다. 아나콘다는 먹잇감을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 유연한 턱관절을 이용해 악어와 같은 큰 먹잇감도 거뜬히 삼킬 수 있다. 아나콘다의 턱관절은 위아래로 180° 벌어질 뿐만 아니라 양 옆으로 늘어난다. 아나콘다는 동물의 뼈를 녹일 정도로 강력한 위 소화액으로 삼킨 먹이를 천천히 녹여 먹는다.
로서리의 헬멧 카메라에는 아나콘다의 쩍 벌린 입 속과 목구멍 안쪽이 생생하게 찍혔다. 무선통신으로 자신이 살아있으며 어떤 상황인지 중계를 하던 로서리는 한 시간쯤 뒤 정신을 완전히 잃기 직전 동료들에 의해 무사히 구출됐다. 로서리는 “정말 미친 듯이 무서웠다. 촬영을 한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폴 로서리와 두 차례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들어봤다.


뱀에게 먹히겠다는 엽기적인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 사람들이 아마존 유역의 환경 문제에 주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부러 충격적인 기획을 하게 됐다. 아나콘다와 같은 큰 뱀이 사람을 삼킬 수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이를 증명하는 사진이나 정확한 자료는 없었다. 최초로 촬영을 한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확실히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나콘다의 서식지 보호 연구를 위해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나콘다에 먹히던 순간은 어땠나
>;>;>;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게 아나콘다 입이 크게 벌어지며 눈앞으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이후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나콘다와 처음 만났을 때는 레슬링을 하듯 아나콘다가 조이는 힘에 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갈수록 버틸 수가 없었다. 막판엔 그냥 축 처진 상태로 기다리면서 머릿속으로만 계속 ‘먹어, 먹어, 먹어’라고 생각했다. 압박 때문에 머리로 피가 쏠렸고, 몸 특히 팔에 감각이 없었다. 도전을 마친 후에 알게 됐는데 당시 혈압이 최고 180㎜Hg까지 상승했다고 한다.
아나콘다로부터 어떻게 몸을 지킬 수 있었나
>;>;>; 안전 준비를 정말 철저히 했다. 아나콘다의 신체 구조를 정확히 아는 생물학자, 도전 중 몸 상태를 살펴줄 의사, 보호 장구를 만드는 엔지니어들과 힘을 합쳤다.
엔지니어들은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높은 탄소섬유 소재로 보호 장구를 만들었다. 아나콘다가 누르는 힘이 보통 90psi인데 300psi에도 견딜수 있도록 개발했다. 가장 안쪽에는 혈압과 체온, 압력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조끼를 입었다. 의사는 도전 내내 이 수치를 보면서 내 몸 상태를 체크했다. 팔에는 쇠사슬 구조의 토시를 착용했다. 아나콘다의 이빨에 찔렸을 때 피가 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차원에서다. 아나콘다의 위 속으로 들어갈 것에 대비해 127가지 화학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전신 방호복을 입었다. 이 방호복은 강력한 산성인 아나콘다의 소화액과 닿아도 8시간 이상 녹지 않고 버틴다. 아나콘다 몸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도록 산소마스크도 착용했다. 그 위에는 헬멧을 썼다. 목이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헬멧에는 무선통신장치가 달려 있어 의사나 지켜보는 팀원들에게 상황을 전달할 수 있었다.
도전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무엇인가
>;>;>; 야생 아나콘다를 생포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나와 팀원들은 아나콘다를 찾기 위해 페루 아마존 서쪽 유역에 있는 울창한 늪을 두 달 동안 뒤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역 주민의 도움을 받아 ‘부유하는 숲(floating forest)’이라는 장소를 알게 됐다. 깊이가 15m 정도인 웅덩이에 야자나무가 잠겨 자라고 있는 곳으로, 늪을 좋아하는 아나콘다가 살기엔 천혜의 환경이다. 우리는 아나콘다가 숨을 쉬기 위해 물밖에 머리를 내민 순간을 노렸다. 그리고 드디어 몸길이가 6m, 무게가 113kg이 넘는 거대한 아나콘다를 만났다. 하지만 물속에 있는 아나콘다를 잡는 일은 아나콘다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위험했다. 아나콘다가 몸을 칭칭 감고 물속으로 끌어당기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뱀은 먹이를 산 채로 먹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 과거에는 뱀이 죽은 먹이만 먹는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많이 나오고 있다. 뱀은 먹잇감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상태일 때 삼킨다. 그래서 실험에서도 마지막에는 아나콘다가 내 몸을 잘 삼킬 수 있도록 저항하지 않았다. 사실 할 수도 없었다.
이번 도전이 ‘쇼’라는 비난이 있다
>;>;>; 일부 동물보호운동가들이 아나콘다를 고문했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노(No)’라고 답할 수 있다. 구출하는 과정에서 아나콘다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고 수의사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서식지로 돌려보냈다. 게다가 이번 도전은 철저히 아나콘다를 위한 것이었다. 아나콘다의 서식 환경을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심어주고 싶었다. 몸이 완전히 아나콘다에게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도전 실패’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번 도전의 목표가 아마존 환경파괴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지 죽는 게 아니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알리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TV를 이용해 알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