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앞에 개 사진이 한 장 떴다. 요즘 SNS에 자주 올라오는 그런 흔한 사진이었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니 결코 평범한 사진이 아니란다.
“지금 이 사진에, 워드프로세서 문서 2쪽 분량의 글이 들어가 있어요. 보이시나요?”
한상근 KAIST 수리과학과 교수가 말했다. 한 교수는 출판사 사이언스북스와 KAIST, 동아사이언스가 함께 주최한 ‘KAIST 명강 4-수학으로 IT 세상을 풀어라’ 두 번째 시리즈(1월) 강연을 맡고 있었다.
“‘스테가노그래피’라는 암호 기법입니다. 암호가 있는지조차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기법이죠.”
방법은 이렇다. 그림을 나타내는 화소 하나하나에 정보를 새긴다. 화소는 색을 표현하기 위해 빨간색, 녹색, 파란색을 지정하는 수치를 갖는다. 그 수치를 살짝 바꿔주면 숨은 정보가 된다. 변화가 너무나 미세해 눈으로 봐서는 색 차이를 느낄 수 없지만, 원본 사진의 화소 정보와 비교해 보면 바뀐 숫자를 찾아낼 수 있다.
“스테가노그래피는 암호를 만드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에요. 다른 방법으로는 글자의 위치를 바꾸거나, 아예 글자 자체를 바꾸는 방법이 있어요.”
글자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다른 글자로 바꿔 쓰는 방법은 시저 암호라고 불린다. 원문의 A를 세 글자 뒤인 D로 바꾸고 B를 E로 바꾸는 식이다. 단순한 규칙이지만 완성한 글자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이상한 단어라 해독에 시간이 걸린다. 글자 순서(위치)를 바꾸는 암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암호엔 난점이 있어요. 일상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글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통계적으로 정해져 있거든요. 이런 정보를 알면 쉽게 규칙을 추측할 수 있어요.”
한 교수에 따르면, 이런 암호문은 30글자 이상만 돼도 통계적 특성을 이용해 쉽게 풀 수 있다. 따라서 원문에서 모든 통계적 특성을 완전히 없앤 암호가 필요하다. 또는 암호가 있는지 모르게 숨겨서 해독할 생각을 못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스테가노그래피는 후자를 구현한 방식이다.
암호는 현대 수학의 금자탑이자 각종 금융 산업과 IT를 가능하게 한 일등 공신이다. 하지만 찬란한 수학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한 교수는 “영원히 뚫리지 않는 암호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난공불락의 암호도 알고 보면 사람들이 굳이 뚫을 동기가 없어서 풀리지 않은 것뿐이다. 만약 현상금이라도 걸면 풀리는 건 시간문제다. 창을 뚫을 무기는 언제나 새로 개발되는 것처럼. 다만 시간이 관건이다. 영원한 비밀은 없지만 오래 버티는 비밀은 가능하다. 전쟁터에서 적지를 공격하기 위해 보내는 암호는 공격이 이뤄지기 전까지만 풀리지 않으면 된다. 결국 암호는 풀리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란 뜻이다.
‘KAIST 명강 4-수학으로 IT 세상을 풀어라’는 2월까지 이어진다. 2월에는 그래프이론과 이산수학 전문가 엄상일 KAIST 수리과학과 교수가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