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자동차는 남자아이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수 있지만, 여자아이에게는 대체로 그렇지 않다. 설사 여자아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받아들이더라도 남자아이들처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놀기보다는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고 마치 인형을 다루듯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좋아하는 선물도 다르고, 그것을 갖고 노는 방법도 다르다.
지적능력에서도 여성과 남성 사이에 차이가 발견된다. 예를 들어 여성은 언어능력, 기억력 측면에서 남성보다 뛰어나며, 남성은 논리적 사고능력에서 우수성을 보인다. 수학문제를 푸는데도 남성은 공간적 관계를 이용하는 문제에 강한 반면, 여성은 언어능력이나 기억력에 기초한 지식을 요구하는 문제를 잘 푸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여성과 남성의 가치관, 사고능력, 행동양식을 결정짓는가. 물론 해답은 ‘뇌’다. 과연 뇌가 어떻게 다르길래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생기는지 알아보자.
남녀 뇌 차이 만드는 성호르몬
성호르몬은 뇌의 성적 차이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의 생식기관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남성의 Y염색체에는 정소를 만드는 유전자(SRY)가 존재한다. Y염색체가 있더라도 이 유전자가 없으면 여성 생식기가 생기고, X염색체만 있는 여성의 경우에도 SRY 유전자를 도입하면 정소가 생긴다.
태아시기에 생기는 난소와 정소는 각각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또는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성호르몬이 뇌가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에 뇌 조직에 영향을 미쳐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 사이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이 시기는 매우 짧은 기간이지만 뇌의 성적 차이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설적이지만 남성호르몬 자체는 남성적 뇌의 형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남성호르몬은 뇌로 들어가 아로마테이즈라는 효소에 의해 여성호르몬으로 변형된다. 이 변형된 여성호르몬이 남성적인 뇌를 만든다. 반면 난소에서 만들어진 여성호르몬은 뇌 안으로 잘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뇌 안에 여성호르몬이 적으면 여성적 뇌가 되는 것이다.
뇌로 들어간 성호르몬은 신경세포 간 회로를 재구성해 남성적 또는 여성적 뇌를 만든다. 성호르몬의 이 같은 효과를 ‘구조형성 효과’(organizational effect)라고 한다. 이는 한번 일어나면 다시 원상복귀 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사고로 음경을 잃은 아들을 위해 그의 부모는 성전환수술을 해주고 여성호르몬을 주사해 그가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그는 겉모습은 여성이었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남성의식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성인이 된 후 다시 성전환수술을 해 남성으로 살았다. 그는 태아시기에 남성호르몬에 의해 이미 남성의 뇌를 가졌기 때문에 성전환수술이나 여성호르몬 투여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성은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gender)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생물학적 성은 유전자나 외부 생식기에 의해 구별되지만, 사회적 성은 뇌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뇌를 난소나 정소처럼 성적 차이를 나타내는 기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은 대체로 일치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의 유전자나 외부 생식기를 갖고 있지만 여성적 가치관이나 행동방식에 더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면서 사회적으로는 남성으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뇌가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에 성호르몬의 불균형 때문에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이 뒤바뀔 수도 있다. 암컷 생쥐에게 출생 전후 남성호르몬을 주사하면 여성적인 행동양식이 상당히 줄어든다. 또한 남성유전자(XY)가 있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충분한 남성이라도 X염색체에 존재하는 남성호르몬 수용체가 부족하면 여성적으로 생각하며 여성 같은 외모를 갖게 된다.
신경전달물질이 배우자 선택 경향 좌우
이처럼 뇌의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행동 차이를 유도한다. 반대로 진화생물학적으로 오랫동안 축적된 행동양식의 차이 또한 뇌의 차이를 가속화시킨다. 남성은 옛날부터 사냥꾼으로서의 행동에 익숙하다. 남성은 사냥을 위해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관찰하는 능력, 즉 공간지각능력을 향상시켰다. 반면 여성은 집 주변에 머물면서 아이를 돌보는 쪽으로 적응해 사회적 적응력과 언어능력을 얻었다.
남성과 여성이 배우자를 찾는 사회적 행동에도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포유류 암컷은 제한된 수의 난자를 갖고 있어 제한된 수의 수컷 또는 단 한마리의 수컷과 교미를 한다. 그 후 암컷은 자손을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반면 대부분의 수컷은 교미 후 더이상 암컷 배우자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고 자손에도 무관심하다.
수컷은 상당히 많은 양의 여유분 정자를 갖고 있어 임신이 가능한 여러 암컷과 교미할 수 있다. 따라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 간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수컷은 여러 암컷과 교미함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남길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자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자손을 돌봐주는 수컷도 있다. 이 경우 수컷은 암컷 배우자 곁에 계속해서 머문다. 수컷이 암컷 곁에 머무르는 것과 이미 교미한 암컷을 떠나 새로운 암컷과 만나는 것 중 어떤 방법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 전달하는데 유리한지는 종의 특성과 환경의 영향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일부다처제를 채택해 살아간다. 포유류 중 3%, 영장류 중 12%만이 일부일처제다. 최근 신경과학자들은 동물이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를 택하는데 신경전달물질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초원지대 들쥐는 사회성을 보이고 전형적인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반면, 저산지대 들쥐는 사회성이 없고 난교를 한다. 두 들쥐는 유전적으로나 신체구조로 보면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특정 유전자가 뇌에서 발현하는 양상은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신경전달물질인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 수용체 유전자가 뇌에 분포하는 위치가 크게 다르게 나타났다. 또 이런 분포는 상황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었다. 암컷 저산지대 들쥐가 출산을 하고 아기를 돌봐주는 시기에는 이들 뇌에서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의 수용체 유전자 발현 분포가 마치 초원지대 들쥐에서 나타나는 것과 유사했다.
초원지대 들쥐에 바소프레신을 방해하는 약물을 투여하면 지금까지 같이 살던 암컷을 버려두고 다른 암컷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반면 기존에 암컷과 짝을 지어 잘 살고 있는 수컷이라도, 바소프레신을 주사하고 새 암컷을 보여주면 그 암컷과 짝을 이뤄 산다.
바소프레신이 수컷이 자식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려준다면 옥시토신은 암컷이 모성본능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옥시토신을 만드는 유전자를 제거한 암컷 들쥐는 자신의 자손을 나몰라라 하고 팽개쳐 둔다.
들쥐에서 발견된 결과는 사회적, 성적 행위에 신경전달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신경회로가 상황에 따라 변하며 암수에 따라서도 서로 다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인간의 경우에도 똑같이 발생하는지는 의문이다. 인간의 성적 행위에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이 작용한다는 증거는 있다. 하지만 과연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이 인간의 사랑과 모성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성별 따라 뇌 구조 다른 이유?
남성과 여성의 뇌는 겉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모양, 크기, 세포 수, 신경회로의 구성 등이 다르다. 이런 해부학적 차이를 ‘성적 이형’(sexual dimorphism)이라고 한다. 남성의 뇌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뇌보다 15-20% 더 크다. 그러나 눈 바로 뒤에 있는 대뇌피질의 신경세포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오히려 11% 가량 더 많다. 이는 언어나 음악의 높낮이를 구별하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 3차원 공간을 이해하는 뇌의 우반구는 남성이 좀더 크며, 언어영역을 담당하는 좌반구는 여성이 좀더 크다. 또한 시상하부에 존재하는 일부 신경핵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세포가 많다.
하지만 이와 같은 뇌의 구조적인 차이가 남성과 여성의 행동, 적성, 인지능력에서 어떤 차이를 유발하는지는 아직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남성과 여성 간에 나타나는 뇌 구조 차이가 각 개인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차이보다 미세하다고 본다. 그래서 그들은 뇌 구조 차이가 여성과 남성의 인지, 사고, 행동의 차이를 유발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기도 한다.
다른 포유동물에 비하면 인간 남성과 여성 뇌의 해부학적 차이는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신경회로의 성적 차이는 분명하다. 오늘날 신경과학자들은 살아있는 뇌의 구조와 기능을 있는 그대로 실시간으로 조사할 수 있다. 그 중 한 방법이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촬영이다. 이를 이용하면 의미있는 말이나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뇌 부위가 어디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언어 전달과 같은 복잡한 활동에는 뇌의 특정 부분이 아닌 여러 부분이 관여하는데 성별에 따라 관여하는 부분이 다르다. 예를 들어 남성의 경우 좌측 측두엽의 일부분만 사용하는 반면, 여성은 우반구에 있는 다른 영역도 함께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차이가 여성과 남성의 인식과 행동양식에 어떤 관련이 있는가에 대해서 아직 과학자들은 답을 얻지 못했다. 다만 성별에 따른 뇌의 차이와 그 차이의 발달과정을 이해하는데 놀랄만한 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