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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science] 영조와 사도세자 정신병원에 오다

영조와 사도세자 정신병원에 오다

그의 아내를 만나다

“혹시 강 선생님 되시나요?” 그날 저녁 불 꺼진 병원으로 그녀가 들어섰다. 한 눈에 봐도 보통 집안 사람은 아닌 듯 했다. “오늘 이렇게 뵙고자 한 이유는 제 남편 때문입니다.” 그녀는 얼마 전부터 남편이 이상해졌다고 했다. “어느 날 약속이 있어 같이 나가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방에서 나오지 않는 거예요. 들어가보니 옷은 바닥에 걸레처럼 흩어져 있고, 남편은 계속 다른 옷을 입었다 벗었다하고 있었어요.” 이런 행동은 반복됐고 점점 심해졌다. 그렇게 난리를 피우고 입는 건 결국 항상 다 헤져가는 흰 티셔츠였다.

더 큰 문제는 날로 난폭해져 가는 행동이었다. 언젠가부터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폭력을 행사했다. 그녀가 조심스레 선글라스를 벗었다. 왼쪽 눈에 심한 상처가 있었다. 그녀가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잠도 침대에서 이루지 못해요. 매일 밤 부엌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에 듭니다. 작년부터 남편은 지하실에 칼과 각종 흉기를 모아두기 시작했어요.”

짐작은 갔지만 아내의 얘기만 듣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본인이 오셔야 정확한 검사를 할 수 있습니다. 내일 두 분이 같이 오세요.” 그녀는 “곧 그러겠다”고 답했다. 오늘 정말 고마웠다며 두둑한 흰 봉투를 건넨 뒤 병원을 떠났다. 다음 날 하루 종일 그녀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드라마 ‘비밀의 문’의 한 장면.

아버지가 날 죽이려 하는데, 아무도 날 믿지 않아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저녁. 퇴근을 준비하는데 김 간호사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선생님 잠깐 나와보세요. 웬 남자들이….” 대기실로 나가자 건장한 남자 수 명과 그녀가 서 있었다. 그녀의 옆에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뚱뚱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제 남편이에요.”

그녀와 남편은 지난 한 달간 가택연금 상태였다. 한 달 전 그녀 가 병원을 다녀간 그 날 사건이 벌어졌다. 남편이 거액의 사채를 빌리고 술집여자를 집에 들였다는 사실이 시댁에 알려진 것이다.

당분간 자숙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몸가짐을 조심해야 했지만 남편은 그러지 못했다. 기어코 어제 밤 사단이 났다. 남편은 지하실에 숨긴 칼을 가져와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날뛰기 시작했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말도 계속 내뱉었다. 화가 미치기 전에 남편을 데리고 피해야 했다. “잠시 남편분과 이야기해봐도 될까요?” 그녀는 모든 걸 포기한 듯 고개만 끄덕였다.
 
아버지 앞에만 서도 온 몸이 경직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는 땀을 비 오듯 흘렸다. 장마가 끝난 직후라 무덥긴 했지만 누가 봐도 불안하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들었던 대로 다 헤져가는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 “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별로.” 대답은 없거나 짧았다. 초점 없는 시선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까부터 계속 만지작거리는 단도가 눈에 들어 왔다. “그걸 왜 자꾸 만지세요?”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두 음절 이상 말하지 않던 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긴 문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아! 당신이라도 제발 내 얘기 좀 들어줘….” 남자는 아버지가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한다고 했다. “괜히 이 칼을 가지고 다니는 게 아니야. 다 나를 지키려는 거라고.” 그는 한참 동안 아버지가 자신을 없애려던 시도들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데 표정은 점점 밝아졌다. 어느새 방언에 가까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부터 자기를 무척 싫어했다는 내용이었다. 항상 남들 앞에서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이 너무도 치욕스러웠다. 이젠 아버지 앞에만 서도 긴장으로 온 몸이 경직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더 이상 상담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남편은 조현병을 앓고 있습니다

“혹시 남편이 헛것을 보진 않나요?” “사실 얼마 전부터 차만 타면 창문 밖에서 누가 자기를 따라온다는 말을 해요. 아무도 없다고 얘기해줘도 믿지 않아요. 결국 창문을 검게 칠해서 밖이 안 보이게 만들었어요.”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졌다.

“혹시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나요?” “아니에요. 신혼 땐 가슴이 두근거려 괴롭다거나 자주 깜짝 놀라는 정도였어요.” “어린 시절에는요?” “시댁어른들 말로는 10살 때쯤 ‘답답하고 어지럽다’는 말을 자꾸 해서 병원에 데려 갔는데 아무런 이상을 찾지 못했다고 했어요. 아! 가끔 공포영화를 보고 경기를 일으켰다고는 하셨어요” 병을 앓은 지가 생각보다 오래돼 보였다. “남편께서는 조현병을 앓고 계실 가능성이 큽니다.” “조현병요?” “흔히 정신분열증이라고 불리는 병이죠.” 차분했던 그녀의 어깨가 흔들렸다.

“우선 부엌에서 잠을 자고 옷 입는 걸 어려워하며 걸핏하면 남을 때리는 것은 전형적인 ‘와해행동’입니다. 누군가 자기를 감시하고 죽이려 한다고 믿는 건 일반적인 ‘망상’이지요. 조현병의 대표적 증상입니다.” 괴로운 일이지만, 가족이 환자의 병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설픈 위로는 오히려 잘못된 희망을 불러와 치료를 힘들게 한다. 종교에 의지하거나 병을 외면하다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 밀어 붙여야 했다.

“남편께선 단답형으로 말하거나 비논리적인 문장을 많이 쓰시더군요. 조현병의 또 다른 증상인 ‘와해된 언어’입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환각증상은 병이 이미 만개한 단계입니다. 마지막까지 와버린 거죠. 잘 안 씻는 습관이나 불안정한 감정상태 역시 많은 환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녀가 지긋이 눈을 감았다.

“한 가지 더 안타까운 점은…, 남편 분의 병이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시댁어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죠.” 원인 모를 고통에 시달리거나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는 것은 조현병의 전조 증상이다. 어릴 때는 표현 방법이 단순하기 때문에,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몸으로 나타내는 편이 많다. 많은 경우 부모는 그런 행동이 마음의 병이라는 걸 모르고 그냥 지나친다. 그동안 병은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자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녀의 말이 정적을 깼다. “뇌졸중이나 간질 같은 신경계 질병에서도 조현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우선 MRI 검사 등을 통해서 정말 조현병이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조현병이 맞으면, 약물치료부터 해야 합니다. 특히 남편 분처럼 심각한 경우에는 격리 치료가 필수입니다. 물론 가족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녀는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조현병 환자도 감기 환자처럼 어딘가 아픈 사람일 뿐입니다. 남편이 암이라면 병원에 당장 입원시키실 거죠? 정신병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신병에 대한 오해 네 가지

지금 당신 곁에도 그들이 있다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마음이 아픈 사람도 많아진다

그들은 오늘도 우리 주변에 있다
 

그의 아버지를 만나다.

“빵빵!” 다음 날 출근 길, 검은 차량 한 대가 집 앞에 서 있었다. 건장한 사내 여럿이 나를 차로 밀어 넣었다. 차 안에는 단정한 노신사가 앉아 있었다. “의사 선생답지 않게 옷차림이 반듯하지 못하군요.” 인사보다 지적이 빨랐다. 꾸깃꾸깃한 내 와이셔츠 소매가 눈에 들어왔다. 시선은 이내 내 몸을 위 아래로 훑었다. 더 이상 말은 없었지만 표정은 굳어있었다. 포마드로 넘긴 머리에서 광이 나는 구두까지 정갈한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직선의 문장이 침묵을 깼다. “어제 내 아들을 만났다고요? 어떻습니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정신병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히 가족 바깥으로 ‘추문’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병원 오는 것 자체를 꺼린다. 조현병도 마찬가지다.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환자는 서서히 망가져 간다. 노신사도 마찬가지였다. 한참 동안 그의 병에 대해 설명했지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전문의인 나의 의견은 중요치 않았다. 자신의 기준만 중요했다. 아들이 얼마나 아픈지보다 다시 괜찮아질 수 있는지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완치가 안 된다면 병이 아니라 죄라고 생각했다.

“선생님 그건 잘못 생각하시는 겁니다. 조현병은 아드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100명 중 한 명 꼴로 반드시 생기는 질병일 뿐입니다. 아드님이 당뇨나 암에 걸렸어도 이러셨겠습니까?” 갑자기 노신사가 신경질적으로 귓속을 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순간 그녀가 말해준 시아버지의 습관이 떠올랐다. “ ‘4’는 절대 안 돼요, 전화번호든 물건이든.” 무엇이든 ‘4’가 보이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깨끗함에 대한 집착도 지나쳤다. 잠깐 나갔다 오더라도 옷을 전부 갈아입었고 조금이라도 신체접촉이 있으면 꼭 샤워를 해야 했다. 작은 일 하나라도 보고해야 하는 건 덤이었다. 종이컵 하나 압정 하나라도 허락 없이 썼다가는 노기를 피할 수 없었다.

전형적인 강박성 인격장애환자의 모습이다. 이들은 모든 걸 완벽하게 통제하길 원한다. 작은 부분이라도 자신의 기준과 어긋나면 참지 못한다. 이것을 남에게도 강요한다. 부자관계처럼 권력이 작용하는 관계에서는 더욱 심하다. 자신의 기대에 조금만 어긋나도 혹독한 훈계가 이어졌을 거다. 이런 사람에게 아들의 상태를 이해시키는 건 굉장히 어렵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아프다’기보다 ‘틀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강박성 인격장애 환자는 타인이 노력만하면 자기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침묵이 차 안을 맴돌았지만 용기를 냈다. “아드님은 치료를 해도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지 모릅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은 막을 수 있습니다. 아드님을 잃는 일만은 막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신사는 아무 말없
이 운전기사에게 가자는 손짓을 했다. 차문을 열고 나가는 내게 그가 말했다. “오늘 일은 절대 입밖에 내지 마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랏님의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이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아들 내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사람들은 유학은 핑계일 뿐 미쳐서 쫓겨난 거라고 수군거렸다. 검찰은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엄벌에 처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소문이 잦아들었다.

나는 오늘도 병원에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감기환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마음이 아픈 사람도 많아진다. 그들은 오늘도 우리 주변에 있다. 어쩌면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일 수도 있다. 마음이 아프다면 주저 말고 병원으로 오시라. 고치면 되는 일이다.

201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한기 기자
  • 도움

    강동우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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