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0/1818076770544f031f6dccd.jpg)
오늘은 모든 화성 탐사 대원에 대한 하우스 박사의 정기 건강검진이 있는 날이다. 내 차례가 오길 기다리다, 화성에 오는 도중 우주 공간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신체의 변화가 생각났다. 견디기 쉽지만은 않았던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과, 이를 효과적으로 치료했던 하우스 박사의 놀라운 의술도.
정신 없었던 우주멀미
우주선이 지구를 출발해 우주로 나온 직후부터, 화성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몇 달 동안의 긴 시간을 무중력 상태에서 생활해야 했다. 영화에서 무중력 상태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게만 보였지만, 막상 실제로 생활하려니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허공에 떠 있다 보니, 어느 쪽이 위쪽이고 어느 쪽이 아래인지 개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우주선 내부의 모든 벽면에는 기계 장치가 붙어 있어서 도대체 어디가 바닥인지 구별조차 하기 어려웠다.
혼란을 느끼는 우리를 보고 하우스 박사가 이유를 설명해 줬다. 그는 우리가 공간에 대한 감각을 느끼는 것은 다양한 기관이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시각(눈으로 천장이 어디이고 바닥이 어디인지를 보는 것), 전정기관(머리가 기울어지면 이석이 움직여 평형에 대한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리고 근육이다. 그런데 우주선 내부에서는 시각에 의존해서 위아래를 구별하는 능력이 점차 떨어지기 때문에, 그냥 자신이 서 있는 방향을 기준으로 해서 위아래를 구별하는 습관이 든다. 이런 과정에서 시각과 전정기관에서 받은 정보가 서로 일치하지 않게 되고, 뇌는 혼란을 겪는다. 이것이 우주비행사가 겪는 우주멀미다.
대부분의 대원이 여행 시작 직후 심한 멀미로 고생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눈이 빙빙 돌고 속이 메스꺼워지는 지독한 고통을 맛봤다. 멀미약에 의존해 며칠 기다리는 것 외에 딱히 해결책도 없었다. 다행히 3~4일 지나자 대원 대부분이 어느 정도 적응해 멀미에서 조금 회복될 수 있었다.
여행과 함께 시작된 변화는 또 있었다. 대원들의 얼굴이 모두 마치 라면을 먹고 잔 다음날처럼 퉁퉁 부어 오른 것이다. 하우스 박사는 우리의 이런 얼굴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설명해 줬다. 지구에서는 중력의 영향으로 혈액과 체액이 머리보다는 다리 쪽에 좀더 몰려 있다. 하지만 무중력 상태에서는 몸의 중심부와 얼굴에 몰리기 때문에 얼굴이 퉁퉁 붓는다. 다리에 있던 수분 중 약 2L가 무중력상태가 된 지 고작 몇 분만에 가슴과 머리로 이동한다. 코 안의 혈관이 팽창해 안이 꽉 막히기 때문에, 냄새를 잘 맡지 못하게 되고 맛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우주식이 맛없던 걸까. 물론 최근에는 이런 특성을 감안해 맛을 강하게 내는 우주식도 개발돼 있지만 말이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0/711756126544f037998ba7.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0/2109551755544f037f69b21.jpg)
농담은 팍팍하고 힘든 우주 여행을 할만하게 만들어줬다. 마르코니 대원이 무중력 상태에서는 자기 아내의 끔찍한 요리도 맛이 덜 느껴지니 참고 먹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농담을 해 우리를 웃겼다. 퉁퉁 부은 얼굴로 아내의 표정까지 흉내내며 웃던 마르코니는 “그래도 아내의 손맛이 그립다”며 잠시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사실 국제우주정거장(ISS) 등은 회전에 의한 원심력 등으로 인공중력을 만들어 준다. 따라서 얼굴이 붓거나 우주멀미를 하는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화성을 향해 날아가야 하는 우주선 내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다행히 하우스 박사가 의약품 박스 내에 항히스타민제, 코 안에 뿌리는 비강내 스테로이드 분무제 등의 비염 약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약품에 의존해 그때그때 코막힘 증상을 해결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0/2109020555544f039a3b81b.jpg)
지구에서는 낮과 밤이 존재한다. 지구의 자전에 의해, 햇빛을 받는 밝은 쪽이 낮이 되고 그렇지 않은 어두운 쪽이 밤이 된다. 인체는 이런 지구의 24시간 주기에 적응해 나름의 ‘생체시계’를 갖게 된다. 아침이 되면 깨어나고, 식사 시간이 되면 배가 고프고, 저녁이 되면 졸립기 시작하는 하루의 ‘바이오 리듬’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우주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우주에 낮밤이 없다는 뻔한 사실에 경악하게 됐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것은 전혀 달랐다. 더구나 우리는 태양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여행을 했으니 오는 빛의 양도 점점 줄어들었다. 따라서 밤은 없지만, 그렇다고 낮처럼 환하게 밝은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계속됐다. 처음에는 별스럽지 않게 느꼈지만, 몸의 바이오 리듬이 깨지기 시작하니 깊이 잠들지 못하고, 수면 시간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깨어 있을 때도 별 의욕이 없고 그저 멍하니 있기 일쑤였다. 우리 열두 명의 대원들 중 아홉 명 정도는 졸피뎀 같은 수면제를 복용해야만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입맛이 없다며 우주식도 잘 먹지 않는데다가 수면도 충분치 않으니 체중이 줄어 수척해 보이는 대원도 몇몇 있었다.
낮과 밤이 따로 없고 맛없는 우주식만이 이어지는 단조로운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나름대로 재미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지구의 시간을 기준으로 대원들의 생일, 그리고 각 나라의 휴일을 달력에 표시하고, 그 날에는 무미건조한 우주식 대신 좀더 특별한 식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특별한 식사라고 해서 지구에서의 식사를 생각할 수는 없다. 다만 좀더 고급 재료로 만든 캔 요리일 뿐이다. 그래도 전채요리, 메인 요리 그리고 디저트까지 갖춰 먹으며 떠들썩하게 파티를 하고 나면,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다소나마 밝아졌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10/241581274544f03c645d2d.jpg)
그림도 글자도 엉망진창
우리가 해야 하는 실험 중에는 얼핏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종이에 정육면체 그리기’와 같은 실험이 그랬다. 별 생각 없이 종이에 정육면체를 그려 지구에 전송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지구에서 받아본 그림은 찌그러져 있는 모양이다! 연구에 따르면 무중력 상태에서는 시각의 왜곡 때문에 실제보다 물건들의 거리가 가까워 보이게 되므로 3차원 지각 능력이 떨어진다. ‘대한민국’ 글씨를 평소처럼 써서 지구로 전송하는 실험도 있었는데, 이 역시 지구에서 평소 쓰던 글씨체보다 작은 글씨가 도착했다.
뿐만 아니다. 우리가 손을 뻗어 어떤 물체를 정확히 집어 올리는 것 역시, 시각이 3차원적 지각 능력을 발휘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쪽 눈을 가리고 물체를 잡으려고 하면 평소보다 어렵다는 것은 지구에서도 한번쯤은 겪어본 일이다. 그런데 무중력 상태에서는 두 눈을 다 뜬 상태에서도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물건을 정확히 잡기도 어려워진다. 이런 현상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종종 물건을 잡으려다 헛손질을 해 주변 사람을 웃기곤 했다. 물론 다 지나간 추억이다.
이런 몇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화성에 도착했을 때가 기억난다. 불편한 멀미와 착시에서 벗어났다고 기뻐할 겨를도 없이 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다. 그 동안 무중력에 적응돼 있던 몸이 갑자기 다시 화성의 중력을 받으니, 도로 멀미가 시작된 것이다. 더구나 많은 대원이 팔을 들거나 걸어 다니는 것조차 힘들다고 불평했다. 다행히 며칠 후에 모두들 멀미에서 회복되고 기력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 화성의 중력은 지구의 1/3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몸이 매우 가볍게 느껴졌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나?” 앨런 대원이 픽 웃으며 말을 건냈다. 앞을 보니 이제 다음 진료가 내 차례였다. 앨런의 웃음을 뒤로 하고, 하우스 박사의 진료실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