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항상 길 찾기를 한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목적지까지 길을 잘 찾아가는 걸까. 길 찾기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하고, 여러 경로 중 최선을 선택해야 한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뇌 속에 있는 지도와 GPS, 그리고 내비게이션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받았다. 정확히는 뇌 속에 있는 장소세포(place cell)와 격자세포(grid cell)를 발견한 공로로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존 오키프 교수와 노르웨이 과학기술대(NUST) 에드바르드 모세르, 마이브리트 모세르 부부 교수에게 돌아갔다.
협동해서 지도 그리는 장소세포
존 오키프 교수는 캐나다 맥길대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UCL로 자리를 옮겨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먼저 살아 있는 쥐의 해마에 전극을 삽입했다. 그리고는 쥐가 길을 탐색하고 움직일 때 해마의 뇌세포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측정했다. 쥐가 특정 위치에 도달하자 조용히 있던 해마 신경세포가 갑자기 전기신호를 냈다. 공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경세포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는 이 세포를 ‘장소세포’라고 불렀다.
존 오키프 교수는 캐나다 맥길대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UCL로 자리를 옮겨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먼저 살아 있는 쥐의 해마에 전극을 삽입했다. 그리고는 쥐가 길을 탐색하고 움직일 때 해마의 뇌세포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측정했다. 쥐가 특정 위치에 도달하자 조용히 있던 해마 신경세포가 갑자기 전기신호를 냈다. 공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경세포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그는 이 세포를 ‘장소세포’라고 불렀다.

장소세포는 주위의 장소세포와 협력한다. 광화문에 처음 갔다고 생각해보자. 길을 잃지 않으려면 이순신 동상, 세종문화회관, 경복궁 등의 위치를 수집해 머릿속 지도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이때 각 장소마다 다른 장소세포가 전기신호를 만들어 위치를 기록한다. 이 세포들이 모여 머릿속 지도가 된다고 오키프 교수는 생각했다.
그는 1971년 학술지 ‘브레인 리서치’에 이런 이론을 발표했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험에 오류가 있다, 쥐의 후각이 위치 파악에 얼마나 중요한지 간과했다고 비아냥거리는 이도 있었다. 당시에는 뇌세포의 전기신호로 동물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무척 생소했다. 그러나 후속 연구가 꾸준히 이뤄지면서 해마가 장소정보를 처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한다는 사실이 점차 인정받았다. 런던의 택시 운전기사는 시내의 작은 골목을 비롯해 수천 개의 길 이름을 지도 없이 외우는 시험을 통과해야한다. 시험에 합격한 운전기사의 해마를 시험 전후로 비교했더니 시험 후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혼자서 정보를 처리하는 격자세포
모세르 부부는 오키프 교수의 연구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장소세포의 정보처리를 돕는 ‘격자세포’를 발견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1990년대까지 위치 정보처리는 해마에서만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모세르 부부는 해마가 아닌 다른 곳에도 길 찾기에 관여하는 세포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키프 교수가 발견한 장소세포가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에서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 정보를 받아야 하는데 장소세포 혼자서는 이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오키프 교수에게 전기신호 측정 기술을 직접 배운 모세르 부부는 해마에 정보를 전달하는 기관이 내비피질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2004년에는 내비피질에도 해마의 장소세포처럼 특정 장소에 가면 반응하는 신경세포가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 신경세포는 장소세포와 달리 하나의 넓은 공간을 혼자서 처리했다. 넓은 원형 박스 안에서 쥐를 돌아다니게 하고 전기신호를 측정했더니 하나의 내비피질 세포가 여러 장소에서 전기신호를 나타냈다. 각각의 장소세포가 이순신 동상, 경복궁 등을 하나씩만 맡았던 반면 내비피질 세포는 광화문 전체를 혼자 책임진 것이다.

모세르 부부는 2005년 하나의 내비피질 신경세포가 전기신호를 만드는 지점들이 일정한 간격과 각도를 두고 떨어져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이 지점들을 이어보니 각 선이 60˚를 유지하며 6개의 정삼각형들로 이뤄진 매우 정교한 정육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장소세포에서는 볼 수 없던 격자무늬다. 모세르 부부는 이 세포를 격자세포라고 이름 지었다. 정육각형 모양의 격자세포 신호패턴은 수학적으로 매우 흥미롭다. 실제로 벌집은 정육각형이 붙여진 모양인데, 이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공간을 만들어 가장 많은 꿀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격자세포도 최소의 격자세포 지점으로 최대한 많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계산하기 위해 정육각형의 배열을 이용한다.
장소세포와 격자세포의 발견은 뇌가 전기신호를 이용해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연구 분야를 열었다. 현재는 컴퓨터와 수학을 이용해 뇌의 인지능력과 위치 정보처리 과정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임상에서는 치매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가장 먼저 손상이 오는 영역이 내비피질이다. 알츠하이머의 대표적인 초기 증상이 바로 길을 헤매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한 나는 학위 주제가 장소세포와 관련 있어 자연스레 존 오키프 교수팀에서 발표한 논문들을 교과서처럼 읽었다. 박사학위 심사를 앞두고, 지도교수가 오랜 친구인 오키프 교수에게 외부 심사위원을 부탁했고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대가에게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받는다는 설렘에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심사 당일, 오키프 교수는 7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아직 풋내기였던 나의 논문을 꼼꼼하게 살펴보며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인상 깊었던 점은 자신의 이론에 반대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던 실험 결과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와 동등하게 토론에 임하던 모습이다. 3시간 가까운 심사를 마치고 최종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에게 오키프 교수가 다가와 “축하하네. 자네는 이제 박사야”라고 다정한 표정으로 말해 주던 모습은 수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생생하다.
축하 파티에서 샴페인을 따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오키프 교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며 “샴페인을 딸 때는 코르크가 아닌 병을 돌려야 안전하게 열 수 있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트 있는 그의 모습과 코르크 마개 앞에 쩔쩔대는 필자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나는 모세르 부부와도 연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2005년 격자세포 발견 이후, 모세르 부부는 2008년에 ‘신경 조직망, 공간의 재현과 기억’ 워크샵을 주최했다. 세계적으로 수가 많지 않은 장소세포·격자세포 연구자들을 노르웨이 최북단의 스발바르섬에 초청했다. 참석자들과 함께 소형 비행기를 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작은 비행기에 장소 정보처리 연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해 모두가 함께 웃었다. 스발바르섬은 백야 기간이라 밤이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의 토론도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결국 이날 워크샵 참석자 중 세 명이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이다.
정보가 어떻게 쓰이는지는 아직 미지수
나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학부 전공으로 수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 가서 전기신호가 어떻게 정보처리에 쓰이는지 흥미를 느껴 전공을 바꿨다. 마침 장소세포 연구는 뇌 정보처리 이론을 연구하기에 가장 알맞은 주제였다.
현재는 고려대 신경계산연구실에서 장소세포와 격자세포를 활용한 전기 생리학실험을 하며 세포들이 어떻게 장소 정보가 담긴 신경신호를 만드는지 연구하고 있다. 어떻게 장소 기억이 해마의 시냅스에 저장되는지를 확인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또 알츠하이머에 걸린 장소세포와 격자세포의 전기신호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연구해 알츠하이머의 원인도 찾고 있다. 세포의 모양과 반응을 수리적으로 모사하는 컴퓨터 모델도 개발하고 있는데, 이런 연구는 향후 길을 찾는 인공지능 로봇 개발에도 응용될 수 있다.
쥐와 사람 뇌에서 장소와 격자세포가 발견됐지만, 이는 단지 현상을 관찰한 것이다. 장소 정보처리를 위한 신경신호가 어떻게 생성되고, 장소와 격자세포가 장소 정보처리에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뇌 과학자뿐만 아니라 해부학자, 생리학자, 공학자, 컴퓨터 과학자들의 공동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