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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진형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처음 하는 일은 모두가 반대한다”

[인터뷰] 이진형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처음 하는 일은 모두가 반대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bioengineering)의 이진형 교수는 공학과 의학, 생물학을 넘나드는 대표적인 ‘융합 연구자’다. 서울대(학사)와 스탠퍼드대(석·박사)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지만, 지금은 신경학 및 신경과학을 연구하며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을 자극해 뇌질환을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2010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새로운 혁신가상’을 수상했고, 2012년엔 미국 간질병재단에서 간질치료프로젝트상, 2013년엔 알츠하이머협회 선정 신(新)연구자상을 받았다. 최근 방한한 이 교수를 만나 뇌과학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공학자가 뇌과학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게 흥미롭다

“사실 회로를 다룬다는 측면에서는 반도체나 뇌나 비슷하다. 인간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서로 연결돼 있는 거대한 신경 회로망이다. 수많은 뉴런이 신호 자극을 주고받으며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뇌다. 따라서 전기공학적으로 반도체 회로를 디자인하는 것이나 뇌 속의 복잡한 신경회로망을 연구하는 것이나 본질은 같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뇌의 회로가 정확하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각종 뇌질환에 대해 명확한 치료 방법을 갖고 있는 게 거의 없다. 고령화 시대에 특히 노인성 뇌질환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막대하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비즈니스 측면에서 어마어마한 시장 기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융합 연구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보통 뇌 연구를 할 때 생물학자들은 뇌 세포를 따다가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실험한다. 하지만 이런 접근방법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뇌는 다른 신체부분과 달리 복잡한 네트워크 구조 하에서 기능한다. 세포하나만 놓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또 공학자들은 뇌파를 기록하는 뇌전도(EEG) 기기나 기능적자기 공명영상(fMRI) 장치 등을 활용해 뇌를 연구하곤 하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 결국 공학, 생물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결합해야만 복잡한 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현재 나는 생물학과 의학에 유전공학 기술을 접목해 뇌 회로의 각 단자를 조절해 가면서 뇌세포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다. 스마트폰에 비유하면 이것저것 눌러보고 조작해 가면서 어떤 신호 자극을 보냈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살피는 것이다. 하지만 뇌는 워낙 구조가 복잡하다 보니 정확하게 자극을 주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래서 유전공학 기술을 도입해 내가 원하는 세포만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하려 하고 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난관도 많았을 텐데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주변의 저항이다. 모두들 융합만이 살 길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새로운 분야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저항은 생각 이상으로 크고 뿌리도 깊다. 내가 맨 처음 지금의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도 그랬다. 주변 사람 모두가 반대했다. 하지만 내 생각엔 아무리 봐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단호히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그래도 난 할 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연구 신청서를 냈고, 지원금을 받는 데 성공했다. 이후 UCLA 교수로 임용돼 그곳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도 발표했다. 정말 재미있는 건 그 이후다. ‘네이처’에 논문이 발표된 순간, 반대하던 모두가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라며 칭찬하는 게 아닌가. 모든 새로운 일은 성과가 나온 후에는 다들 인정해 주지만, 처음에는 아무도 안 도와준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다. 중요한 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자주적 사고를 지닌 사람이고, 확신이 생겼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자신감과 결단력이라고 본다.


뇌과학은 어디에 응용할 수 있나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치매와 같은 뇌질환 분야겠지만, 뇌과학은 의학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P&G, 유니레버 등 글로벌 기업들에선 fMRI 등을 활용해 특정 브랜드 제품이나 광고에 대한 뇌의 반응을 살펴본 후 신제품 출시나 마케팅 전략에 반영하고 있다. 내가 졸음운전을 하고 있다는 걸 자동차가 먼저 감지해 경고를 해 준다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스마트폰에서 기분전환을 시켜줄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해 주는 것도 좋은 예다. 심지어 주의력이 흐트러질 때 알아서 뇌파를 조절해 집중력을 높여주는 기계가 있다면 공부하기가 얼마나 편할 것인가. 이는 사물인터넷(IoT)보다 훨씬 진보된 개념이다. 일종의 ‘뉴로IT(Neuro-IT)’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외부기기와 뇌가 직접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면, 사람의 생각만으로도 모든 걸 통제할수 있다.


융합형 인재를 기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특정 공식에 따라 A, B, C 등 정해진 요소를 단순히 더하고 곱한다고 해서 융합형 인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융합형 인재가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순간부터 그 테두리에 갇혀서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테두리를 부수고 경계를 허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세상에 천재는 없다고 생각한다. 소위 사람들이 천재라고 부르는 이들은 사실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천재적이다. 하지만 그건 수많은 사고의 결과물일뿐이다. 융합형 인재는 스스로 품게 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주도적으로 고민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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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DBR 기자
  • 사진

    최훈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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