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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세계에는 새로운 것과 모방, 그리고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새로운 기술 또는 기계를 발명하거나 발견한 사람은 손쉽게 부와 영예를 거머쥐는 경우가 많다. 마리 퀴리가 두 개의 원소에 ‘라듐’, ‘폴로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프랑스인이 아니면서 여성 최초로 ‘팡테옹’에 묻힐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발견이 인류 역사상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과학기술자들이 동시에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의 소유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등장한 것이 ‘특허’, 즉 ‘지적재산권’이다. 147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처음으로 특허가 도입된 이후 기술에 대한 권리 행사와 대가 지불, 기업이나 국가 간의 배타적인 구도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특허의 가치를 보여주는 사례가 150여 년 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엘리샤 그레이가 벌인 ‘전화기 특허’ 전쟁이다. 1876년 그레이와 벨은 딱 두 시간의 차이를 두고 전화기 특허를 신청했다. 이 두 시간의 차이가 두 사람의 처지는 물론 역사의 기록을 갈랐다. 그레이는 1874년 이미 전화기를 공개 시연하며 이름을 날렸지만고작 두 시간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권리를 벨에게 뺏겼다. 당시 벨이 특허를 출원했던 설계모델은 제대로 작동조차 되지 않는 종이 모델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특허제도의 맹점을 이용한 벨의 약삭빠른 아이디어가 그에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명성을 안겨준 셈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특허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누가 먼저 특허를 출원했느냐, 어떻게 하면 다른 이의 특허를 조금이라도 피하느냐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특허 소송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설적인 사진 기업이었던 코닥은 1976년부터 14년간 이어진 폴라로이드와의 특허권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9억 2000만 달러의 배상금을 물었다. 15억 달러를 투자한 공장은 문을 닫았고, 1000명 가까운 종업원이 해고됐다. 이 과정에서 코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할 시기를 놓쳐 캐논, 니콘 등에 밀리며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는 처지가 됐다. 특허소송이 복잡해지면서 대형 다국적기업에 점차 유리한 국면으로 변질되고 있다. 아이디어를 제공하고도 실질적인 기술개발과 상업화가 힘든 중소기업이나 개인은 버젓이 특허를 빼앗기거나 침해당하고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특허소송에 짧게는 1년에서 5~10년이 걸리다보니 그 기간 동안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해 버리거나 소송이 끝날 때면 기술이 이미 다음 단계로 이전돼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때문에 특허가 기술의 부익부 빈익빈만을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과학기술 연구와 그 결과물을 둘러싼 논쟁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기술은 누구의 것이며, 권리사용의 한계는 어디로 봐야하는 걸까. 대기업과 선진국에 집중된 과학기술의 개발 구도에서 중소기업이나 개인의 역량을 키울 방법은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지식의 길을 묻다’ 이번 호에서는 과학과 기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과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에 대해 고민해 봤다.


 



배아줄기세포 관련 논문조작으로 불명예를 안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파스퇴르의 말을 인용했다. 지금은 포퓰리즘적인 발언으로 치부돼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고 있지만,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당시 풍토에 황 전 교수의 발언이 던진 파장은 엄청났다. 실재하지 않았던 기술로 판명됐지만, 그 기술이 갖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나라에 돌려주겠다는 말 한마디로도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대사회에서 기술은 분명히 막대한 힘을 가져다준다. 단순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아이디어와 달리 기술은 실제로 적용될 수 있다. 기술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인적, 물질적 자원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인간의 삶과 직결된 의약품이나 식량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유전자재조합작물(GMO) 기업인 몬산토, 듀폰, 바스크나 GSK, 바이엘 같은 제약회사는 특허권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GMO 종자나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최소 1조 원 이상의 비용과 5~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90% 이상은 개발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으로 인해 시장에 선보이지도 못하고 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 막상 시장에 출시된 제품을 다른 회사가 베끼는 상황이 아무 제약 없이 이뤄진다면 그 누구도 이런 어려운 과정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모방’과 ‘부지런함’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룬 한국이지만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는 원천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산 기술’이 없다보니 시장을 주도하기보다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어 따라잡기에 바쁘고 한국이 세계 최고의 위치가 될 때쯤엔 이미 시장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십상이다. 매년 수십조 원에 달하는 로열티 적자도 원천기술과 특허가 없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과연 현대 과학기술에서 특허는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한국 특허가 갈 길은 어디에서 찾아야하는 것인가. 국내외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특허는 어떤 힘을 갖는가



▶ “산업계 과제는 기본적으로 특허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진행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결과물의 가치를 담보하고,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특허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세계 최고의 융합학문 연구소로 평가받는 독일 프라운호퍼 재단의 마리안 호프만 국제협력담당 이사는 1만 3000여 명의 연구원을 가진 거대연구소의 원동력이 특허에 맞춘 운영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1년에 2000억 원이 넘는 프라운호퍼 연구과제의 40%를 산업계 과제가 차지한다.


 



기초단계 연구부터 제품화, 사업화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원스톱으로 이뤄지고 최종결과물은 언제나 특허로 나타난다. 호프만 이사는 “완제품을 만들기 전 기초·응용 단계부터 아이디어가 특허가능성이 있는지 먼저 살피고 있다”며 “이 과정을 통해 매일 2개씩 국제특허가 출원되고 있다”고 전했다. 프라운호퍼에서는 연구원은 물론 행정직도 제품과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고 권리를 보호받는다. 호프만 이사는 “특허는 가능성만 있다면 단순한 아이디어로도 얻을 수 있고 오히려 전문분야가 아닌 사람들로부터 혁신적인 생각이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프라운호퍼의 특허중심 운영은 결국 재단의 재정을 탄탄히 하고 후속연구를 진행하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프라운호퍼의 특허를 이용한 제품이 시장에서 잘 팔리면서 로열티는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 ‘100달러 노트북 컴퓨터’ 보급에 힘쓰고 있는 니컬라스 네그로폰테 MIT 교수는 “특허와 기술을 가진 사람

만이 뜻을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00달러 노트북이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에 어느 한 기업이라도 제조에 쓰인 기술특허를 무기로 내세워 지분을 요구한다면 프로젝트 자체가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기술을 사고팔지 않겠다는 생각조차 그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김기남 삼성 종합기술원장은 특허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무기로 본다. 그는 각종 강연과 기고를 통해 특허를 ‘반덤핑’의 뒤를 잇는 국제 무역의 핵심 과제로 평가했다. 실제로 미국 무역위원회에 한국 기업이 피소된 사례를 보면 10건 중 9건이 특허 관련 사건이다. 김 사장은 특히 최근 특허를 단순한 돈으로 인식하는 업체가 늘어나면서 악의적인 공세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은? 특허를 갖는 수밖에 없다.



한국의 특허 관리는 어떤 상황인가



▶ 윤경애 한국특허정보원 국제사업본부장은 “글로벌 기업이 공격적으로 특허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반면 우리 기업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특허관리팀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며 “특히 중소업체들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IT, 바이오, 가전업계 등 모든 분야에서 기술에 대한 특허관리를 철저하고 명확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은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관리도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특허관리의 문제점은 전문가가 부족하다기보다는 전문가 집단 간에 긴밀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윤 본부장은 “현대의 기술 경쟁은 과거처럼 전혀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기술, 타사의 특허기술을 참고해 우회 특허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기술에 대한 특허권의 범위를 정하고 이를 문서화하는 작업이 매우 까다로워 기업들이 애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허괴물’로 불리며 특허권만을 관리하는 미국의 인터디지털과 같은 회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도 특허권에 대해 선제적이고 공세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 본부장은 “인터디지털은 미래에 유망한 기술을 미리 파악하는 눈을 가지고 시장의 특허나 아이디어를 매입하는 방법으로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면서 “한국 특허청도 2009년부터 유망한 아이디어를 매입해 특허등록까지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제대식 특허청 정보기획국장은 세계적인 특허전쟁에 긴밀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전정보 검색 시스템부터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년 300여 만 건이 넘는 특허정보가 전 세계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알지 못하면 ‘헛심’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막대한 자본과 시간을 들여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미 누군가가 특허를 갖고 있다면 그 효용가치는 곧바로 0이 된다. 제 국장은 “전 세계 정보산업의 총 규모가 400조 원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라면서 “이웃 일본과 단순 비교해도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허청이 제공하고 있는 각종 서비스만 제대로 활용해도 지금보다 훨씬 효율적인 기술개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 특허의 숫자를 실적으로 평가하는 풍토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국책연구소들이 내놓은 특허가 현실적으로 쓸모가 없어 연구비 낭비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은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연구기관이 등록한 특허 10개 중 7개가 ‘장롱 특허’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연구기관이 등록한 특허 1만 3631개 중 9912개가 실질적인 상용화가 불가능한 기술”이라며 “국내 연구기관들이 연구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양보다 질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특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서남표 KAIST 총장은 대표적인 ‘특허 예찬론자’로 꼽힌다.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한국의 재도약 가능성을 특허에서 찾고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기술에 투자해 특허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근거로는 한국의 산업구조 개편을 들었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한국의 경제성장을 책임져 온 조선, 자동차 산업에서는 특허가 큰의미가 없었다. 크기를 키우거나 약간의 기술 변형만으로도 세계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 총장은 중국이나 남미권 국가 등이 급부상하고 있어 이 같은 성장은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KAIST가 최근 몇 년간 집중해 온 모바일하버와 온라인 전기차 모두 ‘남이 특허권을 가지지 않은 순수한 신기술’을 고민하다가 나온 프로젝트”라며 “특허를 선점하면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산화탄소저감 및 처리기술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박상도 박사도 비슷한 입장이다. 그는 “한국은 지금까지 어느 분야에서도 선발주자였던 적이 없었다”면서 “특히 남들이 시작한 사업에 뛰어들어 확산과 보급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능력에서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핵심 기술 개발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박 박사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보더라도 발전 단가를 낮추기 위한 대량생산 기술에만 집중한 나머지 제대로 된 ‘한국산 기술’을 갖지 못하고 있다”면서 “출발이 늦었더라도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특허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박사는 특히 특허기술을 갖기 위해 당장의 결실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관점을 주문했다. 최소 20년 이상을 내다볼 수 있는 장기 투자만이 그 후 수십 년을 이끄는 특허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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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박건형 과학칼럼니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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