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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입고 싸운다 군복

컴퓨터가 만드는 최적의 위장무늬

전투를 위한 옷인 군복은 과학기술이 동원되는 가장 실용적인 복장이다. 나폴레옹군에서부터 나치 친위대와 미국 해병대의 군복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국군의 날로 시작되는 10월을 맞이해 다양한 군복의 세계를 알아보자.

얼핏 보면 간단한 것 같지만 군복 한벌에도 인류의 지혜와 역사가 담겨있다. 군복이 바뀌어온 역사는 곧 인류 전쟁의 변천사와 같다. 동시에 군복은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최근 군인들을 적의 눈으로부터 효과적으로 숨기기 위한 첨단 군복이 등장하고 있다. 올해 초 대테러전을 수행하던 미국이 해병대를 위해 개발한 군복이 그 대표적인 예다. 과학이 살아숨쉬는 군복이 탄생하기까지 군복에 담겨있는 의미를 살펴보자.

2천여년 전 로마제국 병사들의 군복. 어떤 시대에서나 한 집 단의 상징으로 통일된 군복을 입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군복이나 제복의 유래는 대단히 오래된 것이다. 수천년 전 로마제국의 군인들도 통일된 군복을 입었다. 국가 개념이 지금처럼 분명하지 않던 시대에조차 한 집단의 상징으로 통일된 제복은 언제나 존재했다.

사실 수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군복은 기능성보다는 집단의 사기를 북돋워주거나 소속을 분명히 해주는 역할이 더 컸다. 이런 경향은 중세 이후 근세로 들어와 총과 대포가 등장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총이 전쟁의 중요한 무기가 되면서 대표적인 기능성 전투복이던 갑옷이 사라지고, 이제 군복은 말 그대로 ‘유니폼’이 된 것이다. 18세기의 화려한 색깔과 불편해보이는 군복들이 바로 대표적인 경우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당시의 군복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움직이기도 별로 편하지 않을 뿐더러, 너무나 화려하고 밝은 원색 위주여서 위장효과도 전혀 없다. 이런 군복을 입고 벅벅 기는 것조차 아까울 지경이니 말이다. 그때 사람들이 과연 바보라서 그런 걸 몰랐을까? 아니다. 적어도 당시의 싸우는 방법대로라면 이것은 결코 미련한 옷이 아니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전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때까지의 총은 너무 성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두 군대가 ‘치고 받는’ 싸움을 해야 전투의 결판이 났다.

이럴 경우 총탄이 날아온다고 마구 흩어지거나 엎드려야 하는 게 아니라, 죽어도 대열을 흐트리지 않고 뭉쳐서 전진하는 쪽이 이기게 마련이다. 결국 입는 옷 역시 위장이나 편리한 활동보다는 소속감 유지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남북전쟁이나 나폴레옹 시대를 그린 영화에서 병사들이 총알이 빗발치는 데도 한줄로 죽 나아가는 모습이 흔히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당시의 전쟁터에서는 지금의 화약과는 비교가 안되게 연기를 많이 뿜는 흑색화약을 사용했다. 이로 인해 병사들은 순식간에 앞이 안보일 정도로 연기에 뒤덮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밝은 색깔 옷이 아니면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조차 구별하기 어렵다.

화려한 군복은 19세기까지 거의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19세기를 거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총의 명중률과 사정거리가 비약적으로 발달했고, 훈련받은 병사가 3백m 거리의 표적을 맞추는 것도 결코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연발식 소총이 등장하고, 곧이어 기관총까지 나오면서 예전처럼 한데 모여 전진하는 식의 전쟁은 자살행위나 다름없게 됐다.

한마디로 총만으로도 적을 다 무찌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인데, 사실 19세기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 사실을 정확히 깨닫지 못했다. 20세기 시작 무렵에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은 모든 나라에 이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주었다.

1차대전이 시작할 때만 해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것으로 생각했던 군인들은 말 그대로 추풍낙엽처럼 기관총탄 세례에 흩어져버렸다. 전투 한번에 수만명에서 수십만명까지 사망하는 일이 흔해지면서, 이제는 얼마나 잘 흩어지고 얼마나 잘 숨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됐다. 이런 전쟁의 변화는 곧바로 군복을 바꿔버렸다. 이미 19세기부터 군복을 녹색으로 만들거나 황토색으로 만드는 등 ‘위장’을 조금씩 고려하는 나라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이다. 하지만 1차대전을 계기로 사실상 모든 나라가 군복 색깔을 황토색이나 갈색, 녹색과 같은 ‘자연색’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단색이 아닌 위장무늬가 인쇄된 군복이 나오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물이 자연과 비슷한 무늬와 색깔로 자기 몸을 지킨다는 것은 1900년대에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였고, 1차대전 때 탱크나 비행기, 배에는 위장무늬를 칠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군복에 위장무늬를 염색하기에는 돈이 너무 들었기 때문에 위장복이 나오지 못했다. 1930년대에야 이탈리아가 공수부대에 최초로 위장복을 지급해 스타트 라인을 끊었지만, 위장복의 여명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나라는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1900년대부터 위장술 연구에 앞장선 나라였고, 1930년대에는 위장 텐트나 군복 등의 연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그 중에서도 나치 독일에서 히틀러의 심복이자 엘리트이던 무장 친위대(바펜 SS)는 작은 점박이 무늬를 중심으로 그려진 위장무늬, 일명 도트 패턴(dot pattern)이 그려진 위장복을 채택했다. 세계 최초로 수만명 이상의 병력이 한꺼번에 위장복을 입고 싸우는 부대가 등장한 것이다.

친위대의 위장무늬는 실제 위장 효과가 상당히 높았다. 독일이나 중부 유럽의 삼림지대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주위와 가장 잘 섞여보이는 무늬와 색깔을 골라낸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 지형에 알맞은 도트 패턴은 이후 오랫동안 사용됐는데, 지금의 독일군과 덴마크군 위장복도 이 무늬를 개량한 것이다.

영국의 공수부대나 미국 해병대 등 많은 군대가 독일의 옷에 자극받아 2차대전 중에 위장복을 채택한다. 다만 미국이나 영국이 만든 위장복은 그렇게 과학적인 것은 아니었다. 특히 미국 해병대가 입고 태평양 전선에서 사용한 위장무늬는 미국에서 오리 사냥꾼들이 입던 것을 응용한 탓에 ‘덕 헌터’(duck hunter) 무늬라고도 불린다. 덕 헌터 위장무늬는 미 육군에서도 쓰였는데, 유럽 전선에서 이 옷을 입던 미군이 독일군과 혼동돼 아군의 사격을 받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19세기 이후 총의 명중률과 사 정거리가 좋아지면서 눈에 띄지 않는 자연색을 사용한 군 복이 등장했다. 사진은 1차 세 계대전 당시 프랑스군.


월남전 교훈 살린 미국의 전투복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위장복이 등장했지만, 이들 위장복은 과학적인 위장효과를 노렸다기보다 공수부대나 특수부대 같은 엘리트 부대의 단결심이나 사기 진작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해병대나 공수부대에서도 과거에는 이런 목적으로 위장복을 따로 입는 경우가 있었다.

미국만도 1960년대까지 위장복은 특수부대 등 일부에서만 입는 옷처럼 여겼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이 우수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인명 피해가 컸던 이유 중 하나로 복장이 지적됐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위장 군복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하게 된 것이다.

세계 최고의 군사기술을 자랑하는 나라답게 미국은 컴퓨터와 각종 과학적 수단을 동원해 가장 효과적인 위장무늬가 어떤 것인지 연구를 거듭했다. 전 세계 지형과 숲의 색깔, 계절 등을 컴퓨터에 입력해 보편타당한 최대 공약치를 계산했다. 그 결과 1981년에는 오늘날 미군의 표준 위장복이 된 M81 우드랜드 위장무늬 전투복(일명 우드랜드 BDU)을 개발했다.

수풀이 있는 지역이면 세계 어디에 가도 높은 위장효과를 얻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우드랜드 BDU는 여러나라 군복에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 군복의 현재 위장무늬도 이 옷의 무늬를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형태나 크기, 색깔 등을 개량한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1980년대 이후에는 위장복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1970년대까지 주로 단색 군복을 많이 입던 유럽 국가들은 현재 대부분 자국 사정에 맞게 잘 연구된 각종 위장복을 입고 있다.

단지 눈에 보이는 색깔만 바뀐 것이 아니다. 2차대전 이후에는 야간 투시장치나 전장 감시용 레이더 등 맨눈 이외에도 전장을 감시하는 수단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위장복을 염색하는 물감도 단지 육안으로 봤을 때뿐 아니라 야간 투시경으로 봐도 위장효과가 있는 특수한 재질을 사용한 종류까지도 등장했다. 한때는 적외선이나 레이더 전파의 반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투복을 다리지 말라는 지시가 여러나라 군대에 내려진 일도 있을 정도였다.

물론 옷의 위장무늬만으로 위장이 충분하다고 믿는 경우는 어느나라 군대에도 없다. 나뭇가지를 꽂는 일에서부터 천조각으로 몸과 머리의 윤곽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기본이다. 얼굴에 위장 크림을 칠해 빛의 반사를 최소한으로 막는 것은 현재 필수적인 위장술이다. 위장효과뿐 아니라 옷 자체의 무게와 두께도 갈수록 가볍고 얇아지는 추세다. 2차대전, 아니 195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 국가, 특히 유럽 각국의 군복이 두꺼운 면이나 모직으로 돼 있어 여름에는 아주 덥고 불편했다. 이것은 물론 온도가 낮은 기후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튼튼하고도 얇고 가벼운 소재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일론으로 시작되는 합성섬유의 등장과 직조기술이 발달하면서 군복이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면에 합성섬유를 섞은 혼방 소재의 등장은 군복 제조와 착용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면의 특성을 유지해 땀을 잘 흡수하면서도 합성섬유 덕분에 가볍고 얇았기 때문이다.

또 얇으면서도 잘 찢어지지 않는 ‘립스탑’ 직조법으로 짜낸 천이 베트남 전쟁중에 널리 보급됐다. 립스탑 직조법은 원단에 강한 실을 사이에 넣어서 바둑판 무늬처럼 직조하는 방법이다. 미군은 여름용의 립스탑 군복과 비교적 두꺼운 천으로 된 겨울용 군복을 따로 만들어 지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립스탑 직조법을 이용한 여름용 군복을 장교나 하사관용으로 만들고 있다. 군복 소재에서 또다른 혁명은 방수가 되면서도 몸에서 나온 습기를 방출하는 고어텍스의 등장이다. 고어텍스란 테플론계 수지를 늘려서 가열해 만든, 무수히 작은 구멍을 뚫은 아주 얇은 막을 천에 붙인 것이다. 빗물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안쪽의 땀이나 증기는 밖으로 내보낸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서는 겨울용으로 고어텍스 덧옷과 전투화가 거의 일반화돼 있다. 비나 눈이 와도 쾌적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으면서 방한성도 높기 때문에 군인의 사기는 물론 실제 작전의 효율도 극적으로 높여준다. 특히 고어텍스 전투화는 겨울에 병사들의 동상은 예방할 수 있어 환영받고 있다. 고어텍스를 비롯한 방수·투습성 섬유는 우리나라에도 보급되는 등 이미 중요한 군복 소재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미군이 몇가지 위장복을 입고 테스트하는 장면. 언뜻 봐서는 3명의 군인과 주변의 자연지형 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우주복 입고 싸운다?

지금도 좀더 효과적인 위장복과 위장무늬의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좋은 예가 최근 미 해병대에서 채택한 신형 MCCUU(해병대용 다용도 전투복, Marine Corps Combat Utility Uniform)다. 일명 ‘픽셀’ 위장복으로도 불리는 이 옷은 아예 컴퓨터가 디자인한 위장무늬를 그대로 옷에 찍어 만든 최초의 실용 위장복이다. 지금까지 위장복의 도안에 컴퓨터를 응용한 적은 있지만, 위장효과가 최대가 되도록 컴퓨터가 디자인한 무늬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환경에 따라 옷의 색깔이 바뀌는 일명 ‘카멜레온’ 위장복이 연구되고 있다. 주변의 빛이나 색깔에 따라 옷 색깔이 바뀌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꽤나 연구를 많이 해야 실현될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온도나 빛의 세기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발광 물질을 이용한 연구는 상당히 진행돼 있는 단계다. 이 발광 물질은 주위 온도가 변하거나 빛의 세기가 달라지면 화학구조가 변해 다른 색상을 나타낸다. 꿈같은 얘기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위장무늬뿐 아니라 옷 자체도 미래에는 크게 바뀔 것 같다. 미래의 전투복은 일종의 우주복같은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미국이 구상한 2025년의 차세대 병사 모습은 완전 방수에 공기까지 필터를 통해서만 공급되며 병사는 따로 방독면을 쓸 필요도 없다. 게다가 냉난방 완비, 몸에서 발생한 습기의 자동 배출 등 편의시설까지 완비된다. 또 옷 자체가 방탄이기 때문에 포탄 파편은 물론 현재의 소총탄까지 어디에 맞아도 치명상을 입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미래의 전투복은 팔뚝에 다는 소형 미사일과 총기를 조합한 특수화기, 헬멧의 투명 바이저를 모니터로 대신 사용하는 디스플레이, 그리고 컴퓨터가 하나의 세트로 이뤄진다. 미래의 병사는 장갑차나 전차와 같은 하나의 전투 시스템으로 취급되는 고도의 전력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구상은 아직까지도 SF소설의 세계일 뿐정말 실현된다고 장담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말도 안되는 꿈이라고 밀어붙일 수도 없다. 특히 컴퓨터 기술의 발달은 적어도 군복과 컴퓨터가 하나의 세트로 결합하는 것만큼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2002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홍희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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