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레이저 가속기](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74690196053fd6d1e85635.jpg)
2012년 7월,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입자’가 발견됐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의 발견을 공식 발표했고, 힉스입자의 존재를 처음 예견했던 피터 힉스 박사는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거머쥐었다. 과학계에 거대한 족적을 그은 이 발견 뒤에는 대형강입자충돌기(LHC, Large Hadron Collider)라는 입자가속기가 있었다.
![플라스마 가속기는 1m에 불과한 가속거리로 약 1km나 되는 포항가속기연구소의 선형가속기(사진 왼쪽에 보이는 긴 장치)와 비슷한 성능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202507905653fd6dc1815b9.jpg)
▲ 플라스마 가속기는 1m에 불과한 가속거리로 약 1km나 되는 포항가속기연구소의 선형가속기(사진 왼쪽에 보이는 긴 장치)와 비슷한 성능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파를 이용하는 기존의 가속기는 한계가 있다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는 원자다.”
영국의 과학자 돌턴이 원자설을 제시한 이래, 원자를 구성하는 더 작은 입자들, 즉 전자, 양성자, 중성자와 같은 것들을 활용한 연구는 늘 과학자들의 흥미를 끌어왔다.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다가 더 이상 물리적인 방법으로 쪼갤 수 없게 되자, 과학자들은 입자를 가속시켜 충돌시킨 뒤, 튀어나오는 파편을 살펴보는 연구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런 장치가 입자가속기다.
입자가속기란 강한 전기장 안에서 전자나 양성자처럼 전하를 띤 하전입자를 가속하는 장치다. 국내에는 포항가속기연구소의 3세대 방사광가속기와 조만간 완공 예정인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가속하는 장치인데 전자의 가속 과정에서 X선 등 다양한 빛(방사광)이 나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 외에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양성자가속기, 대전 지역에 구축될 중이온가속기 등이 있다.
![방사광가속기](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91247497153fd6db140cec.jpg)
노벨상 수상자의 20% 이상이 가속기를 활용한 연구로 상을 받을 정도여서 가속기에는 ‘노벨상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힉스 입자 발견에서 보듯 그만큼 혁명적인 연구 성과를 내왔다. 하지만 매우 커다란 단점이 있다. 바로 크기다. 가속기는 전파의 일종인 마이크로파(300MHz~30GHz)나 라디오파(10kHz~300MHz)를 이용해 하전입자를 가속한다. 강한 세기의 전파를 금속관에 넣으면 전파가 금속관 내부를 거의 빛의 속도에 가깝게 진행하는데, 전자와 같은 하전입자를 전파의 전기장으로 가속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필연적으로 가속기를 거대하게 만든다. 하전입자를 고에너지로 가속하기 위해서는 더 강한 전기장을 걸어주면 되지만 가속관이 금속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전기장 세기가 100MV/m보다 강해지면 금속관 내부에서 전기방전이 발생하면서 하전입자를 더 이상 가속시킬 수 없게 된다. 가속되는 입자의 에너지는 전기장의 세기와 가속 거리의 곱에 비례한다. 즉 전기장을 강하게 만들 수 없다면 거리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존하는 고에너지 선형가속기들은 크기가 작게는 수백m, 크게는 수km까지 커졌다. 포항에 건설되고 있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전자선형가속기는 약 1km에 달하며, 미국 스탠퍼드대에 있는 전자가속기는 3.2km에 달한다. 이것도 모자라서 앞으로 수십km에 달하는 가속기를 건설하려는 계획도 있다. 연구소 건물 하나도 짓기 힘든 와중에 수십km짜리 가속기라니…!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가속 방법을 제안해왔고, 그 중 한 가지로 레이저의 강력한 전기장을 이용한 입자가속 방법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고출력 레이저빔은 마이크로파보다 약 1000배 더 강력한 전기장을 만들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가속거리가 1m인 레이저 가속기는 1km짜리 기존 선형가속기와 비슷한 성능이 나온다. 대학 실험실에서 설치하고 실험할 수 있는 ‘테이블탑 소형 가속기’의 개발이 가능한 것이다.
전파 대신 레이저와 플라스마를 이용한다
레이저의 강력한 전기장을 이용한 입자가속 방법은 1979년 미국 UCLA의 존 도슨(John Dawson) 교수가 처음 제안했다. 고출력 레이저 펄스를 플라스마 내부에 집속할 때 발생하는 강력한 전기장을 이용해 하전입자를 가속하는 방식이다. 플라스마는 원자가 깨어져 전자와 원자핵으로 분리돼 있는 상태다. 이 때 강력한 세기를 가진 레이저 펄스를 플라스마에 보내주면 가벼운 전자는 밀려나고, 무거운 원자핵은 제자리에 머물러 전자의 밀도가 주기적으로 달라지는 플라스마 파동이 만들어진다. 전자는 (-) 전하를, 원자핵은 (+) 전하를 띄므로 두 무리 사이에 강력한 전기장이 생긴다. 이 전기장은 전파를 사용하는 기존의 가속기에 비해 약 1000배 정도 강해서 하전입자들을 아주 짧은 거리에서 고에너지로 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속 방식은 이론적으로는 간단하지만 초기 연구는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 고출력 레이저를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레이저 대신 전자빔을 쏴서 가속전기장을 발생시키는 방법을 사용해 봤다. 이 방식은 외부에서 고에너지 전자빔을 보내줘야 하는 문제가 있고, 보내주는 전자빔에 비해 고작 2∼3배 정도 에너지가 증가해 충분한 고에너지를 만들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85년에 미국 로체스터대의 제러드 모로우(Gerard Mourou) 박사가 극초단 레이저 증폭기술(CPA)을 개발하면서 고출력 레이저 개발이 크게 활력을 띠게 됐다. CPA는 레이저 펄스폭을 1만 배 이상으로 늘린 뒤 고에너지로 증폭시키고 다시 펄스폭을 펨토초(1펨토초는 10-15초)로 압축시켜 극초단, 고출력 레이저 펄스를 만드는 기술이다.
고출력 레이저 기술의 개발은 레이저-플라스마에 기반을 둔 차세대 가속기의 출현을 앞당길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겼으며, 2004년 ‘네이처’에 주목할 만한 연구 분야로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에서 40TW(테라와트, 1TW는 1012W) 레이저와 고작 3.3cm 길이의 플라스마를 사용해 1GeV(1GeV는 10억 전자볼트, 전자를 10억 볼트의 전압으로 가속했을 때의 에너지)의 고에너지로 전자를 가속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건설 중인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길이가 약 1km인 것과 비교한다면 얼마나 혁신적인 결과인지 알 수 있
다. 이를 계기로 차세대 가속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왔고, 고출력 레이저를 보유한 국가들은 앞 다퉈 레이저-플라스마 가속 분야에 뛰어들었다. 현재는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을 비롯해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의 많은 대학교 및 연구소들이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5월 미국 로렌스버클리연구소에서 소규모 가속기에 대한 논문을 ‘플라즈마 물리학’지에 발표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194986803053fd6e3e790f8.jpg)
레이저-플라스마를 이용한 차세대 가속기 연구 현황
필자가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1997년 초 UCLA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했을 때다. 당시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UCLA의 챈 조쉬(Chan Joshi)교수의 연구팀과 함께 연구하며 이 분야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었다. 2001년에 귀국해 이 분야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이것이 자극제가 돼 수 년 만에 국내의 여러 대학교와 연구소에서 레이저-플라스마를 이용하는 차세대 가속기 연구를 하는 상황이 됐다. 대표적인 예로 필자가 있는 GIST에서는 현재 세계 최고 출력인 페타와트(PW, 1PW는 1015W)를 사용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우리 연구실에서는 레이저-플라스마 가속기에서 에너지를 더욱 증가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고 있으며 세계에 자랑할 만한 독자적 기술을 이미 확보해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레이저빔은 마이크로파보다 1000배 강력한 전기장을 만들 수 있다. 가속거리를 1/1000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거대한 부지가 필요했던 가속기가 변해 실험실 안으로 들어온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10190022253fd6e902fb7e.jpg)
![초소형 레이저 가속기의 원리](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2014/08/190051978253fd6e9af319a.jpg)
레이저-플라스마를 이용하는 차세대 가속기는 기존의 대형 가속기로 할 수 없었던 연구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단백질의 구조는 수십 펨토초 단위로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펄스폭이 긴 기존 가속기로는 관찰할 수 없었다. 사진으로 치면 순간포착을 해야 하는데 셔터 스피드가 너무 길어서 지나치게 흔들리는 사진이 나오는 식이다. 단백질 구조를 관찰하기 위해 학자들은 수 년에 걸쳐 단백질 결정을 만들어 단백질을 단단하게 고정한 뒤에야 X선 촬영을 할 수 있었다. 펄스폭이 작은 레이저-플라스마 가속기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단백질 구조를 순간 포착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레이저-플라스마를 사용해 양성자를 가속해 암 부위에 쏘아주면 주위의 건강한 세포에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암만 집중적으로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가속된 전자를 여러 단계로 연속 가속해 훨씬 높은 에너지 상태로 만들어 입자물리학 연구에도 사용할 수 있다. 아직은 발생되는 전자빔 에너지를 더 높이고 빔의 질을 더 높여야 하는 숙제들이 남아 있으나 테이블탑 크기의 소형 차세대가속기가 기초과학이나 응용과학, 산업에까지 활용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