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에 미친 사람들'은 4월부터 9월까지 일요일은 물론 공휴일이면 꼭 포충망을 들고 집을 나선다.
한국인시류동호인회(韓國鱗翅類同好人會). 생물지식이나 한자실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다소 어렵게 들리는 동호인 모임이다. 인시류는 바로 나비목(目)을 뜻한다.
문학작품이나 대중가요에서 '꽃과 나비'는 흔히 '여성과 남성'으로 비유된다. 평생 아름다운 꽃을 찾아다니는 나비는 사람으로 비유하면 플레이보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나비는 꽃보다 더 아름답다. 고운 자태와 화려한 색상을 지닌 데다 현란한 춤을 추어대니까.
'나비에 미쳐야' 회원가능
4월 초 꽃필 무렵부터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9월 말까지 이러한 나비를 찾아나서는 한국인시류동호인회(회장 채수응 경희대의료원장)는 벌써 10년의 역사를 지랑한다. 지난 81년 겨울 현 자문위원 주홍재 교수(57·경희대 의과대 외과)를 중심으로 7명이 모여서 결성됐다. 주교수는 10년동안 회장으로 일했다.
"나비는 채집시기와 장소가 일정해서 채집하는 사람끼리 서로 자주 만나게 됩니다. 한 사람 두 사람이 계속 만나서 정보교환을 하다가 아예 모임을 갖기로 했지요."
그는 자신을 포함해서 이 모임의 회원들은 한마디로 '나비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한다. 채집이 가능한 6개월 동안에는 일요일은 물론 공휴일이면 꼭 포충망을 들고 집을 나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모임은 신규회원을 받아들일 때 구두로 '나비에 미쳐 있는지'를 테스트한다. 그냥 무턱대고 아무나 회원으로 받아들이면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는 것.
현재 이 모임의 회원은 전국에 걸쳐 34명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는 외국인(일본인)도 2명이 가입돼 있다. 그동안 회지(會誌)도 두권을 펴냈다. 지난 86년에 간행한 경기도 접류목록(京幾道 蝶類目錄)과 89년에 발간한 강원도 접류목록(江原道 蝶類目錄)이 그것이다.
"이러한 접류목록은 혼자서는 물론 프로도 해내기 어려운 일이라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충청 전라 경상 제주도의 접류목록을 펴내고, 통일이 되면 북한지방까지 포함해 '8도 접류목록'을 완성할 예정입니다."
지난 1월 28일부터 3월 말일까지 이 모임은 또 국립서울과학관에서 '세계의 진귀곤충 전시회'를 개최해 화제를 모았다. 이때 출품된 나비는 회원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미국 남미 등 세계 각국에서 채집·수집한 것들로 모두 7천여 마리를 선보였다. 이 가운데 특히 모르포(morpho)나비는 영화 '파피용'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스티브 매퀸의 가슴에 문신으로 새겨진 것이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주교수는 나비채집이야말로 다른 취미에서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고 주장한다.
"진귀한 나비를 잡는 순간의 스릴은 낚시와 비견할 수 없으며 표본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결과가 반영구적이지요, 또한 희귀한 나비는 숲과 개울이 있는 곳에 많아 경치 좋은 곳에서 나비를 쫓다보면 운동과 스트레스 해소는 저절로 됩니다. 특히 나비는 오후 4시면 자취를 감춰 일찍 귀가할 수 있으니 몸에 무리가 따르지 않는 것도 장점이지요."
그는 나비채집만큼 쉽게 시작할 수 있고 비용이 적게 드는 취미활동도 드물 것이라고 단정한다.
우리나라에는 모두 2백50여 종의 나비가 살고 있는데, 그중 남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1백90여 종이다. 주교수는 지금까지 1백 76종을 채집했다. 동호인회에서는 화려하고 특이한 나비만 채집하는 일반적인 나비컬렉션의 난점을 타개하기 위해 회원간에 각자 파트를 나누어서 계통별로 채집하도록 하고 있다.
채집쉽고 표본하면 반영구적
나비는 채집하기가 간단하다. 포충망과 채집한 나비를 싸둘 삼각지(기름먹인 종이), 그리고 삼각지에 싼 나비를 넣는 삼각통만 있으면 된다. 표본만들기도 쉽다. 오동나무 전시판에 나비를 올려놓고 몸통 가운데에 핀을 꽂은 다음 앞날개의 아래 부분은 몸통과 90°되게, 뒷날개는 그냥 가지런히 펴서 핀으로 고정하면 된다.
이렇게 표본으로 만든 나비를 액자 속에 넣고 직선과 습기를 피해 보관하면 이 표본은 반영구적이다. 이때 액자 구석에 좀약을 넣어 두어야 한다.
나비는 재미있는 이름을 지닌 것이 있어 더욱 흥미를 끈다. 날개에 투명한 창이 있고 그 모습이 화려해 수풀을 떠들썩하게 한다는 '유리창떠들썩나비', 단풍나무를 맴돌며 세련된 자태를 쁨내는 '도시처녀나비', 조팝나무꽃 사이로 수줍은 듯 날개를 살짝 드러내는 '시골처녀나비', 날개의 선과 빛이 요염하고 매혹적인 '북방기생나비', 날개에 여덟 팔(八)자가 거꾸로 그려져 있는 '북방거꾸로 여덟팔나비', 태풍을 타고 남쪽 열대지방에서 날아와 우리나라에 자리잡은 '별선두리왕 나비', 날개에 커다란 눈을 10개나 가지고 있는 '눈많은 그늘나비'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나비가운데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으로 2종류가 있다. 줄점팔랑나비와 배추흰나비의 유충인 배추애벌레가 그것. 전자는 유충이 벼 잎을, 후자는 배추잎을 갉아먹어 농민들에게 해충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살충제 살포로 인해 이제 이러한 나비들은 보기조차 힘들게 됐다. 오히려 살충제 과다 사용이 사회문제화되면서 '배추벌레도 안먹는 배추'보다 '배추벌레가 먹은 배추'니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나비와 나방은 사촌간이나 나방은 대개 해충으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나비는 채집해도 나방을 채집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비와 나방은 더듬이의 모양으로 구분하면 틀림없다. 나비의 더듬이는 끝이 곤봉처럼 굵고 나방의 더듬이는 실 빗살 깃털 모양을 하고 있다. 이밖에 나비는 낮에 활동하고 몸통에 비해 날개가 큰 데 비해 나방은 밤에 활동하기 때문에 등불을 잘 찾아 들고 몸통에 비해 날개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나비는 인간에게 직접 도움을 주는 곤충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나비를 봄으로써 시를 읊고 노래할 수 있는 자극을 받는다. 이렇게 인간의 정감을 풍부하게 해주는 나비가 예전보다 보기가 힘들어졌다.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교수는 나비들이 멸종위기에 놓여 있는 요즘의 환경이 안타깝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