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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 뇌는 어떻게 칠까?

야구공-뇌는 어떻게 칠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14 프로야구 올스타전 중계를 맡은 캐스터C입니다. 오늘은 해설위원으로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이상한 야구 책도 쓴 적 있다고, 자기도 야구 해설 할 수 있다고 박박 우기는 과학기자 Y씨와, 고명하신 과학자 K 박사님이십니다. 쓸만한 이야기를 좀 들려주셔야 할 텐데요. 근데…, 왜 이리 불안하죠?

캐스터 두 분 안녕하세요.

Y , K 안녕하세요.

캐스터 평소 해설 해주시던 허주현 위원께서 싫다고 하시는데도, 두 분이 박박 우기셨다고요.

Y 아,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위원님께서 더위 드실까 봐 걱정돼 저희가 얌전히 집으로 모셔다 드렸을 뿐이에요. 별로 저항은 안 하시기에 결박만 했어요.

캐스터 네? 그거 설마, 납치 감금 그런 범죄 아닌가요?

Y 설마요. 꽉 묶지는 않았습니다.

캐스터 그게 그거지요! (끝나고 경찰 불러야겠다….) 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순간 1회 초 노던리그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상대 투수는 상반기 13승에 빛나는 외국인 에이스 선수 해켈입니다.

Y 오~, 야구 선수 이름이 유명한 생물학자(에르네스트 해켈)와 같군요. 멋져요.

캐스터 경기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세요?

Y 알 게 뭐예요. 궁금하시면 구글신께 물어보세요.

캐스터 네? 아, 네네. 해켈 선수 던집니다. 제1구! 스트라이크! 노던리그 1번 타자, 초구를 그냥 지켜봅니다.

Y 저건 그냥 지켜본 게 아니에요. 초구는 칠 생각이 없었던 거죠.

K 그렇습니다. 투수 마운드에서 포수 글러브까지의 거리는 18.39m. 투수가 던진 공이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0.44초입니다. 저걸 제대로 보고 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Y 눈이 아주 예리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야구선수 K 안 될 거예요. 운동 선수들이 동작(배트를 휘두름)을 거는 데 걸리는 시간은 0.1~0.2초 정도예요. 그러니까 공을 칠지 말지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은 0.25초 정도밖에 없다는 거죠. 그 시간에 눈으로 공의 궤적을 읽고 결정을 내리려면 빠듯해요.

Y 야구광이었던 진화학자 굴드의 에세이에는 정교한 타자였던 타이 코브와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사례가 나와요. 루스는 방망이 끝을 쥐고 크게 휘두르는 파워히팅을 했는데, 공을 못 건드릴 때가 더 많았어요. 안 본다는 소리죠. 코브는 어느날 그런 루스를 조롱하듯, 일부러 루스의 방식으로 홈런을 하루 세 번 친 뒤 평소 타격자세로 돌아갔대요.

K 참고로 원숭이 실험이긴 하지만, 눈으로 색을 보고 손으로 구분하는 실험을 비교적 정확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약 0.03초의 반응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있어요. 그 전에는 그냥 찍는 거죠. 이에 비하면 타자에게 주어지는 0.44초는 상당히 긴 시간 같지만, 색과 공의 움직임은 다른 정보니 그냥 비교할 수는 없어요.

Y 그럼 치는 선수는 뭔가요?

캐스터 찍는 거겠죠. 실험 속의 원숭이처럼.

K 약간 달라요. 투수의 손동작 등을 보고 미리 짐작해서 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눈은 계속 공의 궤적을 추적하죠. 눈에 들어온 감각 정보와, 미리 생각해 둔 투수의 특징 등을 조합해 계속 판단을 내리죠. 중요한 건 다음이에요. ‘이 공은 치면 안 되겠다’ 판단이 들면 팔을 멈춥니다. 만약 당시 상황이 투(2) 스트라이크로 스윙을 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맞혀서 파울이라도 만들어야겠죠. 이런 복잡한 판단을 0.25초 안에 하는 겁니다. 추신수나 이치로 같은 일류 선수는 이런 판단과 절제가 뛰어난 선수예요.

캐스터 저기요, 두 분 그런 거 말고 경기 해설을 좀 해주세요.

Y (무시한다) 포수는 어떨까요. 마찬가지로 0.44초 만에 공을 잡아야 하는데요.

K 마찬가지 고충이 있지요. 덧붙이자면, 심판도 있습니다.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순간적으로 판정해야 하니까요.

캐스터 투수의 공이 마치, 여러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는 미인 같군요. 하하!

Y 요샌 그런 재미없는 소리를 해도 월급이 나오나요?

캐스터 …….


타자에게 눈 이상으로중요한 것은 평소 연습을 통해 축적한 사전 정보 즉 경험이다. 타자는 머리로 인식하기 전에투수의 습관, 바람의 방향 등을 토대로 판단을 내린다. 눈으로 본 정보는 거기에 덧붙여진다.

K 아니에요, 애간장을 태운다는 말은 일리가 있어요. 아까도 말했듯, 타자와 포수, 심판 모두 ‘저 투수가 평소 어떤 공을 던질까, 그 결과 이번 타석에서는 어떤 공이 올까’ 하고 사전 정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궁리하면서 공을 보거든요. 신경과학에서는 이것을 확률 용어를 써서 ‘사전 확률(prior)’이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그 순간 감각기관을 통해 시공간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가능도(likelihood)’라고 하죠. 일종의 실시간 정보예요.

Y 그러니까 ‘저 선수는 공이 빠르다’ 같은 정보가 사전 확률이 되겠네요.

K 네. ‘데이터 야구’는 뇌 속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거죠. 여기엔 ‘오늘은 약한 비가 오니 공이 더 미끄러울 것이다’ 같은 환경 요인도 포함됩니다.

Y 흔히 말하는 ‘축적된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심지어 그 요소 역시 실시간 업데이트가 되겠죠. 예를 들어 ‘오늘은 투수가 스트라이크를 잘 못 던지니까, 어지간하면 배트를 휘두르지 말아야겠다’는 식으로요. 근데 K 박사님. 사전 정보 혹은 경험과, 그 순간의 감각 정보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합니까?

K 사전 확률(경험)이 더 중요합니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를 보면, 신체는 20대 초에 가장 완벽했어요. 하지만 그가 최고의 성적을 냈던 시기는 20대 후반이거든요. 사전 확률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거죠. 실제로 시각과 관련한 신경과학 연구를 보면, 훈련을 많이 한 선수는 감각 능력보다는 사전 확률 쪽이 발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Y 저는 어려서 검도를 배웠는데, 거기서 강조하는 것은 다릅니다. ‘일안이족삼담사력 (一眼二足三膽四力)’이라고 해서, 예리한 눈을 최우선으로 칩니다. 상대의 칼 끝 움직임부터 걸음까지 놓치지 말고 보라고 합니다. 야구선수라면 무엇보다 일단 공을 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 같습니다만?

K 아니죠. 검도에선 상대의 발 끝이나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다음 동작을 예측할 수 있죠. 그것도 사전 정보 혹은 경험의 영역이에요. 만약 어떤 투수가 직구를 던질 때마다 보이는 손동작이 있다면, 그 동작을 본 타자는 순간적으로 ‘이번엔 직구겠구나’하고생각하겠죠. 이것과 같아요. 우리의 행동은 사전 확률과 실시간 관측정보를 종합해서 판단을 내립니다. 이것을 ‘베이즈 추론’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요.

캐스터 저기…, 저도 말 좀….

Y 아, 쓰리아웃! 공수 교대합니다. C씨는 중계를 전혀 안 하시네요. 월급을 날로 드시는군요.

K 공영방송인데 세금이 아까워요.

캐스터 (말할 틈도 안 주면서!)

K 재밌는 현상을 알려 드릴까요? 이럴 때가 있죠. 타자가 타석에 섰는데 투수가 몸 쪽 직구를 연달아 두 번 던지는 거예요. 그럼 타자가 순간적으로 ‘이번에는 무조건 바깥쪽 공이 올 거야’라고 생각하고 그 쪽을 노릴 때가 있어요.

캐스터 시험 볼 때 그런 적이 있었어요. 1번만 신나게 찍다가 갑자기 이게 아닌가 싶어져서 마지막 문제만 순간적으로 2번을 찍었는데, 0점 맞았어요.

Y 이 친구 그냥 무시하고 가시죠.

K 그 타자의 경우, 흥미롭게도 그런 판단은 감각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 즉 감각피질을 활성화시켜요. 판단은 고차원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원래는 피질의 다른 영역에서 해야 하는데, 감각을 담당하는 피질까지 내려온 거죠. 이상훈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와 최경환 연구원팀이 올해 초 신경과학저널에 발표한 논문 내용이에요.

캐스터 정말 저 무시하시깁니까.

K 사전 확률의 대상에는 심판도 포함됩니다. C씨, 가끔 중계하시다 보면 ‘오늘은 심판이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잡고 있네요’라고 말하는 경우 있죠?

캐스터 (반색하며) 네!


▶ 타자와 포수, 심판의 눈이 모두 공을 따른다. 이들은 0.44초만에 평소 축적한 정보에 새로 눈으로 받은 실시간 시각 정보를 더해서 자신의 행동을 조정해야 한다.

K 눈으로 보는 경우, 경계를 명확하게 가르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시각의 고유한 특성이죠. 스트라이크 영역과 볼의 영역을 딱 가를 수가 없고, 경계가 넓게 퍼져 있어요. 따라서 비슷한 곳에 들어와도 어느 때엔 볼로 판정하고 어느 때엔 스트라이크로 판정할 수밖에 없죠. 이건 심판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시각이 원래 이런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에요.

Y 심판도 사람이군요.

K 재밌는 것은, 심판조차 자신도 모르게 개인적인 선호를 판단에 개입시킨다는 거예요. 이상훈 교수가 뉴욕 양키스의 유명한 타자 데릭 지터 선수와 다른 선수를 대상으로, 일정 기간 동안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결과를 모아 봤어요. 그랬더니 같은 심판인데 둘 중 지터 선수에게 훨씬 유리한 판정을 했다고 해요(스트라이크존을 좁게 잡음. 즉 애매할 경우 볼 판정을 더 많이 내림). 심판도 ‘데릭 지터가 방망이를 안 휘둘렀는데, 아마 볼이겠지’라고 판단하는 거예요. 일종의 사전 확률이 작용한다는 거죠.

Y 상대팀은 억울하겠어요.

K 그 심판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무튼 이런 경우, 투수나 타자는 심판의 그날 스트라이크존도 사전 정보로 고려합니다. 스트라이크 존이 넓다면 투수는 좀더 편하게 밖으로 빠지는 공을 던지려 할 거고, 반대로 타자는 어지간한 공은 치려고 하거나 적어도 파울로 걷어내려 하겠죠. 그런데 개인에 따라 이런 적응을 하는 시간이나 정도가 다 달라요. 실험실에서 원의 크기가 기준보다 큰지 작은지 판정하는 실험을 해봤어요. 마치 야구의 스트라이크존처럼 판정이 명쾌하지 않게 원을 보여줬죠. 그 후 마치 심판이 바뀐것처럼 판정 기준을 미세하게 변화시켰어요. 30번 반복 실험을 했는데, 약 10번 만에 바뀐 기준에 적응을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반면 전혀 적응 못하고 계속 틀리는 사람도 있었죠. 지나치게 의식해서 응답을 과도하게 변경한 사람도 있고요.


나이스 플레이! 멋지게 공을 잡는 야수의 동작은, 어떤 컴퓨터나 로봇으로도 할 수 없는 복잡한 신경과학 메커니즘을 거친다. 선수는 공을 본 순간 궤적을 경험을 통해 계산하고, 주변을 탐색하며 달려가 팔을 뻗는다▶ 나이스 플레이! 멋지게 공을 잡는 야수의 동작은, 어떤 컴퓨터나 로봇으로도 할 수 없는 복잡한 신경과학 메커니즘을 거친다. 선수는 공을 본 순간 궤적을 경험을 통해 계산하고, 주변을 탐색하며 달려가 팔을 뻗는다.

Y 일종의 피드백 원리인데, 개인차가 크군요.

캐스터 말씀하신 순간, 서던리그 선수가 공을 쳤습니다! 떴습니다! 아 그런데, 수비수, 따라가다 순간 공을 놓쳤네요. 조명 때문인가요? 이대로 놓치느냐? 놓치느냐? 아! 다시 찾아 잡았습니다!

Y 오늘 가장 긴 대사 하셨네요.

K 밥값 하셨어요.

캐스터 울분의 대사였습니다.

K 흥미롭게도, 저런 순간적인 상황에서도 감각 정보보다 경험이 중요하답니다. 이상훈 교수와 손한샘 연구원이 2012년 10월 신경생리학저널에 발표한 내용을 볼까요. 물체를 추적하는 실험을 했어요. 예를 들어 야생에서 사냥을 하는데 도망치던 사슴이 바위 뒤로 숨으면 ‘이때쯤 나오겠다’하고 반대쪽을 노리잖아요? 야구공을 받는 것도 비슷해요. 궤적을 예측해 그곳에 손을 내미는 행위지요. 일종의 시간 감각인데요, 비슷한 실험을 실험실에서 기호를 이용해 했어요. 재밌는 건 다음이에요. 이 실험을 열흘 동안 반복해서 점점 능숙하게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느는 건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쪽이 아니었어요. 경험 쪽이었죠. 저 선수도 아마 사라진 공의 궤적을 경험적으로 추정해서 ‘이 위치에 와 있겠다’ 하고 생각한 덕분에 찾았을 거예요.

Y 야수가 공을 보고 쫓아가는 데에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라는 심오한 주제가 숨어 있군요. 뭐 다른 거 없습니까? 전 야수의 행동이 참 신비롭거든요.

K 야수의 행동은 흥미로운 소재죠. 종합예술이에요. 날아가는 공의 궤적을 추적해 몸을 던져 잡습니다. 눈은 계속 공을 보고, 동시에 부딪힐 동료가 있지는 않나, 펜스에 부딪히지는 않을까 끊임없이 확인하죠.

Y 그렇게 동시에 볼 수가 있어요?

K 그럼요. 실험실에서 움직이는 점을 보여주고 궤적을 추적하는 실험을 해보면, 개인차는 있어도 대략 4~5개는 추적할 수 있어요.]

캐스터 거리에서 예쁜 사람을 보면 눈이 저절로 그리 되죠.

Y 거듭된 문제 발언이십니다.

K 추적 능력은 훈련으로 향상되기도 해요. 항공관제사처럼 레이더에서 여러 개의 대상을 동시에 추적해야 하는 사람은 이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스포츠 선수도 마찬가지고요. 또, 사람은 평소에도 1초에 3번 정도 시선을 도약시키며 다른 곳을 봅니다. 야수도 이런 능력을 활용해 공과 동료, 펜스를 종합적으로 인지하지 않을까요?

Y 아까 검도의 가르침이 맞긴 맞군요. 일안이족삼담사력…. 남자 (불쑥 들어오며) 그렇죠. 사기를 치려고 해도 ‘눈이 좋고 발이 빠르고 담력이 좋고 힘이 세야’ 하죠.

Y , K 그렇죠, 그래야 대상을 잘 찾고 도망도 잘 치며, 대범하게 저지르고 혹시 잡혀도 잘 탈출하죠. 남자 인정하시죠?

Y , K 근데 누구시죠?

캐스터 경찰이에요. 2인조 사기범, 현장 검거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은 생방송으로 지켜보셨네요.

Y , K 아니, 저기…, 야구도 연장전에 들어갈 거 같은데 조금만 더 이야기한 뒤에….

캐스터 올스타전에 연장전이 어딨어요, 승부치기만 있지. 잔꾀 부리지 마시고 어서 경찰서로 가세요. 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이제야 좀 조용히, 평화롭게 중계를 할 수 있겠네요. 이 분들이 가는 와중에도 제게 쪽지를 남겼는데, ‘설명한 내용은 다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썼군요. 그럼 무슨 사기를 치고 싶었던 걸까요. 그냥 야구가 좋았던 걸까요. 아무튼…. 노던리그의 4회 초 공격 시작합니다. 해켈 선수 마운드에 오릅니다. 타자 타석에 들어섰고요, 매섭게 투수를 노려보네요. 지금 해켈 선수가 무슨 공을 던질지 머리가 바쁠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투수의 손끝을 향합니다. 타자, 포수, 심지어 심판까지…. 자, 투수 와인드업, 제1구!

2014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글 윤신영 기자 | 도움 이상훈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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