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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의 전환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

서울대 물리학과 노태원교수

 

서울대 물리학과 노태원교수


“형 그거 어떻게 풀었어? 굉장히 빨리 풀었는데?”
“응, 방정식을 세우지 않아도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자연수를 찾으면 되지! 그건 말이야…”
“큰형은 꼭 다른 방법을 찾더라!”
“평범한 방법으로 풀면 재미가 없어서 그래. 새로운 방법을 찾다보면 얼마나 재미있는데!”

식탁에 둘러앉은 4형제가 수학 퀴즈를 풀며 주고받는 말이다. 소란스럽다거나 딴전 피운다고 혼내는 소리는 물론 없다. 이들 중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 첫째형이 바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인 F램에 사용되는 신소재 BLT(비스무트란탄티탄)를 개발한 노태원교수(43)다. 늘 새로운 방법을 찾던 그의 성향은 이번 연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돈과 장비보다 중요한 연구 의욕

91년 F램 소재로 새로운 SBT계열(스트론튬 비스무트 탄탈룸 산화물) 물질이 발견되면서 세계의 연구팀은 같은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존의 PZT(납 지르코늄 티탄 산화물)계열과 SBT계열 소재는 반복적으로 정보를 읽고 쓰면 성능이 저하되는 피로현상을 보였다. 국내외의 연구팀이 이 피로현상을 없애는 방법을 찾느라 시간을 보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 노교수는 남들과 똑같은 연구는 포기하고 피로현상의 원인을 규명하는 모델 고안에 들어갔다. 문제를 원점에 놓고 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찌 보면 출발선을 뒤로 가져간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연구팀의 박배호(29)연구원이 피로현상을 없앨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이론적으로 증명해낸 것이다. 그 이론이 신소재 개발로 이어지는데는 불과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창의적인 생각이 얼마나 큰 결과를 이뤄낸다는 것을 보여준 예다.

오늘의 성공은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밖에 없다. 89년 부임한 서울대 실험실은 텅빈 공간이었다. 다른 교수들이 농담반진담반 “탁구대 놓고 경기하면 되겠네”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원래 전공인 초전도체의 광학적 성질에 관한 연구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는 고민했다.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행히 돈이 적게 드는 산화물 박막이란 주제를 찾을 수 있었다. 시드 머니 2백만원을 들고 청계천으로 달려갔다. 장비 하나하나를 구입해 실험실을 꾸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겐 더 큰 좌절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같이 연구해야할 학생들이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외국에 가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학생들이 국내의 여건만 탓하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여기서 주저앉을 노교수는 아니었다. 코넬대에서 박사후 과정때 지도교수이던 시블스 교수에게서 배운 것을 몸소 실천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많이 가르치는 것이다” 자신이 열정을 갖지 않고 학생들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늘 생각 속에 잠겨 지내
 

동생들과 함께 한 고등학교시절의 노태원 교수(뒷줄 왼쪽).당시 동생들과의 퀴즈 풀기는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노교수는 학생들과 꾸준히 얘기하면서 그들의 가슴 속 저 밑바닥에서 식어가는 연구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연구실은 활기를 띠면서 무서운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연구팀이 드림팀으로 변해갔다.

노교수는 현재도 “좋은 학생들과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힘이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는 매우 개방적이다. 이런 성격은 세미나 시간에도 잘 나타난다. 또 소탈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뽑아내는데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아이디어 뱅크라는 말이 그를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성향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국어 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수학문제와 잘 이해되지 않았던 과학문제가 떠나질 않았다. 그는 요즘도 늘 무언가를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교수들 세미나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의 밑그림을 그리느라 잠깐씩 다른 생각을 한다. 상대방에게 미안한 줄은 알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서울대 이공계열로 들어온 노태원 교수는 막연하게 공학을 공부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전공을 정할 때 지도교수이던 최병두 교수가 물리를 해보고 대학원에 가서 공학을 해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하는 바람에 물리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한다. 그 후 자신의 적성이 물리에 더 있음을 깨달았다. 즐겁게 몰두할 수 있었기에 이 길이 자신의 길이 됐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대학 선택을 앞두거나 진로를 결정하려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면 새로운 문제를 찾아 도전해 보라.”

200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지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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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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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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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녕만 기자
  • 장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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