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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급팽창 첫 증거 발견, 그 이후 - 초끈이론이 흔들린다?

우주 급팽창 첫 증거 발견, 그 이후 - 초끈이론이 흔들린다?


남극에 있는 망원경인 바이셉2(BICEP2)는 우주배경복사에서 빅뱅(대폭발) 직후에 생겨난 중력파의 흔적을 처음으로 관측했다. 학계는 이를 태초에 빛보다 빠르게 우주가 팽창한 순간이 있었다는 ‘급팽창가설(인플레이션가설)’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바이셉2에서 나온 데이터 일부는 다양한 급팽창 모델을 주장했던 과학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급팽창은 증명했는데 급팽창 모델은 제거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만약 바이셉2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급팽창 모델은 제거된다! 급팽창 모델을 구별하는 중요한 값들이 있는데 n, r, α가 대표적이다. 자세한 건 뒤에서 고민하고, 여기서는 바이셉2가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해서 그 값들을 구했다는 점만 짚고 넘어가자. 바이셉2의 결론은 n=0.96, r=0.2, α=-0.028이다.


지금까지 표준 모델을 토대로 만든 대부분의 급팽창 모델은 r=0.1, α은 거의 0에 가까운 값이라고 예측했다(n 값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초끈이론에 기반한 급팽창 모델들은 r값이 10만분의 1보다 작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현재 관측의 정밀도 상, r값이 100분의 1보다 큰 경우만을 관측할 수 있다. 이번 발표 전까지 학계에서 바이셉2가 급팽창 가설을 증명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이 예상치 못한 값들을 바이셉2가 발표한 것이다.


이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실험이 틀렸다? 아니면 실험값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이론은 없다? 아니면 두 경우 모두? 올바른 답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실험으로 검증해야 한다. 학계는 남극의 케크망원경(KECK)과 플랑크우주망원경(PLANCK)의 실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물질 섭동, 중력파 섭동이란?



바이셉2가 관측한 원형편광이란


이제 바이셉2가 우주배경복사의 무슨 정보를 어떻게관측했는지 차분히 살펴보자. 우주배경복사란 지금 절대온도 2.7K(영하 270℃)의 온도로 균일하게 우주에 분포되어 있는 빛을 말한다. 현재 관측기술은 이 온도에서 10만분의 1 정도의 변화까지 측정할 수 있다. 이 빛의 미미한 변화를 통해 우주 초창기에 물질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섭동) 예측할 수 있다.


횡파인 빛을 이야기 할 때는 세기와 함께 편광도 따져야 한다. 3차원 공간에서 빛의 진행 방향을 z방향이라고 하면, 빛은 x와 y방향으로 진동한다. 만약 x와 y방향으로 진동하는 세기가 같다면 무편광 빛이다. x와 y방향의 진동 세기가 다를 때 편광된 빛이라고 한다. 편광 형태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진동 방향을 중심으로 수평이나 수직의 편광형태를 보이면 선형편광(E모드)이다.


진동 방향을 향해 시계나 반시계 방향으로 편광형태를 보이면 원형편광(B 모드)이다. 초기 우주의 빛은 무편광 상태였을 것이다. 이 빛의 일부는 물질 섭동의 영향으로 선형편광을 띤 빛으로 변했다. 선형편광 정도는 우주배경복사 세기의 100만분의 1이다. 이를 측정하면 물질 섭동의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나머지 무편광 빛 중의 일부는 중력파 섭동의 영향으로 원형편광을 가진 빛이 됐다. 우주배경복사의 1000만분의 1 세기인 원형편광을 측정하면 중력파 섭동의 크기를 구할 수 있다.


1000만분의 1 정도의 원형편광 신호를 측정하려면 매우 정밀한 실험 장치와 남극처럼 안정된 대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바이셉2는 잠자리 눈모양의 검출기 512개를 이용해 달이 1900여 개가 들어갈 만한 넓이의 우주를 관측했다. 150GHz 주파수대 영역의 신호들을 600여 일에 걸쳐 관측한 결과 마침내 우주배경복사에서 원형편광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런 편광에서 원시 중력파의 흔적만 걸러내 급팽창이론의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주의 급팽창은 약 10-37 초에 일어났다는 결론이 나온다.


 
 남극에서 케크망원경(KECK)으로 바이셉2의 결과에 대한 검증 실험을 진행 중이다.
[남극에서 케크망원경(KECK)으로 바이셉2의 결과에 대한 검증 실험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바이셉2가 정말 우주의 급팽창을 실험적으로 관측한 것일까? 엄밀한 의미에서 바이셉2가 관측한 것은 빛의 원형편광이다. 원형편광은 우주의 급팽창 시 발생한 중력파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으므로, 이를 통해 중력파를 간접적으로 발견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빛의 원형편광이 만들어지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위의 결론이 틀렸을 수도 있다. 또 우리가 관측해야 하는 원형편광은 아주 미미한 신호이기에 실험 자체의 정밀도도 매우 높아야 한다. 이 정밀도 면에서 의심할 만한 부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실험 데이터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차는 정밀하게 걸러졌고, 바이셉2가 중력파의 흔적을 보았다는 사실에 대부분 수긍하는 것이 학계의 분위기다.


바이셉2가 관측한 우주배경복사의 편광 패턴(➊). 우주 급팽창 시기에 발생한 중력파의 흔적을 보여준다. 물질 섭동의 영향으로 우주배경복사가  선형편광 빛이 되면 ➋처럼 편광패턴에 가로나  수직 선분만 나온다.


표준모형과 초끈이론이 틀렸을까


지금부터는 바이셉2의 실험이 온전히 맞다는 전제하에 이야기하자. 앞에서 빛의 원형편광 측정은 우주 급팽창에 대한 간접적 실험 결과라고 했다. 이 의미를 잘 이해하려면 바이셉2의 관측 결과와 기존 이론들의 관계를 알아야한다.


우주의 섭동은 스칼라, 벡터, 텐서로 나눌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스칼라는 온도처럼 크기만을 갖는 물리량이다. 벡터는 속도처럼 크기와 방향을 갖는 물리량이다. 텐서는 각운동량처럼 크기와 방향을 갖는데, 제3의 방향성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 중 벡터 섭동량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멸돼 현재 우주 관측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수많은 급팽창 모델들을 세울 때 사용하는 것이 텐서와 스칼라 섭동의 비율이다. 바로 이 값이 처음에 언급한 r이다. 각 섭동의 측정 규모에 대한 의존도는 n, n의 측정 규모의 로그값에 대한 변화량(기울기)을 α라고 한다. 각각의 모델들은 고유한 r, n, α값을 예측한다.


급팽창가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급팽창 모델들은 여러 가지 존재한다. 예를 들어, 표준모형에서 나온 급팽창 모델들은 r≃0.1, n≃0.96, α≃0을 만족한다. 하지만 바이셉2는 n≃0.96으로 동일하지만 r≃0.2, α≃-0.028 으로 기존의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를 주었다.


우주의 섭동

캠퍼스 커플과 우주



모든 힘을 동일한 기원에서 본다는 초끈이론은 어떨까. 초끈이론에서 출발한 급팽창 모델은 ‘막 인플레이션’, ‘각 인플레이션’ 등이 있다(이 외에도 많다). 이 모델들의 특징은 r 값이 10만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번 바이셉2 관측 결과인 r=0.2에 따르면 두 모델 모두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즉 바이셉2의 결과를 그대로 믿는다면 표준모형이나 초끈이론에 기인한 급팽창 모델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셉2의 결과가 우주의 급팽창을 증명하는 실험이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데이터 자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모델이 틀렸다고 볼 수 있는 충격적인 결과를 줬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존 모델들을 버리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게다가 초끈이론마저도 버려야 할까. 답을 먼저 하자면, “아니다”. 이는 단지 초끈이론에서 급팽창을 만드는 가정인 다차원의 안정화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만 새로운 답을 찾아야 하는 것뿐이다.


또 우리는 바이셉2의 실험이 완전히 맞다고 전제했지만, 학계에서는 현재 엄밀히 확인 중인 가능성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바이셉2가 보여준 실험치를 해석하는 과정의 문제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기존 모델들과 바이셉2의 다른 점은 r값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이는 바이셉2의 데이터에서 실험적 오차를 줄이는 방법 때문에 생긴 결과일 수 있다. 사실 우주론의 실험에서 생기는 오차값은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줄일 수 있는 게 아닐 때가 있다. 바이셉2 데이터를 다른 오차 가정 하에 계산해보면 r=0.16에 가까운 값이 나올 수도 있다.


둘째, 바이셉2에서 발견된 원형편광은 중력파뿐 아니라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다. 즉 급팽창 효과로 생긴 r=0.1과 또 다른 원형편광을 일으키는 효과로 생기는 r=0.1이 더해졌다면, 바이셉2가 관측한 r=0.2는 기존의 급팽창모델과 잘 맞을 수도 있다.



다차원의 안정화 과정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바이셉2의 센서. 우주배경복사를 온도의 변화로 감지하기 때문에 온도 0.25K에서 작동시켜야할 정도로 예민하다.


실험과 이론은 2인3각 경기


바이셉2의 실험 결과가 절대 진리를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아쉽고 실망스러울 수 있다. 과학은 절대적인 이론을 추구하지만, 그 이론은 늘 실험을 통해 검증돼야 하는 운명이다. 모든 실험도 가능한 이론을 토대로 관측값을 다시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완전히 독립적일 것 같은 실험과 이론은 이렇게 한쪽 다리를 묶고 함께 가야 하는 숙명의 2인3각 경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운이 좋아 지금보다 상위의 진리를 찾더라도 더 새롭고 궁극적인 진리를 알기 위한 노력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과학계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결국 영원히 고민하며 좀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오늘만큼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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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김선희 | 글 이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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