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에서 발표한 해양사고통계자료를 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우리나라 해역에서 전복사고가 난 배 118척 중에서 여객선은 단 한 척도 없다. 어선이 뒤집힌 경우가 81%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예인선이나 군함, 요트가 나머지다. 암초에 걸리지 않고서는 세월호 같은 대형 여객선이 이렇게 멀쩡히 항해하다가 뒤집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만큼 이번 사고가 드문 일이라는 말이다.
사고가 적다보니 원인을 분석한 자료도 찾기 어려워41서 여객선 대신 어선의 전복사고를 분석한 자료를 뒤져봤다. 상식적으로 폭풍우가 치고 파도가 높게 이는 날 사고가 많을 것 같지만, 자료는 그렇지 않았다.
목포해양대 정창현 교수와 한국해양대 박영수 교수팀이 2012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선박 사고 당시의 기상은 나쁘지 않은 날이 많았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일어난 어선 전복사고 30건을 분석한 결과, 풍속이 풍랑주의보가 발효되기 이전인 초속 14m 미만으로 불 때 전체 전복사고의 3분의 2인 20건(67%)이 발생했다. 그 중 11건(37%)은 세월호가 전복됐을 때처럼 파고가 1m 미만으로 아주 잠잠한 상태에서 사고가 났다. 파도가 거세게 치면 아예 출항을 하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지만 파도와 바람이 잠잠해도 얼마든지 선박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날씨 탓이 아니라면 뭐 때문에 배가 뒤집힌 걸까.
첫 번째 원인 화물의 이동
보고서에서 전복 사고의 원인 중 1위로 꼽은 것은 놀랍게도 ‘중량물의 이동(22%)’이다. 잡은 물고기나 어획 도구를 고정해 놓지 않아 배가 좌우로 진동(횡동요)할 때 화물이 따라 움직이며 선체를 더 기울게 만든 것이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1층과 2층, 갑판에 있는 컨테이너와 자동차를 제대로 고정시켜놓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두 번째 원인 무게중심 상승
화물의 이동은 어선 전복사고 원인 중 두 번째인 ‘무게중심의 상승(21%)’과도 관련이 깊다. 선체가 기울어지며 한쪽으로 쏠린 화물은 선체가 반대편으로 기울었을 때 무게중심을 높인다. 연료탱크에 연료가 꽉 차 있지 않을 때도 비슷한 효과가 난다. 연료가 ‘찰랑찰랑’거리며 배가 기우뚱할 때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세월호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갑판에 객실을 증축해 설계시보다 무게중심이 상승했다는 의혹도 일리 있는 지적이다. 이승건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무게중심이 높아지면 배가 기울었을 때 복원력을 잃기 쉽다”고 말한다(오른쪽 INSIDE 참조).
세월호가 안개 때문에 출항이 지연되자 무리하게 속도를 높이기 위해 평형수(밸러스트 수)를 과도하게 빼서 무게중심이 높아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평형수는 화물이나 승객이 없을 때 배의 무게중심을 낮추기 위해 배 아랫부분 탱크에 채워 넣는 물이다. 평형수를 빼면 배가 물에 잠기는 부분이 적어 저항을 덜 받으므로 빨리 갈 수 있지만 그만큼 가벼워져서 넘어지기 쉽다. 다만 세월호가 화물과 승객을 실으면서 무게가 늘어난 양에 비례해 정상적인 양만큼 평형수를 뺐다는 반론도 있다.
세 번째 원인 급격한 변침(회전)
이번 사고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받은 ‘급격한 변침’도 전복사고의 중요 원인 중 하나(18%)다. 변침은 ‘배의 진행방향을 바꾼다’는 용어인데, 급격한 변침은 배를 옆으로 기울게 만들어 상당히 위험하다. 자동차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급커브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운전대를 확 꺾으면 회전하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차체가 낮아지고 운전자의 몸도 쏠린다.
배도 비슷하다. 다만 자동차와 다른 건 핸들이 뒤에 있다는 점이다. 선박의 방향키를 돌리면 선수는 가만히 있고 선미가 옆으로 이동하며 배가 회전하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세월호에서는 배가 90˚가까이 급격히 돌아갔다. 회전하는 각이 크면 선체가 회전방향의 바깥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런데 이때 회전방향 안쪽에서 파도가 크게 치면 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횡동요가 발생해 배가 뒤집어질 수 있다. 학계에서는 이런 전복사고를 ‘브로칭(broaching)’이라고 부른다.
빠른 조류가 세월호를 쓰러뜨렸을까
이번 사고도 브로칭의 일종인데, 큰 파도가 치지 않았다는 것이 미스터리다. 세월호와 같은 조선소에서 만들어진 아리아케호가 5년 전 비슷하게 전복됐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지만, 그때는 6m가 넘는 큰 파도가 있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파도의 높이가 채 1m가 되지 않았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조심스럽게 “강한 조류가 파도의 역할을 대신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강하게 파도가 치지 않는데 대형 여객선에서 브로칭이 일어난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듭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 학자들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데…, 좀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실제 사고가 난 지점인 맹골수도는 울돌목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조류가 세다. 더구나 사고 당시 조류는 세월호의 진행방향과 수직으로 흐르고 있었다. 선체가 왼쪽으로 기우는 상황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시점에는 조류가 그리 세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42페이지 참조).
화물이 부딪치며 배에 구멍이 뚫렸다는 주장도 있지만, 문병영 군산대 조선공학과 교수는 “구멍이 뚫리지 않아도 배가 40° 이상 기울게 되면 갑판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서 배가 가라앉아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용환 교수도 같은 의견이다. “사고 초기 배가 옆으로 완전히 누운 모습을 봤을 때부터 이상했습니다. 어떤 원인으로든 배에 구멍이 났다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비스듬히 기울 텐데, 세월호는 서 있던 배가 그대로 옆으로 누운 것처럼 쓰러져 있었죠. 다만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배를 인양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어포켓에서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실낱같은 희망을 준 것이 에어포켓이었다. 에어포켓은 선실 내부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공기가 고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에어포켓은 얼마나 남아있던 걸까. 장창두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는 4월 17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가 6800t 규모임을 감안할 때 선수 부분을 지탱하고 있는 공기의 양은 500~1000m3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남아있는 에어포켓의 부피를 추정하기 꺼려했다. 이동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미래선박연구부장은 “선미가 닿아있는 해저 지면이 배를 떠받치고 있는 힘을 알 수 없어 부력을 계산하기 어렵다”고 했고, 익명을 요구한 일부 전문가들은 “에어포켓이 없어도 선미가 선수보다 훨씬 무겁기 때문에 배가 기울어 있을 수 있다”며 에어포켓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에어포켓이 기적을 보여준 사례는 있다. 나이지리아 선원인 해리슨 오케네는 대서양을 항해하다 선박이 침몰하는 바람에 배와 함께 30m 아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침몰 당시 밀폐된 화장실에 있었다. 오큰에게 주어진 공간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2.4m가량인 13.5m3. 노래방에서 가장 작은 방의 크기다. 이 안에서 오케네는 무려 60시간을 생존해서 구조대에 구출됐다.
에어포켓에 있다 해도 호흡을 할수록 산소는 줄어들고 이산화탄소는 늘어난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비율이 5%(평상시 0.03%)만 돼도 폐포에서 산소교환이 잘 이뤄지지 않아 질식할 수 있다. 혹시 사람이 호흡으로 뱉어내는 이산화탄소 양과 물에 녹아들어가는 이산화탄소 양이 평형을 이룬다면 훨씬 오래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문제를 놓고 미국 물리학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한 과학사이트에서 2013년에 열띤 토론이 있었다. 질문은 “한 사람이 호흡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에어포켓의 크기는 얼마일까”였다.
미국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막심 우만스키 박사는 이산화탄소가 물속으로 녹아들고, 반대로 물속에 녹아있던 산소가 공기 중으로 올라온다면 사람이 계속 숨을 쉴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만스키 박사의 질문에 세계 각지의 과학자 12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계산한 식을 올렸다.
가장 정교하게 계산한 사람은 영국 에딘버러대 체이피터슨 박사다. 기체의 농도변화와 용해도에 관한 물리학 법칙인 ‘픽스의 법칙’과 ‘헨리의 법칙’을 이용해 지속생존 가능한 에어포켓의 최소 지름을 계산했다(지면상 계산은 생략한다). 피터슨 박사가 구한 에어포켓의 크기는 지름 400m. 참가자들은 이 계산에 수긍하면서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닷속 동굴이라면 몰라도 좁은 배 안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오케네 역시 일찍 구조되지 않았더라면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오케네가 생존가능한 최대시간을 79시간으로 계산했다. 차가운 바닷물로 인한 저체온증과 탈수는 제외하고 호흡에 필요한 공기만 계산했을 때 그렇다.
필요한 에어포켓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은 재난 사고에서 초기 구조 시간, 흔히 말하는 골든타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최악의 상황에서 에어포켓의 가능성에 마지막 기대를 하는 게 어쩔 수 없었지만 사고 직후 선장과 선원들은 물론 정부의 행동이 조금만 달랐어도 소중한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구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의 넋을 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