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 사이보그 세상 연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4023630235333e954852c7.jpg)
![오라클 팀USA는 2013년 아메리카컵 요트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10950757295333e9a1cd946.jpg)
“우리 팀 기술자들이 마침내 (승리의) 암호를 해독했다.”
2013년 가을, ‘물 위의 F1’이라 불리는 제34회 아메리카컵 요트대회가 끝난 직후,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CEO)는 한껏 뻐기며 이렇게 말했다. 그럴만했다. 그가 사실상 소유한 ‘오라클 팀USA’가 결승에서 1대8로 뒤지고 있다가 막판 8연승을 거두며 최종 우승이라는 대역전극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으로 산 트로피”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많았다. 이 역시 그럴만했다. 경기 당시 이 팀은 요트 곳곳에 달린 400개 이상의 센서에서 풍속, 풍향, 돛대 상태, 물살 저항 등의 정보를 모은 뒤 무선인터넷을 통해 컴퓨터에 모아 분석하고 그 결과를 다시 요트의 태블릿PC나 선수들이 찬 스마트워치로 전송했다.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최적의 조종법을 도출한 것이다. 요트광으로 유명한 엘리슨은 이번 대회에 최대 5억 달러(340억 원)를 쏟아 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인터넷에 연결되다
갑자기 요트대회 얘기를 꺼낸 건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사물인터넷은 최근 몇 달 사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용어다. 광고에 자주 등장하더니 박근혜 대통령마저 올해 1월 열린 ‘제44차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사물인터넷 산업 육성을 강조했다. 대체 사물인터넷이란 무엇일까.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P&G의 연구원이었던 케빈 애쉬톤이다. 그는 1999년 “RFID(전자태그)와 기타 센서를 일상의 사물(Things)에 탑재하면 사물인터넷이 구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사물들끼리 알아서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EU의 서프(CERP)에서는 사물인터넷이 ‘지능형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물들이 서로 소통함으로써 자율성과 역동성을 갖춘, 인터넷에 통합된 글로벌 네트워크 인프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설명들을 모아보면 사물인터넷의 개념은 ‘지능형 인터페이스를 갖춘 개별적인 사물(Things)들이 각자 생성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고 상호작용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로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설명보다 앞선 요트 경기처럼 실제로 구현한 사례를 보는 게 더 명확하다. 예를 들어 물류업체인 페덱스는 ‘센스어웨어(SenseAware)’라는 사물인터넷 시스템을 활용 중이다. 배송 물품이나 박스에 센서를 달아 온도나 위치 등의 다양한 배송정보를 추적해서 고객에게 제공한다. 기업은 효율성이 높아지고, 고객은 자신이 주문한 제품이 어디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최근 TV에 방영된 SK텔레콤의 광고에서도 사물인터넷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잘 볼 수 있다. 이 광고는 사물인터넷으로 구축할 수 있는 4개 시스템을 보여준다. 자동차가 스스로 감지한 기상상황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운전자의 스마트폰으로 보내는 시스템, 폐쇄회로(CCTV)를 통해 행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가로등의 밝기를 높이는 시스템, 일정 시간 동안 동작감지 센서에 아무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사무실의 전등을 끄는 시스템, 비닐하우스에 부착된 센서를 이용해 자동으로 하우스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 뒤 이를 관리자의 태블릿PC로 전송하는 시스템이다.
사물인터넷이 각광받다 보니 세계 최대 네트워크 솔루션 기업인 시스코시스템즈는 이를 넘어 ‘만물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전도사가 됐다. 사물인터넷보다 더 큰, 만물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전세계의 투자를 일으키겠다는 속내다. 시스코시스템즈의 존 체임버스 회장은 2014년 CES 기조연설에서 “만물인터넷이 앞으로 10년간 19조 달러(2경3000조 원)의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생활로 들어온 사물인터넷](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17526975375333ea0df082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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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과 빅데이터가 핵심 기술
사물인터넷의 핵심 기술로 센싱, 유무선 통신 및 네트워크 인프라, 서비스 인터페이스, 보안 등이 꼽힌다. 센싱은 필요한 사물이나 장소에 RFID와 센서를 부착해 주변 정보를 획득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기술이다. 최근에는 센서 자체에 정보처리 능력을 넣은 스마트 센서가 주목받고 있다. 유무선 통신 및 네트워크 인프라는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도록 지원하는 기본 기술을 의미한다. 서비스 인터페이스는 사물인터넷의 각사물과 여기서 생성된 정보를 서비스 및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하는 기술이며, 보안은 정보유출 및 해킹을 방지하는 기술이다.
특히 보안 기술이 중요하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쌓이는 정보가 늘어날수록 정보가 유실되거나 유출되었을 때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또 빅데이터 기술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사물인터넷, 만물인터넷에서 아무리 많은 정보가 나온다 한들 그 중에서 필요한 것을 골라낸 뒤 재빨리 분석할 수 없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은 법적, 제도적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도 크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정보의 생성 및 유통 과정은 이전의 것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된 원격진료 허용 여부를 놓고 의사협회에서 파업까지 벌이며 정부와 대립한 것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사물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의 의료행위 개념에는 원격진료가 포함되지 않았다. 진료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과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의료정보를 함부로 병원 외부로 전송해서는 안 된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물인터넷과 촘촘한 네트워크를 통해 환자의 상태는 물론이고 환자가 위치한 환경 정보를 수집해 다른 정보, 전례와 비교하면 더 빠르고 간편하게 질 좋은 진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스카나두라는 회사가 개발한 ‘스카나두 스카우트’는 관자놀이에 10초 정도 대고 있으면 심박수, 심전도, 산소포화도 등 각종 활력징후를 체크하고 이 정보를 데이터센터에서 분석해 그 결과를 e메일로 환자에게 보내준다. 이런 서비스가 국내에서 허용될까? 이보다 네트워크를 통한 진료가 의료행위에 포함되는지, 즉 의료행위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에 먼저 새롭게 답을 내려야 한다. 네트워크로 전송될 수 있는 지식, 정보를 다루는 분야는 사물인터넷으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사물인터넷, 유비쿼터스, 만물인터넷](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4/03/3906235915333ea3e1ec5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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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사물의 경계는 어디?
사물인터넷에서 한발 더 나아간 만물인터넷, 즉 인간과 사물이 정보로서 상호작용하는 이종네트워크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더욱 근센서본적인 문제도 제기된다. 정보와 상호작용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인간과 사물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영화 ‘코드명J’에서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의 직업은 대용량의 데이터를 뇌에 저장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일종의 데이터 택배원이다. 불의의 사고로 저장 용량을 초과하는 데이터를 받아들인 주인공은 과부하로 죽지 않기 위해 세계 최고의 천재 해커를 찾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해커를 만난 주인공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 나타난 건 사람이 아니라 수조 속의 돌고래였기 때문이다. ‘정보’를 ‘해킹’이라는 방식으로 다룬다는 것만으로는 돌고래와 사람을 구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네트워크에서 인간과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까. 사물은 사이보그가 되어 인간과 같은 지위를 획득하게 될까. 사물인터넷과 만물인터넷은 인간과 사물, 그리고 서로간의 관계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제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