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예측불허 주가에 숨겨진 질서

로켓 물리학자가 증권가로 간 까닭

누구든 주식투자로 떼돈을 벌었다는데 내 주식은 왜 반토막인가.얼핏 보기에 복잡한 주가의 변화에도 숨겨진 질서나 규칙이 있다고 한다.이를 찾기 위해 미국항공우주국(NASA)로켓 물리학자들이 대거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는데….

1997년 IMF사태가 발생한 이후,사람들 사이에서 증권투자가 붐을 이루고 있다.금융시장의 구조조정에 이어 선물이나 옵션,뮤추얼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이 개발되면서 증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고,코스닥시장과 전자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증권투자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초단타 매매로 매일 수십만원씩 번다는 전문투자가의 무용담이 책으로 나오고,주식투자로 수십억을 벌었다는 고수익 투자가들의 성공담이 신문지상에 심상찮게 오르내린다.바야흐로 은행 이자만으로도 행복했던 소시민들의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시절이 온 것이다.

증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1602년 네덜란드에 이른다.바르톨로뮤 디아즈가 희망봉을 발견하고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항로를 개척해 유럽과 동양의 직무역시대를 열자,동양의 진귀한 물자들을 실어와 유럽에서 파는 해상무역이 엄청난 이익을 남기게 됐다.그러나 이러한 이익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있었으니,바로 태풍 같은 자연재해와 해적선의 약탈.성공하면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지만,실패하면 파산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무역상들은 주식형태의 증서를 발행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투기성 무역을 시작하게 됐고,이러한 해상무역이 더욱 발전해 160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세계 증권시장의 역사는 무려 4백년이나 되는 셈이다.

1백8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증시가 국제금융의 중심지가 되면서 다양한 시장예측이론과 숱한 일화의 증권왕을 탄생시켰건만,윌스트리트에서도 '주가 예측'은 4백년 전 만큼이나 어렵고 막막하긴 마찬가지다.최근 미국에서는 4백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이 난제를 풀기 위해 수학과 컴퓨터에 능숙한 물리학자를 대거 영입하고 있다.

복잡한 경제문제에 뛰어든 물리학자


'금융데이터 분석에 대한 물리학의 적용'이라는 학술회의를 후원하는 '금융이론과 응용에 관한 국제 학술지.'


물리학과 경제학 사이의 높은 벽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로켓 과학자'라고 불리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출신의 물리학자들이 윌스트리트에 진출하면서부터였다.현재 미국에서는 '윌스트리트가 물리학 박사의 가장 큰 고용주'하는 농담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많은 물리학자들이 투자회사나 은행에서 데이터분석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물리학자가 쓴 금융관련 연구논문이 저명한 과학저널과 경제학술지에 발표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고,1999년 7월에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금융데이터분석에 대한 물리학의 적용'이라는 유럽 학술회의가 처음으로 개최되기도 했다.

국제금융시장은 모건 스탠리와 골드만 삭스,메릴린치 같은 세계적인 투자은행과 증권회사의 고수익 쟁탈을 위한 전쟁터다.거래방식은 제각기 다르지만,개인이나 기업에 투자해 이익을 늘리고 투자로 인한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것이 이들 투자회사의 한결같은 목표다.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던 천체물리학자가 이곳에서 하는 일은 투자거래에 따른 위험성을 평가하고,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거래방식을 찾는 일이다.물론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물리학자가 증권가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우선 가장 큰 이유는 경제분야에서 물리학자의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전통적인 금융이론은 고도로 다양하고 복잡한 경제현상을 설명하는데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왔다.금융전문가들은 복잡성 과학과 카오스 이론,컴퓨터 모델링과 확률 이론 등 물리학자가 고안해낸 방법론에서 그 돌파구를 찾으려고 한다.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분석적인 사고에 능한 물리학자가 경제학의 복잡한 문제를 푸는데 실마리를 제공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많은 경제현상이 비선형 복잡계와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는 사실 또한 물리학자에겐 매력적인 도전이 된다.경제현상은 개인와 가정에서부터 다국적 기업,국가,그리고 국가간 연합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와 활동범위가 다양하며,이들 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이 경쟁과 연합의 원리를 근간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최근 경제현상이 난류현상이나 생물 종들의 진화와 유사하다는 연구가 발표되면서,경제현상에 대한 물리적 접근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주가동향이나 환율,금리,무역량 등 경제지표를 나타내는 지수들이 잘 정량화돼 있고,자료가 풍부하다는 점도 물리학자를 불러들이게 된 요인 중의 하나다.한 사례로,미국의 10개 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모든 주식의 가격동향은 15초간격으로 전산 기록되며,1992년 이후의 자료만도 고배율로 압축·저장된 CD 1백여장이 넘는다.이밖에도 환율변동,금리변동,유가변동 등 거시경제지표 역시 아주 정밀하게 자료화돼 있고 누구나 쉽게 검색이 가능하다.

가슴 아프지만,입자물리학이나 천체물리학 분야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도 주요 원인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이론물리학의 경우 박사후 연구원이나 교수 외에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할 수 없이 금융계나 컴퓨터산업으로 옮겨간 물리학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그들에게 윌스트리트나 실리콘밸리의 거액연봉 제의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내일의 주가 어디로 튈지 몰라?


오늘의 주가는 오늘 벌어진 다양한 사건에 영향을 받는다.사진은 국회의원 당선자가 발표된 당일의 주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물리학자들은 금융계에 진출한 이후 과연 어떤 일을 수행해왔나.그들의 활약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전통적인 금융이론에 대한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그동안 경제학자들은 고수익의 안전한 투자를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해 왔을까.

지난 30년 동안 널리 받아들여져 온 자본시장 이론의 핵심 아이디어는 폴 샤무엘슨이 제창한 '효율적인 시장 가정'이다.이 가정에 따르면,실제 시장은 이용가능한 모든 정보가 즉각적으로 공개되고,합리적인 투자가들에 의해 그 정보가 즉각적으로 가격에 반영되는 '효율적인 시장'이라는 것이다.오늘 주가는 오늘의 모든 변동요인을 반영해 형성된 것이고,내일 주가 또한 내일의 모든 변동요인을 반영해 형성된 것이므로,오늘 주가와 내일 주가는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게 된다.따라서 주가는 매일매일 독립적으로 움직이며,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가는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주가예측을 바탕으로 주식투자를 할 수 없다'고 단정짓는 이론이 바로 '랜덤워크 이론'(random-walk theory)이다.이 이론은 주식투자가에게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전략이다.그래서 랜덤워크 이론가는 주가변동과 상관없이 투자수익을 높일 수 있는 투자전략을 개발해 왔다.여러 유가증권에 효율적으로 분산투자해 위험을 줄이고 수익을 높이고자 하는 포트폴리오 투자전략이 그 한 예다.

그렇다면 과연 실제 증권시장은 효율적인 시장일까?전혀 그렇지 않다.실제 증권시장에서는 모든 투자가들이 정보를 즉각적으로 처리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성적이지도 않다.물가,경기,기업의 수익력,금리,통화량,정국의 동향 등 쏟아지는 정보는 해석하기조차 힘들다.또 이를 즉시 거래에 반영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장애요소가 존재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통계 분석,데이터베이스 축적,이론적 모형 등 많은 연구가 수행됐지만,놀랍게도 아직도 '효율적 시장 가정'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오히려 효율적 시장 가정을 지지하는 학파와 이를 반대하는 학파의 첨예한 대립만 심화되고 있다.이들 논쟁의 결과로 도출된 결론 중 하나가 실물시장경제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더 정교한 수학적 모형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기 예측은 가능

물리학자들이 금융가에 뛰어들어 제일 먼저 한 일은 주가지수의 변화가 과연 랜덤한가(무작위적인가)를 알아보는 일이었다.금융시장에서 자산수익을 예측하는 문제는 50%의 확률보다 조금만 더 높아도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투자회사와 펀드매니저가 이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카오스 이론에 따르면,규칙에 의해 만들어진 신호도 그 규칙이 비선형적이라면 랜덤하게 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들은 주가변동이 완전한 노이즈(잡음)인지,아니면 유한개의 변수로 표현할 수 있는 규칙적인 카오스 신호(프랙탈 신호라고도 한다)인지 알아보았다.그들의 연구에 따르면,주가지수는 매우 복잡하게 변하긴 하지만,완전히 랜덤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사한 구조를 되풀이하는 '프랙탈 신호'라는 것이다.그리고 주가변동을 모형화하는데 있어 필요한 변수는 10개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증명됐다.

랜덤워크 이론에 따르면,과거와 미래의 가격변화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에 오늘의 가격은 미래 가격을 예측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그러나 카오스 분석은 이 이론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복잡한 주가변동에도 '숨겨진 질서나 규칙'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이 결과는 '주가변동을 장기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단기적인 예측은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실제로 카오스 이론에 기초한 과학적 투자기법을 이용한 상당수의 펀드매니저들이 높은 수익률을 올리며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제 유가의 변화도 국내 증시에는 민감한 영향을 미친다.최근 고유가 파동은 증시에 악영향을 가져왔다.


주가폭락 자주 일어날 수 있다.

랜덤워크 이론에 따르면,주가지수는 랜덤한 신호이므로 수익률의 분포는 정규분포를 가져야 한다.정규분포는 평균을 중심으로 멀어질수록 값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꼬리부분에 해당하는 '주가의 폭락이나 폭등'은 확률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그러나 실제 증시는 그렇지 않다.

미국 예일대 수학과 석좌교수인 만델브로트 박사는 1963년 수익률 또는 가격변화의 분포가 꼬리부분이 매우 두텁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두터운 꼬리 모델'을 제안했다.주가의 폭락이나 폭등이 확률적으로 자주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만델브로트 교수는 정보가 증권가에 연속적으로 일정하게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간헐적이고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가의 폭등이나 폭락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정보는 공개되는 순간부터 그후 상당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가격결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도 있다.주가지수의 변화가 과거 값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수익률 분포가 정규분포에서 이탈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벨기에 리쥐대 마르셀 오슬루 박사와 그 동료들은 1997년 10월 전세계적인 '주가 대폭락'이 있기 한달 전,벨기에의 한 경제잡지에서 주가 대폭락을 예측해 화제가 됐다.그들은 S&P500지수를 분석하다가 우연히 주기적인 주가폭락현상을 발견했다.주기는 일정한 값이 아니라 일정한 비율로 감소해 쉽게 발견되지는 않았다.그들은 비선형 분석을 통해 주가폭락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었다.분석방법은 몇가지 결함이 있었지만,그들의 연구성과는 주가예측의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카오스 분석을 통해 복잡한 주가변동에 숨겨진 질서가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됐지만,주가 예측은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생명체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로 있는 브라이언 아서 박사는 주식시장을 생물학적 진화모형으로 설명한다.각각의 투자가는 서로 경쟁하며 시장환경에 적응해나간다.그러나 모든 투자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투자가는 제한된 정보에 기초해 자기 나름대로 최선의 전략을 짤 것이다.이익을 내는 전략을 짜게 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돈을 모으게 되고,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돈을 잃고 시장에서 탈락하게 된다.브라이언 아서 교수에 따르면,주식시장이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해야 하는 아마존의 거대한 밀림과도 같다. '윌스트리트 저널'의 행성판을 구독하는 화성인이 있다면,그는 아마 주식시장이 '생명체'라고 결론내릴 것이다.

이 이론에 기초해 브라이언 아서 교수는 산타페 인공 주식시장을 만들었다.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금융시장의 복잡한 행동이 마치 생물이 진화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멋지게 보여주었다.이 모형은 실제 주식시장을 좀더 미시적으로 이해하는 좋은 수단이 될 뿐 아니라,간혹 앞으로 나타날 주식시장의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최근 컴퓨터의 발전으로 계산속도가 증가하고 효율적인 정보처리가 가능해지면서,금융시장에 대한 수학적인 모델과 데이터 분석은 금융공학에서 중요한 연구분야가 됐다.따라서 복잡한 계산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라면 이골이 난 물리학자들이 앞으로 실물시장연구에 더욱 활발히 참여하게 되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물리학자의 증권가 진출에 대한 경제학자의 눈초리가 곱지만은 않다.경제학자는 이론에 밝은 물리학자가 실물경제에 너무 무지하다고 비판한다.쉴새없이 변하는 뉴욕증권거래소 전광판이 수식 몇개가 적혀있는 실험실의 낡은 칠판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아마도 극단적인 보수주의 경제학자는 물리학자가 그럴듯한 모델을 만들어낸다 해도 구체적인 실용성의 부족을 탓하며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른다.하지만 물리학자의 증권가 진출은 앞으로 경제학계를 참신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방법론으로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그들의 열매가 얼마나 달고 맛있을지는 주가지수를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겠지만 말이다.

200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 진로 추천

  • 물리학
  • 경제학
  • 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