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m.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우주에서 보일 정도로 커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163개 층을 쌓아 올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로열 클락 타워’는 601m로 그 뒤를 잇는다.
전 세계 초고층빌딩의 서열을 정하는 국제초고층학회(CTBUH)에 따르면 600m가 넘는 ‘메가톨(megatall)’ 빌딩은 2채, 300m 이상 ‘슈퍼톨(supertall)’ 빌딩은 73채에 이른다. 이른바 초고층빌딩 전성시대다.
초고층빌딩의 탄생에는 강철과 콘크리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85년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 들어선 10층 높이의 주택보험건물(Home Insurance Building)은 세계 최초의 고층빌딩이자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한 최초의 건물이다. 이후 철근과 콘크리트 조합은 고층빌딩의 ‘공식’이 됐다. ‘그레이트 빌더’의 저자 케네스 파월은 “강철과 콘크리트가 고층빌딩의 등장을 가능케 했다”고 썼다.
그런데 최근 목재가 이들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나무로 고층빌딩을 짓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호주 멜버른에는 10층짜리 목조아파트가 등장했다. 이론적으로는 120m까지 올릴 수 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혹자는 “18세기가 벽돌의 시대, 19세기가 강철의 시대, 20세기가 콘크리트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나무의 시대”라고 말한다. 합판을 뜻하는 ‘plywood’와 마천루를 뜻하는 ‘skyscraper’를 합쳐 목조 고층빌딩을 뜻하는 ‘plyscraper’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목조 고층빌딩은 정말 실현 가능한 얘기일까.
런던 9층 목조 아파트에서 시작
스타트를 끊은 건 영국이었다. 2009년 런던 동북쪽 해크니 지역에 29세대가 살 수 있는 목조 아파트 ‘슈타트하우스(Stadthaus)’가 등장했다. 골격부터 외벽, 계단까지 모두 목재로 지어졌다. 높이는 29m, 무려 9층이었다.
‘고층’의 정의가 상대적이긴 하지만, 대개 10층부터 고층으로 부르고 30층부터는 초고층으로 부르는 만큼 슈타트하우스는 세계 최초의 목조 고층빌딩으로 인정받았다. 국제초고층학회는 2010년 슈타트하우스를 ‘올해의 고층빌딩’ 중 하나로 선정했는데, 재밌게도 슈타트하우스는 그간 국제초고층학회가 선정한 ‘올해의 고층빌딩’ 가운데 ‘가장 낮은 빌딩’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슈타트하우스의 기록은 지난해 호주 멜버른에 들어선 아파트 ‘포르테(forte)’가 갈아 치웠다. 포르테는 슈타트하우스보다 한 층 더 많은 10층으로 높이는 32.17m다.
포르테의 기록도 곧 깨질 분위기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는 16~20층 높이의 목조 빌딩 건축을 검토 중이다. 노르웨이는 17층 빌딩을, 오스트리아는 목재에 콘크리트를 혼합한 30층 높이의 하이브리드 빌딩 계획을 발표했다.
스웨덴은 더욱 적극적이다. 스웨덴에서 가장 큰 건설회사인 HSB가 2023년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실시한 건축공모전에서 34층 목조 고층 아파트가 당선작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계획대로라면 2023년 스톡홀름 시내에는 기둥과 프레임, 벽과 천장, 바닥, 창틀까지 모두 나무로 된 34층 목조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다.
최대 장점은 탄소 저감
나무가 차세대 건축 재료로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친환경적이라는 점이다. 캐나다 건축가 마이클 그린은 지난해 2월 열린 지식 강연 ‘테드(TED)’에서 “나무는 1m3당 이산화탄소 1t을 저장한다”면서 “콘크리트로 20층 건물을 지으면 1200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반면 나무로 같은 높이의 건물을 지으면 이산화탄소 3100t을 흡수할 수 있으며, 이는 연간 자동차 900대를 도로에서 없애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주장했다.
런던 슈타트하우스도 이런 계산 하에 설계됐다. 슈타트하우스를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짓는다고 가정하고 ‘탄소 발자국’을 계산해보자. 슈타트하우스에는 콘크리트 950m3와 시멘트 285t이 필요한데, 이들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탄소는 67.5t에 이른다. 여기에 철근 120t을 생산하면서 57.25t의 탄소가 추가로 발생한다. 외장재도 탄소 186t을 뿜어낸다. 결국 슈타트하우스를 목재로 지었을 때 감축할 수 있는 탄소는 이 세 값을 더한 310t 가까이 된다. 슈타트하우스를 설계한 와우 디스틀튼 사는 “건물이 흡수하는 탄소도 186t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건축 기간이 짧다는 점도 목조 빌딩의 강점이다. 슈타트하우스는 불과 28일 만에 골격을 세웠다. 콘크리트였다면 20주는 걸릴 작업이다. 2012년 오스트리아에 건설된 높이 25m 목조 건물은 8일 만에 끝났다.
규모 7.0 지진에도 끄떡없어
하지만 아무리 좋은 건물이어도 안전이 우선이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콘크리트보다 강도가 30~40배 떨어진다. 이런 나무로 고층빌딩을 지어 올려도 괜찮을까. 박문재 국립산림과학원 재료공학과장은 “목조 빌딩에는 일반 목재를 쓰는 게 아니라 단단하게 압축한 특수 목재를 쓴다”면서 “다공질성이어서 진동 흡수 능력이 뛰어나 지진에는 오히려 콘크리트보다 잘 견딘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9년 일본 미키시 효고내진공학연구센터에서는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연구진 등이 참여해 목조 빌딩의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대규모 실험이 진행됐다. 23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7층 목조 아파트를 실물 크기로 짓고 이 아파트를 거대한 진동판 위에 올려 상하좌우로 흔들어대는, 일명 ‘니스우드 캡스톤(NEESWood Capstone)’ 프로젝트였다.
미국과 일본에 목조 주택이 많은데다, 두 나라 모두 리히터 규모 6.7의 노스리지 지진(1994년)과 규모 7.0의 고베 대지진(1995년)을 겪은 뒤라 내진은 건축의 중요한 요소였다.
연구진은 목조 아파트에 리히터 규모 6.5~7.3의 진동을 40초간 수차례 가했다. 엄청난 진동이 아파트를 때릴 때마다 벽체는 흔들렸고, 안에 있던 가구와 식기는 쏟아졌다. 아파트 구석구석에 달린 센서 200개는 이런 변화를 빠짐없이 기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목조 아파트는 강력한 지진에도 벽에 살짝 금이 간 정도를 제외하면 구조에는 사실상 변화가 없었다. 박 과장은 “지진파에 부딪혔을 때 건물이 받는 충격은 무게와 비례한다”면서 “목조 건물은 콘크리트보다 가벼워 상대적으로 피해가 작다”고 설명했다.
특수 목재로 불에도 강해
그렇다면 나무의 천적, 화재에는 괜찮을까. 저스틴 레너드 호주 연방과학원(CSIRO) 박사는 “일반적으로 나무는 불에 잘 타는 게 맞지만, 목조 건물에 사용하는 목재는 강하게 압축돼 있어 불에 쉽게 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얇은 성냥개비 하나에는 불이 붙기 쉽지만, 굵은 통나무에는 불이 잘 붙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또 불이 붙는 속도도 훨씬 느리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서리시 소방 책임자이자 프레이저밸리대 겸임교수인 렌 개리스는 지난 2월 건물의 재료와 화재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2006~2011년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발생한 화재 1942건을 분석한 결과 사망자나 부상자가 발생한 횟수에서는 콘크리트나 목조 건물이나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스프링클러 유무가 결정적
이었다.
한편 목조 건물이 늘어날수록 산림이 급격히 훼손될 거라는 우려에 대해 마이클 그린은 “북미에는 13분마다 20층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주장한다.
43t 트럭 2대 지나다니는 목조 다리
목재를 앞세운 ‘그린 건축’이 콘크리트를 몰아내고 100년 만에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까.
미국의 ‘스키드모어, 오윙스 앤드 메릴(SOM)’은 부르즈 칼리파와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들어설 프리덤타워, 시카고의 시어스타워 등을 설계했다. 콘크리트와 철근을 이용한 초고층빌딩 설계에서 SOM은 독보적이다. 그런 SOM마저 지난해 목조 타워를 연구했다. 자신들이 1966년 시카고 시내에 세운 42층짜리 콘크리트 고층 건물 ‘플라자 온 듀잇’을 목재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지 기술적으로 꼼꼼히 따져본 것이다.
결론은 ‘예스’. SOM은 건물의 70%를 목재로, 나머지 30%를 콘크리트로 채운 새로운 설계도를 선보였다. 기둥과 바닥은 모두 목재를 쓰되 가장자리만 콘크리트로 두르는 형태였다. 이렇게 바꿨더니 3만5900t이던 건물 무게는 절반(1만6100t)으로 줄었고, 9500t이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분의 1 이하(2100t)로 확 떨어졌다.
국내에서도 목조 건물이 하나둘 시도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수원 산림유전자원부 안에 4층 목조 연구동을 짓고 있다. 경북 영주시에 들어설 국립산림약용자원연구소에도 3층 목조 연구동이 생긴다. 지난해에는 강원도 양양군 미천골자연휴양림에 목조 교량도 설치했다. 박주생 임업연구사는 “43t 트럭 2대가 동시에 지날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면서 “명지대 하이브리드구조실험센터에서 수차례 테스트를 거쳐 장갑차 2~3대의 무게도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아직 목조건축이 갈 길은 멀다. 일본에서 진행된 내진 테스트처럼 실제 화재에 얼마나 잘 견디는지 테스트가 필요하다. 캐나다는 4층, 미국은 5~6층 등 각국 정부는 여전히 목조 건물의 높이를 제한하고 있다. 박문재 과장은 “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된 황룡사 9층 목탑은 높이가 81m에 이르렀으니 지금으로 치면 27층쯤 되는 고층 건물”이라면서 “공학적인 도전보다 훨씬 더 큰 도전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