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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에게 보내는 헌사-그들의 강철심장은 빅뱅보다 위대했다

그들의 강철심장은 빅뱅보다 위대했다

이번 연구가 발표된 컨퍼런스에서 밝게 웃고 있는 과학자들을 보며 마음 속에서 울컥하는 것이 올라왔다. 지난 10년에 걸친 그들의 땀과 노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흔히 위대한 발견 앞에서 사람들은 발견자의 천재성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의 흔들리지 않는 강철심장을 이야기 하고 싶다. ‘위대한 발견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그것은 급팽창이론의 증거를 찾았다거나 중력파를 관측했다는 것 이상이다.

2002년 칼텍에서 처음 만나다

내가 중력파의 흔적을 찾아낸 바이셉2 연구팀의 책임자인 존 코백 교수를 처음 만난 건 2002년 칼텍(캘리포니아공대)에서였다. UC데이비스의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우주배경복사의 중력파 ‘B-모드’를 검증할 수 있다는 논문을 출판했고, 관측장비 개발을 준비하고 있었던 칼텍에서 자문을 요청해 온 것이다.

칼텍 연구실에서는 중력파를 검증하기 위한 회의가 한창이었다. 마침 나도 이 논의에 참가할 수 있었다. 난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최대치를 염두에 두고 관측장비를 설계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r이라는 변수로 표현되는데 난 r을 0.0001까지 측정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2002년경부터, 우주배경복사의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내가 2005년 시카고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있을 때, 클렘 파이크 박사가 이끄는 관측팀의 모임에 참가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존 코백은 칼텍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관측팀에 참여해 기기를 설계하고 있었다.

당시 모임을 이끌던 클렘 파이크는 가장 늦게 세미나룸에 등장했다. 군화를 신고 등장한 이 키 큰 사내는 교수라기보다는 적의 해변에 상륙을 시도하는 해병대장처럼 보였다. 그런 팀에서 성장한 덕분일까. 수줍은 학생 티를 벗은 존 코백은 단호한 모습이었다. 신출내기 박사에 불과했지만 다른 연구자들의 태도로 미뤄 그가 받는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내 견해로는 이 연구팀은 주류 연구자들이 아니었다. 마치 외인부대 같은 느낌이 짙었다.

이 때가 바이셉1 망원경으로 한창 관측을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사실 이 망원경은 중력파를 관측하는 데 부족한 장비였다. 그래서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결과를 보지 못했을 때, 난 놀라지 않았다. 이 장비로는 r이 0.5 이상인 중력파 정도를 관측할 수 있었지만, 같은 시기 WMAP 위성의 관측을 통해 r이 대략 0.5 이상일 수 없다는 결과가 발표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후 그들의 선택과 행동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한 연구원이 바이셉2 망원경을 살펴보고 있다.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팀워크

어떤 의미에서 은하와 생명의 기원은 빅뱅보다는 급팽창이다. 하지만 급팽창이론을 확신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다. 더구나 이론가들이 수많은 이론을 끝없이 쏟아냈다. 우주론자인 나로서도 모두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우리 과학자들은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우주 역사를 연구한다고 해 놓고, 정작 시작 중의 시작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심지어 초기조건을 모를 경우, 그 어떤 관측도 무의미하다는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대두됐다. 이런 논란을 끝낼 방법은 유일했다. 바로 우주배경복사에 남아 있는 중력파의 흔적인 B-모드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B-모드의 크기는 급팽창 에너지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바이셉 연구팀의 어려움은 바로 이것이었다.

바이셉2 연구팀은 2010년에 관측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바이셉1의 연구자들을 다시 모았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이전보다 성장한 존 코백이 책임자가 된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급팽창에 대한 이론적인 모델은 아주 작은 에너지부터 아주 높은 에너지까지 다양했다. 연구팀이 만든 검출기의 관측 범위 안에 급팽창 에너지가 들어있을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존 코백의 연구팀은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r이 매우 작을 것으로 생각한 나는 그들이 무모한 연구를 추진하는 게 아닌가 걱정을 많이 했다. 이미 많은 우주론자들이 우주배경복사에서 중력파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우주의 초기조건에 대해서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하고 있었다. 마치 바이셉2 연구팀의 실패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다음 단계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연구팀은 2010년과 2012년 사이에 두 번째 관측을 시도하면서, 곧 더 정밀한 기기로 세 번째 도전을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그들이 성공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드물었다. 만약 중력파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실험에 참가한 모든 연구자들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단호했다. 10여 년간 함께한 연구팀의 단결력은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알기에 누구도 도중에 자신의 경력을 위해서 다른 일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만일 신이 이 우주를 만들 때 급팽창 에너지의 크기를 이번에 발견된 1016GeV로 창조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아무 잘못 없이 자신의 연구 경력을 허망하게 날릴 수 있었다.

그들의 불굴의 의지에 신도 응답하셨는지, 우주배경복사에서 중력파의 흔적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그들의 노력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이들이 최후의 검증을 통과한다면 과학사에서 인간의 도전은 다시 한 번 승리로 장식될 것이다.
 

201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송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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