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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땅에 헤딩’해도 성공한다


선박해양연구소 상무 이홍기


이홍기_ 선박해양연구소 상무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홍기 상무는 1984년 1월 현대중공업에 발을 들였다. 뭐든‘우리 손으로’를 고집했던 고(故)정주영 명예회장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연구소를 설립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중공업에 연구 시설이라곤 1983년에 들어선 용접기술연구소와 이듬해 2월에 생긴 수조시험장이 전부였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조선공학을 전공한 이 상무에게는 프로펠러를 설계하면서 동시에 제작하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당시 프로펠러는 모두 일본에서 사온 제품이었다. 1984년 10월 해양선박연구소가 발족했고, 이 상무도 프로펠러 국산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 상무는“프로펠러 제작은 에밀레종을 만드는 일에 견줄 만큼 어렵다”고 말한다. 금속을 녹여 틀에 붇고 굳힐 때 기포가 하나라도 생기거나 아주 작은 균열만 생겨도 불량품이 된다. 현재 현대중공업에서 생산한 프로펠러는 전세계 해양 프로펠러의 35%를 점유하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불꽃이 튀는 곳엔 내가 있다


용접연구실 실장 김대순


김대순_ 용접연구실 실장
수더분한 웃음을 짓는 이 사람의 어디에서 강한 불꽃을 다루는 힘이 나오는 것일까. 김대순 실장은 독일 아헨공대에서 기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엔지니어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1991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그동안 자동용접시스템, 아크 용접 등 수많은 용접 기법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그 중에서도 플라스마 자동 용접기법은 기존 용접에 비해 3배 이상 속도가 빠르고 안정적이어서 프랑스 GTT사에 역수출되기도 했다. 그의 용접 기술은‘한국의 태양’에까지 손을 뻗쳤다. 그는 오는 8월 완성을 앞두고 있는 핵융합로인‘KSTAR’를 설계하고, 제작의 대부분을 맡았다. 무게가 1000톤이 넘는 대형 실험 장치라 블록을 용접해 선박을 만들 듯 각 부분을 용접해 만들어야 한다. 김 실장은 국제핵융합실험로인 ITER에 사용되는 재료의 냉각 능력이 떨어져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이를 ITER 회의에서 발표했고 참석자들에게 대한민국의‘실력’을 각인시켰다. 김 실장은“한국의 용접 기술이 세계에서 인정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며 여전히 수더분한 웃음을 짓는다.

조립 굿! 열정 베리~ 굿!


해양선박건조부 차장 이종원


이종삼_ 대조립부 기원
“이 박사, 굿! 굿! 굿! 베리~ 굿!”대조립부 이종삼 기원은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그는 29년째 현대중공업을 지키고 있는 조선 역사의 산 증인이다. 군대를 제대한 뒤 42일 만에 선택한 첫 직장이 평생 직장이 될 줄 짐작이나 했을까. 이 기원은 회사에서‘이 박사’로 불린다. 워낙 기술이 좋아 동료들이 붙인 별명이다. 그의‘특기’는 선박의 몸체를 이루는 철 구조물인 블록을 조립하는 일. 집채보다 더 큰 수백톤짜리 블록 100여개를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조립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설계도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블록이 합쳐져야 선박이 완성된다. 허용되는 오차는 기껏해야 5mm 이내다. 2003년 이 기원이 승객과 자동차를 함께 나르는 여객화물겸용선인 로팩스(Ro-Pax)선에 들어가는 블록을 완성하자 선주는“베리~ 굿!”을 연발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로팩스선은 일반 화물선에 비해 블록을 조립하기 까다롭다. 이 기원은 블록을 조립하기 시작한지 31일 만에 완성품을 내놨고 선주는 크게만족했다. 자신의 땀과 정성이 담긴 블록이 웅장한 S자를 그리며 선박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볼때 그간의 노고를 모두 잊는다고. 오늘도 그는 침을 튀기며 후배들에게 블록의 조립 과정을 가르치는데 여념이 없다.

발바닥에 새긴 훈장


대조립부 기원 이종삼


이종원_ 해양선박건조부 차장
배가 이렇게 컸었나 싶었단다. 대입 학력고사를 마치고 졸업여행 길에 들른 울산 방어진에서 이종원 차장은 그 웅장함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1993년 대학 4학년 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현대그룹에 원서를 냈다. 그리고 원서에 현대중공업으로 가길 희망한다고 적었다. 그렇게 배와 인연을 맺은 이 차장은‘육지 사나이’에서 순도 100% ‘바다 사나이’가 됐다. 5년 전 책임을 맡은 해양공사가 계기가 됐다. 당시 그에게 시추에 필요한 배관작업을 진행하라는 업무가 떨어졌다. 배관작업은 처음 해보는 분야라 노하우가 전혀 없었다. 협력사 직원 70명을 이끌고 일단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술자들을 부릴 반장도 없었고 작업용 공구도 부족했다. 육지에서 일곱 달을 작업하는 동안 한 달에 3일은 몸살이 나 출근을 못했다. 공사 막바지에는 체력도 마음도 동이 나 사표를 써서 몸에 지니고 다녔다. 1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공사가 끝이 났다. 발이 아파 병원을 찾은 이 차장은 발바닥 인대가 상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차장은 지금도 발바닥이 뻐근할 때면 그 때의 악몽이 떠오른다. 하지만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했던가. 지금도 큰일을 훌륭히 치러냈다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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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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