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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입힌다 첨단도료의 세계

살균작용에서 스텔스 기능까지

흔히 페인트로 불리는 도료. 단순히 색깔을 입히기 위해 칠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도료는 첨단 과학기술이 살아숨쉬는 대표적인 종합화학상품이다. 도료는 여러가지 화학물질을 섞어놓은 유동성 물질로, 여러가지 방식으로 각종 물체의 표면에 칠해진 후 도막(고체막)으로 변화된다.

목재나 철, 시멘트 등은 도료에 의해 만들어진 표면의 도막 덕분에 산소나 수분, 탄산가스 등이 침투하는 양이 억제돼 썩거나 녹스는 일이 방지된다. 이처럼 노화를 지연시키는 것은 도료의 보호 기능에 해당된다. 교통표지판의 각종 표시는 여러 종류의 색채를 가진 도료가 사용돼 아름답고 화려한 느낌의 표면을 만든다. 이는 경고와 장식의 목적으로 사용된 예다.

최근에는 물질의 표면을 보호하고 아름답게 장식하는 기본적인 기능 외에 특수한 기능을 가진 도료들이 선보이고 있다. 이런 특수기능 도료를 총칭해 첨단도료라 부른다. 과학을 입히는 첨단도료의 세계를 살펴보자.

특성을 선사하는 화학물질들


자동차를 비롯한 대부분의 산업 제품은 표면을 보호하고 아름답 게 장식하기 위해 도료를 사용 한다.


도료는 고분의 벽화에 사용될 정도로 매우 오래 전부터 사용돼 왔다. 현대적 의미의 도료, 즉 천연수지나 합성수지를 용제에 희석시킨 도료는 18세기경부터 전문적으로 제조됐다. 도료가 중요한 공업재료로서 위치를 갖게 된 셈이다. 특히 1920년대 초에 점도가 낮은 니트로셀룰로오스 락커가 합성돼 자동차용 도료로 사용되면서 도료공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고분자 과학의 학문적 체계가 완성되면서 알키드수지, 에폭시수지, 우레탄수지, 실리콘수지 등 많은 합성수지가 개발됐다. 아울러 석유화학공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다양한 원료물질과 중간체가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되면서 도료산업은 급속히 발전했다.

최근 선보인 첨단도료에는 친환경성 도료, 색이 변하는 카멜레온 도료, 전자파 차단 도료, 레이저 탐지를 피하는 스텔스 도료, 난연성 도료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국내 도료생산 업체인 고려화학, 대한페인트, 건설화학, 삼화페인트, 벽산화학 등 2백여 기업에서는 이같은 첨단도료 개발을 위해 수많은 연구원들이 땀흘리고 있다. 그 결과 다양한 기능의 첨단도료들이 개발돼 현재 생산,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도료를 제조하는 과정에는 수십가지 화학원료들이 필요하다. 더욱이 도료에 특수한 기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나노물질을 비롯해 훨씬 다양한 화학물질들을 사용한다. 하나의 완전한 첨단도료를 탄생시키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도료를 물질에 칠하는 과정을 도장이라 한다. 도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막을 형성시키는 도장에 대해서부터 살펴봐야 한다. 도막 구성의 3요소는 수지, 안료, 첨가제다. 이들은 도장된 후 휘발돼 사라지는 성분과는 달리 물질 표면에 남아 도막이 돼 다양한 기능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수지는 도막의 기본적인 성능을 담당하는 성분이다. 도막의 굳기, 광택, 내마모성, 내충격성, 내수성 등의 성질이 바로 수지에 의해 결정된다. 안료는 도막이 색을 띠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성분인데, 녹이 스는 것을 방지하는 등 특수 기능까지 담당하고 있다. 첨가제에는 건조제, 굳게 하는 경화제, 촉매, 흘림 방지제, 특수 기능성 재료가 포함된다.

이 외에 도료를 액체 상태로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용제도 도료 구성에서 매우 중요한 성분이다. 지금까지 시너, 솔벤트와 같은 유기용제가 주로 사용됐는데, 페인트 특유의 냄새는 주로 이들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도료를 도장하면 용제가 휘발되면서 색소를 포함한 수지 성분이 물체의 표면에 남아 젖은 도막을 형성한다. 이 젖은 도막은 화학반응을 유도하는 첨가제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고체형태의 도막이 된다. 따라서 도료는 도막을 형성하는 중간제품의 형태로 제조돼 공급되지만, 최종적으로 형성된 도막 상태로 사용자의 평가를 받는다.

흔히 접하는 페인트(paints)는 도료(coatings)라는 말과 혼용되지만 도막성분으로 사용되는 천연식물성기름을 유기용제에 용해시켜 놓고, 여기에 색소를 혼합해놓은 불투명한 도료를 말한다. 도막성분인 식물성기름은 도장한 후 용제가 휘발되면 첨가제로 혼합돼 있는 건조제의 영향을 받는다. 그 결과 식물성기름 분자들이 중합반응을 일으킨다. 결국 분자량이 매우 크고 화학적으로 그물상 구조를 갖는 강인한 도막을 형성한다.

최근 환경문제가 첨예화되면서 도료에 대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지구환경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도료의 개발은 꼭 필요하다. 친환경 도료에는 접근방식에 따라 크게 환경보존형 도료, 환경 재생형 도료, 환경개선형 도료로 분류할 수 있다.

빛 받으면 깨끗해지는 광촉매

환경보존형 도료는 휘발성 유기화학물질(VOC)과 중금속 등 환경에 유해한 물질의 사용을 제한해 만든 것이다. VOC는 인간의 건강에 해로울 뿐 아니라 성층권의 오존층을 파괴시키며, 대류권 오존농도의 증가에 따른 지구 온난화 현상과도 연관된다. 이런 문제 때문에 VOC 사용량을 줄인 환경보존형 도료가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VOC 성분을 포함한 유기용제 대신 물을 사용한 수성 도료와 유기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분체도료가 개발됐다. 현재 도료에 포함된 중금속 중에서는 주석(Sn)의 대체가 실용화됐고, 향후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중금속 사용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환경재생형 도료는 폐기물 감소의 차원에서 자원 재생능력이 뛰어난 도료를 말한다. 이에 비해 환경개선형 도료는 환경정화 기능과 오염방지 기능이 부여된 도료를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지난 2000년 4월 국내업체에서 개발에 성공해 주목받는 광촉매 도료다.

광촉매 도료를 유리, 타일, 콘크리트 등에 칠하면 대기정화와 항균탈취, 냄새제거 등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광촉매 도료의 핵심은 빛을 받으면 활성을 띠는 광촉매다. 광촉매는 빛을 에너지로 이용해 광화학반응을 촉진시키는 물질로 정의되는데, 금속산화물(TiO2, ZnO, Nb2O5), 황화합물(CdS, ZnS) 등이 있다. 이 중 광촉매 도료에서는 산, 염기, 유기용매에 대한 안정성과 무독성 때문에 이산화티탄(TiO2)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이산화티탄은 빛을 받는 상태에서 대기 중 산소(O2)와 수증기(H2O)와 반응해 2종류의 활성산소(O2-와 OH·)를 발생시킨다. 표면에서는 물과 친화성이 좋은 Ti-OH가 형성된다. 살균, 항균, 공기청정, 탈취, 대기오염처리 등 광촉매 도료의 특성은 바로 이들 덕분이다.

광촉매 도료에서는 특히 광촉매 물질을 표면에 도장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이산화티탄을 도장할 때는 표면의 이산화티탄이 좀더 많이 대기 중의 산소나 물과 접촉할 수 있도록 활성표면을 확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다공성 구조가 되도록 도장한다.

전자파 흡수하고 정전기 억제한다

전기가 흐르는 카본블랙과 같은 전도성 물질을 포함하는 도료는 전도성을 가진 특수 도료가 된다. 전도성 물질은 전자파(전자기에너지)를 흡수하거나 산란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전기장이 전도성 물질을 만나면 전류를 유도해, 전도체 안에서는 저항, 축전, 유도전기가 발생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자기에너지는 결국 열로 변환되기 때문에 전자기장이 흡수되거나 산란되는 것이다.

전도성 도료 중 전자기에너지가 반사 또는 투과되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이 뛰어난 종류를 전자파차폐도료라 부른다. 정전기의 발생을 억제하는 대전방지도료와 전기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변화하는 기능에 중점을 둬 전자기파를 흡수해 열을 발생시키는 발열도료도 있다.

전도성 도료는 이렇게 다양한 기능을 나타내지만 단순히 전도성 물질을 혼합하는 것만으로 특수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전방지도료의 경우는 낮은 전도도에 의해서도 기능이 충분히 발현되지만, 전자파차폐도료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전도도가 나타나야만 기능을 발휘한다.

올해 초 미국이 벌인 이라크전에서는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기능을 지닌 전투기가 톡톡히 활약했다. 이처럼 전투기가 레이더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스텔스(레이더흡수) 도료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스텔스 도료는 도료의 합성수지에 레이더파를 흡수하는 자성물질(carbonyl iron, Ferrites)이 첨가돼 있다.

전도성물질과 마찬가지로 자성물질은 전기장과 상호작용을 해 전파를 흡수한 후 열로 바꾸는 성질을 갖는다. 레이더는 전파가 물체에 닿아 반사하는 신호로 물체의 존재와 외형 등 정보를 얻는데, 자성물질이 코팅된 면에 닿으면 전파가 흡수돼 신호가 되돌려 보내지지 않는다. 보안 기능을 하는 스텔스 도료의 비밀이다. 실제 스텔스 비행기에서 스텔스 도료는 무게 등의 이유 때문에 레이더에 민감한 부분들에만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멜레온처럼 색깔 변하기도
 

(그림) 자동차에 칠한 카멜레온 도료


보이지 않는 도료뿐 아니라 다양하게 보이는 도료도 등장해 있다. 이런 도료를 흔히 카멜레온 도료라 부르는데, 일정한 온도에서 색이 변하는 화합물을 이용해 온도를 알 수 있게 한 도료를 가리킨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막의 색상이 보는 각도에 따라서 변화돼 보이는 도료도 포함시키고 있다.

일정온도에서 색이 변하는 카멜레온 도료는 전문적인 용어로는 시온도료, 측온도료 또는 서모컬러(thermocolor)라 부른다. 카멜레온 도료는 온도에 따라 다른 색을 내보내는 광학적 특성을 지닌 안료를 혼합해 만든다. 즉 금속이온은 온도라는 에너지를 받으면 들뜬상태가 된다. 따라서 온도에 따라 들뜬 상태가 달라져 원래 상태로 회복되면서 다른 색깔을 내보내는 금속이온을 사용한다.

케멜레온 도료중에는 온도에 따라 계속 변하는 종류와 한번만 변하는 종류가 있다. 현재 상품화된 종료는 주로 계속 변할 수 있는 도료들이다. 최근 선보인 한 맥주는 가장 맛있는 온도에서는 특정 색깔로 변하는 라벨이 병에 붙어있는데, 여기에 사용된 도료가 한 예다.

한편 카멜레온 도료 중에는 빛을 받으면 일정한 색을 띠지만 빛이 없는 곳에서는 무색·투명하게 가역적으로 변하는 성질을 가진 종류다. 예를 들어 실외에서는 짙은색을 띠어서 선글라스가 되지만 실내에서는 무색투명의 일반 안경으로 되돌아오도록 만드는 도료다. 이런 도료에서는 온도 대신 빛의 양에 따라 들뜬상태가 달라져 다른 색깔을 내보내는 금속이온을 사용한다.

화재 확산을 막는 기능까지

첨단도료에는 특수한 화학물질을 첨가해 만든 종류뿐 아니라 고분자 자체에 특수한 기능을 부여하는 도료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올해 초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상당한 주목을 받은 난연성 도료다. 여기서 난연성이란 말은 연소를 어렵게 하는 과정을 통해 화재 발생시 불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 또는 지연하는 기능을 의미한다.

화재는 어떤 원인으로 발생된 열이 공기중의 산소와 반응하면서 물질을 연소시키고, 연소로 인해 발생된 열이 또다른 물질이 연소되도록 하는 과정이다. 이와 같은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화재가 확산된다. 따라서 열에 쉽게 분해되지 않는 물질, 즉 분해반응이 일어나는 온도가 높은 물질을 사용하면 작은 열의 발생이 화재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난연성 도료에서 분자구조 설계를 통해 열적으로 안정화한 고분자 물질이 도막에 형성되도록 하는 이유다.

한편 난연성 도료에서는 인계화합물이라는 첨가제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열에 분해되더라도 휘발성물질이 발생하지 않고 오히려 물질과 화염 사이에서 방어막 역할을 수행한다. 또 산소(공기)의 공급 과정을 차단해 불꽃을 산소로부터 차단하면 더이상 연소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불에 연소되면 무거운 불연기체가 만들어져서 산소전달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할로겐 화합물과 같은 물질을 난연성 도료에 첨가한다.

연소과정에서 생성된 열이 다시 물질의 분해에 이용되는 과정을 막는 방법도 가능하다. 열을 흡수하는 물질을 첨가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이와 같은 첨가제로는 열을 받으면 열을 흡수하는 흡열반응이 일어나 물이 생성되는 삼수산화알루미늄과 수산화마그네슘이 사용된다.

물질에 색을 입히는 도료의 역사는 수천년이 넘는다. 최근 발전한 과학기술은 도료에 새로운 옷을 입히고 있다. 앞으로 등장할 더욱 다채로운 기능을 가진 첨단도료들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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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노시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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