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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는 뜻이다. 집이 사람에게 심리적인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집이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건축가는 사람의 건강을 고려해 건물을 지어야 하며, 거주자는 집을 건강하게 관리해야 한다.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집과 학교, 회사는 과연 건강할까.


 


 
 
○○팰리스, ○○○퍼스티지, ○○캐슬, ○○쉐르빌…. 요즘 지은 새 아파트들은 이름부터 번쩍번쩍 빛이 난다. 안에 들어서면 철저한 보안 관리부터 깔끔한 대리석 바닥, 청소기와 냉장고, 가스레인지처럼 벽 안 곳곳에 숨겨진 첨단기기까지 편리한 과학기술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새 아파트에 사는 사람도 처음에는 비켜갈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새 집 증후군’이다. 기둥에 칠한 페인트부터 벽지, 새로 산 가구 등에서 나는 시큼하면서도 지독한 냄새에 두통이 난다.



그런데 최근 건축공학자들은 새 집뿐 아니라 오래된 집도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병든 집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집이 나이가 들면 시름시름 앓으면서 유해한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새 집과 달리 오래된 집은 거주자의 생활 습관에 아주 익숙해지기 때문에 병든 집 증후군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2월 10일 서울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는 한국과 영국, 세르비아, 일본의 건축공학자들이 모여, 병든 집 증후군의 원인과 심각성을 알리고 이를 예방할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고온다습한 구석의 곰팡이에 병들어

건축공학자들은 거주자가 어떻게 관리했는가에 따라 집의 건강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같은 건물, 같은 층이라도 주인에 따라 건강한 집과 병든 집으로 변한다는 얘기다. 그들은 집이 병드는 가장 큰 이유로 ‘지나친 냉난방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온도와 습도’를 꼽았다.



실내외의 온도가 너무 다르면 건강에 안 좋다. 김정태 경희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여름에는 이가 시릴정도로 시원하게, 겨울에는 땀이 날 만큼 따뜻하게 냉난방을 하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루 종일 따뜻한 방에서 TV를 보던 사람이 영하 10℃인 바깥으로 나왔다가 뇌출혈을 일으키거나,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더운 방에서 격렬한 일을 하다가 열사병에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온도가 급격하게 달라지면 스트레스를 받아 혈압이 오르기 때문이다. 히로시 요시노 일본 도호쿠대 건축설계공학과 교수는 “적절한 실내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지나치게 냉난방을 하지 않고도 따뜻하고 시원한 집을 짓도록 건축가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온도만큼 심각한 것이 습도다. 따뜻하고 축축한 곳에서는 집먼지진드기, 곰팡이를 비롯한 각종 벌레와 세균이 번식해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곰팡이는 대개 욕실이나 냉장고 아래, 세탁기 뒷면 등에 잘 생긴다. 추운 날 실내외 온도 차이로 유리창에 이슬이 생기거나(결로) 세면대나 싱크대처럼 오랫동안 물 얼룩이 남아 있는 곳에서도 잘 번식한다. 눈에 보이는 장소에 곰팡이가 번식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걸레로 닦아내거나 약품을 뿌려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펫 밑이나 벽지 안쪽으로 곰팡이가 자라는 경우도 있다. 집주인은 자기 집에 곰팡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가능성이 높다.



곰팡이는 미세한 크기의 포자를 퍼뜨려 번식하는데, 이 포자들이 공기에 둥둥 떠다닌다. 사람들이 숨을 쉴 때마다 곰팡이 포자를 들이마시는 셈이다. 결국 곰팡이가 많아지면 천식이나 기관지염, 알레르기성 비염 같은 호흡기 관련 질환과 아토피성 피부염, 가려움증, 두통 같은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인간의 죽은 피부(각질)를 먹고 사는 집먼지진드기. 먼지를 심하게 오염시켜 알레르기의 원인이 된다. 특히 집먼지진드기가 벗은 껍질이나 배설물, 소화액은 천식이나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의 50~80%를 차지한다.]
 


문현준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발코니를 없애고 벽 대신 통창을 세우는 집이 많아졌다”면서 “결로가 생기고 습도가 올라가기 쉬운 환경으로 만든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발코니를 없애는 방식으로 확장한 집 가운데 곰팡이가 번식한 곳은 54%나 됐다.



습도가 너무 낮은 공간도 문제다. 이현수 연세대 주거환경학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주로 활동하는 공간(집, 학교, 회사 등)에 대해 ‘건조하다’는 불만이 가장 많다. 겨울철이 특히 심각하다. 지나친 난방으로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지 못하는 탓이다. 건조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지내면 코가 쉽게 마르거나 막혀 감기에 자주 걸린다.



화장실은 멀리, 계단은 아름답게

현대인은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낸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집을 시작으로 지하철역 건물로 들어가 지하철을 타고 다른 역에서 내린다. 바깥으로 나와 걷는 것은 고작 몇 분, 다시 회사나 학교 건물로 들어가 일상생활을 한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요시노 교수는 “현대인은 운동이나 여가 활동마저도 건물 안에서 해결한다”며 “건물을 지을 때 건강과 웰빙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에 나쁜 요소는 없애고, 좋은 요소는 늘리도록 건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집에 곰팡이가 번식하면 공기 중에 포자가 둥둥 떠다녀 재채기와 천식, 기관지염, 피부질환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람이 건강하려면 한 주에 5일 동안 매일 30분씩 빠르게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코언 스티멀스 영국 케임브리지대 건축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남성의 45%, 여성의 76%가 이만큼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 성인의 25%가 만성적인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병든 집 증후군의 원인을 색다른 시각에서 찾았다. “지금까지 건축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발전해 왔습니다. 건물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최소한의 움직임과 짧은 동선이었죠. 하지만 그런 건축물로 인해 사람은 게을러지고 뚱뚱해졌으며, 골다공증이나 당뇨, 심혈관질환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일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됐지만, 사람의 건강은 나빠진 셈이다. 또 이메일이나 메신저, 문자메시지 등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스티멀스 교수는 “건축가들은 어떻게 건물 내에서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걷고 움직이게 만들까를 고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이 움직일 때 에너지를 얼마나 소비하는지 5초마다 기록하는 가속계와 건물 내 사람의 위치와 움직이는 속도를 측정하는 센서를 이용해 실제로 사람들이 얼마나 움직이는지 2주 동안 관찰했다. 연구팀은 사람들이 움직인 경로를 건물 설계도 위에 그린 결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와 적게 모이는 장소를 구별할 수 있었다. 사람을 많이 불러들이는 곳은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는 공간과 식당, 화장실이었다. 특히 창문이 크게 나 있고 바깥으로 아름다운 경치가 보이는 커피숍과 휴게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은 평균 5분 정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사람들은 찾아갈 만한 동기가 있는 장소는 아무리 멀고 복잡한 곳에 있어도 간다”면서 “커피숍과 휴게실을 사무실에서 좀 더 떨어진 곳에 배치해 활동량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언 스티멀스 교수는 ‘눈에 띄는 자리에, 바깥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오르고 내리기 힘들지 않게, 통풍이 잘되게’ 계단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인을 건물 내에서 많이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다.]



스티멀스 교수가 주목한 또 다른 장소는 계단이다. 그는 현재 서울에서 머물고 있는 호텔을 예로 들며 “방이 넓고 깨끗하고 시설이 편리한 고급호텔이었지만, 계단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려면 계단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어야하며, 높이가 완만해 오르고 내리기가 어렵지 않아야 한다. 또 통풍이 잘 되고 커다란 창문으로 바깥 경관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날 심포지엄을 찾았던 건축공학자들은 “건강한 삶을 위해 건물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공감했다.



건강까지 관리하는 스마트 홈

전통 가옥을 현대화해 건강한 집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현수 연세대 주거환경학과 교수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가옥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통 가옥의 장점을 살리고, 현대인에게 맞는 조건을 고려한 현대 한옥을 구상해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현대 한옥 중에는 주택보다 고층 건물이 절실한 대도시에 맞게 아파트 상층부에 기왓장을 놓은 ‘현대 고층 한옥’도 있었다. 마리야 토도로비치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대 기계공학과 교수도 “전통 가옥은 옛날 사람들이 수천년 동안 경험하면서 지혜롭게 만든 작품”이라면서 “전통에 현대 기술을 접목시키면 환경과 인체에 유익한 건축물이 탄생할 것”이라고 공감했다.


 

[전통 가옥을 현대화해 건강에 좋은 집을 짓자는 학자도 있다.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 전통가옥을 현대인의 생활습관에 맞도록 변형하자는 것이다.]



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 건강한 집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김태성 경희대 생태의공학과 교수는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는 스마트홈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부엌에 들어간 사람이 느닷없이 바닥에 쓰러져 몇 분이 지나도 일어서지 않을 경우, 소프트웨어가 이를 위급 상황으로 판단해 구급차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팀에서는 사람의 활동을 3차원 실루엣으로 기록하는 카메라(뎁스)와 사람의 모든 위치와 행동을 기록하는 센서를 개발하고 있다. 실내를 x, y, z축의 3차원으로 분석해 사람이 움직이는 위치와 자세의 각도 등을 좌표로 인식하는 원리다. 특히 뎁스는 팔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자세를 100% 인식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발된 상태다.



건강한 집은 설계에서부터 시공, 사용과 보수에 이르기까지 늘 사람의 건강을 고려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 안에 사는 사람도 집을 항상 깨끗이 청소하고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가화만사성을 넘어, ‘가건만사성(家健萬事成)’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201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이미지 출처│동아일보, istock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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