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상한 머리카락 자르는 게 답이다



아침마다 드라이기와 빗을 무기로 머리카락과 전쟁하는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햇수로는 4년째 꾸준히 머리를 기르고 있다, 아니 있었다. 최근에 10cm정도 뭉텅 잘라냈기 때문에 과거형이다. 머리색을 옅게 만들기 위해서 탈색을 한 번 했더니 머리카락이 지푸라기 저리가라 상태로 상해서 눈물을 머금고 잘라냈다. 미용실에서는 영양도 자주 하고, 특정 시술을 받으면 나아진다고 하는데, 시술 후기를 찾아보면 그것도 일시적이라고 한다. 정답은 무엇일까.

기네스북에 아무나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굉장히 특이한 털이다.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몸을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온몸에서 털이 길게 자란다. 반면에 사람은 전신에 아주 짧은 털(연모)이 드문드문 나있고, 머리털(경모)만이 많이, 아주 길게 자란다(물론 다른 부위에서도 경모가 날 수도 있다). 머리카락에 대한 기네스북 기록은 2004년에 측정한 5.627m지만 2009년부터 이 부문에 대해 더이상 측정하지 않는다. 작년 여름 외신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례로는 17m까지 기른 머리카락도 있다.

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머리카락과 머리카락을 만드는 모근을 빼놓을 수 없다. 한순간의 따끔함을 참고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보면 뿌리 부분에 흰색 덩어리가 보이는데 이것이 모근이다. 간혹 모근 위로 뭔가 반쯤 투명한 얇은 막이 머리카락을 감싸고 있는 것도 보이는데 이것은 모근을 감싸고 있는 주머니 모양의 조직인 모낭이다. 궁금하다면 한번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아보자. 나도 이 글을 쓰기 위해 5분에 한 번씩 머리카락을 뽑고 있다.

모낭 속에서는 모근이 머리카락을 만든다. 모낭의 수명은 약 3~5년이며, 사람과 모낭에 따라 제각각 수명이 다르다. 수명을 다한 모낭은 자란 머리카락과 함께 빠져나가고 새로운 모낭이 만들어져 새 머리카락이 자란다. 머리를 아주 오랫동안 기르다 보면 어느 한계 이상으로 머리가 자라지 않거나, 끝부분으로 갈수록 숱이 적어지는데, 바로 모낭이 수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0.33~0.34mm정도 자라는데 이는 모낭 수명동안 머리카락이 36~60cm 정도 자란다는 의미다. 머리카락을 17m까지 길렀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모낭을 가졌다는 뜻이 되겠다.



좋은 머리카락은 태생부터 다르다


그렇다면 좋은 머리카락의 조건은 무엇일까. 윤기가 흐르면서 잘 엉키지 않고, 빗질할 때 끊어지지 않는 머리카락이 되겠다. 가지런하게 정리도 쉽다면 금상첨화다. 윤기는 머리카락의 가장 바깥층인 큐티클 층과 관련이 깊다. 모표피라고도 부르는데, 큐티클이라는 케라틴 단백질이 기와가 쌓인 것처럼 겹겹이 5~10층 정도 쌓여 있으며, 많을 땐 20층도 쌓인다. 머리카락의 근간을 이루는 피질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인데 벗겨지지 않고 가지런히 있을 때 빛을 반사하며 윤기를 흐르게 한다. 수분을 함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 큐티클 층의 바로 아래에는 죽은 큐티클이 모여있는 공간이 있는데, 마치 양면테이프처럼 큐티클 층과 피질 층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이곳은 파마약이나 염색약을 피질로 침투시키는 통로로, 약이 내부 단백질을 파괴시켜 머리카락을 상하게 만든다.



잘 엉키지 않고 끊어지지 않는 조건은 피질에 달렸다. 피질은 머리카락 중 전체 부피의 80%를 차지하는 부분으로 주 구성성분은 케라틴이다. 이 케라틴 단백질이 단단히 얽혀있을수록 튼튼한 머리카락이 된다. 머리카락의 색상을 결정하는 멜라닌 색소도 피질에 있다.



윤기는 머리카락의 중심부인 수질과도 관계가 있다. 수질은 머리카락의 중심에 있는 5~10μm 굵기의 층인데, 속이 빈 죽은 세포가 머리카락이 자라는 방향으로 쌓여있다. 이 빈 공간에 공기가 많이 차있을수록 머리카락에서 광택이 난다. 공기를 넣은 풍선처럼 말이다. 덤으로 수질층에 공기가 많이 차면 보온에도 좋으며, 수질이 많은 머리카락은 파마약의 찌꺼기가 수질층을 통해 배출되기 때문에 파마가 잘 나온다.
즉 좋은 머리카락을 가지려면 처음 만들어진 모낭부터 튼튼해야 한다는 의미다. 적당히 굵으면서, 각 층이 제대로 만들어진 머리카락이 건강한 머리다.

상한 머리카락, 자르는 것이 답이다

“◌라스틴했어요~.”
머리카락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CF 한 장면. 고개를 가볍게 흔들어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어깨 뒤로 넘기는 유명 CF 장면은 뭇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이 CF 제품은 이후로 머릿결이 좋은 사람을 칭하는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저 제품을 비롯해 각종 머리카락 관련 제품은 머리카락을 좋게 유지하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할까. 사실을 말하자면 매우 슬프게도 ‘거의 없다’. 정말이다. 머리카락이 상해서 얼마 전 10cm나 자른(이거 기르는 데 1년 걸린다!) 나라서 더 슬프다.



머리카락은 ‘자연 상태’에서는 자외선에 의해 가장 많이 상한다. 머리카락까지 선크림을 바르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의 머리카락이 상하는 것은 머리에 ‘약’을 댔기 때문이다. 나만해도 머리를 말았다가 폈다가, 다시 말았다가, 질려서 색을 뺐다가 다시 입혔다. 머리와 관련된 약이 작용을 하는 곳은 피질 층이다. 파마는 피질층에 있는 단백질 사슬을 끊어서 머리 모양을 만든 뒤 다시 연결해 머리카락 모양을 고정하는 것이고, 염색은 피질층 단백질 사이 사이에 색소를 넣는 것이다. 탈색은 피질층에 박혀있는 멜라닌 과립을 없애는 것이다.

가장 바깥에 있는 큐티클 층은 이 과정에서 약이 피질층으로 못 들어오게 막는다. 피질층까지 약이 닿게 하려면 큐티클 층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넣을 수밖에 없다. 이때 기와처럼 나란히 덮여있던 큐티클은 떨어져나간다. 머리카락 표면이 거칠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피질층으로 들어간 파마약은 머리카락 단백질 구조를 끊어 전체 형태를 바꾼다. 단백질 구조를 다시 잇는다 해도 완벽하게 복구되지는 않는다. 염색을 할 때 복잡하고 단단한 멜라닌 과립을 없애는 것이 더욱 어려워 단백질을 손상시켜 가며 독한 약품을 쓸 수밖에 없다. 피질층 단백질의 결합이 끊어지거나 구조에 구멍이 생기면서 전체 머리카락 강도를 약화시킨다.

그렇다면 이를 회복할 방법은? 없다. 미리 말했다. 머리카락은 살아있는 구조가 아니다. 손상된 머리카락을 보호하며 회복한다는 헤어제품의 대부분은 머리카락 겉 부분에 얇은 기름 코팅막을 입히는 것이다. 나무에 왁스(얘도 기름이다!)를 발라 광택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기름이라는 말에서 깨달을 수 있듯, 비누로 머리를 감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샴푸도 마찬가지다. 머릿결이 좋아지는 샴푸라니, 그저 머리카락 표면을 샴푸 단계에서부터 코팅해주는 것뿐이다. 수많은 샴푸, 린스, 트리트먼트, 오일, 영양제…. 설명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 오일을 함유해…’라는 문구가 있다. 그렇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기름 코팅인 거다.

이쯤에서 나를 비롯해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깨달았을 거다. 좋은 머리카락의 시작은 피부에서부터다. 요즘 두피 샴푸가 대세인 이유가 다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상하지 않게 미리 조심하는 거다. 파마나 염색을 피하고, 손상되기 전에 미리 헤어제품을 이용해 기름 코팅하면 손상이 덜할 순 있다. 하지만 이미 손상되었다면? 자르는 것이 답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오가희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의류·의상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