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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인공단백질을 실제로 설계하고 합성한 예는 천연 단백질을 개량한 개조 단백질에 비해 그리 많지는 않으나, 최근 몇몇 연구그룹에 의해 꾸준히 연구가 추진되고 있다.

드그라도들은 세포막에서 나트륨과 칼륨이온의 출입을 맡아보는 이온 채널이라고 부르는 막단백질의 유전자를 설계하고 대장균속으로 밀어넣음으로써 단백질을 합성시켰다. 이 단백질의 생김새는 특이하게 터널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속으로 이온들이 통과하며 조절되고 있다.

리차드슨들은 병풍 모양을 한 단백질을 설계하고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이 단백질은 합성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수용성과 전기를 띠게 하는 문제도 해결했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단백공학연구소에서는 최근 2백32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원통모양의 인공단백질을 설계하고 유전자를 합성했으며 세계에서는 처음으로 전자현미경을 통해 그 구조를 확인했다.

이 인공단백질에는 ATP가 결합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 있으며 단백질 분해효소를 절단해버리는 자리도 도입돼 있다. 따라서 이 합성단백질에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침범할 수 없다.

생명현상은 유전자 내 핵산에 새겨져 있는 정보에 규정되고 있다. 핵산을 자르고 결합시키고 짜깁기를 하여 인공재조합체를 만드는 기술이 유전공학이다. 유전공학은 여러가지 기술이 모인 것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핵산을 어떤 정해진 자리에서 끊는 제한효소의 발견이 기술발전으로의 돌파구가 되었다.

미국의 앤슬라인 교수팀은 뉴클레아제라는 핵산을 분해하는 효소의 활성자리를 모방하여 원하는 자리만을 끊어주는 인공제한효소를 만들어냈다. 앞으로는 "이런 자리를 분해하는 제한효소를 만들어주세요"라고 주문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생명과학은 10년마다 큰 발전을 해왔다. 1940년대 처음으로 핵산중의 DNA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1950년대에는 단백질의 1차구조(아미노산 결합서열)가 밝혀졌으며, 1960년대에는 X선결정구조해석법으로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눈으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알게 되었고, 1970년대에는 유전공학이 확립되었다.

1980년대에는 단백질 공학이 탄생함으로써 자연에 없는 단백질을 새롭게 설계하고 합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항체공학이 새롭게 등장한 것을 꼽을수 있다.
 

항체효소의 활성자리 부분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나타냈다.


항체공학의 등장

항체공학은 유전공학의 도움으로 본래는 동물이 합성하는 항체 단백질을 미생물을 통해 생산하며 단백질공학적 기술로 개조된 항체 단백질을 생산하는 것으로서 많은 기술들이 합쳐져 있다.

항체는 항원을 찾아내어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단백질인데, 이 단백질에 여러가지 기술을 동원하여 효소와 같은 촉매활성을 갖게끔 한 것을 '항체효소'라 부른다. 미국의 벤코빅 교수팀이 처음으로 이 항체효소를 만들어냈다. 항체효소가 천연효소보다 그 기능이 뛰어난 점은 천연효소가 촉매할 수 없는 반응을 촉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고정화시켜서 바이오리액터를 만들면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는 깨끗한 촉매로 유기합성공업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며, 체내에서 유전자 발현제어나 독소제거제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분자머신

요즘은 대규모집적회로(초LSI)를 만드는 기술이 진보하여 마이크로미터${10}^{-6}$m)보다 작은 구조체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여 작은 기계(마이크로 머신)를 만드는 연구가 시작됐다. 그러나 나노미터(${10}^{-9}$m)보다도 더 작은 기계를 만들려면 분자를 부품으로 사용하게 된다. 외부로부터의 정보나 자극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응답하며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에너지를 바꾸는 분자 수준의 기계다.

항체는 그 분자부품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항체는 우리 몸 안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적인 것에도 특이적으로 강하게 결합할 수 있으며 분자와 분자의 접착제 노릇도 한다. 항체효소는 앞으로 여러가지 형태를 가지고 금속의 도움도 받으면서 특정분자의 특정자리를 끊기도 하고 잇기도 하며 전자와 에너지와 정보 등을 변환하는 중요한 역할도 맡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기계는 물리적인 힘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화학적인 힘, 생물의 힘으로 더욱 작으면서 효율이 높은 자기 수복성, 자기 증식성을 함께 지닌 소프트한 분자머신이 등장할 날이 올 것이다.

AIDS 치료에도 이용

사람이 가지고 있는 면역 글로블린(IgG)항체의 구조는 (그림1)와 같다. 이 항체는 H사슬과 L사슬의 두가지 단백질 사슬이 합쳐져서 한짝이 돼 있고 이러한 짝이 2개가 모여서 한 분자의 항체를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항체 한 분자중에는 H사슬이 둘, L사슬도 둘, 합쳐서 4개의 단백질 사슬이 존재한다. H, L 두 사슬중에서도 윗부분을 가변영역이라 하는데, 이 가변영역이 항원과 결합하여 항원-항체 반응을 하는 부분이다.
 

(그림1)항체분자^무거운 사슬과 가벼운 사슬 한 쌍으로 돼 있다. 사슬은 각기 다른 DNA단편으로 구성된 유전자에 의해 암호화된다.


지난 해 필자는 H사슬의 가변영역만을 단백질공학 기술로 합성하고 이를 VH영역 항체(또는 단일가변영역 항체)라 이름붙였다. VH영역 항체의 우수성은 첫째 그 생산이 쉽다는 점이다. 둘째는 바이러스성 질병의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바이러스는 작고, IgG 같은 항체는 분자가 크므로 항체가 바이러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러나 VH영역 항체는 아주 작은 분자이므로 바이러스 속에 쉽게 들어가 항원 - 항체 반응을 할수 있다.

에이즈(AIDS)는 속발성 면역부전 증후군을 줄인 말이다. 이 에이즈는 HIV(사람 면역부전 바이러스)가 주범이다. HIV의 특징은 모든 세포에 감염되는 것이 아니고 CD4라고 하는 특정한 세포막 항원(단백질)을 가지고 있는 세포에만 감염된다. CD4 항원을 가진 중요한 세포는 헬퍼 T 세포다.

HIV에 감염되면 헬퍼 T 세포가 파괴된다. 그 때문에 환자는 위독한 면역부전 상태로 된다. HIV는 CD4 항원에 결합하여 세포 안으로 침입해 들어가 겉껍질을 벗어던지고 한가닥의 RNA로 된다 이어 두가닥의 DNA로 변신한다. 이 DNA로부터 HIV의 몸을 구성하는 여러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들 단백질중에 HIV 프로테아제라고 하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들어 있다.

사실은 이 단백질 분해효소가 DNA로부터 얻어진 큰 덩어리의 단백질을 톱질하고 다듬어서 HIV의 몸을 구성하는 여러 단백질(역전사효소와 겉껍질 단백질 등)을 만들고 단백질 분해효소 자신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HIV 프로테아제가 작용하지 않으면 HIV를 구성하는 여러 단백질도 다듬어내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HIV는 번식을 못하게 된다. 필자는 이 HIV프로테아제의 작용을 억제하는 단백질성 억제제를 합성한 바 있다.

말하자면 AIDS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치료약으로서의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HIV 프로테아제의 단백질 억제제를 합성한 것이다. 실험결과는 생각했던 대로 들어맞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직접 환자에게 입상실험한 것이 아니고 시험관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 단백질 억제제는 현재 파리 국립보건원에서 임상실험 중인데, 에이즈 치료약으로 빛을 보게 될지는 좀더 기다려봐야 알듯하다.

'단백질 공학의 시대'

지난해 가을 일본 기후에서 단백질 분해효소 국제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단백질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세계 과학자들이 많은 의견을 교환 했다. 그런데 유럽과 미국에서 온 연구자들 사이에 꽤 큰 의견차가 있었다.

유럽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단백질은 단백질마다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공통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인데 비해, 미국 연구자들은 단백질마다 독특한 성질은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는 주장이었다.

만약 공통점이 있다면 단백질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 사이에 어떤 일정한 법칙이 존재한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전에 둔 '단백질 공학의 시대'는 이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더 빨리 다가올 것이다. 이 시대가 되면 단백질 개량뿐 아니라, 필요한 단백질 주문 생산도 가능해질 것이다.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 사이 상관관계가 단백질 연구의 초점. 사진은 인공수정을 위한 냉동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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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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