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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이 700명인데…, 사람이 ‘1부1처’라고?

‘1부1처제’가 과연 인류의 본성일까



“사람이 1부1처제의 생활을 한다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제도(결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부1처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지요. ”영장류학자인 김희수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가 말했다. 대형 영장류는 인류와 진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따라서 인류에게 1부1처제가 나타난 진화적 이유가 있다면 혹시 영장류에게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질문했는데, ‘인류가 1부1처제를 따른다’는 첫 전제부터 반격이 날아왔다.














“영장류를 오래 연구하다 보니 유인원이 보이는 행태를 인류가 두루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침팬지처럼 폭력을 좋아하는 성향(침팬지는 매우 사납고 싸움을 즐긴다), 고릴라처럼 영웅이 되고자 하는 성향(고릴라 수컷은 힘싸움에서 이긴 자만이 여러 암컷을 거느릴 수 있다), 보노보처럼 상대를 지극히 달콤하고 사랑스럽게 대하는 성향 등이 사람에게는 동시에 나타나요.짝짓기에서도 마찬가지겠죠.”

현재 남아 있는 유인원 5종(침팬지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긴팔원숭이)은 제각각 다른 짝짓기 특성을 보이고 있다. 먼저 침팬지는 완전한 난교다. 한 마리의 암컷은 아무 수컷과도 교미하고 수컷 역시 아무 암컷과 교미한다. 침팬지와 유전적으로 아주 가까운 보노보 역시 난교를 한다.

반면 고릴라는 흔히 ‘하렘’이라고 부르는 1부다처제를 보인다. 어른이 된 수컷 한 마리가 여러 마리(보통 두세 마리, 많아야 서너 마리 정도다)의 암컷을 거느리는 방식이다. 이 때 수컷은 다른 수컷과의 힘겨루기에서 승리한 ‘강한’ 수컷이다.




반대로 경쟁에서 밀려난 수컷은 짝짓기에 실반대로 경쟁에서 밀려난 수컷은 짝짓기에 실패한 채 혼자 일생을 마치며, 가끔 이런 뜨내기 수컷 중 일부가 짝짓기에 성공한 수컷에게 시비를 걸다가 혼쭐이 나기도 한다.

오랑우탄 역시 1부다처의 짝짓기를 하지만, 고릴라와 조금 다르다. 김 교수는 “오랑우탄 암컷은 몇 마리씩 작은 무리를 이루는데, 수컷 한 마리가 이런 암컷 무리를 여럿 거느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릴라보다 한술 더 뜬 ‘확장된’ 1부다처인 셈이다.

긴팔원숭이는 1부1처를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갑작스러운 논란에 휩싸였다. 김 교수는 “2012년 8월 대만에서 열린 세계영장류학회에서, 적어도 일부 종에서는 1부1처가 아니라는 관찰 결과가 발표돼 논란이 일었다”고 말했다. 특히 종을 넘어선 이종교배 사례도 발견돼 긴팔원숭이의 ‘족보’마저 바뀌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인간은 어떨까. 현재 주변을 둘러보면 결혼 제도로 대표되는 1부1처가 흔한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한 명의 남성이 여러 명의 아내를 두도록 허용하는 일부 부족이나 국가가 분명 존재하고(1부다처), 반대로 여성이 남성을 선택하는 모계사회도 존재한다. 분명 인류도 여러 가지 ‘짝짓기’ 모습을 보인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는 사례를 찾기 더 쉽다. 프랑스 몽펠리에 2대학 진화과학연구소의 미셸 레이몽 박사는 저서 ‘우리는 왜 먹고, 사랑하고, 가족을 이루는가?’에서 로마시대부터 프랑스 절대왕정시대까지 숱한 ‘권력자’들이 수십, 수백 명의 아내나 여성 노예를 거느렸던 사례를 상기하며 인간에게는 1부다처의 습속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다 못해 서구의 ‘정신적 고향’ 그리스, 로마의 신화마저 온통 바람둥이와 난봉꾼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바람을 피우거나 난봉꾼 짓을 벌이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에도 이런 책을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전세계가 즐겨 읽고 있다. 이런데도 1부다처를 그저 과거 또는 신화 속의 이야기라고 마냥 치부할 수 있을까.















사람의 1부1처는 동물과 달라

“인류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1부다처제 사회가 전체의 30~40%고 1부1처인 사회가 50% 정도로 나옵니다.”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말했다. 약 절반의 사회는 1부1처를 따르지만, 아닌 쪽도 절반이나 된다는 말이다. 생각보다 1부1처의 위세가 높지 않다. 정말 인류에게는 다양한 결혼(혹은 짝짓기) 행태가 혼합돼 있는 것일까.

“사람의 1부1처와 동물의 1부1처는 구분해야 합니다.”

전 교수는 조류를 예로 들었다.

“새에게서 1부1처가 많이 발견되니 까치를 예로 들죠(조류는 약 90%가 1부1처제다). 나무 한 그루에 까치가 둥지를 틀었다고 해보세요. 그 나무를 중심으로 자기 영역이 생깁니다. 거기서 먹이를 찾아 먹고, 다른 까치가 접근하면 쫓아내며 삽니다. 이 까치에게는, 부모와 새끼가 ‘사회’의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남’일 뿐이죠.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친척 등 혈연으로 이뤄진 사람들이 최소 수십 명에서 때로는 120~130명 정도 모여 하나의 집단을 이룹니다. 이들은 친족으로서, 공동으로 집단을 방어하거나 서로 협력해 사냥을 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부부 관계는 각기 독립적으로 유지하는 특이한 모습을 보이죠.”

다시 말하면 같은 집단 안에 나의 부부, 형의 부부, 동생의 부부 등이 섞여 살고, 협력이나 사냥 등 상호작용도 활발하지만, 그렇다고 부부가 배우자를 서로 뒤바꾸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 100여명의 집단은 1부1처로 이뤄진 부부의 집합인 셈이다. 반면 까치는 부부끼리 맺어진 점은 사람과 같지만, 다른 부부와 상호작용은 없는 독립된 1부1처다.

“현재 사람이나 동물에게서 1부1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 연구가 활발합니다. 하지만 동물과 사람의 1부1처제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동물 연구를 사람에게 확장해 해석할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조차 동물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인류의 1부1처제를 알고 싶어한다. 최근 ‘사이언스’와 ‘미국국립과학원회(PNAS)’에 발표된 두 편의 논문 역시 각각 포유류와 영장류의 1부1처 경향을 연구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1부1처제의 기원을 밝히고 싶다는 뜻을 숨기지 않고 있다.
















오리무중에 빠진 1부1처의 기원


두 연구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동물이 1부1처를 진화시킨 원인을 탐구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연구의 결론이 정반대다.

먼저 영국 런던대 인류학과 크리스토퍼 오피 교수팀은 230종의 영장류의 특성 자료를 모아 수학적인 방법으로 어떤 특성이 1부1처의 특성을 유도했는지 밝혀 2013년 8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했다.

흔히 인류학자나 진화학자들은 1부1처의 기원 후보로 세 가지를 꼽았다. 먼저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자식을 키우는 일명 ‘부성애’다. 먹이를 먹이거나 돌보는 행위에 수컷이 가담한다. 새끼가 크는 데 어미의 애를 많이 먹이는 동물일 경우 유용하다. 두 번째는 암컷의 분포다. 한 마리 한 마리가 멀찍이 떨어져 존재한다면, 수컷은 굳이 멀리 다니며 여러 마리의 암컷과 관계를 지속하느니 한 마리의 암컷과 지속적으로 짝을 이루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앞서 전 교수가 든 나무 위의 까치가 그 경우다. 마지막은 수컷(아버지)이 자식을 포식자의 침략(영아살해)으로부터 보호하는 행위다.







오피 교수는 셋 중 부성애는 원인이 아니라고 봤다. 또 나머지 두 가지 특성 중에서는 새끼를 포식자(영아 살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1부1처가 진화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결론 지었다. 인류의 1부1처 역시 비슷한 이유로 등장했으리라 추정했다.

그런데 이 연구 결과는 불과 1주일 전에 ‘사이언스’에 나온 연구와 정반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동물학과의 디터 루카스 교수팀은 영장류 361종을 포함해 포유류 2245종을 대상으로 1부1처의 원인을 탐구했는데, 부성애가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오피 교수와 같았지만, 남은 두 특성 가운데에서는 오히려 암컷의 분포가 더 큰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암컷의 먹이 경쟁이 심하고 개체수 밀도가 적은 경우 1부1처가 나타났다는 게 이유였다. 연구팀은 인류의 조상 역시 비슷한 이유로 1부다처에서 1부1처가 됐으리라 봤다.

두 연구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다. ‘영장류의 평화 만들기’ 등을 쓴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 미국 에머리대 영장류연구센터 교수와 저명한 수리생물학자인 세르게이 가브릴레츠 미국 테네시대 생태진화생물학과 교수는 두 연구팀의 논문이 발표된 뒤 한 달이 지난 2013년 9월, PNAS에 기고문을 보내 “오피 교수팀의 연구는 데이터 해석에 무리가 있다”며 “1부1처의 원인으로는 암컷의 분포가 설득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중환 교수는 “부성애 논리는 이미 원인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난 상태”라며 “남은 두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1부다처와 난교의 중간?

혹시 다른 관점에서 인간이 1부1처 혹은 1부다처인지 증거를 찾을 수는 없을까. ‘손가락’에서 단서를 찾은 학자들이 있다. 둘째 손가락과 넷째 손가락의 길이 비율을 보면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1부다처와 1부1처 여부를 알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영국 리버풀대 고고학과 엠마 넬슨 교수팀은 2011년 왕립학회보B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연구를 인류의 조상에 응용했다.

그에 따르면, ‘루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1부1처일 가능성이 높고 아르디피테쿠스, 네안데르탈인은 모두 1부다처의 가능성이 높았다. 초기의 현생인류도 다뤘는데, 오늘날의 인류보다는 역시 1부다처 가능성이 높았다. 오늘날의 인류는 1부1처 또는 1부1처와 1부다처의 중간으로 봤다.

수컷 고환의 크기도 관심사다. 진화심리학자 미국 텍사스대 데이비드 버스 교수는 저서 ‘진화심리학’에서 고환 크기는 난교 여부와 관련이 많다는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암컷이 여러 수컷과 짝짓기를 하고 그 사실을 수컷도 알 경우, 가장 좋은 전략은 한번 사정할 때 나오는 정자의 양을 늘리는 것이다. 정자의 양은 정소의 크기에 비례하므로, 이런 동물은 정소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쪽으로 진화한다.





















실제로 수컷끼리 ‘힘대결’을 펼쳐서 한 마리의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독차지하는(1부다처) 고릴라나 오랑우탄은 정자 수 대결을 펼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고환의 크기가 작다. 반면 난교를 하는 침팬지는 고환의 크기가 무척 크다. 사람은 두 무리의 중간 정도다. 신체 무게에서 고환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봤을 때, 고릴라는 인간의 4분의 1, 오랑우탄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침팬지는 사람보다 3배 이상 크다. 버스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사람은 1부다처를 따르는 고릴라보다는 정자 경쟁 수준이 높지만, 성생활이 난잡한 침팬지나 보노보보다는 훨씬 낮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즉 ‘사람은 바람을 좀 피우지만 1부다처는 아니고, 그렇다고 극단적인 난교도 아니다’는 뜻이다. 그 지점이 1부1처와 비슷한 형태일까.

고인류학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다. 대상은 송곳니다. 싸움을 즐기는 침팬지는 ‘무기’인 어금니를 서로 드러내 보이며 상대를 위협하곤 한다. 이를 위해 초식임에도 육식동물처럼 커다란 어금니가 있다. 그런데 2009년 새롭게 발표된 400만~600만 년 전 친척 인류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의 어금니는 침팬지보다 훨씬 작고 뭉툭하다. 이는 공격성이 줄어들었다는 뜻으로, 라미두스가 침팬지보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경쟁했다는 증거다. 화석을 연구한 미국 켄트주립대 인류학과 오언 러브조이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2009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암컷이 공격성이 더 적은 수컷을 대상으로, 식량을 갖다 주는 대가로 짝짓기를 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러브조이 교수는 여기에서 1부1처의 근거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여성을 비하했다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대체로 연구는 인류가 영장류 시절의 1부다처제에서 1부1처제를 향해 가는 추세라고 말하는 듯 하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완벽한 1부1처라는 확언은 없다. 인류의 짝짓기 형태는 여러 학자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복잡하다. 솔로몬의 700 후궁과 제우스의 바람기는, 그 틈바구니의 극단적인 예였을 뿐이다.

201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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