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보다 더 수가 줄어든 들개에게 집개용 광견병 예방백신을 접종해 보았으나…
두해 전 여름 아프리카 케냐에서의 일이다. 병든 22마리의 아프리카 들개가 서로 치열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씩 죽어가기 시작했다. 한 골골한 수컷이 한살바기 들개를 맹렬하게 물어뜯는 끔찍한 장면도 목격됐다. 처음에는 한살바기를 보호하기 위해 다가온 것으로 보였던 일군의 들개들은 이 처참한 광경을 모른 체하고 내버려 두었다. 정상적인 들개들은 무척 사회적인 동물로, 병든 동료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돌봐주기까지 하는데, 아무튼 그날은 뭔가 좀 달랐다.
그 무자비한 수컷마저 죽자 이번에는 다른 놈들이 격렬하게 싸웠다. 이싸움에서 진 무리들은 들판으로 달아났다.
들개들의 이런 예외적인 행동은 광견병 때문이었다. 병에 일단 걸리면 물을 두려워하게 된다고 해서 공수병이라고도 불리는 광견병은 사람이나 개 들개에게 모두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알려져 왔으나 아프리카 들개들에게 퍼지고 있는 광견병은 그 상태가 심각하다. 들개를 거의 멸종위기까지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18세기 말 19세기 초만 해도 들개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단지 3천〜4천마리가 대륙에 남아있을 뿐이다.
"멸종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코뽈소의 수는 들개 수의 두배 이상이고 아프리카 코끼리는 들개보다 16배나 더 많은 수가 살아남아 있다"고 미국 UCLA의 유전학자 로버트 웨인은 경고한다.
그동안 해로운 동물로만 취급되기 일쑤였고 관심도 거의 끌지 못했던 들개는 몸에 황색 흑색 백색의 점이 나 있고 커다란 귀가 특징적이다. 그들의 이름이나 외양과는 달리 실제로는 개와 다른 점이 더 많다. 아마도 들개는 3만〜4만년 전 집개와 늑대 모두로부터 분화돼 나온 종(種, Lycaon pictus) 중 마지막 남은 하나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들개는 때때로 가축을 사냥하기 때문에 과거에는 주로 목장 감독자의 총에 희생돼 그 수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들개의 최대 위협은 총부리가 아니라 질병이다.
이들의 재난은 사람들이 이주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즉 가축들과의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가축의 질병이 들개에게 자연스레 옮겨진 것이다. 예를 들어 1906년에는 집개의 치명적인 전염병인 디스템퍼가 들개에게 전염됐고, 1978년에는 치사율이 높은 파보바이러스가, 그리고 지금은 빠른 전염성을 가진 광견병이 들개들을 위기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케냐 국립박물관의 유전학자 피터 캣은 들개를 구하기 위해 그들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89년 초 캣과 그의 동료들은 백신 접종작업에 앞서 들개와 집개의 혈액표본을 채취했다.
그들은 집개의 광견병 예방백신을 들개에게 주사했다. 모두 세마리의 들개에게 백신을 접종했는데 그중 두마리가 죽었다. 캣은 집개에게 유효한 백신을 집개와 별로 연관이 없는 들개에게 사용했으니 두마리를 잃은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관찰한 광견병에 걸린 22마리의 들개중 두마리, 즉 집개용 백신을 접종받은 한 마리와 억세게 운이 좋은 한마리만이 살아 남았다.
아무튼 야생동물에게 예방주사를 놓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1988년 영장류학자들은 르완다산(山) 고릴라가 사람이 홍역을 앓듯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광경을 지켜 보았다. 그래서 수의사의 도움을 얻어 60마리의 다른 동물들에게 그 병에 대한 면역을 갖도록 해주었는데, 결과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 홍역 비슷한 질병으로 인해 죽은 동물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던 것.
이 얘기는 동물보호론자와 생물학자들에게 중요한 암시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테면 가축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에게 미리 예방접종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야생의 들개에게 예방접종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또 일부 생물학자들은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 들개문제를 해결할 것이므로 인간이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