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악기 말. 지구는 아직 따뜻하다. 비록 2500만 년 전(기사 시점 기준. 지금부터 9000만 년 전)부터 기온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고 그래서 백악기 전체 평균에 비해 약 2~3℃ 춥지만, 그래도 인류가 사는 시대보다는 훨씬 따뜻하다. 극지와 열대 사이의 기온차도 적다. 요즘에는 온도가 조금 올라 더 살기 좋아졌다.
아지랑이가 올라온 것처럼 풍경이 흐릿해 보인다. 안개가 낀 건가 잠시 생각했지만, 이내 우리가 깔고 앉은 둥지의 구과식물 잎 뭉치가 조금씩 발효하면서 내는 열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모래를 파서 만든 오목한 둥지에 식물 잎을 모아 놓고, 그 위에 알을 낳고 키운다. 우리는 식물이 스스로 열을 내며 알을 따뜻하게 지켜 준다는 사실을 안다.
둥지 아래에서부터 아랫배로 전해오는 따뜻한 느낌이 좋다. 만족스러움에 고개를 들자, 마찬가지로 기분 좋은 소리를 내던 옆 둥지의 동료와 눈이 마주친다. 뭐라고 소리를 건네려다 만다. 아래에서 아기들이 보채서다. 지금도 충분히 따뜻할 텐데, 녀석은 그래도 자신을 몸 안에 품어달라고 안달이다. 원시깃털이 달린 앞발을 살짝 들자, 엉거주춤 웅크리고 있는 다리사이 품 안으로 파고든다. 나는 3m나 되는 덩치에 새끼들이 행여 깔리기라도 할까 봐 완전히 주저앉지 않고, 살짝 다리를 들어 웅크린다. 앞팔은 낮게 펼쳐 둥지를 덮었다. 힘들어 보이지만, 새끼들을 위해서라면 이 자세로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내가 알을 품는다는 사실은 더 중요한 논쟁과도 연결된다. 공룡은 파충류라서 ‘외온성(외부온도에 체온이 연결되는 성질)’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는 일도 힘에 겨울 텐데 어떻게 새끼나 알을 품어 따뜻하게 할까. 바로 체내 에너지 대사와 관련된 논쟁이다.
조류는 포유류와 함께 ‘내온성’ 동물이다. 몸 안에서 스스로 열을 내 체온을 유지한다. 파충류는 반대로 외온성이다. 그런데 공룡 연구자 일부는 공룡이 외온성에서 내온성으로 넘어가는 중간 과정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유타자연사박물관 스콧 샘슨 박사는 저서 ‘공룡 오디세이’에서 “깃털 자체가 새끼나 알의 보온 이전에, 체열 보온을 위한 것이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외온성과 내온성 어느 한 쪽에 속해서는 거대한 몸집을 발달시킬 수 없다는 사실도 증거로 지목했다. 이에 대해 존 루벤 등의 학자들은 ‘완벽한 공룡’이라는 연구서에서 “깃털이 있을 경우 몸의 에너지 대사는 중요치 않다”며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배 아래쪽에서 움직임이 느껴진다. 따뜻한 느낌에 아기가 몸을 부르르 떠나보다. 나는 이 느낌이 좋다. 내가 내온성이든 외온성이든 혹은 그 중간이든, 아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고, 그 사실이 내겐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도 안다. 저 뒤에, 사철나무 위로 우리를 노려보는 존재가 있다는것을. 숨는다고 숨었겠지만 왜 모르겠는가. 저 큰 머리, 희번덕거리며 정면을 향한 눈. 최대한 자제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내고 있는, 흥분한 콧바람에 실려 오는 살육의 기운…. 티라노사우루스다. 지금 이곳은 백악기에 등장해 우리와 함께 진화해 온 꽃이 온통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 낭만적인 분위기는 커녕 험악하다.
사람들에게는 티라노사우루스가 공룡의 대명사로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살았던 시간만 보면 이런 대접은 부당하다. 티라노사우루스는 공룡 시대 거의 대부분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등장한 시기 중 상당 기간에도 가장 거대한 육상 포식자는 아니었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중생대의 마지막 2500만 년 동안 번성했는데(조상인 티라노사우루스상과는 1억6500만 년전부터 존재), 종은 다양했지만 대부분은 크기가 1~2t 정도로 작았다. 작은 티라노라니, 매력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백악기 마지막 수백만 년 동안은 이야기가 다르다. 몸무게가 6t이 넘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티렉스)가 등장했다. 티렉스는 다양한 초식공룡을 닥치는 대로 먹으며 북미를 호령했는데, 그게 내가 지금 두려움에 떠는 이유다.
지금 티렉스는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평원에는 두 종의 조반류 초식공룡 무리가 있다. 에드몬토사우루스와 트리케라톱스 무리다. 어디에 관심을 둬야 하나? 둘 다 한 덩치 하니(에드몬토사우루스는 티렉스에 버금가는 4t이고, 트리케라톱스는 티렉스보다 무거워서 10t 가까이 나가기도 한다!) 티렉스는 포식할 수 있을것이다.
그건 그렇고, 티라노사우루스가 민첩한 사냥꾼이었는지 아닌지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분분하다고 들었다. 많은 공룡 고생물학자들이 각자의 근거를 바탕으로 논쟁 중이다. 2002년 ‘네이처’에 실린 미국 UC버클리의 존 허치슨 교수팀의 발표가 대표적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빨리 뛰지 못했다”는 제목의 이 논문은 티라노사우루스나 그에 필적하는 무거운 공룡이 달리려면 엄청나게 큰 근육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티렉스는 결코 달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아나토미컬 레코드’에 발표한 미국 오하이오대 의대 로렌스 위트머 교수팀의 CT(컴퓨터단층촬영) 두개골 분석 결과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시체를 찾는 데 유리한 예민한 후각을 가졌을 것을 시사했다. 이런 증거를 바탕으로 미국 로키산맥박물관의 잭 호너 큐레이터는 티렉스가 사냥꾼이 아니라 시체 청소부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콧 샘슨 등은 사냥꾼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진실은? 저 티렉스가 우리를 사냥한다면 밝혀지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빈다.


‘그날’ 이후 여러 날이 흘렀다. 사람들이 하는 표현으로 ‘지축을 뒤흔든다’는 말이 있다. 남아메리카에 살던, 같은 아벨리사우루스류 친척인 카르노타우루스에게 들어보니, 북아메리카에 사는 거대한 육식공룡티라노사우루스가 힘껏 소리를 지르면 지축이 뒤흔들릴 거라고 했다. 우리보다 몸무게가 6배는 더 나가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의 소리와 충격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정말 지구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세상이 변했다.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져 멕시코 부근을 강타했다. 아메리카와 내가 사는 마다가스카르라면 멀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지금이 백악기 후기라는 사실을 상기하라. 대서양은 이제 겨우 대양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중이고, 두 대륙 사이의 거리는 훨씬 가깝다.
멕시코 칙술루브에 떨어진 운석이 백악기 후반 우리 공룡의 멸종을 불러왔다는 사실은 사람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이 때를 전후해 다른 동물도 상당수 대멸종을 겪었다. 바다에서는 조개류와 유공충, 플랑크톤, 암모나이트 등이 멸종했고 해양 파충류도 상당수 멸종했다.
운석 충돌은 폭탄에 의한 지진과 쓰나미 같은 물리적 충격만으로 일시에 생물을 멸종시킨 게 아니다. 뒤이은 광범위한 산불과 산성비, 하늘을 뒤덮은 먼지와 이리듐 입자(운석에 많은 성분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식물의 광합성 저하 등이 복합적으로 멸종을 불러왔다. 꽃이 만발하던 백악기의 정원은 침체에 빠졌고, 동물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공룡도 그 와중에 서서히 몰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식물 생태계는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한때 생태계의 90%를 차지하던 꽃 식물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고사리류가 점점 자라고 있다. 식물 생태계가 회복된다는 증거다. 꽃이 피던 정원도 곧 되살아날 것이다. 나무 위에서 푸드득 새가 날았다. 작은 수각류 공룡 마니랍토르의 한 종이었던 조류는 독자적인 진화를 해왔고, 이제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몸으로 이 혼란한 세상에서 살아남았다. 만약 우리가 이 난국을 헤쳐나가지 못한다면, 조류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공룡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공룡이 1억5000만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생존한 아주 성공한 동물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멸종하지 않는다면? 공룡의 시대는 새로운 2막을 맞이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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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HOMO SAURUS
PART1. 백악기 마지막 날
PART2.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PART3. '알도둑' 오비랍토르의 누명을 벗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