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_이번 호부터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연재를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재미있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다들 많은 다짐을 했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해내겠다며 ‘꼭 해야 할 일 리스트’를 만들고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중요한 일일수록 오후보다 오전에 하는 게 더 좋다는 사실을 아는가?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오후보다 오전에 비교적 더 제정신(?)이다.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한다면 지금이 오전인지 오후인지부터 확인하자.
오후보다 오전에 더 도덕적인 사람들
미국 하버드대의 심리학자 쿠차키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모니터에 20개의 검은 점들이 1초간 보인다. 참가자가 해야 하는 일은 기준선에서 오른쪽에 점이 더 많은지 아니면 왼쪽에 점이 더 많은지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답이 오른쪽일 경우 참가자는 5센트를, 왼쪽일 경우에는 0.5센트를 각각 받을 수 있었다. 즉 점들이 오른쪽에 더 많으면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다. 또한, 답변의 정확도와 상관없이 오직 참가자의 보고에 따라 돈이 지급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충분히 거짓말을 해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실험을 오전에 했을 때와 오후에 했을 때 참가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양상이 달라질까? 놀랍게도 분명 같은 점이었는데도 오전보다 오후에 ‘오른쪽에 점이 더 많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오전보다 오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위해 자신의 양심을 판다.
연구자들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인간의 고귀한 특성으로 알려진 도덕성이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기라도 한단 말일가? 이를 알아보기 위해 이번에는 참가자들에게 단어 완성 과제를 시켰다.
‘_ _ R A L’, ‘E _ _ _ C _ _’라는 철자 세트에서 빈 칸을 채우는 과제였다. 이러한 단어 완성 과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개념이 활성화돼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흔히 사용한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번에도 오전에 단어를 완성한 참가자들은 MORAL(도덕적인), ETHICAL(윤리적인) 같은 도덕 관련 단어들을 많이 채웠지만, 오후에 참여한 사람들은 CORAL(산호)나 EFFECT(영향) 같이 도덕과 상관없는 단어를 비교적 더 많이 떠올렸다. 추가 실험에서도 연구자들은 같은 현상을 발견했고 도덕성은 오후보다 오전에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의지력도 쓰면 없어진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학자들은 우리가 정신을 단단히 붙들어 매고 유혹을 뿌리치는 일련의 행위(자기통제)에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양심을 팔고서라도 더 많은 돈을 얻겠다는 유혹이나 다이어트 중 마주친 치킨의 유혹, 귀찮은데 다 관두고 싶은 유혹, 짜증나는 사람을 한 대 치고 싶은 유혹 등 우리 삶은 수많은 유혹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우리를 이런 부적절한 욕구의 노예로만 살지 않게 해 주는 힘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자기통제력 또는 의지력이다. 그리고 많은 연구 결과, 이런 의지력은 배터리처럼 상당히 한정돼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의지력을 펑펑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눈앞에 맛있는 쿠키를 놓아둔 뒤 먹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게 해서 의지력을 소모시키면, 그 뒤 감정 조절에 실패하거나 과소비를 하고, 끈기가 필요한 지겨운 과제를 빨리 포기하는 등 의지력이 고갈된 듯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마구 달리고 난 뒤 연료가 바닥난 자동차가 다시 달리지 못하듯 의지력도 한번 사용하고 나면 방전이라도 된 것처럼 잠시 멈추게 된다. 이렇게 의지력을 사용한 뒤 정신력이 방전된 듯한 모습을 보이는 현상을 ‘자아고갈(ego-depletion)’이라고 한다.
따라서 학자들은 우리의 의지력에 어떤 한정된 ‘연료’ 같은 것이 사용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는 이 연료가 실제 우리 몸의 에너지원인 포도당과 같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의지력을 쓰고 난 뒤에 설탕을 먹은 사람들은 계속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단맛만 나는 조미료를 먹은 사람들은 여전히 의지력이 방전된 모습을 보였다. 의지력은 뇌의 활동 중에서도 많은 양의 포도당을 소모하는, 게임으로 치자면 MP 소모가 많은 고급 기술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은 컨디션 좋을 때 결정하자
이렇듯 정신을 단단히 붙들어 매는 데는 상당한 양의 에너지가 쓰인다. 그래서 에너지가 많이 남은 오전에는 각종 유혹에 비교적 쉽게 이길 수 있지만, 에너지를 써버린 오후에는 유혹과의 싸움에서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오후에 더 쉽게 사기를 치게 되고(양심을 지키는 것도 수많은 부적절한 유혹을 뿌리쳐야 하는 대표적인 자기통제 활동이다), 에너지 고갈이 절정인 밤에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헤어진 여자친구나 남자친구에게 전화하고 다음날 후회하게 된다.
그러니 의지력이 많이 소모되는 중요한 일을 할 때는 에너지가 충분한 오전이나 충분히 쉰 후에 컨디션이 최상인 상태에서 하는 게 좋다. 의지력이 부족하다며 푸념만 하지 말고 한정된 의지력을 전략적으로 사용해 보자. 이번만큼은 의지력 고갈로 넘어지는 일 없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박진영_imaum0217@naver.com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jinpark.egloos.com)를 운영하며 <;청년의사신문>;에 심리학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인간관계의 심리학을 다룬 책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