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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힉스 입자 및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메커니즘을 예측한 피터 힉스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와 프랑수아 앙글레르 벨기에 브뤼셀자유대 교수에게 돌아갔습니다. 지난해 유럽입자물리연구소가 힉스 입자를 발견해 이들의 이론이 옳았음을 확인한 덕분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제가 지니고 있던 오랜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양성자니 중성자니 중성미자니 힉스니 하는 온갖 소립자도 발견되고 있는 마당에 왜 아직도 과학자들이 못 찾고 있는 게 있을까요? 영혼이나 기(氣)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 말입니다. 지금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아직 과학자들은 제대로 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막힌 기를 뚫어야 한다는 표현을 흔히 쓰지만, 그 기라는 것의 실체를 찾은 적도 없습니다. 몇 광년 두께의 납을 뚫는 중성미자도 검출하는 시대인데요.

과학이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아뇨. 그보다 훨씬 더 간단한 설명이 있습니다. 세상에 그런 건 없다는 거죠. 속단하지 말라고요? 과학이 세상의 모든 걸 설명하지는 못한다고요? 그런 식이라면 칼 세이건 말마따나 제 방에 강대한 힘을 지닌 투명드래곤이 있는데 그 드래곤은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 관찰할 수 없다고 주장해도 그 누가 반박할 수 있겠어요?


병원에서 귀신을 진단한다니

오늘 할 얘기는 영혼과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게시판을 둘러보다가 ‘빙의치료’라는 게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몸 안에 원래 영혼이 하나여야 하는데, 다른 영혼이 들어와 있어서 문제가 생긴 걸 치료한다는 겁니다.

검색을 해보니 이런 걸 하는 곳이 많더군요. 무당이나 퇴마사라는 사람들이야 원래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니 그러려니 합니다. 기독교나 불교에서도 마귀를 쫓아낸다는 식으로 비슷한 행위를 하는데 종교야 원래 검증되지 않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깔고 들어가는 곳이니 딱히 뭐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병원에서 빙의치료를 한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서울에 있는 한 한의원이었습니다(요즘 세상이 하도 흉흉하여 이름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홈페이지를 보면 빙의적 질환이 무엇이며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하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빙의를 진단하고 나면 빙의한 영과 대화를 해서 내보낸 뒤 빛명상으로 밀봉한다”고 치료 단계를 써 놓았습니다. 물질에 기반을 두지 않고도 의식이 있는 영이 존재하는 게 마치 기정사실인양 말하고 있습니다. 밀봉은 또 뭡니까? 사람이 무슨 락앤락 용기인가요?

혹시 한의원을 사칭한 가짜 병원일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 원장의 약력을 찾아봤습니다. 유명 한의대를 졸업해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저서도 몇 권 있고요. 이게 사실이고 이 한의원이 정식으로 인가를 받은 병원이라면 충격이 큽니다. 언제부터 빙의가 의학적인 진단명이 된 걸까요? 이건 검증되지 않는 치료법 수준도 아니지요. 굿이나 엑소시즘이나 안수기도나 다를 게 뭡니까.


모르면 귀신 탓?

검색 결과를 아래로 내리다 보니 이 병원 원장과 관련된 기사가 몇 개 나왔습니다. 기독교 계열 신문에 실린 기사네요. 병원사역에 힘쓰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원장이 독실한 기독교인인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면 종교색이 반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종교가 있는 의사여도 명색이 병원인데 그런 치료를 한다는 건 있을수 없습니다.

소위 빙의라고 하는 현상은 아직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세계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빙의하는 존재도 영혼, 신, 동물, 악마, 심지어는 외계인까지 다양하지요. 기독교나 불교뿐만 아니라 부두교나 각 지역의 토속 신앙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게 가능하려면 자의식이 있는 비물질적인 존재가 있다는 게 사실이어야 할 텐데, 그렇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과학계에서는 빙의 현상이 병적 흥분 증상이나 정신분열, 다중 인격 장애 같은 질환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증상이 다양한 것으로 보아 원인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 증상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에게 현대 과학이 완벽한 치료법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종교나 무속에 의존하는 것도 일견 이해는 갑니다.


상상 속 세계는 영화나 소설에서만!

과학은 물질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비물질적인 존재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마음대로 상상한 비물질적인 존재가 있다고 주장해도 딱히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투명 드래곤을 생각해 보세요. 투명 드래곤이 뭘 먹고 사냐고 묻는다면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고,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눈에 띄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고 대답할 겁니다. 이른바 ‘편의적 가설’이죠.

과학적으로 명쾌히 밝힐 수 없다고 해서 영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인정하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영혼만 있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든 누구도 그걸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반박이 들어오면 제가 투명 드래곤을 옹호한 것처럼 적당히 가설을 만들어 우기면 됩니다.

왜 세상을 그렇게 복잡하게 만드나요? 아까도 얘기했듯이 훨씬 더 간단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런 건 없다는 겁니다. 모르는 건 그냥 모른다고 받아들입시다. 억지로 상상의 존재를 만들지 말고요. 재미도 덜하고 때로는 무력함에 좌절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세상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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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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