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능력시험에서 과학탐구의 위력
2012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부터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각 과목 I, II 전체 8개 과목에서 최대 세 과목을 선택할 수 있었다. 2014학년도 수능(현재 고2)부터는 두 과목으로 축소된다. 이렇게 과학과목이 축소되기 때문에 많은 수험생들은 과학탐구영역(이하 과탐)이 대학입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탐이 세 과목이든, 두 과목이든 대학 입시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 수능 성적은 수시모집에서는 최저학력 기준으로 활용된다. 정시모집에서는 수능 성적을 영역별 반영 비율에 따라 총점을 내고 내신성적에 더해 합격과 불합격을 가리는데 자연계 학과는 대부분 과탐의 반영비율이 다른 영역보다 크다.
상위권 대학은 수시모집에서 과탐을 최저학력 기준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연세대 수시 1차 일반 우수자 전형의 논술 우선 선발 전형은 최저학력 기준이 수리와 과탐 2등급이다. 고려대는 수시 2차 일반우수자 전형의 최저학력 기준은 2개 영역 2등급이지만 수리-(가) 또는 과탐이 포함돼야 하며 우선선발 대상자는 수리-(가)가 포함한 2개 영역이 1등급이어야 한다.
정시 모집에서 홍익대 공대는 수리-(가) 50%, 과탐 50% 성적만으로 뽑기도 한다. 연세대 자연계, 숙명여대 자연계, 인하대 자연계, 서남대 의예과는 언어와 외국어를 20% 내외로 반영하는 반면 과탐은 30% 반영한다. 과탐의 위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대학은 과학 중 두 과목 성적만 반영한다. 물론 고려대, 가톨릭대 등 과탐을 20% 미만 반영하고 언어·수리·외국어 반영 비율을 높인 대학도 있다.
대학에서는 어떻게 반영할까?
서울대는 과탐 선택 세 과목을 모두 반영한다. ‘I+I+다른 과목 II’를 택해야 한다. 즉, 물리 I, 화학 I을 선택했다면 II과목은 생 II 또는 지 II를 선택해야 한다. 2012학년도 수능에서 이렇게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이 많았다. 이들 중 고득점자도 많았지만 서울대에 지원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서울대 자연계열 합격선이 당초 예상보다 2~5점 정도 낮아졌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서울대 성적에 못 미친다 해도 과학 과목을 선택할 때 서울대 방식을 따르는 것이 좋다.
반면, 연세대나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대부분의 상위권 및 중상위권 대학은 수험생이 선택한 세과목 중 성적이 우수한 두 과목만 반영한다. 뿐만 아니라 가천대, 경기대, 상명대 등 수도권 대학 중에는 과탐을 한 과목만 반영하는 학교도 있다. 이들 대학은 한 과목을 반영하면서도 비중을 20% 대로 높게 반영한다. 때문에 세 과목을 골고루 공부한 학생보다 1개 과목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학생이 유리하다.
과탐 8개 과목을 똑같은 난이도로 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년 수능에서는 생물이 조금 어렵게 출제되고, 지구과학이 좀 쉽게 출제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부분의 대학은 백분위를 이용해 점수를 환산해 반영한다. 과탐은 2점 문항 10개, 3점 문항 10개 등 총 20문항을 출제해 50점 만점이다. 실제 시험에서 받은 점수는 원점수다. 원점수는 성적표에 나오지 않고 평균과 표준 편차를 반영해 계산된 ‘표준점수’와 이를 기준으로 석차를 내 산출한 ‘백분위’만 성적표에 나온다.
<;표 1>;은 2012학년도 입시에서 각 대학이 반영한 원점수에 대한 환산 표준 점수다. 50점 만점을 받았을 때, 서울대의 경우 물리와 생물은 70.12점을 받았지만, 화학과 지구과학은 69.50점으로 0.62점 차이난다. 연세대는 서울대와 달리 각각 70.13점과 69.29점으로 0.84점 차이난다. 만점을 받아도 백분위가 다르고 대학마다 환산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반영 점수가 다르다.
40점을 받은 경우에는 점수 차가 더 커진다. 생물과 같이 다소 어렵게 출제된 과목은 64.45점 정도를 받고, 지구과학과 같이 쉽게 출제된 과목은 58.94점 정도를 받으므로 원점수가 같아도 어렵게 출제된 생물 응시자가 무려 5.51점이나 더 받았다. 따라서 어렵게 출제됐다고 손해를 보거나 쉽게 출제됐다고 이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
물, 화, 생, 지. 뭘 선택할까?
고 3 여름 방학 때까지도 수능에서 선택할 과목을 정하지 못하는 수험생도 있다. 전자공학과에 가려고 물리 I과 화학 I을 선택했는데, 막상 공부를 하니 성적이 오르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성적이 떨어지면 고민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이런 학생이 의외로 많다. 6월 이후 반수생(학기 도중 재수를 결심하는 학생)이 급격히 늘어 모의고사에 합류한다. 이들은 이미 대학에서 일반물리, 일반화학 등을 공부했기 때문에 수능 과학 문제 정도는 쉽게 푼다. 이들이 1, 2등급을 차지하면 재학생은 3, 4등급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2011 수능과 2012 수능에서 수험생이 가장 많이 선택한 과목은 생물 I이었고 다음으로 화학 I, 지구과학 I,물리 I, 생물 II 순이었다. 생물을 선택한 수험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기본으로 생물을 하고 나머지 과목에서 하나 또는 두 개 과목을 고르는 식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수험생들이 많다. 잘못된 생각이다. 선택 집단 규모와 관계없이 나보다 실력이 낮은 수험생이 많은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맞다. 의대나 생명과학 분야로 진로를 결정한 최상위권 학생들은 주로 화학 I과 생물 II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수능에서 과목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노력을 했을 때 다른 학생보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과목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본인이 확인하기란 쉽지 않지만 학교 시험에서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리는 70점을 받았는데 2등급이고, 화학은 90점을 받았는데 3등급이라면 비록 화학 점수가 높아도 물리가 경쟁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꼭 물리를 선택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투자한 노력과 시간, 실수를 얼마나 했는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친구나 선생님의 의견을 따르기보다는 본인 스스로가 잘 생각해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 하나 고려할 점은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계공학이나 건축공학, 전자공학과 등으로 진로를 확정한 학생이라면 당연히 물리를 선택해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진로와 상관없이 선택과목을 정한다. 그러면 전공 적성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사정관제전형의 서류 평가, 수시 전형의 논·구술시험에서 크게 손해를 볼 수 있다. 특히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사정관제 전형의 비율이 높다. 따라서 1단계 서류 평가를 통과해도 2단계 면접에서 전공 적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최종적으로 불합격된다. 전공할 학과와 관련 있는 과목을 선택했을 때 면접에서도 유리하다.
반면, 중위권 학생이나 하위권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능 등급과 수능 총점이다. 좋은 등급을 받아야 수시 모집 최저학력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다. 수시 모집에서 합격을 하지 못한다면 정시모집에서 수능 총점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들 학생들은 기초가 탄탄한 과목을 중심으로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초가 없으면 성적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수능 과탐! 이렇게 정복하라
1) 학교 공부와 교과서가 기본이다. 수능은 기본 개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므로 기본 핵심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험, 자료 해석 등 탐구 활동에 관련된 과학 개념이나 원리를 수업시간에 완벽하게 공부하고 중간·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다양한 문제를 풀어 문제 해결 능력을 늘려야 한다.
2) 과학에서 사용하는 단위, 기호의 의미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힘, 속도, 가속도, 운동량, 전기, 에너지 등에 관한 단위를 이해하고, 수식 계산 등을 통해 각 단위 간의 상호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전기회로, 화학반응식, 일기도, 지질도 등에 사용되는 기호의 의미를 이해하고 여러 현상을 기호로 나타내는 방법을 연습해야 한다.
3) 과학의 탐구 과정인 문제 인식 및 가설 설정, 탐구 설계 및 수행, 자료 분석 및 해석, 결론 도출 및 평가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자. 그리고 이것을 탐구 활동을 통해서 실제로 적용한다. 특히 탐구 기능은 평소 실제 탐구 활동을 통해서 익히자.
4) 수능은 과학교실 및 실험실 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및 자연 현상과 관련된 상황도 주요 탐구 상황으로 다룬다. 따라서 과학 개념을 일상생활이나 자연 현상 설명에 적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과학 기사를 읽고 일상의 문제와 자연 현상에 과학 개념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이해하고 스스로 적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