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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근육의 힘으로

제1회 인간동력항공기대회를 가다

새벽 공기에 성큼 다가온 가을이 느껴지던 10월 4일, 전남 고흥에서 ‘제1회 인간동력항공기경진대회’가 열렸다.
대학 8개 팀과 고등학교 2개 팀, 그리고 항우연 시범기 1개 팀 등 11개 팀이 지난 1년간 공들여 만든 인간동력항공기를 선보였다.
하루 동안 ‘인간 엔진’이 된 조종사들은 이를 악물고 페달을 밟았다. 새벽 미명에 날개를 편 학생들.
과연 자신들의 꿈을 담은 항공기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낼 수 있었을까.
이들의 아름다운 도전의 현장으로 함께 가보자.



210월 3일 오전 11시. 전남 고흥행 버스가 사당역에 섰다. 인간동력항공기경진대회에 참가하는 서울 지역 학생들을 나르기 위한 버스였다. 기자도 취재를 위해 동승했다.
버스는 오후 5시가 돼서야 전남 고흥에 들어섰다. 황금빛으로 물든 논밭 사이 길을 따라 10여 분을 달리자, 멀리 불빛을 반짝이는 거대한 비행선이 눈에 띄었다. 대회가 열리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항공센터였다. 대회 13시간 전.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항공기를 시험해 보려는 참가자들이 분주했다.


아뿔사, 오른쪽 날개만 2개네

기자가 도착했을 때, 한 팀이 시험 비행을 하려고 막 활주로로 나서는 참이었다. 고등학생 참가팀인 배재고 ‘패스(PASS)’였다.
“스탑, 스탑, 스탑! 풍향 풍속 체크!”
팀장인 이재국(2학년) 학생이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마지막 점검에서 항공기가 부서지기라도 할까, 신중한 모습이었다. 입술 한쪽이 다 터지고 손도 상처투성인 그는 “올해 1월 홍보포스터를 보고 작은 모형 항공기가 아닌, 실제로 사람이 탑승하는 항공기를 만든다는 생각에 정말 설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날개를 대칭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오른쪽 날개만 두 개를 제작했어요. 대회를 2주 앞두고 알았죠.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운 점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부끄럽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격납고 곳곳에 자리한 개성 넘치는 항공기들이 지난 1년간 치열했을 설계 경쟁을 시사했다. 세종대 ‘한바람’은 프로펠러를 뒤에 달아 총 길이 5.5m, 날개 길이 22m, 조종사 탑승 총 무게 90kg인 가장 작은 항공기를 만들었다. 날개와 프로펠러를 모두 앞에 달았을 때보다 무게가 골고루 분산되기 때문에 꼬리를 길게 만들지 않아도 된다. 박승훈 팀장(항공우주공학과 석사과정)은 “다른 팀보다 독특한 항공기를 만들고 싶었다”며 “올해는 날개 재료인 탄소 복합재의 구조를 바꿔 무게를 많이 줄였다”고 말했다. 탄소 복합재는 강철보다 무게는 1/4정도로 가볍고 강도는 10배 강한 신소재로, 실제 항공기에도 사용된다. 대부분의 참가팀이 사용했다.

한서대 ‘지디에스(G.D.S)’는 양손과 양발로 페달을 돌리는 ‘복합구동’을 적용했다. 발로만 페달을 밟는 항공기보다 추진력이 크지만 그만큼 체인 같은 설비가 늘어서 조종사가 탔을 때 총 무게가 120kg에 달했다. 정한섭(기계공학과 3학년) 팀장은 “1g이라도 빼기 위해 조종사는 물도 못 먹고 있다”며 웃었다. 이규수 항우연 홍보실장은 “항공기 총 무게가 100kg이 넘으면 일반적으로 이륙이 힘들다고 보기 때문에 날개를 너무 길게 만들거나 체인 개수를 늘리지 말라고 권유했다”며 “하지만 참가자들의 설계 주관과 목표가 뚜렷했다”고 말했다. 각 참가팀 학생들은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오후 6시 20분. 뉘엿뉘엿 느리게 숨던 해를 산골짜기가 한순간에 삼키자 항공기가 하나 둘 격납고로 돌아왔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숙소행 버스를 타지 않았다. 격납고에 남아 대회가 시작되는 순간까지 밤새 항공기를 손볼 예정이라고 했다.






치열한 설계 경쟁… 어떤 게 더 잘 뜰까

이 대회는 오직 사람의 힘으로만 프로펠러를 돌려 비행해야 한다. 올해가 공식적인 1회 대회고, 지난해에 시범대회를 열었다. 지난해 시범대회에 참가했던 11팀 가운데 무려 6팀이 이번 대회에 재도전했다.
드디어 대회 당일 오전 6시.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이었지만, 이미 항공센터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항우연 시범기가 대회 시작을 열었다.
사이클 복장을 한, 날렵한 몸매의 김정현 조종사(백석대)가 등장했다. 전국민 공개 모집으로 선발돼 지난 6월부터 훈련해 온 조종사였다. 심판의 출발 신호와 함께 출발한 시범기는 땅에 닿을 듯, 활주로를 벗어날 듯, 아슬아슬하게 291m를 비행했다. 지난해보다 50여m를 더 날았다.
멋진 비행을 관람한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1라운드가 곧바로 시작됐다. 이륙선에서 100m 떨어진 출발선에 10개 팀의 항공기가 나란히 줄지어 섰다. 첫 순서는 전북대 ‘파이어(FIRE)’. 곳곳에 청테이프가 둘러진 동체는 그간 학생들의 노고를 보여주는 듯 했다.
“자, 이제 가보자!”
“잠깐, 잠깐, 잠깐! 스톱!”
올해 처음으로 출전해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던 이 팀은 전속력으로 이륙을 시도하려다 멈추기를 다섯 차례나 반복했다. 이륙선을 넘지 않으면 10분 동안 얼마든지 이륙을 다시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신중한 모습이었다. 결국 5차 시도에서 항공기가 잠깐 떠올랐지만, 이륙선을 미처 지나지 못하고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역풍을 맞아 지나치게 위로 상승하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한 탓이었다.

다른 9개 팀도 1차 시도에는 모두 실패했다. 이륙 중간에 페달 체인이 빠지거나 조종기 배터리가 나가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많은 항공기가 양쪽 날개 균형이 맞지 않아 출발선까지 달리지 못하고 한쪽으로 쓰러졌다. 이규수 실장은 “이런 문제를 시험 비행 중에 발견해야 미리 항공기를 손보거나 조종사가 조종 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국내에는 활주로도 마땅치 않고 제작 기간이 빠듯해 참가자들이 시험 비행을 많이 못했다”고 말했다.
 

대회 시작 5시간 만에 130m를 비행하다

전날 오후에 23호 태풍 ‘피토’가 서쪽으로 경로를 바꾸면서 국내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실제로 9시까지만 해도 풍속은 초속 2~3m로 안정적이었다. 실시간 풍속과 풍향을 체크하던 현장 엔지니어는 “활주로와 바람의 방향이 10°정도 차이가 나긴 하지만 풍속이 초속 3m 이하라 괜찮다”고 말했다. 초속 3.5m까지는 양호하게 비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9시 22분, 갑자기 초속 4m 이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순간 풍속이 초속 7m까지 올라가면서 경기가 자꾸 중단됐다.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며 현장 상황을 중계하던 헬리캠(소형 헬기에 달린 카메라)이 강한 바람에 갑자기 추락해 산산조각이 나기도 했다.

11시 50분, 그 돌풍 속에서 울산대 ‘에이알지(ARG)’가 아홉 번째로 출발선에 섰다. 지난해 15m를 날아 우수설계상을 받은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이 팀은 특이하게도 활주로 중앙선이 아닌, 약간 왼쪽으로 항공기를 비켜 세웠다. 바람을 읽고 항로를 예측하는 노련한 팀이었다. 바람은 활주로 정방향에서 왼쪽으로 10°정도 기울어진 곳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역풍 세게 부니까 속도 낮추고 더 앞에서 출발하자. 지금 바로 뛰는 거다!”

조종사가 조종석에 기대 비스듬히 누웠다. 양쪽 조종대를 꼭 말아 쥐었다. 천천히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프로펠러가 힘차게 돌았다. 양 날개를 두 팔로 떠받친 학생들도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양쪽 날개 끝이 서서히 들렸다. 완만한 U자 모양을 이루는가 싶더니, 순간 항공기가 ‘붕’ 하늘로 떠올랐다. 바라보던 이들이 탄성을 질렀다. 이륙선을 밟기 전에 성공적으로 떴다는 의미로 심판의 초록색 깃발이 힘차게 흔들렸다. 개회 다섯 시간 만에 나온 가슴 시원한 비행이었다.

약 15초간 날던 항공기는 결국 돌풍을 이기지 못하고 활주로 왼쪽 갈대밭에 추락했다. 다행히 조종사는 다치지 않은 모습으로 걸어 나와 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기록은 얼마가 나왔을까.심판의 발표를 기다리며 관중들은 숨을 죽였다.

“130m입니다. 이번 대회 최고 기록입니다!”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지만, 곳곳에서 아쉬워하는 탄식도 들렸다. 수상 기준인 150m에서 단 20m가 모자랐기 때문이다. 결국 최고상인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은 받지 못했지만, 지난해에 이어 최우수설계상을 받았다. 최재준(기계공학부 4학년) 팀장은 “작년 대회에서 우리가 만든 항공기가 뜬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더 자신감을 갖고 항공기를 만든 게 성공 요인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즐긴 축제

“떴다, 떴다, 비!행!기!”

“귀엽고~, 깜찍하게~, 날아보자~, 파이팅!”

참가자들의 깜찍한 응원 퍼포먼스가 더해져 대회장에는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한서대의 ‘7기통 엔진’ 춤. 자신들이 손수 만든 항공기가 하늘 높이 솟기를 바라는 듯, 7명의 여학생들이 번갈아 땅을 구르며 ‘통통통’ 튀어 올랐다.

일반인 500여 명도 활주로와 관중석에서 축제를 함께 즐겼다. 두 아들과 함께 대회장을 찾은 신황옥(전남 순천시 인제동)씨는 “큰 아이가 항공기에 관심이 많아서 함께 와 봤는데, 대회도 재미있고 아이도 좋은 자극을 받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각, 아쉬움을 가득 남긴 채 여섯 시간 만에 대회가 끝났다. 비록 모든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들
은 무엇보다 값진 ‘비행에 대한 꿈과 도전’을 얻었다.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진짜 젊음이고 청춘이지 싶어요.”

배재고 이재국 학생의 말이다. 그는 대회 전날 격납고 안에서 다함께 밤을 지새우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꿈을 품
고 도전하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전북대 ‘파이어(FIRE)’ 조종사 김상기(항공우주공학과 1학년) 학생은 이번 기회로 새로운 꿈을 갖게 됐다. 그는 “선배들 권유로 우연히 참여하게 됐는데, 정말 짜릿한 경험을 했다”며 “파일럿의 꿈이 생겼다. 내년에 한 번 더 도전해서 꼭 수상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들의 값진 경험은 독자 모두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더 큰 꿈을 꿀 것이라는 참가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모두 도전해 보세요!”

 

2013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 사진 남승준, 이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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