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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섭은 난독증일까

난독증에 대한 오해와 진실



요즘 인터넷에서는 난독증이 계절감기 만큼이나 대유행이다. 댓글 중에 시비가 붙었다 하면 서로를 난독증이라 힐난하는 것으로 선전포고를 대신한다. 물론 진짜 난독증은 거의 없다. 보통은 글을 주의 깊게 읽지 않거나, 글 자체가 난삽하거나, 독해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글자를 잘 읽지 못하는 난독증의 의미가 확대되고 와전돼 쓰인 예다.

드라마에도 난독증처럼 보이는 증상이 등장했다. ‘주군의 태양’의 주인공 주중원(소지섭 분)이 글자를 읽으려고만 하면 글자들은 어지럽게 춤을 추며 그의 눈길을 피해 도망다닌다. 그러나 김성찬 서울탑마을클리닉 원장은 “극중 소지섭 씨가 글씨를 못 읽는 원인은 난독증이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릴 적 끔찍한 기억 때문에 무의식이 글자 읽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김 원장은 “난독증이란 뇌 회로에 생긴 결함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일은 드물다”며 “어느 날 갑자기 글자를 읽지 못하게 됐다면 그건 난독증이 아닌 또 다른 증세”라고 말했다(뇌졸중 후유증으로 찾아온 실독증 때문에 본인이 쓴 소설을 퇴고하지도, 읽지도 못하는 캐나다의 베스트셀러 작가 하워드 엥겔의 사례가 유명하다).

김 원장은 “아무리 난독증이 심해도 글씨가 춤을 추는 일은 없다”며 “난독증에 대한 오해가 많다”고 말했다.










인간의 뇌는 글자를 읽기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미국 예일대 난독증및창의성센터의 샐리 스웨이츠 공동책임자는 저서에서 “한 아이가 신경학적으로 건강하다면 말 배우는 것을 피할 길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스티븐 핑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전 MIT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언어의 기원은 10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구어(口語)는 선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국어를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으며 소통하는 것은 본능적일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이란 뜻이다. 그런데 글자를 이해하는 것(읽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문자는 인간 세상에 나타난 지 5000년 밖에 안 된, 인간의 뇌에게는 낯선 최신 발명품이다.

뇌의 기본 ‘코드’는 문자가 아닌 음성이다. 즉 인류의 오래된 뇌가 문자를 이용하기 위해선 이를 일일이 해독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뇌 뒤쪽의 ‘후방 읽기 시스템’이란 곳에서 일어난다. 읽기 초보자가 유창하게 읽지 못하는 까닭은 문자를 해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단어를 분석하고 분해해 소리로 연결하는 초보적인 과정은 후방 읽기 시스템 중 ‘측두-두정’ 영역이 담당한다.

반면에 숙련자는 낱글자가 아니라 단어 전체를 하나의 패턴으로 인식해 더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이런 속독은 측두-두정 아래에 있는 ‘후두-측두 영역’이란 곳에서 불과 0.15초 만에 일어난다. 그런데 난독증을 겪는 사람들은 글을 읽을 때 후방 읽기 시스템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즉, 글자를 해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난독증을 겪는 그들에게 글자는 뜻을 알 수 없는 기호처럼 보인다.






모든 글자가 한자(漢字)처럼 보인다

난독증을 겪는 사람들은 후방 읽기 시스템 대신 하전두이랑이 과활성화된다. 하전두이랑은 단어를 입으로 말할 때 입술 모양과 혀, 성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여하는 부분이다. 김 원장은 “뇌 뒤쪽의 문제를 보상하기 위해 다른 기관(하전두이랑)을 더 쓰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전두이랑의 도움으로 난독증인 사람도 입과 혀, 성대로 그 단어를 물리적으로 구성해 느리지만 글씨를 읽을 수는 있다.

난독증이 없는 사람들이 글자를 읽을 수 있는 까닭은 글자를 구성하는 음소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곰’이라는 말을 들으면 즉시 ㄱ, ㅗ, ㅁ 3개의 음소로 구성돼 있음을 안다. 또 ‘곰’이라고 쓰인 글자를 보면 후방 읽기 시스템이 이를 3개의 음소(ㄱ, ㅗ, ㅁ)로 나누고 이를 기반으로 ‘곰’이라는 글자를 뇌의 기본 코드인 음성으로 바꿔 그 의미를 떠올릴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난독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곰’을 음성으로 들어도 3개의 음소로 구분할 수 없으며, ‘곰’을 눈으로 보아도 이 글자가 3개의 음소로 구성돼 있음을 잘 모른다. 이를 ‘음운론적 취약성’이라 하는 데, 이것이 바로 난독증 있는 사람이 글씨를 읽기 힘든 근본 원인이다.

즉, 난독증이 있는 사람은 ‘모음’과 ‘마음’이란 두 단어에서 ‘음’이 공통적인 두 번째 글자인지를, 또 ‘ㅁ’이 공통적인 첫 글자의 첫소리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어떻게라도 읽기 위해 글자나 단어를 통째로 외워버리는 난독증 아이들이 종종 있다. 마치 뜻글자인 한자(漢字)를 외우듯 소리글자가 모여 만든 글자나 단어 전체를 외우는 것이다. 그래서 난독증의 유무를 확인하는 검사에서는 꼭 비단어 읽기 검사를 포함한다. 비단어 검사는 ‘궥’이나 ‘뷁’처럼 낯선 글자를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음소를 정상적으로 구분할 줄 알고 또 합칠 수 있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난독증이 있다면 처음 보는 글자를 잘 읽지 못한다(난독증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쉽게 읽는다).






난독증 치료는 초3 이전에

난독증의 원인은 선천적인 영향이 크다. 글자를 배워야할 시기에 글자에 노출되지 않아 글자를 더디게 배우는 후천적인 원인도 있을 수 있지만 흔치 않다. 김 원장은 “태아기 동안 두뇌 발달에 생기는 문제가 원인일 수 있다”며, “유전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난독증의 특징은 회색지대가 있으며, 난독증 유무의 명확한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난독증과 정상 사이에는 뚜렷한 기준이 없어, 통계적으로 하위 10% 수준에 해당하면 경미한 난독증이 있는 것으로 본다. 연구자들은 하위 3.5%를 치료가 꼭 필요한 대상으로 보고 있다. 난독증은 여아보다 남아에게서 3배 이상 더 많이 나타난다.

난독증과 지능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 그래서 난독증을 극복하거나, 여전히 난독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퓰리처상을 받은 극작가 웬디 워서스타인, 에미상 수상 드라마 작가인 스티븐 캐널 역시 난독증을 앓았다. 유명 배우 톰 크루즈도 어렸을 적 난독증을 겪었다.

김 원장은 “난독증이 있는 사람 중에는 시각적 사고능력이 뛰어나고, 독창적인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글자를 읽기 힘든 만큼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난독증을 방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난독증은 어린 학생에게 큰 고통이며, 학업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떨어뜨릴 수 있다. 김 원장은 “초등학교 3학년 이전에 치료를 시작해야 효과가 크며, 만약 치료하지 않으면 학업성취도의 차이를 좁힐 수 없다”고 말했다.

난독증 치료는 소리글자(예를 들어 한글)를 구성하는 음소 하나 하나의 음가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빨리 읽기’, ‘빠른 이름 대기 훈련’ 등으로 점점 그 속도를 높인다. 김원장은 “치료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으며, 꾸준히 치료하면 1~2년내에 거의 완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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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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