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을 둘러싼 둥그런 산호초(환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환초로는 세 번째로 크다(가장 긴 환초는 뉴칼레도니아 환초며, 직선으로 가장 긴 산호초는 호주의 대산호초다). 축의 산호초는 한곳만 태평양을 향해 살짝 열려 있다. 2차 대전 당시 미국 항공모함이 이곳을 막으면서 일본군이 섬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패배했다.
박흥식 센터장은 첫날 아침부터 “낮에는 무조건 바다에 간다”고 선언하며 체험단을 들뜨게 했다. 실제로 학생들은 매일 오후마다 가까운 바다에서 스노클링과 수영을 즐겼다. 바다에 익숙해지자 맨몸으로 다이빙을 하거나 스쿠버 다이빙을 체험하기도 했다. 산호초 중 유일하게 태평양에 열려있는 곳에있는 무인도 ‘팬룩’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축 주민들과 바다를 손바닥으로 때려가며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업 체험도 했다.
바닥이 손에 잡히는 얕은 바다에서, 때로는 수심 3~4m가 넘는 바다에서 바라본 산호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특히 수심 10m가 넘게 잠수해 바라본 바닷속은 마치 다른 세상의 문을 살짝 열어본 것처럼 경이로웠다. 무중력 공간을 걷는 듯했다. 체험단의 장윤지(목포고 2학년) 양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이빙을 해봤다”며 “너무나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평생 못 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산호초가 끝나는 부분에서 급격히 수심이 깊어지며 푸른색으로 가득한 심해가 손짓하며 기자를 유혹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산호에 대해 착각하기 쉬운 상식 하나. 산호는 돌처럼 딱딱한 식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물이다. 그런데 식물처럼 산소를내뿜는다. 어떻게 된 걸까? 자포동물인 산호가 얕은 바다에서 탄산칼슘을 이용해 뼈대를 만들면 식물 플랑크톤이 그 안에 들어가 산다. 식물 플랑크톤이 만들어내는 산소 덕분에 산호초 주변은 해양동물이 마실 공기가 넉넉하다. 또 산호가 낳는 수많은 알은 물고기의 좋은 먹거리가 된다. 산호의 알록달록한 색깔도 플랑크톤이 만들어낸다.
박흥식 센터장은 “생물 생산성이 높은 지역 하면 흔히 아마존 열대정글을 많이 생각하는데 산호초 지역의 생산성은 열대정글과 거의 같다”고 말했다. 산호초 지역의 생물 생산성은 우리나라가 있는 온대지역의 초원이나 바다 연안의 10배에 달한다. 더구나 축 산호초 지역은 전 세계 바다에서 두 번째로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다(첫번째는 동남아시아 바다). 박 센터장은 “요즘은 국제 조약 때문에 해외 생물자원을 함부로 한국에 가져올 수가 없는데 축은 오래 전부터 협력을 맺어와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축에는 해양과기원 외에 다른 연구시설도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GPS(위성지리확인시스템)를 이용해 기지가 있는 웨노 섬이 얼마나 움직이는지 연구하는 장치를 설치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위성추적장치를 설치해 지구를 돌고 있는 아리랑 위성을 감시하고 있다. 태평양센터는 남태평양의 바다와 땅, 하늘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곳이다.

남태평양의 뜨거운 남자들
체험단원들과 자주 어울린 태평양센터의 윤건탁 박사는 강의시간에는 자주 툴툴거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투덜이 스머프’였다. 그런데 배를 타고 바다에 가자 확 달라졌다. 한명한명 붙어서 친절하게 스노클링과 다이빙을 지도했고, 바다에 떠 있는 친구들의 안전을 살피는 것도 윤 박사 몫이었다. 친구들은 떠나기 전에 “윤 박사님은 배를 타면 10배, 바다에 들어가면 100배 더 멋있다”며 좋아했다. 요리사 경력을 가진 기술원 김종훈 씨와 윤병진 기술원도 일주일 내내 맛있는 음식으로 체험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자, 일주일만에 1.5kg이 불었다. 살아있는 참치로 초밥을 만들고, 게와 랍스터를 배 터지도록 먹었다. 센터에는 축에서 18년을 살아온 김도헌 씨도 있다. 원주민과 결혼해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둔 김 씨는 센터의 온갖 일을 도맡아 한다.
이곳의 가장 든든한 대장은 박흥식 센터장이다. 센터 설립부터 지금까지 이곳의 산증인이다. 기지 구석구석 체험단을 데려가고, 조금이라도 더 예쁜 바다를 보여주기 위해 늘 함께 배를 타고 다이빙을 했다. 너무 시간을 뺐기는 것 아니냐고 묻자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센터가 잘 된다”고 웃었다. 박 센터장과 자주 이야기를 나눈 임지빈(고2) 군은 “해양미생물학자가 꿈이었는데 정말 소중한 경험을 했다. 대학 졸업하고 다시 올 테니 꼭 자리 만들어 달라”며 포부를 밝혔다.
조금만 밖에 나가도 몸이 축축 처지는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연구원들은 하나라도 더 열대 생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요즘에는 바이오에너지와 생명공학 소재로 주목받는 미세조류인 스피루리나를 키우고, 산호를 비롯해 각종 해양생물을 보존하는 연구에 열심이다. 센터의 대표적인 업적인 흑진주 양식도 빼놓을 수 없다. 2007년 시범 양식에 성공한 뒤 현재 상업 생산만을 남겨 놓고 있다.
예외없이 검게 탄 이들을 보며 든 생각이 있다. 과학은 뜨거운 사람이 하는 거라는.



마지막 날 아침, 한 시간 가량 연구소 주변을 돌아다녔다. 길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같이 “좋은 아침”이라며 말을 건넸다. 돼지 한마리를 삶아서 잔치를 벌이던 마을 주민이 고기 한 점을 툭 떼어줬다. 맛있었다. 주민들은 정이 넘쳤고, 웃음이 많았다.
한참 가다보니 두 갈래 갈림길에 섰다. 한 소녀가 다가와 “어디로 가느냐(Where are you going)”고 묻는다. 센터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열대바다를 바라보는데 소녀의 질문이 계속 귓가에 아른거렸다. 우리 앞에도 역시 두 개의 바다가 놓여 있다. 인간과 공존하는 바다와 인간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바다.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이 아니라 바다가 갖고 있다. 직접 잠수해 들어간 바다 속은 TV에서 봤던 영상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었다. 우리가 올바른 답을 선택한다면 바다는 축 주민들의 순박한 미소를 지은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바다를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물에 뜨듯 우리 몸을 완전히 바다에내맡기는 것이다.

- “내년에 축으로 놀러오세요.” 센터 연구원들과 체험단이 섬에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기념촬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