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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인이 말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고. 마치 나와 내 아이돌의 관계가 같다. 난 아이돌이 좋아 빠수니가 된 것인가, 빠수니 생활이 좋아 아이돌을 좋아하게 된 것인가. 15년쯤 되면 이제 시작도 끝도 가물가물하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아이돌과 나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난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혼자 놀 수밖에 없었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은 놀이터로 달려갈 때 나는 일 단 집에 가서 학습지를 풀어야만 놀이터에 갈 수 있었다. 그러면 당연히(?)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 중2병➌을 앓을 무렵, 난 그들을 만났다.

짝꿍이 들고 온 잡지➍ 속에서는 동화에서 튀어 나온 것 같은 왕자님이 있었다. 데면데면하던 짝꿍과 수다가 터진 것은 그 때부터였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며 무슨 말인지도 모르던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던 내가 어느새 쉬는 시간이면 많은 친구들과 둘러 앉아 내 아이돌에 대해 열광적인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빠수니에 대한 시선은 참 속상하다. 빠수니로 대변되는 팬덤(fandom) 문화는 이름에서부터 비하의 의미가 담겨있다. fanatic과 -dom이 합쳐져 탄생한 단어인 팬덤은 광신도집단증후군 정도로 해석하는데, 특정대상에게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지칭한다. 게다가 남성보다 여성, 성인보다 청소년, 상류층보다는 중하류층이 즐기는 소위 ‘사회적으로 열악한 계층의 향유물➎’로 인식됐다. 당시나 지금이나 부모님은 말로는 ‘적당히’, 태도로는 ‘그만 좀’ 하라는 모습을 보인다. 아니, 그렇다고 내가 뉴스에 등장 하는 ‘사생(私生)팬➏’ 처럼 일거수 일투족 따라붙는 것도 아니고, 내 생활을 포기하면서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걸까.


빠수니는 아이돌을 위해 존재한다

한 때는 내 아이돌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던 시절이 있었다. 온라인에서 활동할때 닉네임이 ‘**부인’라든가.
잡지 인터뷰에서 나온 ‘여성스러운 여자’라는 말에 귀밑 3cm 밖에 안되는 학교 교칙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벗어나 머리를 기를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온갖 용품을 주황색으로 바꿨고, 내 아이돌이 울면 같이 울고, 웃으면 같이 웃었다. 10년이 넘는 지금와서 고백하건대
선착순으로 좋은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콘서트표를 구하기 위해 학원(학교 아니다! ➐)에 빠진 적은 있다. 물론 엄마한테 걸려서 표를 뺐길 뻔했다.

어떤 면에서나 그렇듯 장단점은 존재한다. 팬덤 활동이 청소년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는 2000년 이후로 많이 등장했다. 팬클럽을 통해 사회활동을 시작면서 문화 실천의 주체로 발전할 수 있다거나, 내가 그랬듯 친구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공감대를 형성하며 사회성을 높여 나간다는 등이다.➑ 또래뿐만 아니라 같은 팬덤안에서 활동하는 언니나 동생을 만나며 팬덤 내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콘서트에서 만남을 주관하면서 사람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방법을 익혔고, 여럿이 모이는 장소를 빌리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봤던 기억도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찾아서 하면서 배운 것도 많았다. 결국 이 때 배웠던 것들은 대학교에 와서 잘 써먹었다.

아이돌을 역할 모델로 삼아 자기 발전을 추구하기도 한다. 사실 내가 정신을 차린 이유는 부모님의 열 마디보다 내 아이돌이 팬미팅에서 들려준 한마디였다. ‘저희는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세상에 그 한 마디가 그렇게 클 줄이야. 난 내 아이돌을 TV를 통해서만 보기 시작했다. 성공한 뒤에 당당한 모습으로 찾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➒ 물론 ‘중독’ 증상을 보인 친구들도 많았다. 오늘 얼굴을 보면 내일은 손을 잡을 것 같고, 그 다음엔 먼저 알아봐 줄 것 같다며 정신없이 빠져든 친구들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수업태도와 학교 규칙을 무시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아이돌에 빠질수록 비판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무조건적으로 받아 들여 같은 빠수니가 보기에도 부끄러울 때도 많았다.


이젠 나를 위해 그들을 사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조용필의 ‘오빠부대’를 시작으로 1990년대의 서태지와 2000년대 초반 1세대 아이돌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그동안 갈아치운 재미난 기록도 있다. 기네스북은 2007년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클럽을 세계에서 가장 회원이 많은 팬클럽(50만 명)으로 선정했지만 그 기록은 단 1년 만에 동방신기(80만 명)➓가 갈아치웠다.

1세대 아이돌을 사랑하던 중고생들은 이제 성인이 됐다. 빠수니였다는 사실은 마음 한 구석에 묻고 평범한 대중(?)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
고 나처럼 여전히 빠수니 현장에 있는 팬도 있다. 당연히 15년 전처럼 맹목적으로 그의 부인(!)이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걸 바라기엔 나도 이제 너무 머리가 커졌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

내 아이돌은 내 인생을 책임지지 않지만 나는 내 아이돌의 인생을 책임져야 했기에, 아이돌은 아이돌로서 남겨둬야 한다. 보고 있으면 얼마나 즐거운가. 주변에서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날 위해 춤추고 노래한다. 내 여유를 남에게 나눌 때도 내 개인 이름으로 나누면 티도 안나지만 내 아이돌의 이름으로 기부하면 어른 빠수니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는 칭찬(?)을 듣는다.

서른을 눈앞에 바라보는 지금, 이젠 슬슬 빠수니를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안되겠다. 거부할 수 없는 블랙홀처럼, 기사를 마치자마자 콘서트 입장권이 날아왔다. 안될거야, 아마.




▼풍선에서 시작한 아이돌 기념품은 팬덤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점차 종류가 다양해졌다. (김주황 개인소장품)





➊ 1세대 아이돌부터 팬은 팬클럽 고유의 풍선색을 정해 응원했다. 신화는 주황색, HOT는 흰색, god는 하늘색 등이다. 풍선 색에 한계가 오
자 막대 풍선이나 LED 막대 등 새로운 응원 도구 를 만들기 도 했다.

➋ 아이돌을 부르는 ‘오빠’와 대한민군 일반 여성 이름처럼 쓰인 ‘순이’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
활동을 열심히 하는 팬을 지칭한다. 이와 유사하게 ‘삼촌팬’ ‘누나팬’ 등도 있다.

➌ 중학교 2학년으로 대표되는 사춘기 정서가 극대화되어 보이는 행동양상.

➍ 인터넷이 유행하기 전인 2000년 초반까지 잡지는 아이돌을 홍보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었다.

➎ 김고운(2008), 팬들의 특성 및 팬활동 참여 실태, 여가만족, 생활 만족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 : 1인미디어 운영자를 중심으로.

➏ 조직적으로 숙소와 연습실, 자택 등에 잠복하다가 아이돌이 움직일 때마다 스토커처럼 따라 붙는 팬을 지칭하는 말. 비공개 방송 촬영이나 개인적인 사생활 일정까지 꿰뚫고 있다.

➐ 지나치게 팬 활동에 빠지는 빠수니 중에는 건강을 핑계로 대면서 학교를 빠지고 팬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➑ 정재민(2010), 청소년 팬덤 현상에 대한 근거 이론적 접근, 안은미 외 4인(2012), 팬덤활동 참여가 청소년의 학교적응에 미치는 영향, 안은미 외 3인(2013), 팬덤활동이 청소년의 자아탄력성에 미치는 영향과 성별 차이.

➒ 성인이 많은 팬덤에서는 아이돌이 성적표를 보고 칭찬했다고 ‘인증’하며, 실제로 당시 했던 말이 써 있는 싸인을 증거 자료로 올리기도 한다.

➓ 2008년 청소년 통계와 비교하면 중고생 100명 중 5명이 동방신기 팬클럽에 가입한 수치다. 다른 아이돌 팬클럽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진다.




이미지 출처│KBS, 이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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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글 오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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