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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0m. 다이빙은 절대 혼자 하지 않는다
스쿠버 다이빙 강사인 김갑수(39) 씨는 필리핀에 있는 보홀 섬으로 수시로 떠난다. 아름다운 산호초와 바다 생물을 만나기 위해서다. 다이빙 전용선에 각종 장비를 싣고 시동을 걸면 배 뒤꽁무니에서 물살이 하얗게 부서진다. 잠시 뒤, 다이빙 포인트에 멈춰선다. 부력조절기에 공기를 잔뜩 넣고 호흡기를 문다. 몸을 휘감은 각종 장비를 왼팔로 가슴 가득 끌어안고 오른발을 앞으로 주욱 뻗어 그대로 뛰어내린다.
“풍덩~!” 각종 장비 때문에 무거워진 몸이 하얀 물거품을 요란하게 만든다. 오늘의 ‘버디(Buddy)’인 BSAC 코리아 김동하 강사도 뒤를 이어 뛰어든다. 다이빙은 항상 두 명 이상 짝을 지어 해야 한다.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의무다. 버디가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말아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수중 세계의 물리학은 지상과 다르다. 가장 큰 이유는 수심에 따라 달라지는 기압이다. 지구를 둘러싼 대기는 해수면에서 가로 세로 1cm의 넓이에 1kg의 힘을 가한다(대기압). 바다 밑으로 내려가면 수심 10m마다 1기압의 수압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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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10m. 하강할수록 ‘음성부력’은 커진다
부력조절기의 공기를 빼면 밑으로 가라앉으려는 ‘음성부력’이 생긴다. 부피가 작아지며 밀도가 커지기 때문이다(같은 부피에서 더 무거워지는 셈이다). 아직 수심이 얕아 머리 위로 햇빛이 뽀얗게 일렁인다. 사방은 고요하다. “쉬이이익, 쪼르르륵.” 숨을 들이쉬는 소리와 공기방울이 된 날숨이 바닷물을 때리는 소리만 반복해 들려온다.
수압 때문에 부력조절기가 압착된다. 다시 부력조절기에 공기를 넣어 위로 솟아오르려는 ‘양성부력’을 만든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수심이 깊어질수록 음성부력이 계속 커진다. 바닥까지 가라앉아 버릴 수도 있다. 물속에서 부력은 수시로 변한다. 체온을 보호하려고 입는 ‘슈트’도 수심이 깊어지면 압착된다. 보온성을 높이려고 표면에 공기층을 덧댄 ‘드라이슈트’ 라면 공기를 넣어 양성부력을 조절할 수 있다. 수온이 24℃ 이상일 때 일반적으로 입는 얇은 ‘웨트슈트’도 똑같이 압착된다. 하지만 웨트슈트는 공기를 넣을 수 없어 부력을 조절하지는 못한다. 공기탱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벼워지기 때문에 양성부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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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20m. 혈액 속으로 질소가 녹아든다
혈액과 지방에 서서히 공기가 녹아 들어가기 시작한다. 기압이 증가하며 공기가 혈액에 더 잘 녹기 때문이다(용해도가 커진다). 이 때 공기 속 다양한 기체의 용해도는 각 기체의 부분압과 비례해 커진다. 바로 ‘헨리의 법칙’이다. 공기의 약 80%를 차지하는 질소는 1기압에서 부분압이 0.8기압이다. 수심 10m로 내려가면 주변압은 2기압, 질소의 부분압은 1.6기압이 된다. 만약 1기압에서 혈액 속에 질소 분자가 10개 녹았다면, 2기압에서는 질소 분자가 20개 녹는다.
그런데 어떤 기체는 일정 부분압과 용해도를 넘으면 몸에 무리가 온다. 수심 30m, 질소 부분압 3.2기압에서 혈액과 지방에 질소가 포화되면 술을 마신 것처럼 반응 시간이 느려지거나 시야가 흐려진다. 이런 현상을 ‘질소마취’라고 부른다. 수심 50m, 질소 부분압 4.8기압을 넘으면 심각하게 마취된다. 익사 위험이 높아진다. 질소마취가 느껴지면 즉시 얕은 수심으로 올라와 야 한다.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산소도 수심 70m에서 부분압 1.6기압이 되면 ‘산소중독’을 일으킨다. 경련이 나거나 기절할 수 있다. 만약 공기탱크에 일산화탄소나 유독한 기체가 섞여 있다면 치명적이다. 일산화탄소는 헤모글로빈과 결합하려는 성질이 산소보다 약 300배나 강하다. 수심 깊은 곳에서는 일산화탄소가 조금만 있어도 저산소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보통 30m보다 얕은 수심에서 다이빙한다.
더 깊이 다이빙 할 때는 재(再)호흡기를 쓴다. 일반 공기탱크는 날숨을 버리는데, 재호흡기는 날숨에 포함된 산소를 재사용한다. 날숨에는 질소 80%, 산소 16%, 이산화탄소 4%가 들어있다. 여과장치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화학적으로 제거한 뒤, 소모된 4%의 산소만 보충한다. 또한, 재호흡기는 수심에 관계없이 산소의 부분압을 0.16~1.4기압으로 맞춰준다. 수심이 깊어져도 산소중독에 걸릴 일이 없다.
이제 수심 20m까지 하강했다. 갑자기 은빛 비늘 향연이 다이버들을 맞는다. 보홀의 명물, 어마어마한 ‘잭피쉬’ 군집이다. 서서히 다가가자 녀석들은 점차 거리를 허용한다. 물고기들이 내뿜는 은빛 광휘 속에서 다이버는 마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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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30m. ‘중성부력’ 찾고, 15분을 지켜라
손목에 찬 ‘다이브 컴퓨터’로 수심을 확인한다. 목표 수심 30m다. 가시광선이 거의 도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술봉처럼 라이트를 이리저리 비추면, 초록빛의 세상이 잠시 화려한 군무를 춘다. 엄청나게 커다란 바다거북 한 마리가 산호 틈에 엎드려 있다. 아마도 100살은 넘었을 것이다. 거북은 성체가 되면 거의 천적이 없다, 인간을 제외하고는. 이제 ‘중성부력’을 유지해야 한다. 중성부력은 몸무게와 부력이 평형을 이
뤄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상태다. 부력조절기에서 손을 뗀다. 호흡을 가다듬고 몸에 힘을 뺀다. 드디어 중성부력 상태다. 고요한 바다 밑에서 무중력 상태에 있는 느낌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너무 오래 머물러선 안 된다. 공기탱크로 호흡할 수 있는 기체 양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지상에서 휴식할때는 분당 6L 호흡한다. 수면에서 운동할 때는 분당 10~25L를 호흡한다. 수심이 더 깊어지면 공기 부피가 줄어든다. 분당 호흡하는 공기 양은 더 많아진다. 1기압에서 분당 15L를 호흡하는 사람이라면 2기압과 3기압에서는 각각 분당 30L, 45L를 호흡한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11L짜리 공기탱크에는 약 2200L의 공기가 200기압으로 압축돼 있다. 수중에서 호흡할 수 있는 기체 양은 1650L다. 나머지 약 550L의 공기는 수면으로 올라올 때 안전을 위해 예비로 남겨두어야 한다. 목표 수심과 수심에 따른 호흡량을 고려해 유영 시간을 결정한다. 수면에서 15L를 호흡하는 김 씨는 수심 30m에서 유영 15분, 하강과 상승을 포함해 총 37분간 다이빙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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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20m. 8분 동안 질소를 배출하다
어느덧 15분의 시간이 지나고, 두 다이버는 상승을 시작한다. 다이빙을 마칠 때는 얕은 수심에서 시간을 보내며 천천히 상승하는 ‘감압’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목표 수심과 유영한 시간에 따라 얼마나 천천히 상승해야 하는지 정리해 놓은 ‘감압테이블’을 보고 따른다.
“삐빅, 삐빅, 삐빅~!” 손목에 찬 다이브 컴퓨터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상승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뜻이다. 수심 30m에서 15분간 유영했으니 20m에서 8분, 10m에서 5분을 진행한 뒤, 6m에서 3분간 ‘안전정지’를 해야 비로소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두 번째 다이빙이었다면 몸속에 남았을지 모르는 질소 때문에 더 천천히 상승해야 한다.
감압을 거치지 않으면 폐가 파열될 수 있다. 바다 밑에서도 우리의 폐는 평소 부피(성인남자는 약 6L)를 유지한다. 그러나 충분히 숨을 내쉬지 않고 갑자기 상승하면 폐의 부피가 갑자기 커진다. 폐 조직이 찢어져 폐와 가슴벽 사이로 공기가 들어가 ‘기흉’이 되거나 공기기포가 혈관으로 들어가 피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 만약 공기기포가 뇌의 미세 혈관을 막으면 치명적이다.
두 번째 위험은 질소 기체가 과포화되는 ‘감압질환(잠수병)’이다. 깊은 수심에서 혈액과 지방에 녹았던 질소는 반대로 수심이 얕아지며 기압이 낮아지면 기체 상태로 빠져나온다. 이 기체는 폐를 통해 날숨으로 나간다. 문제는 급히 상승했을 때다. 탄산음료 마개를 열 때 천천히 조심스럽게 열면 약간의 기포가 생기고, 아주 빨리 열면 큰 기포가 많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천천히 상승하면 문제가 없지만, 급히 상승하면 질소 기체가 큰 기포를 만들어 혈관을 막을 수 있다. 수면에 올라와도 여전히 질소 과포화 상태기 때문에 질소 기포로 인한 위험에 언제든 노출돼 있다.
감압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1기압 100%의 산소를 들이 마셔야 한다. 질소가 혈액으로 다시 녹아 들어가 천천히 배출되게 한다. 저산소증에 시달리던 조직에는 산소를 공급한다. 압력을 높일 수 있는 커다란 캡슐인 ‘재압챔버’에서 치료를 받기도 한다. 다이빙했던 수심에 해당하는 압력을 다시 가했다가 천천히 감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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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0m. 24시간 기다려야 비행기 탈 수 있다
다시 물속으로 스미는 햇살이 보인다. 다이빙의 끝이다. 다시 보트로 돌아가려면 먼 거리를 수영해야 할 수도 있다. 바다 속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기면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때 보트로 돌아가야 하는 거리가 너무 멀거나 신체가 피곤하면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 특히 스스로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공포심으로 몸이 긴장하게 돼 호흡량이 증가한다. 숨을 더 깊고 빠르게 쉬고 싶어진다. 이 때 호흡기를 빼면 가뜩이나 겁을 먹은 상태에서 물을 먹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수영을 멈추고 부력조절기에 공기를 넣어 긴장을 풀어야 한다. 숨 쉬는 속도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 한다. 무엇보다 사전에 훈련을 철저히 하고 다이버는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이제 김씨가 귀국길 비행기를 타려면 2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항공기 고도가 높아져 기압이 갑자기 낮아지면 몸속에 잔류해 있던 질소가 큰 기포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안전, 그리고 또 안전이다.
다이버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곳을 탐사하는 탐험가다. 신중하고 안전하게 이용한다면 그 길은 생각보다 쉽다. 수중 세계로 향한 문을 지금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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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우아영 기자 | 도움 BSAC 코리아
이미지 출처│istockphoto, 심상선, 일러스트 | 박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