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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의 느린 체인지업에 왜 타자는 헛스윙할까


국가대표 에이스 류현진 투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인 투수 최다승을 거둔 박찬호 선수가 강속구와 커브를 주무기로 했다면 류현진은 다양한 변화구를 절묘하게 제구하며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요리하고 있다. ‘코리안 몬스터’라는 별명까지 얻은 류현진의 투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보자.

메이저리그의 모든 구장에서는 투수가 던진 모든 공의 궤적, 회전수 등을 측정하는 초고속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스포츠경기 촬영전문업체 ‘스포츠비전’은 촬영된 영상을 바탕으로 PFX(PITCHf/x)라는 자료를 만든다. 이 자료에는 직구와 변화구의 구사 비율은 물론 공의 초속, 종속, 포수의 미트에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 상하좌우의 움직임, 분당 회전 수, 회전 방향, 투수가 공을 놓는 위치까지 담겨 있다. 당연히 류현진이 던지는 모든 공도 PFX로 기록된다. 이 기록을 보면 류현진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비법을 알 수 있다.









초고속 카메라도 파악 못하는 류현진 슬라이더
미국 진출 전 한국에서 류현진은 주로 포심패스트볼(직구)과 서클 체인지업을 구사했다. 슬라이더와 커브도 종종 던졌지만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는 슬라이더와 커브의 구사 비율을 크게 늘리며 타자를 상대하는 무기의 수를 늘렸다.

류현진의 슬라이더와 커브는 과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메이저리그에서는 그 위력이 증가했다. 기록만 보면 류현진의 슬라이더는 상하, 좌우의 움직임이 좋지 못하다. 밑으로는 약 2cm 떨어지고, 오른손 타자의 몸쪽으로 약 3cm 움직일 뿐이다. 그럼에도 메이저리그 타자가 헛스윙할 확률이 17.09%로 체인지업에 이어 두 번째고, TV 화면으로는 더 위력적으로 보인다. 이는 PFX라는 기록의 한계 때문이다.

PFX는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난 지점에서 홈 플레이트가 시작되는 지점 직전까지의 움직임을 측정한다. 그런데 류현진의 슬라이더는 최대한 꺾이지 않다가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크게 변화한다. 타자 입장에서는 공이 타자 가까이에서 변할수록 타격하기 어렵기에 류현진의 슬라이더가 측정된 수치에 비해 위력적인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팔꿈치 부상을 당했던 류현진은 팔꿈치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슬라이더와 커브를 적극적으로 익히지 않았다. 대신 국내에서는 팔꿈치에 부담이 덜한 체인지업을 집중적으로 던졌던 것이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며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변화를 선택했다.

변화구의 다양화 이외에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지는 뛰어난 제구력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보통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는 비율이 들쭉날쭉하다. 류현진은 정교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타자들을 현혹했다. 모든 구질의 스트라이크 비율이 60%를 넘었으며, 9이닝 당 볼넷이 2.5개밖에 되지 않았다.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서클체인지업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 류현진의 주무기였던 서클체인지업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다른 구종보다 훨씬 높은 헛스윙 확률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 워렌 스판(363승 245패 평균자책점 3.09)은 “타격은 타이밍이고, 투구는 그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이란 명언을 남겼는데, 류현진은 말 그대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데 능숙했다. LA 다저스의 돈 매팅리 감독은 “류현진은 훌륭한 체인지업을 갖고 있어 속구(빠른 공)를 더 빨라 보이게 한다”고 말했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평균 시속 130km로 직구 평균구속 146km와 16km의 차이가 나는데, 이 속도의 차이가 직구를 돋보이게 만드는 동시에 체인지업을 효과적인 구질로 만든다.

변화구처럼 공이 날카롭게 휘는 것도 아니고 속도도 밋밋한 체인지업이 왜 강력한 무기가 되는 걸까. 로버트 어데어 미국 예일대 물리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야구의 물리학’에서 체인지업이 효과적인 이유를 인간의 시각능력과 지각능력 사이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다. 공을 타격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스윙을 하기 전 스윙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타자는 투수가 공을 던진 뒤 약 0.225초에 스윙여부를 판단하고 0.15초 즈음에 실제 타격 동작에 돌입한다. 이후 날아오는 공을 보며 동작이나 타이밍을 수정하기는 아주 힘들다. 대개의 타자들은 가장 치기 힘든 공인 직구에 맞춰 타격을 준비하는데, 그 공보다 속도가 현저히 낮은 공이 오면 바보처럼 어이없이 방망이를 휘두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체인지업을 모든 선수들이 던지면 좋지 않을까? 체인지업을 잘 던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체인지업은 커브, 슬라이더와 달리 직구와 비슷한 궤적으로 날아가며 속도의 차이만 있는 공이다. 따라서 타자가 체인지업인 것을 눈치 챈다면 그때부터 체인지업은 그냥 느린 직구일 뿐이어서 타자가 치기 아주 좋은, 위험한 공이 된다.





공기 마찰과 웨이크존을 역이용한 체인지업
체인지업을 던질 때는 직구를 던질 때와 폼은 물론 팔의 각도, 스윙스피드까지 똑같게 해 타자가 눈치 챌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타자들은 공이 오는 것만 봐서는 정상급 투수의 공을 치기가 아주 힘들다. 그러므로 타자들은 투수가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던질 때 손바닥과 손목 모양, 상체와 팔의 각도, 팔 스윙의 속도 등에서 미세한 차이를 찾아낸다. 경기장에서는 물론 투수의 경기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며 투구 버릇을 찾는다. 류현진을 비롯한 메이저리그의 정상급 투수들은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이 완벽히 같은 폼에서 나오기 때문에 아주 위력적이다.

그런데 팔의 각도와 스윙이 같은데 체인지업은 어떻게 직구와 속도가 달라질까. 먼저 직구가 어떻게 빨리 날아갈 수 있는지 이해해 보자. 직구를 던질 때 공의 진행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백스핀을 주면 공의 밑면은 공기가 압축되고 공의 윗부분은 압력이 낮아진다. 이 때문에 공에 지면 위로 향하는 힘(매그너스 효과)이 작용한다. 이는 공에 작용하는 중력, 즉 떨어지는 힘을 상쇄시켜 조금이나마 공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 타자가 보기엔 생각만큼 떨어지지 않아 마치 공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한 공이 나아갈 때 공의 뒤쪽에 압력이 매우 낮은 웨이크존이 만들어진다. 반면 공의 앞쪽은 압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이로 인하여 공이 뒤로 잡아당겨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실밥이 없다면 매끄러운 공의 표면 때문에 공기의 흐름이 빨라져 공의 뒤쪽 전체가 진공에 가까운 상태가 돼 공이 앞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포심 패스트볼은 포심, 즉 네 부분의 실밥이 공기를 헤쳐 나가며 웨이크존이 작아져서 빠르게 날아간다.

포심패스트볼과 달리 체인지업은 상대적으로 공기저항을 많이 받도록 공을 가볍게, 손바닥에 깊숙이 넣어 잡는다. 이렇게 잡으면 직구에 비해 공을 채는 힘이 공에 온전히 전해지지 않아 회전이 적어져 공이 수직 위로 떠오르는 매그너스 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포심패스트볼은 한 바퀴 돌 때마다 규칙적으로 실밥과 공기의 마찰이 네 번 생기지만 체인지업은 공기와 실밥과의 마찰이 일정하게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의 진행방향 뒤에 생기는 웨이크존이 상대적으로 커져 공의 운동을 방해해 느리게 날아간다.

체인지업을 던질 때는 투수마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공을 쥐고 던져서 상하좌우로 변화를 주기도 한다. 류현진은 서클체인지업을 던지는데 엄지와 검지의 모양이 OK같다고 하여 OK체인지업이라고도 불린다. 왼손투수인 류현진이 던진 서클체인지업은 일반적인 체인지업에 비해 낙폭이 크고 변화가 있어, 손쉽게 메이저리그의 타자들을 헛스윙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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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김선희 | 글 김종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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