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는 컴퓨터, 접었다 펴는 전자 신문 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연한 전기전자 소자(전자 회로를 구성하는 부품)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쓰고 있는 반도체는 소재가 딱딱하기 때문에 제약이 많다. 따라서 많은 과학자들이 기존 반도체를 대체하기 위한 유기물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얻은 유기소재는 무기소재에 비해 전자이동도가 5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유기소재로 만든 반도체는 기존 반도체보다 전류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해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할 수 없을까.


[플렉시블 전기전자 소재/소자 연구실에서는 차세대 전자부품인 구부러지는 반도체를 개발한다. 연구원들이 실험 중 잠시 포즈를 취했다(위). 오른쪽은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고흥조 교수.]
“나무젓가락은 딱딱해서 힘을 주면 부러집니다. 하지만 종이는 구부릴 수도, 접을 수도 있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나무젓가락과 종이는 모두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같은 소재라도 물성을 전혀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신소재공학부 플렉시블(flexible) 전기전자 소재/소자 연구실의 고흥조 교수는 지금의 연구 방향과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많은 과학자들이 구부러지는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신소재를 찾고 있을 때 고 교수팀은 기존 무기물질을 이용해 구부러지는 반도체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물체를 얇게 만들면 구부러진다는 물리 현상에 착안했습니다. 기존에 쓰던 소재의 두께만 줄이면 유연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요.”

[고 교수가 개발한 초박막 반도체는 쉽게 구부러지기 때문에 곡면에도 잘 붙는다. 이를 이용하면 초점이 잘 맞는 카메라는 물론이고 전자 눈도 개발할 수 있다.]
기존 공정은 소자를 실리콘 원자가 일정하게 배열된 기판(웨이퍼) 위에 놓는다. 그러나 고 교수팀은 유연한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해 웨이퍼를 없애기로 했다. 우선 기존 방식대로 소자를 웨이퍼 위에 붙인 후 소자 위에 폴리디메틸 실록산(PDMS)이라는 고무를 붙인다. 웨이퍼와 소자 사이를 다시 떼어내는 용액을 부으면 소자는 PDMS에만 붙어 떨어진다. 이 상태로 만든 소자는 다른 판에 옮겨 심을 수 있게 된다. 마치 ‘포스트 잇’처럼 전기 소자가 웨이퍼에 붙었다가 다른 판으로 옮겨 붙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정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여기저기 옮기는 과정에서 소자의 배열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반도체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또 소자가 너무 얇아서 아예 웨이퍼에 달라붙어버리면 PDMS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➊ 플렉시블 전기전자 소재/소자 연구실에서 개발한 초박막 반도체는 기존 반도체 공정을 그대로 이용해 제작한다. 소자에 기둥을 하나 붙이자는 아이디어가 기술의 혁신을 이룬 셈이다.]
고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소자 바로 밑에 작은 기둥을 심은 것이다. 기둥을 임시로 붙여놓기 때문에 웨이퍼에 용액을 부어도 소자가 둥둥 뜨지 않아 소자의 배열은 그대로 유지된다. 또 기둥이 받치고 있기 때문에 소자가 웨이퍼에 달라붙지도 않는다.
기존 반도체 공정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흔히 기술을 개발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 시작하려 한다. 그러나 정작 산업체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기술은 기존 기술에서 아이디어를 내 수정한 것이 많다. 고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과학학술지 ‘스몰’ 2월 18일자에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광주과학기술원에 부임한지 2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이렇게 만든 초박막 반도체는 마치 잉크처럼 칠할 수 있다. 잉크롤러로 여기 저기 문지르기만 하면 쉽게 붙는다. 원하는 곳에 얇은 반도체를 인쇄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자동차에는 큰 내비게이션이 달려있지만 고 교수가 개발한 반도체를 잉크롤러로 한번 쓱 밀면 반도체가 인쇄된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자동차 유리창 자체에 화면이 바로 뜨는 내비게이션을 만들 수 있다.
심장에 칠하는 초박막 반도체초박막 반도체는 유연하기 때문에 어떤 모양의 물체에도 붙을 수 있다. 고 교수팀은 표면에 구멍이 잔뜩 난 골프공에도 초박막 반도체가 정확하게 붙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고 교수는 초박막 반도체를 ‘디지털카메라’에도 이용했다. 디지털카메라의 렌즈는 곡면이지만 이미지센서는 평면이라 사진 귀퉁이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현상을 없애기 위해 현재 여러 개의 렌즈를 겹쳐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렌즈를 겹쳐 사용하면 카메라가 무거워지고 가격이 비싸지는 단점이 있다.
고 교수는 초박막 반도체로 렌즈의 초점이 정확히 맺히도록 곡선을 띤 이미지센서를 만들었다. 개발한 이미지센서는 마치 사람의 눈처럼 둥글기 때문에 사진 주변부의 초점이 흐려지지 않았다.
고 교수는 “이 연구는 차세대 카메라 개발을 넘어 ‘전자 눈’을 만드는 데 쓰일 것”이라며 “얇은 필름에 반도체 소자를 간단히 인쇄하면 콘택트렌즈를 끼듯 눈에 간단히 삽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전자 눈이 개발되면 시력을 잃은 사람이 수술 없이도 시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이 연구 결과는 2008년 8월 7일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고 교수는 이어 “이런 초박막 반도체를 의료용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인공 심장 박동기에 기존 반도체를 쓰면 심장이 운동할 때 반도체가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초박막 반도체는 심장에 밀착돼 있기 때문에 심장과 같이 운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플렉시블 전기전자 소재/소자 연구실에서는 차세대 전자부품인 구부러지는 반도체를 개발한다. 연구원들이 실험 중 잠시 포즈를 취했다(위). 오른쪽은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고흥조 교수.]
“나무젓가락은 딱딱해서 힘을 주면 부러집니다. 하지만 종이는 구부릴 수도, 접을 수도 있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나무젓가락과 종이는 모두 나무로 만든 것입니다. 같은 소재라도 물성을 전혀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신소재공학부 플렉시블(flexible) 전기전자 소재/소자 연구실의 고흥조 교수는 지금의 연구 방향과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많은 과학자들이 구부러지는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신소재를 찾고 있을 때 고 교수팀은 기존 무기물질을 이용해 구부러지는 반도체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물체를 얇게 만들면 구부러진다는 물리 현상에 착안했습니다. 기존에 쓰던 소재의 두께만 줄이면 유연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요.”

[고 교수가 개발한 초박막 반도체는 쉽게 구부러지기 때문에 곡면에도 잘 붙는다. 이를 이용하면 초점이 잘 맞는 카메라는 물론이고 전자 눈도 개발할 수 있다.]
기존 공정은 소자를 실리콘 원자가 일정하게 배열된 기판(웨이퍼) 위에 놓는다. 그러나 고 교수팀은 유연한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해 웨이퍼를 없애기로 했다. 우선 기존 방식대로 소자를 웨이퍼 위에 붙인 후 소자 위에 폴리디메틸 실록산(PDMS)이라는 고무를 붙인다. 웨이퍼와 소자 사이를 다시 떼어내는 용액을 부으면 소자는 PDMS에만 붙어 떨어진다. 이 상태로 만든 소자는 다른 판에 옮겨 심을 수 있게 된다. 마치 ‘포스트 잇’처럼 전기 소자가 웨이퍼에 붙었다가 다른 판으로 옮겨 붙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정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여기저기 옮기는 과정에서 소자의 배열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반도체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또 소자가 너무 얇아서 아예 웨이퍼에 달라붙어버리면 PDMS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➊ 플렉시블 전기전자 소재/소자 연구실에서 개발한 초박막 반도체는 기존 반도체 공정을 그대로 이용해 제작한다. 소자에 기둥을 하나 붙이자는 아이디어가 기술의 혁신을 이룬 셈이다.]

[➋ 초박막 반도체는 잉크처럼 롤러로 칠해 원하는 곳에 쉽게 붙일 수 있다.]
고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소자 바로 밑에 작은 기둥을 심은 것이다. 기둥을 임시로 붙여놓기 때문에 웨이퍼에 용액을 부어도 소자가 둥둥 뜨지 않아 소자의 배열은 그대로 유지된다. 또 기둥이 받치고 있기 때문에 소자가 웨이퍼에 달라붙지도 않는다.
기존 반도체 공정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흔히 기술을 개발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 시작하려 한다. 그러나 정작 산업체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기술은 기존 기술에서 아이디어를 내 수정한 것이 많다. 고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과학학술지 ‘스몰’ 2월 18일자에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광주과학기술원에 부임한지 2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이렇게 만든 초박막 반도체는 마치 잉크처럼 칠할 수 있다. 잉크롤러로 여기 저기 문지르기만 하면 쉽게 붙는다. 원하는 곳에 얇은 반도체를 인쇄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자동차에는 큰 내비게이션이 달려있지만 고 교수가 개발한 반도체를 잉크롤러로 한번 쓱 밀면 반도체가 인쇄된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자동차 유리창 자체에 화면이 바로 뜨는 내비게이션을 만들 수 있다.
심장에 칠하는 초박막 반도체초박막 반도체는 유연하기 때문에 어떤 모양의 물체에도 붙을 수 있다. 고 교수팀은 표면에 구멍이 잔뜩 난 골프공에도 초박막 반도체가 정확하게 붙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고 교수는 초박막 반도체를 ‘디지털카메라’에도 이용했다. 디지털카메라의 렌즈는 곡면이지만 이미지센서는 평면이라 사진 귀퉁이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현상을 없애기 위해 현재 여러 개의 렌즈를 겹쳐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렌즈를 겹쳐 사용하면 카메라가 무거워지고 가격이 비싸지는 단점이 있다.
고 교수는 초박막 반도체로 렌즈의 초점이 정확히 맺히도록 곡선을 띤 이미지센서를 만들었다. 개발한 이미지센서는 마치 사람의 눈처럼 둥글기 때문에 사진 주변부의 초점이 흐려지지 않았다.
고 교수는 “이 연구는 차세대 카메라 개발을 넘어 ‘전자 눈’을 만드는 데 쓰일 것”이라며 “얇은 필름에 반도체 소자를 간단히 인쇄하면 콘택트렌즈를 끼듯 눈에 간단히 삽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전자 눈이 개발되면 시력을 잃은 사람이 수술 없이도 시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이 연구 결과는 2008년 8월 7일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고 교수는 이어 “이런 초박막 반도체를 의료용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인공 심장 박동기에 기존 반도체를 쓰면 심장이 운동할 때 반도체가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초박막 반도체는 심장에 밀착돼 있기 때문에 심장과 같이 운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