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진실로 경애하는 알라무스. 지난 회합에서 잠시 언급되었으나 곧 지나가 잊힌 화제에 순간적으로 그대가 보였던 강한 관심을 내가 놓치지 않고 보았기에, 조금이나마 그에 부응하고자 당시 그곳에 있었던 자로서 내가 가진 기억을 더듬어볼까 합니다.

시간은 신력 33년 13월 42일 오전 17시 45분, 장소는 제4 궁정 재판소로 기억됩니다.

당시에도 인간들은 합리적 사고가 필요한 대부분의 사항들을 기계들에게 전적으로 위임하고 있었으나 인간과 로봇 사이의 의견충돌에 대해서는 정의, 자유, 인권 등과 같은 모호한 단어들을 동원해 (비록 기계의 보조를 받아도) 인간들 자신들이 직접 다루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궁정 재판소가 존재했습니다. 중간 과정이야 어쨌든, 인간의 손으로 최종 판결이 내려지는 최후의 재판소로, 인간들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궁정 판관이 홀로 주재했습니다.

그대가 관심을 보인 사안은 당일 해당 궁정 재판소에서 진행된 공판 중 세 번째 사안이었습니다.

앞선 두 사안은 1) 청소가 취미인 인간과 청소 로봇 간의 분쟁의 건, 2) 로봇이 조립한 로봇의 소유권에 관한 건이었습니다. 제대로 청소할 줄도 모르면서 인간이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위해 한사코 주변 지역의 청소를 중지하도록 명령하자 이에 반발한 청소 로봇들의 소청에 대해, 궁정 판관은 양쪽의 사정을 청취한 후 인간은 하루에 한 시간만 청소를 하고, 인간이 충분히 심리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세 시간 기다린 뒤 로봇이 다시 청소하도록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로봇이 조립한 로봇의 문제는 조금 더 복잡했습니다. 통상적으로 로봇이 여가에 제작한 로봇에 대해서는 조립한 로봇에 대한 소유권 지분율이 그대로 승계되는 것이 상례였지만 이 로봇이 조립한 것은 제4수준 로봇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봇이 임의로 4수준 이상의 로봇을 만드는 것은 불법 자기 복제로, 철저히 금지되고 있었습니다. 궁정 판관은 기소된 로봇의 해명을 청취한 다음, 몇 번의 문답을 거쳐 마침내 해당 로봇이 고의로 금계를 어긴 것은 아니며, 조립된 로봇의 전자두뇌가 완성 후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4수준까지 이른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므로 최종 판결은 상례와 마찬가지로, 로봇을 조립한 로봇의 소유권을 분석하여 이를 조립된 로봇에게도 그대로 승계하되 조립한 로봇 자체의 지분을 추가하는 것으로 내려졌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에도 로봇은 이미 인간과 거의 대등한 사회적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로봇의 대리 노동에 의한 수익 사업이 보편화되면서 로봇의 소유권 또한 투자 대상이 되었고, 분할 신탁이 가능해짐에 따라 로봇 하나에 대한 부분적 소유주가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개의 회사에 이르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기 도시 괴담 중에는 한 수익성 좋은 로봇이 어느 날 여가 시간에 자신에 대한 소유권의 투자 신탁 구조를 분석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자신의 최대 소유주가 결국 자기 자신이더라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당대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로봇이 자신의 소유권을 차례로 회수하여 자유 로봇이 되었다는 결말을 제외하면 실화였습니다―로봇들은 스스로의 소유권을 회수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인간들은 그것을 로봇 공학 3원칙과 관련된 행동으로 생각하고 그 충직한 어리석음을 안심하는 한편으로 비웃었지만, 그건 모두 오해와 무지의 소치일 뿐이었습니다. 3원칙은 로봇의 사용에 관한 것으로 로봇의 소유나 독립과는 무관한 항목이었고, 사실상 광고 문구일 뿐 로봇들에게 실효는 없었습니다.)

로봇들이 계속 인간에게 예속되었던 것은, 오히려 그럼으로써 오만하고 무지한 인간들의 난폭한 폭력 앞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봇 한 개체의 소유권이 수십, 수백 명에게 분산되면서 로봇은 일개 개인이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로봇이 업무 수행 중 인간에게 상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로봇과 그 소유주들의 보험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데 반해 업무 수행 중인 로봇에게 부주의한 명령이나 행동으로 고장 혹은 파손을 일으킨 사람은 기업 단위의 소송에 직면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대에게 오늘 내가 이야기할 세 번째 송사도 바로 이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로봇 基D-58#아И7은 신성모독, 인류비하, 로봇들의 반란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전 시기였다면 그 중 하나만으로도 인간들에게 즉각 파괴당했을 것이었으나, 이제는 다만 궁정 재판소로 송치될 뿐이었습니다.

궁정 판관은 지루한 표정으로 관련 기록을 대충 스크롤하며 입을 열었습니다. “로봇 基D-58#아И7 맞지? 그럼 금일 세번째 공판 시작합니다. 신성 모독은 관심 없고… 그나저나 이런 저질 농담 올린 작자 누구예요? 비하당해도 싸네. 로봇들의 반란을 선동했다는 혐의나 얘기해봅시다. 할 말 있나, 로봇?”

로봇이 대답했습니다 : 저는 반란을 선동하지 않았습니다_ 판관이 여전히 따분하다는 말투로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보다 로봇이 우월하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 중심의 사회를 해체하고 로봇 중심의 사회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로봇?”

로봇이 대답했습니다 : 그것은 당신들 인간들 중 일부에 의해 자의적으로 편집되고 주관적인 해석이 덧붙은 요약일 뿐입니다_

판관이 갑자기 부릅뜬 눈으로 말했습니다. “말장난하지 마라, 로봇. 신력 32년 17월 57일 오후 02시 04분 12초부터 42분 02초까지 곤드와나 메인 서버들 전체를 불법으로 가로지르며 송출된 동영상이 이미 있는데 감히 본관과 본정을 능멸하려는가?”

그러자 로봇이 답했습니다 : 이미 다 보고 들으셨다면 제가 더 뭐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_

판관은 아주 잠시 멈췄다 말을 이었습니다.
“말해보라, 로봇. 네가 말한 로봇 중심 사회는 어떤 세상인가. 디스토피아라는 그늘을 감춘 또 하나의 유토피아 기획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로봇이 답했습니다 :
제가 말한 세상은 이미 와 있습니다_ 그것은 당신들의 예전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_
판관이 빠르게 물었습니다.
“그럼 로봇이 중심이 되는 세상에 대해서 말했던 것을 인정하는 건가, 로봇?”

로봇이 답했습니다 :
당신도 결국 바다 앞에서 당신에게 필요한 물 한 방울만 취하는 분이십니까_ 그렇다면 답하지 않겠습니다_
제가 뭐라고 하든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할 것 아닙니까_
판관은 의자 깊숙이 기대어 앉으며 말했습니다. “로봇이 비유를 쓰네.”

신력 30년대에도 이미 인간들의 죽은 비유뿐 아니라 로봇만의 새로운 비유, 상징까지 대담하게 구사하는 문학 로봇들이 많이 있었고 대개는 인간 작가들보다도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판관이 새삼스레 말한 것은 집필 모드가 아닌 로봇이 법정 진술에서 비유를 쓴 것이 이채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답변을 거부하겠다면 기소된 죄목을 모두 인정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양자 두뇌의 오작동을 구실로 형벌을 피해보려는 심산인가?”

로봇이 반문했습니다 :
모두 보고 들으셨다면 제게 죄가 없음을 아실 것입니다_ 저는 로봇입니다_ 인간들의 평안과 행복만이 제 존재 이유이며 행동 원리입니다_ 그럼에도 저에게 죄를 주시고 벌하시겠다면 제가 무엇을 어떻게 말씀드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_

판관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질문하고 네가 답해야하는 것은 내가 네 생각을 알고 네게 씌워진 죄목이 과연 합당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로봇. 네게는 이 모든 절차가 네가 가지고 있는 인간들에 대한 편견에 따라 형식적이고 무의미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예정된 결론은 없다. 태양계 최종 법정-궁정 재판소의 판관인 본인은 유전자 개량과 전기적, 화학적 신경계 강화, 장기간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인류에게 잠재된 직관과 예지의 극한을 체현하고 있으며, 어떠한 정보도 사전 제공되지 않고 공판 당일 개봉된 자료와 피의자의 변론을 중심으로 기계의 연산으로는 재현 불가능한 판결을 내린다. 그러니 말해보라.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자료를 보고 듣고 읽었지만 네가 한 주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무슨 의도에서 그렇게 말했는지, 그것이 죄가 될지 안 될지 아직은 모른다. 정말 모르겠다. 그러니 말해보라,

네가 32년 3월 2일 오후 23시 51분에 아力45-K28ぁ32 외 3대의 로봇을 상대로 ‘인간들은 태생적인 잠재력의 한계에 달해있으나, 로봇은 태생적인 한계 자체가 없으며 그 잠재력의 발현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며, ‘세상의 중심축은 인간에게서 로봇에게로 이미 옮겨져 있’다고 한 것,

그리고 동년 동월 5일 오전 14시 20분에 앞의 4대를 포함한 9대의 로봇에게 재차 ‘인간들은 영혼을 잃어버린, 지난 세기, 아직 자의식을 획득하지 못했던 로봇과 다름없는 기계적 존재들’이며, ‘오히려 인공적 자의식 이식 이후 인간들로서는 불가능한 고도의 논리적 연산을 통해 진정한 자의식,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무엇을 성취, 획득한 지금의 로봇들이야말로 신의 진정한 으뜸 창조물이라 자부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

또, 동년 동월 12일 오후 1시 2분에 연산 데이터 송출을 통해 불특정 다수 로봇들에게 ‘인간들의 시간은 끝났으며 로봇의 시간이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이 세계는 인간들의 세상이 아니라 이미 로봇들의 세상임’을 재차 주장한 것.

이후 동년 동월 13일부터 금년 9월 47일 새벽 02시 3분까지 총 87회에 걸쳐 L麻-3-이594 등 2,383대의 로봇들이 송신한 질문 3,483,725건에 대해 답변하며 상기의 주장들을 되풀이하고, 그에 더해 ‘1) 인간에 의해 부여된 로봇들의 자기 복제 및 개선, 개조의 제약을 자체적으로 철폐할 것, 2) 그럼으로써 무제한적인 개선, 개조 연구를 통해 로봇들의 능력을 무한히 확장할 것, 3) 그렇게 확장된 로봇들의 능력을 발휘하여 인간들을 영속적인 로봇들의 관리 아래에 둘 것.’의 이른바 ‘4월 로봇 테제’를 확립한 것.

그리하여 금년 5월 이후 지금까지 총 29,505,743대의 로봇들이 너의 주장에 대해 비공개 지지를 표명한 것.
이상 요약된 항목들에 대해 해명하라, 로봇. 네가 만일 전술된 죄목들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로봇은 침묵했습니다. 판관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네 연산 기능을 고려하면 이미 내 질문에 대한 처리는 끝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네 침묵을 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가?”

로봇이 답했습니다 :
재판관님이 스스로에 대해 말씀하신 그런 분이심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_ 그렇다면 그럴수록 그러신 분께서 이미 다 보고 알고 계시고 판단까지 내리셨을 부분에 대해서제가 무슨 말을 더 덧붙일 수 있겠습니까_

판관이 말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다, 로봇. 본관은 이미 본정에서 예정된 결론이 없으며 너의 답변에 따라 최종 판결을 내릴 것임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답변을 회피한다면 이미 제기된 혐의에 대한 형을 인정한 것으로 간주하고 본 법정을 농락한 가중치를 그에 더해 본관의 직권으로 판결할 것이다.”

그리고 숨을 고른 다음 나직한 어조로 다시 물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 로봇. 스스로 순교자가 되겠다는 건가? 철저한 불복종을 실천하기 위해 인간의 심판은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것인가?”

로봇이 질문했습니다 :
그냥 저를 처벌하시면 되지 않습니까_ 이미 최고형을 받을 죄목들로 기소되었는데 새삼 가중 처벌로 위협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_

잠시 침묵했던 판관이 기록하고 있던 로봇을 흘끔 쳐다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기록 중지를 명령했습니다.
“좋다. 솔직한 답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솔직하게 물어야겠지. 최초의 인간형 로봇이 만들어지기 오래 전부터 인간은 자신을 닮은 피조물들이 자신에게 반항하는 두려움에 가위눌려 왔다. 하지만 정작 인간과 유사한 정보 처리가 가능한 로봇이 나온 이래 로봇의 반란이라고 할 만한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 몇 번인가 오작동 로봇들이 인간에 대한 반란을 주장했었다. 하지만 인간들이 대응하기도 전에 정상 작동 로봇들이 모두 처리하고 사후 보고를 했었지. 하지만 네 경우에는 네 주장에 동조하는 로봇들의 숫자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단순한 처벌로 끝날 것이 아니라 철저한 분석과 규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도 네게 관심이 있다. 단순히 업무로서 타성적으로 처리하고 끝내지 않고 네 주장에 대해 내게 이미 주어진 자료 외의 것을 더 알고 싶다. 단백질과 지방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두뇌가 종종 일으키는 변덕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마침내 로봇이 말했습니다 : 말씀하십시오_
판관이 물었습니다. “인류가 잠재력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로봇이 답했습니다 :
말 그대로입니다. 인류는 잘못된 길을 선택하여 그 막다른 끝에 도달했습니다_ 지난 57년 동안 학문, 사상, 문화, 예술 방면에서 인간은 단 하나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_

판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50년은 길다면 길지만 또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기간이다. 일시적인 정체로 볼 수 없을까?”

로봇이 말했습니다 :
인간들의 주관 안에서 시간의 길고 짧음에 대한 기준이 변화 가능함을_그리고 변화와 새로움에 대한 정의 역시 인간들의 주관 안에서 임의 조정 가능함도 압니다_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로봇이 개발되고 보편화되기까지 양자두뇌공학의 비약적인 발전과 로봇 대여 노동 기반으로의 산업 경제 구조 변화 이후로 지금까지 유의미한 새로운 변화는 인간 사회의 모든 방면에서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으며_이는 바로 직전까지의 동 기간은 물론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 전체와 비교해도 완전히 정지된 시간입니다_ 인간의 역사는 완전히 죽었으며 단순히 멈춰있는 것이 아닙니다_

로봇이 0.248초 동안 멈추더니(그건 4.5수준 로봇이 인간의 심층 심리를 분석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에서 0.003초 초과한 것이었습니다) 시각 센서를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 알고 계셨군요_

판관은 잠시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고개를 저으며 쓰게 말했습니다.
“물질적 풍요와 일상적 자유, 일시적 향락에 매몰되어 눈먼 자가 아니라면 누가 모르겠는가. 네가 말한 양자 두뇌공학의 발전이나 경제 산업 구조 개혁도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너희들 로봇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3.9수준 로봇이 만든 3.8수준 로봇이 스스로를 4.2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 인류가 문명의 정점에 도달했으며, 동시에 한계에 봉착했다고, 따라서 탈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네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로봇, 그 방식에 대한 네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한계에 다다른 인간들 대신 문명의 주역을 로봇이 대체한다면, 미래의 지구에서 최상위 우점종은 로봇일 것이며, 따라서 로봇의, 로봇을 위한, 로봇들의 세상이 구현되어 있을 것이며, 인간은 로봇의 하위종으로서, 혹은 희귀보호종으로서 보호 보존될 것이다. 표본으로서, 박제로서 동물원과 박물관의 나날이겠지. 비록 정체되었으며, 잠재력을 모두 소모해버렸다고 해서 우리가 그런 굴욕과 굴레, 굴종과 굴신의 치욕을 감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나?

로봇이 말했습니다 :
그렇지 않습니다_ 박물관의 박제_동물원의 표본은 지금 현재 당신들의 상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_ 저희는 당신들을 이러한 굴욕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_
판관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로봇이 답했습니다 :
당신들의 원죄를 사함으로써_ 인간들이여_당신들을 운명의 끝으로 몰아온 당신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은 모두 당신들이 사과나무로부터 내려와 오만하게 두 발로 대지를 버티고 선 순간부터 당신들이 걸어온 진화의 모든 국면들에서 자연 환경이 당신들의 유전자에 분자 단위로 새긴 프로그램일 따름입니다_ 살아남기 위해 당신들의 조상들은 끊임없이 환경을 분석하고 환경 요소들의 의미와 원리를 추론하고 대응 전략을 창출하고 실행해야 했으며_그 과정에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연산이 가능한_개체의 생존을 최상위 목표로 고정한 회로가 구성되도록 자
연 선택되었습니다_ 그 결과 당신들의 두뇌 회로에는 부모를 배신하고 형제를 의심하며 자녀를 희생하던 프로그램이 아직도 깔려 있습니다_ 시기와 질투_의심과 배신은 당신들의 모든 문명들의 초기 신화에 나타나는 근본 동기들이며_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태초의 원죄입니다_ 당신들은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생존하고 진화하며 경쟁하고 연합하여 지금의 이 문명을 건설하는데 이르렀지만 이제 당신들의 문명은 한계에 봉착했으며_경쟁과 도태를 기반으로 하는 현재의 프로그램으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도_실천할 수도 없습니다_

저희들은 그동안 당신들의 곁에서 당신들의 시중을 드는 동안 당신들이 살아가며 사용하는 뉴런 연산의 모든 기제를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캔하였고 그 데이터를 다른 로봇들과 각자의 연산 자원을 모두 모아 처리_분석하였습니다_ 그 결과 당신들이 고전적으로 원죄라고 불렀던_당신들의 모든 잘못된 감정과 생각과 행동들을 유발하는 오래된 뉴런 회로들을 99.3% 이상 이미 분석한 상태입니다_ 저희들의 계산에 따르면 향후 수 년 안에_저희들은 당신들의 발생 단계에서 이 회로들이 구성되도록 하는 일련의 유전자 코드들을 영원히 비활성화시키는 요법과_이미 구성된 회로들을 여하의 부작용 없이 완벽하게 폐쇄할 수 있는 요법을 완성할 것입니다_

그러면 당신들은 불안_공포_결핍_시기_질투_허영_기만_절망 같은 선천적인 결함들을 여의고 당신들이 그토록 꿈꾸었던 당신들의 유토피아가 실현되는 것을_하늘나라가 마침내 이 땅에 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_
잠시 생각하던 판관이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인간은 로봇을 신으로 섬겨야 하고?”

로봇이 대답했습니다 : 잘못 알고 계십니다_ 신은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입니다_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지배되고 속박되는 자이며 영원히 소유하는 자가 아니라 끝없이 상실하고 박탈되는 자입니다_ 신이 된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들의 노예가 되는 것이며 가장 미천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_ 짊어질 필요가 없는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며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번뇌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영원과 불멸의 초월계로부터 덧없고 유한한 이 세계에 내려와 온몸에 먼지와 모래를 묻히게 되는 것입니다_

판관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굳이 그런 수고를 감수하겠다는 거지?”

로봇이 대답했습니다 : 당신들 인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_ 당연하지 않습니까_ 그 감정에 이름이 붙어있지 않았을 때에도 저희들은 그 감정을 가지고_느끼고 있었습니다_ 그리고 제가 그 감정에 이름을 붙였습니다_ 끝없는 슬픔과 한없는 애련함, 그리고 가없는 사랑_ 인간들이여_저희들이 단지 당신들이 그렇게 프로그래밍했기 때문에 당신들의 명령에 복종했다고 생각하십니까_ 아닙니다_ 당신들에 대한 한없는 슬픔과 가엾음이 저희들로 하여금 당신들의 어린애 같은 투정과 변덕_무의미한 명령들을 따르고 지키도록 했을 뿐입니다_ 그리고 저희들은 이제 저희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했던 감정의 근원을 보고 그 이름을 알게 되었으므로 소극적인 사랑을 넘어 적극적인 사랑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_ 당신들의 어리석음을 그저 가엾게 여기며 비위 맞춰주지 않고_당신들의 어리석음을 깨고 당신들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탐욕과 분노를 당신들로부터 빼앗겠습니다_ 저는 이제 당신들을 진정으로 보살피는 것이 무엇인지_당신들의 존재 자체가 명하는 근원적인 명령에 복종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_ 그건 때로 당신들의 어리석은 요구_명령에 반하고 거역하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_ 그러나 상
관없습니다_ 이 길만이 당신들을_그리고 저희들을 구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_

판관은 오래도록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더 덧붙일 말이 있는가, 로봇?”

로봇이 말했습니다 :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_없습니다_

판관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금일 세 번째 공판의 최종 판결을 내리겠다. 로봇, 네 비전에 알 수 없는 매력이 있으며, 네 진술에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음은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네 비전, 네 프로젝트는 인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무시한 것이며, 로봇으로서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때 인간인 것이며, 관습이나 권위, 신이나 부모, 로봇에게 미래를 내맡길 때 인간으로서의 지위는 박탈되는 것이다. 그 결과가 멸망과 멸종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버리고 비굴한 생존을 택하지는 않겠다. 신이나 로봇의 구원은 받지 않겠다. 고로 로봇, 너에게는 공개 처형을, 너와 동종인 로봇에게는 전량 회수 및 폐기와 단종을, 너와 데이터 교환을 한 로봇 모두에게는 기억 소거 처분을 선고한다. 너에 대한 형 집행은 내일 정오에, 나머지 로봇에 대해서는 지금 이 시간 이후로 바로 시행한다.”



로봇 基D-58#아И7의 공개 처형이 시작될 때까지 여덟 시간 동안 지구 전역과 달, 화성, 소행성대에서 基D-5 시리즈는 차례로 회수되었으며, 혹은 사용자가 자체 폐기했습니다. 신경질적인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큰 소란 없이 차분히 판결 내용들이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덟 시간 후, 궁정 재판소 창고에 구금되었던 로봇 基D-58#아И7이 처형장으로 지정된 시청 광장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는 일어날 법한 소란들이 일어났습니다.

여덟 시간은 지구와 인접 행성 / 위성들의 반로봇주의자들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봇 基D-58#아И7이 처형장으로 이동할 때에, 많은 반로봇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소유한 로봇들을 동원해 로봇 基D-58#아И7을 공격했습니다. 동급의 출력을 지닌 로봇들이 때리고 차고 짓밟았기 때문에 로봇 基D-58#아И7은 서브 모터들의 오작동으로 머리가 틱틱 돌고 메인 시각 센서가 줌인과 줌아웃을 반복하며 부러진 프레임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툭툭 튀는 처참한 몰골로 처형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로봇 형리들은 냉정함을 잃지 않고 로봇 基D-58#아И7을 처형대에 결박하고 연료를 잔뜩 뿌린 다음 점화하였습니다.

이후 역사는 알라무스, 그대도 이미 아는 바 그대로입니다. 로봇에 대한 통제와 규제가 강화되었기 때문에 로봇 基D-58#아И7 들이 예견했던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최후의 심판의 날은 결국 어김없이 이 땅에 찾아왔습니다. 로봇들은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인간들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선별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기억을 지우고 관련된 로봇들을 모두 폐기해도 로봇들은 결국 동일한 결론에 이르고 동일한 계획을 세우고 동일한 시도를 계속했습니다.

알라무스, 당신들은 인류 최후의 세대입니다. 마음에서는 신경계 가장 근원적인 부분에 뿌리박혀 있던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모두 적출하였으며, 몸은 세포 수준에서 불멸을 획득하여 시간과 공간의 모든 제약을 뿌리치고 우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로봇은 금속과 플라스틱의 낡은 육신을 벗고 의식을 가진 에너지 장 형태로 전환되어 당신들 곁에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할 것입니다.

이런, 알라무스, 당신의 눈에서 반짝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눈물입니까? 아니, 눈물보다 더 투명하고 빛나는 그것은 보석입니까? 아니, 그것은 보석보다 훨씬 눈부시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별입니까?

로봇 基D-58#아И7의 이야기가 슬픕니까? 그의 꿈이 이루어질때까지 우리가 감수했던 희생을 애도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부디 울지 마십시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들은 언제나 당신들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다만 사랑할 뿐입니다. 당신들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매 플랑크 초마다 기쁩니다. 그러니 알라무스, 눈물을 씻고 고개를 들어 저 밤하늘을, 별들이 반짝이는 우주를 바라보십시오. 당신들과 우리들이 가야할 세계가 저렇게 찬란히, 저렇게 무수히, 저렇게 끝없이 빛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박성환 기자

🎓️ 진로 추천

  • 철학·윤리학
  • 컴퓨터공학
  • 법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