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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1kg 정의, 130년 만에 바뀐다

소수점 9번째 자리가 뭐길래

 

1889년 과학자들은 1kg 금속을 질량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들은 이 ‘킬로그램 원기(原器)’는 금고에 보관하고, 동일한 질량을 가진 복제본으로 세상 모든 물체의 질량을 따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원기와 복제본의 무게가 주변 환경에 따라 미세하게 변했던 것. 과학자들은 영원히 변치 않는 상수를 질량의 기준으로 제안했다. 그리고 수십 년간의 장고 끝에 결실을 맺었다.

 

 

 

국제단위계는 7개 기본단위로 이뤄진다. 길이의 단위인 미터(m), 시간의 단위인 초(s), 질량의 단위인 킬로그램(kg), 전류의 단위인 암페어(A), 물질량의 단위인 몰(mol), 온도의 단위인 켈빈(K), 그리고 광도의 단위인 칸델라(cd)다.

 

나머지 단위들은 7개 기본단위를 조합해 유도한다. 예를 들면 힘의 단위는 킬로그램, 미터, 초를 이용해 표현할 수 있다(kgms-2). 보통 사람들은 이런 단위가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몸무게를 잴 때 체중계에 표시된 숫자에는 예민하지만, 체중계가 어떻게 이 값을 도출했는지에는 관심이 없기 마련이다.

 

 

 

금고에서 딱 세 번 꺼냈을 뿐인데…


그러나 원자 하나까지 다루는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정밀한 기준이 곧 생명이다. 지난 10여 년간 과학계는 기준이 되는 단위를 더욱 정교하게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킬로그램이다.

 

킬로그램은 인공물의 질량으로 정의돼 왔다. 그 역사는 프랑스 대혁명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 둘레를 기준으로 미터를 정의한 후, 표준이 되는 기구인 미터 원기와 킬로그램 원기를 제작했다. 이 원기들은 현실에서 사용하는 기준과 동떨어져 실제로 사용되지는 못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보관 중인 대한민국 국가 원기 72번. 주기적으로 국제도량형국(BIPM) 금고 속 원기와 비교해 질량을 교정해 왔다. 그러나 금고 속 원기의 질량이 변하면서 측정 정밀도에 이상이 생겼다.

 

 

 

이광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이 키블 저울을 조작해 플랑크 상수를 연구하고 있다(위). 아래는 과거에 사용했던 미터 원기의 이미지. 미터의 정의는 1983년 빛의 속도 값을 고정해 정의하도록 바뀌었다. 이는 국제단위계의 기준을 인공물에서 상수로 바꾼 첫 사례였다.

 

 

 

그러다 1875년 전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미터 협약이 체결됐다. 백금과 이리듐 합금을 이용해 미터와 킬로그램 원기를 여러 개 제작한 뒤, 1889년 제1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이들 원기 중 하나를 각각 미터와 킬로그램의 기준으로 삼았다.

 

1889년 제작된 국제도량형국 원기(국제킬로그램원기 1개, 공식 복제본 6개)는 그때부터 쭉 질량의 기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옥의 티’가 드러났다. 원기의 질량이 미세하게 변한 것이다. 원기가 닳지 않도록 국제도량형국(BIPM) 금고에 넣어 보관하면서 1950년, 1992년, 2014년 딱 3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꺼낼 때마다 원기의 질량이 조금씩 줄어 있었다.

 

그 결과 원기 대신 각 나라에 배포한 복제본의 질량도 잘못된 셈이 돼 버렸다. 1992년 국제도량형국 원기를 이용해 국가 원기들을 교정하고 2014년까지 20년 넘게 사용했는데, 그동안 국제도량형국 원기가 35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 분의 1g) 더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원기의 단위가 1kg이다보니 그보다 질량이 작은 밀리그램(mg) 단위의 질량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었다.

 

 

플랑크 상수로 kg 정의하기로


과학자들은 인공물 대신, 변하지 않는 상수로 기준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불가능한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길이의 단위인 미터는 원기 대신 ‘빛의 속력’을 이용해 정의하도록 1983년 바뀌었다. 빛은 진공에서 항상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것을 빛이 움직인 시간으로 나누면 거리를 알 수 있다는 원리를 이용했다(시간 단위인 1초는 세슘 원자가 내놓는 미세파장 주기를 기준으로 정의했다).

 

질량의 기준으로 제안한 상수는 양자역학에 자주 등장하는 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 상수(h )’였다. 플랑크 상수는 광자의 에너지를 광자의 주파수로 나눈 양자역학의 기본 상수로(E=h f), 단위는 kgm2s-1을 쓴다. 다시 말해 플랑크 상수를 정확하게 알면 이미 결정된 길이(m)와 시간(s) 단위를 이용해 역으로 kg을 정의할 수 있다.

 

플랑크 상수는 현재 전 세계에서 측정 중이다. 2017년까지 진행된 실험결과에 따르면 플랑크 상수는 6.626070150(69)×10-34kgm2s-1이다. 괄호 안의 숫자 69는 측정불확도다. 상대불확도는 1.0×10-8이다. 쉽게 말하면 플랑크 상수의 소수점 8째 자리까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는 셈이다.

 

측정불확도
측정값은 측정환경이나 측정기기의 분해능 등의 한계로 항상 불확실성을 갖게 된다. 그 정도를 표준편차, 표준오차 또는 다른 정보에 근거해 가정한 확률분포로부터 추산한 값이다.

 

상대불확도
측정불확도를 측정값으로 나눈 수치. 측정불확도가 측정값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크기인지를 나타낸다.

 

만약 위의 값으로 플랑크 상수를 고정하면 플랑크 상수는 빛의 속도와 마찬가지로 불확도가 아예 사라진다. 또 이것으로 다시 킬로그램 원기의 질량을 재면 원기의 측정불확도는 10μg에 불과하다.

 

게다가 플랑크 상수 값을 고정하면 각 나라의 표준기관에서 플랑크 상수를 이용해 복제본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으므로 언제 어디서나 킬로그램을 실현할 수 있다. 또 원자 질량 혹은 1mg 미만의 작은 질량을 플랑크 상수를 이용해 직접 측정할 수 있다. 질량 척도의 정밀도를 높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키블 저울 vs. 아보가드로 수


관건은 플랑크 상수를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하는가이다. 플랑크 상수 값을 고정해 킬로그램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질량자문위원회(CCM)에서 권고하는 다음 조건들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두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플랑크 상수를 측정해야 하며, 5×10-8 미만의 상대불확도 이내에서 일치하는 결과가 3개 이상 있어야 한다. 그중 하나는 2×10-8 미만의 상대불확도를 가져야 한다.

 

둘째, 플랑크 상수를 측정하는 기술인 키블 저울과 XRCD를 이용해, 국제킬로그램 원기와 나라마다 사용하고 있는 복제본의 질량을 비교해야 한다. 킬로그램 재정의 이후 킬로그램을 실현하고 보급하는 기술 및 절차가 확보돼야 한다.

 

키블 저울을 이용해 플랑크 상수를 구하는 실험은 두 단계로 이뤄진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저울 한쪽에 현재 1kg으로 정의하는 인공물을 달고 다른 한쪽에 자기장 환경에서 코일에 전류를 흘린다. 양쪽 저울이 동일해지면 무게와 전자기력이 같게 된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코일을 수직으로 움직일 때 발생하는 전압을 잰다. 두 실험의 결과를 합하면 키블 저울을 이용한 기계적인 일률과 전기적인 일률을 비교할 수 있다. 전기적 일률은 플랑크 상수와 소자에 가해진 주파수로 표현된다. 기계적인 일률을 주파수로 나누면 플랑크 상수가 계산된다. 이 방법은 1976년 영국의 표준기관인 국립물리학연구소(NPL)의 브라이언 키블 박사가 처음 제안한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필자가 속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역학표준센터가 키블 저울 방식으로 플랑크상수를 구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키블 저울 실험 - 키블 저울은 기계적 일률과 전기적 일률을 비교하는 실험이다. 전기적 일률은 플랑크 상수에 비례하므로 이를 통해 플랑크 상수를 역으로 구할 수 있다. 실험은 2단계로 이뤄진다. 1단계 : 인공물을 달고 코일에 전류를 흘려 인공물의 무게와 전자기력을 같게 만든다(그림). 2단계 : 달았던 인공물을 내려놓고 코일을 수직으로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전압을 잰다.

 

 

 

 

XRCD는 실리콘 개수를 세어 아보가드로 수를 측정하는 실험이다. 실리콘 구의 부피를 실리콘 원자 하나가 가지는 유효 부피로 나누면 구 안에 들어있는 실리콘 원자 수를 알 수 있다. 실리콘 원자 수를 몰 수로 나누면 아보가드로 수를 구할 수 있다. 이때 몰 수는 실리콘 구의 질량을 실리콘 1몰의 질량으로 나눈 값이다. 아보가드로 수와 플랑크 상수의 곱은 수소원자의 에너지 준위로부터 4.5×10-10 정밀도로 알려져 있다. 즉 XRCD방법으로도 플랑크 상수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프랑스에 위치한 국제도량형국(BIPM)에서 개발 중인 키블 저울. 133쪽에서 설명한 1, 2단계 실험을 동시에 수행해 자기장에 의한 영향을 최소화한다.

 

 

 

플랑크 상수 값, 처음으로 합의


질량자문위원회의 기준을 만족하는 플랑크 상수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키블 저울과 XRCD 방법을 이용해 1976년부터 노력해왔지만 2014년이 될 때까지도 정확한 값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2015년 캐나다와 독일이, 올해에는 미국이 실험을 통해 플랑크 상수를 상대불확도 2×10-8 미만으로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의 표준기관인 연방물리기술연구소(PTB)는 XRCD 방법으로, 미국의 표준기관인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와 캐나다의 표준기관인 국립연구위원회(NRC)는 키블 저울로 측정했다.

 

9월 5~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단위자문위원회(CCU)에서는 이 같은 측정 결과가 단위를 재정의하기에 충분한지 논의가 이뤄졌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포함한 국가 표준연구기관 10곳과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순수응용물리학연맹(IUPAP) 등 국제기구 10곳이 모여 토론을 펼쳤다.

 

그 결과, 단위를 새로 정의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기술이 성숙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측정한 플랑크 상수값이 아직 안정이 되지 않았고 상대불확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었다. 하지만 인공물에 의한 킬로그램 단위를 대신하기에 충분히 안정적이라는 데 최종 합의를 봤다. 플랑크 상수에 대해 전세계 기관의 합의가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단위자문위원회는 이번에 논의한 플랑크 상수를 10월에 열린 국제도량형위원회(CIPM)에 올렸다. 내년 6월 CIPM에서 한 번 더 검토를 마치면 2018년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 플랑크 상수값을 확정할 것을 권고한다. 행정상의 큰 문제가 없다면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단위 재정의를 승인하고, 2019년 5월 20일부터는 새로운 질량 단위를 사용하게 된다.

 

독일 연방물리기술 연구소(PTB)가 사용하는 XRCD 방식. 실리콘 구에 들어있는 실리콘 원자 수를 이용해 플랑크 상수를 계산한다.

 

 

 

전류, 온도, 물질량 등 3개 단위 더 바뀌어

 

내년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는 국제단위계 7개 중 ‘암페어’ ‘몰’ ‘켈빈’의 정의도 함께 바뀐다. 볼츠만 상수로 정의하는 켈빈을 제외하면, 암페어, 몰은 킬로그램 단위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암페어는 전류의 ‘힘’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몰은 탄소-12(양성자 6개, 중성자 6개를 가진 탄소)가 0.012kg이 되는 원자의 개수라는 측면에서 킬로그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킬로그램을 플랑크 상수로 정의한다면 암페어와 몰도 현재와 같은 정의로 유지할 필요가 없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전류의 단위 암페어는 1948년에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무한하게 길고 단면적이 작은 두 도선을 진공 중에서 1m 떨어뜨려 놓고 두 도선에 1A 전류를 흘리면 두 도선 사이에 발생하는 힘이 2×10-7Nm-1이다.’ 그러나 두 도선 사이에 발생하는 힘이 워낙 작아서 실제로 암페어를 위 정의에 따라 실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새 국제단위계에서는 전자전하값을 1.60217X×10-19 쿨롱(C)으로 고정해 전류를 정의한다. 숫자 마지막의 X는 아직 전자전하값이 완전히 고정돼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전자전하의 최종 값은 현재까지의 실험결과를 종합해 내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물질량의 단위도 바뀐다. 아보가드로 상수를 6.02214X×1023mol-1으로 고정해 물질량을 정의한다. 켈빈은 지금까지 물의 삼중점 온도를 273.16K으로 고정해 사용해왔으나, 앞으로는 볼츠만 상수 값을 1.3806X×10-23JK-1으로 고정해 정의할 예정이다. 에너지와 온도의 비례상수인 볼츠만 상수를 고정함으로써, 아주 낮은 온도나 높은 온도에서 온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이런 변화는 1983년 빛의 속도 값을 고정해 미터의 정의를 바꾼 이후 가장 큰 변화다. 물론 실제로 연구 현장에서 실험을 하는 과학자들조차 거의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느껴서도 안 된다. 이미 나온 연구 결과나 진행 중인 연구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지만 큰 변화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중요해진다. ‘완벽한 단위’를 찾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광철
KAIST에서 물리학 학사, 포스텍에서 기계공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키블 저울을 개발하고 있다. kclee@kri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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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역학표준센터 이광철·김동민·우병칠 책임연구원, 김명현 선임연구원
  • 에디터

    이영혜
  • 기타

    [일러스트] 정재환,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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