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의료 공단의 고지 의무에 따라 알려드렸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인유는 다급하게 상대를 불렀다. 인유의 손등에 붙어있는 터치 화면 속에 등장한 공단의 여성 직원은 눈을 깜빡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인유가 알았다고 한마디만 하면 곧바로 접속을 끊을 기세였다.
“너무 간략해서 무슨 얘기인지 얼른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러니까……, 제가 받은 시술을 취소해야 한다고요?”
“예. 그에 따라서 적절한 후속 치료를 받으실 것을 권합니다.”
“치료라니 어떤……, 아니, 애초에 이게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인가요.”
직원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저는 어디까지나 고지 의무만 다한 것이오니 자세한 사항은 개인적으로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직원이 전화를 끊자 화면의 색깔이 피부빛으로 되돌아갔다. 인유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견디다 못해 가까운 곳에 있는 건물의 벽에 어깨를 기댔다. 다리에도 힘이 빠졌지만 다행히 주저앉지는 않았다. 의료 공단 직원의 말이 문자 그대로일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심각한 일이 그리 금세 실현될 수는 없었다. 인유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손가락을 높이 들어 올리면 자칫 찔려서 깨질 것처럼 파랗고 선명한 하늘 아래 행인들은 제 갈길을 찾아 직소 퍼즐처럼 맞물리며 이동하고 있엇다.
인유는 심호흡을 하며 일의 순서를 정리했다. 우선 자신이 받은 시술의 공식 명칭을 알아야 했다. 인유는 왼쪽 손등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조작했다. [개인 정보 관리] - [의료 기록] 을 선택하자 [치료 기록] 과 [수술 기록]이 나왔다. 후자를 건드리자 십여 개의 목록이 떠올랐다. 인유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실수로 화면 우상단의 빨간 [지금 모두 업데이트] 버튼을 건드리지 않을까 겁을 먹으면서.
직원이 말했던 시술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정보를 갱신하기 전에 최신 소식을 검색하십시오] 라는 경고 문구가 깜빡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술의 이름은 [눈-704]였다. 인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수술이야말로 4년 전에 인유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그토록 중요한 수술명을 단번에 알아듣지 못한 것은, 사실 한 번 치료를 받고 나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고픈 소망의 반영이었다.
그런데 의료 공단은 3분에도 못 미치는 간단한 통화로 ‘취소’와 ‘후속 치료’를 말했다.
인유는 침을 꿀꺽 삼키고 연계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 결과를 시각 순으로 정렬하자 첫 머리에 의학/기술 뉴스가 올라왔다.
‘눈-704 시술과 관련한 기술특허 분쟁 해결. 눈-704는 4년 전 다이네틱스 사가 시각과 관련한 전반적인 손상을 획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시범 시술이다. 하지만 3년 전 이보공학이 눈-704 시술에 사용된 기술의 특허권을 주장하였고, 두 회사는 재판에 들어갔다. 이 재판은 장기 재판으로 분류되어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리될 때까지 미루어졌으나, 최근 다이네틱스 사가 자사의 기술을 정리하면서 소유권을 포기함으로써…….’
인유는 보통 때라면 두 줄도 이해하기 힘든 기술 관련 기사의 의미를 곧바로 깨달았다. 인유는 기사를 다급하게 위로 넘겨 결론을 보았다.
‘……이에 이보공학은 눈-704 소프트웨어의 즉각적인 삭제를 공표했다. 다행인 것은 현재 이 수술을 그대로 유지하는 피술자가 극히 적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의료 공단이 전하고자 했던 말이었다. 인유는 곧장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긴급 사태라고는 모르는 병원의 자동 응답과 씨름을 하고 ‘통화가 많으니 기다려 달라’는 말을 열여덟 번 들은 다음 마침내 간호사와 육성으로 통화를 할 때까지, 파란 하늘과 꺼진 가로등과 가지 끝에서 새잎을 밀어내고 있는 가로수와 행인들의 다채로운 의상을 미친 듯이 눈 안으로 욱여넣었다.
문혼 종합병원 시각과의 김상인 과장은 환자를 대하는 의사라기보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 같았다. 인유는 그의 말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하얀 의사용 가운과 팔각형 옷걸이와 자동으로 각도를 조정하는 베이지색 블라인드와 그 위에 쌓인 잿빛 먼지와 벽에 걸린 광고용 포스터와 길고 짧고 뭉툭하고 광택이 나는 간이 검사기구들의 생김새를 동공 안으로 마구 집어삼켰다.
김상인 과장은 인유의 진료 기록을 검색하고 간단한 사정 이야기를 듣더니 간호사에게 다음 환자들의 상담 시간을 20분씩 늦추라고 지시했다. 인유는 그의 이마에 자잘하게 퍼져있는 주름과 눈동자의 색깔과 코끝에서 번들거리는 기름을 눈으로 빨아들였다.
“자, 최인유 씨. 정확히 무얼 알고 싶으신 거죠?”
인유는 병원에 오는 동안 최대한으로 압축해 놓은 질문을 꺼냈다.
“눈-704를 삭제하면 어떻게 되나요?”
과장은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환자분의 경우는……, 선천성 시각 장애가 있었는데요. 사실 장애라기보다는 뇌의 광범위한 기능 상실에 가까웠어요. 사람의 시각정보는 최종 장소에 도착하기까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치죠. 환자분은 유감스럽게도 출생 당시부터 그 과정의 거의 대부분이 완성되지 못한 겁니다. 그걸 눈-704 시술을 통해서 복구시켰고요.시범 시술임에도 꽤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시각을 정상인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었고요. 그랬죠?”
인유는 회색 때가 묻은 의사 가운의 옷깃과 자신의 손과 손톱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말했다.
“네.”
“문제는 이 시술의 상당 부분이 소프트웨어적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종합 시술이다보니, 그 소프트웨어를 뇌에서 지우게 되면 단순히 시력을 잃는 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손톱의 분홍, 파랑, 그 밑을 덮고 있는 굳은살, 그토록 좋아하는 금은 혼합 디자인의 팔찌, 팔찌를 선물한 현종의 모습, 아니아니. 지금은 최대한 많은 걸 보아두는 게 중요해. 현종 씨는 이미 기억하고 있잖아. 내 눈에 그토록 깊고 또렷하게 심어 둔 사람은 없잖아. 그러니까 하나라도 더, 더 많은 걸 봐야 해.
인유는 그렇게 생각하며 반사적으로 의사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뇨?”
의사가 엄지손가락으로 콧등을 만지작거렸다.
“눈-704 시술의 정식 명칭은 ‘시각연합겉질 대체 및 장기기억 결합이식’이에요. 시각연합겉질은 시각정보가 뇌에 새겨지는 부위죠. 이 정보가 장기 기억과 작용 기억……, 음. 더 쉬운 말로 하는 게 좋겠군요.”
인유는 의사를 향해 귀를 활짝 열고, 눈은 그보다 더 활짝 열고서 눈동자를 바쁘게 굴리고 있었다. 하나라도 더 많이 보기 위해서.
“눈-704는 시각연합겉질을 새로 만드는 수술이 아니었어요. 뇌에 남아있는 장기기억 공간 일부를 시각정보 기록용으로 끌어다 쓴 셈이죠. 소프트웨어적으로 걸러서요. 따라서 눈-704를 지우면……, 4년 전 시술을 받은 다음부터 지운 시점까지 보고 기억했던 모든 시각 기억이 함께 사라져요.”
인유의 눈동자가 급속 냉동이라도 된 것처럼 단숨에 얼어붙었다가 천천히 과장의 얼굴 쪽으로 향했다.
“……네?”
“그러니까……, 지금 그렇게 바쁘게 하나라도 더 보아두려고 해봤자 전부 지워진다는 얘기예요.”
인유는 순간적으로 진료실 안의 공기가 모조리 빠져나간 것처럼 숨이 막혔다.
“그, 그러면 전 어떡해야 하죠?”
과장은 기계적인 희망을 담아 말했다.
“물론 그 기억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어요. 간단한 작업은 아니지만요. 우선 환자분의 기억 공간을 구성하는 시냅스와 화학물질 패턴을 분석하고, 그걸로 백업용 틀을 만들어야 해요. 그 다음에 눈-704 소프트웨어의 가상머신을 만들어서 이식하고, 시각 기억을 옮겨 놓고, 환자분의 눈-704를 지우고, 기억을 뇌에 도로 옮기면 돼요. 문제는…….”
문제는……. 인유는 마음속으로 과장의 말을 받아적고 있었다. 과장은 다시 한 번 인유의 의료 정보를 참조했다.
“최인유 환자가 기초지역보험 대상자라는 점이에요. 혹시 그 밖에 다른 보험을 드셨나요?”
“……아뇨.”
“그렇군요.”
이번에는 과장이 인유의 질문을 기다렸다. 인유가 물었다.
“기초보험 적용 비용을 빼면 전부 얼마나 들까요?”
인유는 의사가 말꼬리를 얼버무리지 못하도록 덧붙였다. “대략요.”
“어디까지나 대략이고 실비용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거 아시죠?”
“네.”
“검사에 필요한 패턴 분석비는 기초보험 적용이 돼요. 따라서 절반인 300만 부담하시면 될 테고요. 백업용 틀 제작, 가상머신 제작, 이건 소프트공학부의 일이라 수가가 높아요. 약 5200 정도가 들거예요. 어디까지나 대략이에요. 백업과 복원 공임이 약 200 정도, 기타 비용이 1000 정도에 만약에 우리 병원에 입원한다면 입원기간 동안 병실료 등 부대 비용이 드니까 다 합치면…….”
“대략 1억이겠네요.”
“맞아요. 그쯤 되겠네요. 기초보험밖에 없으니 어쩔 수가 없군요.”
과장은 나중에 환자가 말이 다르다고 소송을 걸지 않도록 현재 기술로 확인된 손실률을 냉큼 덧붙였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인유는 1억이라는 숫자 다음부터 다른 얘기는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인유에게 1억이란 숫자는 불가능과 동의어였고, 불가능과 직면한 사람이라면 보통 그러게 마련이었다.
애인인 현종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고 해서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인유도 그런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현종은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한쪽 벽이 모조리 유리로 되어 있어 시야가 탁 트인 커피 전문점에 앉아있었다. 현종은 인유의 얘기가 끝났을 때 빨대로 아이스커피를 마시던 중이었다. 현종이 반쯤 입을 벌리자 빨대를 따라 올라가던 커피가 재빨리 컵 속으로 돌아갔다. 컵의 표면에 맺혔던 물방울이 현종의 손가락을 따라 힘없이 흘러내렸다.
인유는 얼마 뒤에 모조리 지워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그 모습을 억지로 바라보았다.
“내가 여기저기서 끌어모은다고 해도 3000이 채 안 될 텐데.”
현종이 말했다. 인유가 머리를 저었다.
“그러자고 얘기하는 거 아니야. 게다가 정말로 비용이 1억만 들 리가 없어. 어차피 내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야.”
현종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특수 질병에 해당되지는 않고? 그런 경우에는 사제 보험을 들지 않아도 혜택을 받을 수 있잖아?”
인유가 고개를 저었다. 가게 안의 세련된 인테리어를 이루고 있는 장식품과 의자와 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유는 곧 증발할 기억이 싫어서 일부러 눈을 감았다가 뜨고 현종을 보았다.
“알아봤어. 해당 사항 없어.”
“그럼……, 어떡하려고? 시력을 잃으면……. 나는 그게 어떤 건지 모르지만…….”
인유는 현종이 하려는 말을 모조리 짐작할 수 있었다. 네가 꿈꾸던 디자이너 일은 영영 끝이잖아. 우선 그 회사에서 하고 있는 임시직 보조일도 그만둬야 하고. 아니, 그런 것보다 삶이 완전히 달라질 텐데 그 절망을 견뎌야 하잖아.
현종이 인유의 손을 잡았다. 인유는 그 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걸 알고 있었다. 소프트웨어가 지워지면 현종이 떠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인유의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잡고 싶었다. 결정을 내리는 건 어디까지나 현종인데도, 만약 현종이 떠나겠다고 하면 이를 악물고 보내주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인유는 손가락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현종의 손을 움켜쥐었다. 난 그 절망이 뭔지 알고 있어. 한 번 빠져나왔는데, 그리고 잊었는데, 밤에도 암흑이 싫어서 불을 전부 켜놓고 자는데.
4년 전이라는 이름의 검고 숨막히는 기억 속으로 돌아가라고? 싫어.
“게다가.”
인유의 목이 점점 잠겼다.
“전역 업데이트가 있잖아.”
전역 업데이트는 선택이 아니었다. 예정된 업데이트를 앞당길 수는 있어도 미룰 수는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오는 신체 해킹용 악성 소프트에 대처하기 위해서. 치료와 시술 목적으로 몸 안에 설치되어 있는 소프트웨어들을 최대한 신속하게, 설사 사용자가 바쁜 생활 때문에 잊더라도 자동으로 설치하기 위해서. 누구나 일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마다 강제로 업데이트를 해야 했다. 모든 사람이 무선망에 연결되어 있었으니 예외는 없었다. 시간은 일요일 밤 11시 55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1시간 5분 동안이었다.
오늘은 화요일이었다.
“눈-704도 이번 일요일에 지워진다는 거야? 시간이 닷새 밖에 없다고?”
인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현종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을 보았다.
현종은 탁자 모서리를 두 손으로 잡고 손톱이 하얘질 때까지 힘을 주었다.
“그럼 돈이 있더라도…….”
“수술 순서를 당기는 데에 3000이 든다더라.”
인유가 맥없이 웃었다. 현종은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인유는 현종이 너무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게 얼른 말을 이었다.
“그래서 사설 업체를 찾아갈 거야.”
현종은 말뜻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뒤늦게 의미를 깨닫자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잖아.”
“알아. 그런데 다른 수가 있어?”
인유는 혼란한 마음을 최대한 다독거렸다. 지금 그녀가 사설 업체에 맡기려는 건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두뇌와, 그 속에 담긴 자신의 일부였다. 사설 업체가 얼마나 위험하고 그 부작용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경고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한 달이 멀다 하고 방송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경고가 잦다는 건 그만큼 사설 업체가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완전민영화된 의료 시스템이 발달한 의학기술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죽지 않아도 될 병에 걸린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죽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현종씨, 난 4년 전이 어땠는지 또렷이 기억해. 정말로 들어내고 싶은 기억은 바로 그거야. 그건 불가능하지만. 5일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울기만 했다가는 다시 그리로 돌아가야 해. 그런데 사설 업체는? 적어도 그 결과는 불확실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테고. 난 뭐든지 해보고 싶어. 가만히 앉아서 새까만 악몽으로 끌려 들어가긴 싫어. 정말이야. 그리고…….”
인유가 현종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현종은 인유의 몸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알아챘다.
“지금 이건 나 자신한테도 하는 말이야. 거울을 보고 혼자 중얼거릴 순 없잖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정 안개에 대고 말을 하는건 싫어. 그러니까.”
인유가 바짝 마른 혀를 억지로 움직였다.
“같이 가줘. 그 결과가 끔찍해서 현종 씨가 날 떠난다고 해도 아무말 하지 않을게. 내 앞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적어도 그건 같이 봐줘. 업데이트가 되면 난 그 순간에 본 시각기억도 전부 잊게 돼. 하지만 현종 씨에게는 남잖아. 그걸 같이 봐 줘.”
인유는 눈을 감았다. 곧 기능을 상실할지도 모르는 눈이 뜨거워졌다. 인유는 그 열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나 너무 이기적이지.”
현종은 잠시 기다렸다가 그 말에 운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애인이란 건 원래 서로 악착같이 이기적으로 구는 거야.”
그 사설 업체는 생각보다 밝고 넓었다. 그러면서도 발품을 팔고 입소문을 더듬어보지 않고서는 찾기가 어려웠다. 인유와 현종은 업체의 입구에서 잠시 주저하다가 결심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40대 중반의 남자가 손등 화면과 두 개의 홀로그램 화면과 하나의 액정 화면을 번갈아 들여다보고 있었다. 현종이 헛기침을 하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오셨죠?”
“의료용 시술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생겨서요.”
남자가 인유와 현종을 위 아래로 훑어보고는 고갯짓으로 가게 안쪽을 가리켰다.
“들어가시죠.”
인유와 현종은 좁은 통로에 놓인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남자는 차가운 자양강장제를 두 병 꺼내더니 하나는 자신이 갖고 다른 하나를 내밀었다.
“시술 상담을 받을 분이 어느 쪽이에요?”
인유가 살짝 손을 들자 남자는 음료수를 현종에게만 건넸다.
“혹시라도 지금 당장 시술을 하게 되면 카페인이나 당 농도가 영향을 줄 수도 있어서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인유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들어봅시다.”
인유는 가능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남자는 눈-704가 무엇인지 손등 화면에서 검색을 해보면서 눈빛이 달라졌다. 그 다음부터는 인유에게 질문도 던졌다. 이야기가 끝나자 두 사람을 기다리게 두고는 분주하게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30분이 지나자 인유와 현종은 이 남자가 자신들의 존재를 잊은 건 아닌지 의심했고, 업체를 잘못 찾았나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남자가 팔자걸음으로 두 사람에게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의료 기록을 전부 나한테 보내봐요. 아, 물론 이건 불법행위예요. 낯선 사람에게 의료 기록을 공개하지 말라는 얘기 잘 알죠? 이게 바로 그런 경우예요. 기록을 보내기 싫으면 돌아가시면 되고, 우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이가 되는 거예요.”
인유는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고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런 각오는 당연히 하고 왔어요. 그런데 이 사람 기록은 왜요? 시술은 내가 받을 건데요?”
“그것도 나한테 맡겨줘야겠어요. 기록을 보고 확인할 게 있거든요. 물론 두 사람의 의료 기록은 일이 끝나고 지워요. 남자분 기록은 시술이 끝나면 바로, 여자분 기록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3개월 뒤에. 이 말을 믿고 안 믿고도 어디까지나 자유예요.”
인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현종을 보았고 현종은 애인을 안심시키려고 웃으면서 마주보았다.
“기록을 받을 계정 주소나 알려주세요.”
남자는 두 사람의 의료 기록을 받자 이번에는 그 자리에서 손등 화면만으로 몇 가지를 검사했다. 그리고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옛날 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인데,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요. 뭣부터 듣고 싶어요?”
인유는 얼른 답했다.
“나쁜 소식부터요.”
남자는 조금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우선 병원에서 해준다던 시술을 여기서 하는 건 불가능해요.”
인유와 현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식을 내뱉었다. 두 사람의 몸에서 희망이 모두 새어 나갔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시간과 돈 때문이죠. 병원에서 1억 3000을 불렀다고 했죠? 우리가 똑같은 시술을 하면 9000 정도가 나와요.”
남자는 거기까지만 말을 해놓고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현종이 고개를 저었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시간적으로도 불가능해요. 나쁜 소식을 먼저 말해달라고 해서 다행이었어요. 왜냐면 좋은 소식이 그리 좋지 않은 소식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마……. 병원에서는 절대로 해주지 않을 시술이기도 하고요. 업데이트가 오늘 밤이죠? 흐음, 거기 고객분은.”
남자가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4년 전부터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을 모조리 잃는 것과 그 가운데 몇 가지라도 건질 수 있는 길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하겠어요?”
“몇 가지라도 건진다는 건 무슨…….”
“이를 테면, 어디까지나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예를 드는 건데요. 고객께서 여기 있는 이 종이의 생김새는 잊고 싶지 않다고 하면 보존할 수 있다는 거예요. 물론 그 수에는 제약이 있고, 한계가 어느정도일지는 시술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어요. 단, 아주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말이죠.”
“그 ‘중요하다’는 건 좋은 소식인가요, 나쁜 소식인가요?”
인유가 물었다.
“부작용이 있어요. 영구적인 건 아니지만요. 어쩌면 그 부작용 때문에 4년 전보다 더 먼 옛날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영향은, 전적으로 고객분께서 어떤 시각기억을 보존하는지에 달려있어요.”
인유가 침으로 입술을 적시고 말했다.
“어떤 부작용인지 분명하게 말해주세요.”
남자는 눈-704의 원리에 대해, 시각 기억에 대해, 부작용의 정체에 대해 말했다. 이해는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건 결심과 결정이었다. 그리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인유는 결정을 내렸고, 현종은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쥐고 시술을 해달라고 말했다. 남자는 보일듯 말듯 미소를 지었다.
“준비에 30분 정도 걸려요. 치료가 끝나면 업데이트가 되고 눈-704가 삭제될 때까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될 텐데, 그때까지라도 세상을 ‘보고’ 싶으면 돌아다니다가 와요.”
인유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물었다.
“병원에서는 왜 이런 걸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남자는 등을 돌리고 각종 소프트웨어들을 조작하면서 씁쓸하게 말했다.
“기억 편집이 불법이기 때문이에요. 편집과 보존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불확실한 임시방편은 의료비를 할당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남자는 그 이상은 얘기하지 않았다. 현종과 인유는 남자의 예전 직업이 무언지 짐작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전역 업데이트는 폭풍처럼 왔다가 황사처럼 지나갔다.
인유는 현종의 손을 잡고 나란히 누워서, 집 안의 모든 불을 켜놓은 채 업데이트를 받았다. 인유가 4년 동안 보아왔던 사물과 사건과 장면과 영상과 일상과 세계가 폭풍 속에서 찢어지고, 부서지고, 해체되고, 맞부딪히다가 노랗고 따갑고 불투명한 황사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 황사는 위나 아래나 옆으로 흐르지 않고 인유의 뇌에 있는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을 세척하다가 지워졌다. 그리고 인공 망막과 시각연합겉질을 연결해주는 소프트웨어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인유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 앞과 사방을 이루고 있는 것은 먹물처럼 진하고 무한히 튼튼한 어둠뿐이었다.
그래도 4년 전과는 달랐다. 인유에게는 시각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 기억들은 현종의 것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것이었고 이제 인유의 것이기도 했다.
“눈-704는 언어의 기억공간을 빌려서 시각 기억을 저장하는 소프트웨어예요. 물론 이건 본래 언어와 시각의 기억이 완전히 분리되는 건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완전히 같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로 연결을 시켰던 거예요. 업데이트를 하면 그 연결이 끊어지고, 고객분이 본 건 하나도 남지 않아요.”
그래서 남자는 인유와 현종의 뇌를 연결시킨 다음 인유에게 원하는 시각 기억을 고르라고 했다. ‘바다.’ 인유가 맨 처음 고른 것은 바다였다. 남자가 만든 시술 소프트는 현종이 떠올린 바다의 모습을 골라 지워지지 않을 인유의 언어저장소에 덮어씌웠다. ‘태양.’ 현종이 본 온갖 태양들이 인유가 알고 있는 태양 위에 내려앉았다.
숲. 지구. 밤하늘. 안개꽃. 용암. 다리. 산. 불꽃놀이. 촛불…….
불꽃놀이가 한계였다. 그렇게 해서 인유는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했지만, 바다라는 개념을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태양의 모양새를 떠올릴 수 있었지만 묘사할 수 없었다. 그게 바로 부작용이었다.
인유는 현종을 고르지 않았다. 현종의 모습보다는 현종이라는 사람이 소중했기 때문에. 인유는 인유를 고를 수 없었다.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인유의 시각 기억은 지워진 것과 현종의 시각 기억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지워진 공간에는 암흑이 가득히, 추호의 빈틈도 없이 들이찼다.
“새로 배우세요. 남자분이 도와주면 돼요. 여자분이 잃은 게 뭔지 알고 있으니까요. 언어와 개념을 익히면 언젠가는 시각 기억과 하나가 될 거예요.”
남자는 그렇게 알려 주었다. 남자의 그 말은 조금의 손실도 없이 인유와 현종의 뇌에 보존되었다.
두 사람은 업데이트가 완전히 지나간 뒤에 마주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 손으로 전달되는 것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언어로 심을 수도 없었으므로 그 뒤로 언제까지고 업데이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