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원도를 무대로 잇달아 발생한 집단 자살 사건이 한국 사회에 던진 충격은 적지 않았다. 4월 한 달에만 12명이 세상을 등진 일련의 사건은 생면부지의 사람이 모여 집단 자살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이슈가 됐다.
강원도 집단 자살 사건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인터넷이었다. 자살 유형, 고통 수준, 치명도를 가늠할 수 있는 정보들을 간단한 웹 서핑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조건은 자살을 결행하려는 사람들에게 촉매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거기에다 ‘혼자 가긴 외롭다. 같이 가자’라는 ‘독려’는 자살 의지는 있지만 자살 시도에는 신중했던 사람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인터넷을 통한 집단 자살 사건이 구체적으로 등장한 건 2000년 경이다. 국토 전체에 초고속인터넷망이 보급돼 사회 문화적 변화가 일기 시작했던 시점이다. 2000년 12월에 인터넷 자살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20대 남자 두 명이 강릉의 모 여관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자살을 돕거나 같이 자살을 한 사례가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들까지 추리면 집단 자살의 사례는 일반인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을 것이다.
자살, 특히 집단 자살이 인터넷이라는 유통망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인터넷에선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터넷을 무대로 활동하는 네티즌들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오프라인 세계에서는 얘기하기 껄끄러운 소재인 자살에 대한 생각과 욕구를 쏟아내기에 인터넷만 한 공간이 없는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당국의 단속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집단 자살이 사회 문제화된 2000년 이후 자살을 충동질하는 사이트가 대거 폐쇄되고, ‘자살’은 인터넷 검색 금칙어가 됐는데도 집단 자살 사건이 다시 대규모로 발생한 점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올해 5월 발표된 정부 대책은 여전히 실시간 자살 정보 삭제나 자살 방지 교육 등 지금까지 이어온 조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사이트 폐쇄됐지만 자살 정보 여전히 유통
우석대 심리학과 문성원 교수가 한국청소년개발원을 통해 2003년 펴낸 ‘자살 사이트의 생성 및 이용, 그리고 운영’이라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때 한국에서 유행하던 전형적인 자살 사이트는 대부분 사라졌다. 괴기스럽고 잔인한 자살 사진이나 동영상은 물론 사망진단서, 자살자의 노트가 즐비했던 이 사이트들은 현재 찾아볼 수 없다.
문제는 자살 사이트라는 간판은 내렸지만 자살에 관한 정보는 여전히 인터넷에서 생산·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논문에서 문 교수는 “(자살 정보의 유통이) 자살을 테마로 구성된 사이트보다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게시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각 인터넷 포털의 상황은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자살에 관한 정보를 찾고 나누는 행위를 차단하는 별 다른 장벽을 찾을 수 없다. 여기에는 ‘이상한’ 금칙어 시스템이 한 몫을 한다. 현재 국내 주요 포털 사이트에선 ‘자살’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지식 공유 코너는 물론 웹 문서, 블로그, 카페가 모두 검색 불능에 빠진다. 하지만 연관된 검색어를 한꺼번에 치면 이 같은 금칙어 방침을 쉽게 피할 수 있다. ‘자살 수면제’와 같은 검색어 입력 방식에 속수무책이라는 얘기다.
인터넷에선 자살을 결심하게 된 동기, 자살 시도 체험담, 약물 구입 방법까지 자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을 볼 수 있다.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하면 고통스럽다고 들었거든요. 진짜인가요?’라는 질문에 시도 경험, 느낌 등을 생생히 적은 답글이 검색된다.
심리학계에서 폭넓게 인정받는 ‘활성화 확산 이론’에 따르면 처음에는 그다지 강한 자살 의도를 갖지 않고 호기심에 접근한 사람이라도 죽음과 관련한 여러 게시물에 노출되면 결국 자살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과 의미적으로 관련 있는 여러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서 ‘점화’된다는 얘기다. 바짝 마른 낙엽 위에 불씨를 던지는 격이다.
선정 보도-사회 유대감 약화가 문제
학계에선 최근 이어진 자살의 특징이 집단화라는 점에 눈길을 집중한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자신이 부닥친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경향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며 “인터넷이 이 같은 이들을 잇는 도구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황 교수는 인터넷에 이번 집단 자살의 책임을 전적으로 지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은 분명 효과적인 통신망 역할을 했지만 자살이라는 현상을 만든 근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자살 정보를 지우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 대책이 큰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얘기다.
황 교수는 언론이 자살 사건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하는 관행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살은 극도로 두려운 행위다. 하지만 개인이 자살에 이르게 된 과정을 반복적으로 습득하면 두려움이 완화된다는 것. 언론이 바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 안재환 씨의 자살 도구로 보도된 연탄 화덕이 강원도 자살 사건에 등장한 것처럼 모방 의식과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태도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만들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자살 사망자는 1995년 인구 10만 명 당 11.6명이었지만 2003년엔 24.1명으로 두 배 넘게 늘어났다. 2003년 이후 현재까지 비슷한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자살률은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이웃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을 통한 집단 자살이 청소년층에도 파고 들었다. 한국과 유사한 교육 환경을 지닌 일본에서 이 같은 일이 잇따르고 있다면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통합 의식과 유대감이 약화된 한국 사회의 현실이 자살의 근본 원인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개인의 존재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범사회 단위에서 시급하다는 얘기다. 척박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자살이 갈등을 날려 보내는 편리한 해결책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우려다.
인터넷을 통한 집단 자살은 자살하게 만드는 사회의 단면이다. 인터넷에서 자살 징후를 보이는 사람을 전문기관에 알려 적절한 상담과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은 물론 근본적으로는 자살이라는 선택을 할 이유가 없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