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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틈에 수학이 약학으로 바뀌고

약학과 3학년의 생활은 고3과 비슷하다. 기초과학에서 응용과학까지 모두 섭렵하려면 어쩔 수 없어…

향기로운 봄냄새를 맡으며, 곧이어 눈앞에 펼쳐질 봄꽃 만발한 관악캠퍼스를 생각하니 즐거움이 감돈다. 관악의 겨울이 유난히 춥기때문일까.
관악캠퍼스의 봄꽃은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주종이다. 그런데 나의 여고시절의 교정은 5월만 되면 향기 그윽한 라일락이 많이 피었다. 고3 때는 지루한 자율학습의 피곤함을 교정의 아름다움으로 달래곤 했다. 운동장 구석의 벤치에 앉아 막연히 미래의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중학교 때만해도 나는 훌륭한 수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결심은 점차 희석되었다. 수학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발견할 수 없었기에 특별한 학문적 재능을 요구하는 학자보다는 수학선생님이 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87년 대학입시에서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지원했으나 낙방의 쓴 잔을 마시고 재수의 길을 걷게 됐다.

눈치작전으로 지원했지만

그로부터 1년을 다시 공부하는 동안 나의 생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가 교사가 되고자 하는 까닭이 참교육을 실천하겠다는 교육에의 의욕 때문이 아니라 학문적인 욕구를 그럭저럭 충족시켜 보겠다는 안일한 의도로부터 나왔음을 깨달은 것이다. 또 내게 교사로 일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가 하는 회의와, 나의 미래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인 감각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자가 갖는 사회적 한계, 공부를 계속하고자 할 때 부딪칠 어떤 제한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막연히 공부를 많이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지만 거금을 투자해 유학을 갈 수 없는 가정형편도 고려해야 했다. 또한 순수과학의 이론적인 공부가 웬지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았고, 취업의 길을 걷고자 했을 때 부딪치게 될 구직난이 두렵기도 했다.

화학교과에 대해서도 막연한 흥미를 느끼고 있던 차라 나는 전공을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성적은 충분했지만 대부분의 재수생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불안감 때문에 나는 소위 '눈치작전'을 감행했다. 매일 접수상황을 지켜본 뒤 약학과와 제약학과 중에서 지원자가 덜 몰리는 약학과에 맨 마지막 날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비교적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입학을 앞두고 나는 약학과는 무엇을 배우는 학과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학과명칭이 암시하듯이 약학과에 입학하면, 어느 병에는 무슨 약을 사용하고, 이 약은 어떻게 만들고, 어떤 것을 섞으면 무슨 약이 되더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배울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금 열거한 내용들은 4학년 때나 주로 배우는 것이고 1, 2, 3학년 때는 언뜻 생각하기에 약과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과목들에 대해 배우게 된다. 물리 화학 생물학 미생물학 등 고전적인 과학은 물론이고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유전과학까지 포괄적으로 공부한다.

이런 이유로 매우 광범위하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자신의 과학과목에 대한 적성이 어느 쪽에 있는지 정확히 깨달을 수 있게 된다. 학부때 정확하게 자신의 적성을 파악해 두는 것은 대학원에 진학해 참다운 전공을 선택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서울대 약대의 대학원은 매우 세부적인 전공으로 다시 나누어진다. 약품 분석화학교실 미생물학교실 생화학교실 등 11개로 분리되는 것이다. 감히 세계적인 연구시설을 갖추었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단과대학으로서는 상당히 많은 기기와 설비를 갖추고 있고 연구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학부기간에는 다양한 과목을 넓게 배우나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하는 것이 단점이다. 그러나 대학원 과정에서는 특정한 전공과목을 깊이 공부할 수 있다.

대학과 중·고등학교 시절의 학교생활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든다면 획일성의 유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같은 시간에 등교, 아침자습, 1교시, 2교시…, 점심시간, 하교등 한학급 60명 전원이 매일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지만 대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나는 대학생을 생활유형에 따라 몇부류로 구분지어 본 적이 있다. 서클활동에 자신의 거의 모든 시간과 정열을 쏟는 사람이 있고, 학과의 행사나모임을 나서서 주관하는 사람, 도서관에서 공부에만 전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중간 형태의 사람도 많이 보았다.

나는 이들과는 다른, 좀 드문 유형에 속한다. 대학원생의 조수로 나의 대학생활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실험에 관한 지식을 배우기 위해 대학원생들의 실험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선배들과 함께 일하고 즐거워하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때로는 힘겹고 위험한 단순노동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제대로 실험결과가 나왔을 때의 기쁨은 그 힘겨움을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서울대 약학과 홍선의
 

변리사로도

흔히 약대생은 졸업한 후에 약국을 개업하거나 병원약국에서 약사로 근무한다 또 제약회사에 취업하는 선배도 있고 변리사 자격증을 따로 취득, 특허업무 등에 종사하는 선배도 있다. 물론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계속하는 선배도 많다.

나는 입학할 당시 약학과와 제약학과의 다른 점에 대해 궁금히 여겼다. 그러나 입학 이전에는 그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알만한 사람에게 물어 봐도 거의 비슷하다는 대답만 들려줄 뿐이었다.

입학후 느낀 두 학과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교과과정에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약학과는 약의 사용에 중점을 두고 있고, 제약학과는 약의 제조에 관심을 기울인다. 약학과는 생물과 관련된 교과목이 많으므로, 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고 화학에 흥미가 많은 사람은 제약학과를 택하는 편이 나으리라 생각된다.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대학 약대 내에는 서클이 무척 많다. 노래하는 서클, 악기 다루는 서클, 편집부, 학술적인 성격의 서클, 운동서클 등 한 학년이 80명에 불과한 것에 비해 참 다양하다. 작은 모임도 많이 있다. 이것은 대학에 정식으로 등록하지 않은 소규모의 서클이다.

이처럼 모임이 많기 때문에 과내에서 학우간 또는 선후배간의 만남의 기회가 많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두개의 작은 모임이나 서클 등에 가입하고 있다.

MT나 야유회도 우리의 지친 머리를 식혀 주는데 한 몫을 톡톡히 한다. 정말 우리 과학생들의 심신은 많이 지쳐 있다. 수업과 실험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약학과 3학년쯤 되면 마치 고3 때의 시간표와 비슷한 일정을 갖게 된다. 기초과학에서부터 응용까지 모두 배우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가끔 불평이 터져나올 때도 있다.

밤 늦게까지 실험하고 몸이 피곤할때는 짬짬이 머리를 식혀가며 졸음을 이겨내고 있다. 어려울 때는 서로 도와가면서. 많은 수업과 이수학점에도 불구하고 약대 사람들은 메마르지 않아서 좋다.

이제 3학년의 시작이다. 앞으로 있을 수업·실험에 대해 기대와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동물실험을 해야 하고, 약초원에 채집도 가야 한다. 새로이 배우게 될 과목중 흥미로운 과목이 참 많다. 시간시간을 열심히 보내면 모든 것이 잘 되겠지.

좁은 방, 희미한 스탠드 밑에서 두어시간 앉아 있었더니 머리가 둔해진 느낌이다. 차고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러 실험실 창가로 나가야겠다. '우두두둑!'하고 기지개를 켜면서.

199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홍선의
  • 사진

    김용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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