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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가 옆 학교한테 완전히 민주화당했잖아.”
“어제 게임을 했는데 초반에 우리 팀이 상대팀한테 민주화됐지만 결국 역전승했지.”
으잉?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요즘 인터넷이나 일상생활에서 청소년들이 많이 흔히 쓰는 말이랍니다. 민주화라고 하면 사회가 민주주의로 발전한다는 의미일 텐데, 그 의미를 위의 대화에 대입해 보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넷에서 흔히 접하는 민주화는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참 슬프게도 위 대화에서 나온 민주화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의미가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본래 인터넷에서 다소 보수적인 발언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 글을 썼다가 악플(악성 댓글)과 반대하는 댓글이 엄청나게 달려 글쓴이를 사실상 매도(인터넷에서는 ‘털렸다’라는 표현이 흔히 쓰입니다)해 버리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공식 명칭인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폄하하는 인터넷상 글을 지적하고 반박하는 글을 올린 데서 비롯됐습니다. 보수적인 발언을 무수한 댓글로 반박했다는 뜻에서 ‘민주화’란 표현이 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터넷 공간 여기저기로 이 말이 퍼지면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가 옆 학교한테 민주화당했다는 말은 소위 ‘일진’들끼리 다툼에서 졌다는 의미로, 게임에서 민주화당했다는 말은 공격당해 기지가 파괴됐다는 뜻입니다.

‘자짤(셀프사진)’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 등 인터넷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용어들이 나옵니다. 대부분 10대 청소년들이 말을 줄여 신조어를 만들어냅니다. ‘행쇼(행복하십쇼)’처럼 심지어는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나온 말이 인터넷에서 퍼지기도 합니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문화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과 우리말 파괴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대립합니다.

그런데 민주화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바꿔 사용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특히 이런 말이 퍼질 때 대부분 무수히 많은 악플이 따라다닙니다. 점잖게 글의 논리나 내용을 지적하기보다는 인신 공격이나 비하성 발언들이 주를 이룬다는 겁니다. 암투병 중에도 오디션프로그램에서 1위를 한 가수가 지난달 투병 끝에 사망한 사건을 두고 벌어진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악플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숭고하게 지켜져야 할 가치인 ‘민주화’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또는 변질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한 때 악플이 현실의 불만을 배설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심각성을 더하고 있는 최근 현상을 심리과학자들이나 정신건강의학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반사회적 성향과 강박증, 대응에 대한 공격 성향 강화 등으로 설명합니다. 악플을 반복할수록 다른 사람의 반응에 더 자극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이 행동이 반복되면서 중독되는 병리현상을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배설 문화쯤으로 여겨졌던 악플이 이제는 병리현상으로 악화됐다는 것이죠.

또 자신의 존재감이 ‘대응’ 정도에 따라 일시적으로 높아지는 착각에 빠지기도 쉽다고 분석합니다. 한번 두 번 반복한 악플 행위가 다른 이들의 관심을 받고 그 관심이 자양분이 되어 점점 더 자극적인 악플을 달게 되는 것입니다. 사이코패스 성향과 중독 증상이 한꺼번에 발현되는 셈입니다. 민주화와 같은 신조어(엄밀히 말해 의미가 인터넷에서 변질됐죠)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신조어나 줄임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는 문화 현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또래문화 정도로 말이죠. 그러나 타인이, 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악플과 신조어는 다시 한번 곱씹어봐야겠습니다.

201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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