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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남들 앞에서 유식해 보이고 싶다면 역사에 관심을 가져보면 좋다. 시쳇말로 ‘깨알같이’ 상세하게 복원해낸 과거 사건은 읽거나 듣는 사람에게 감탄과 함께 묘한 쾌감을 준다. 디테일의 힘이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어떤 대상에 대해 세세하게 알고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굉장히 유식하다고 생각한다. 별자리를 예로 들어보면, 북두칠성이나 오리온자리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큰곰자리나 천칭자리 발견한 역사를 함께 들려주면 굉장히 재미있어 한다. 다만 주의할 게 있다. 너무 깊이, 전문적으로 다루면 안 된다. 그럼 머리가 아프다고 느끼기 쉽다. 별자리를 구성하는 별의 겉보기 밝기와 실제 밝기가 왜 다른지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이미 듣는 사람의 마음은 다른 우주로 가버린다(지금도 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흥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만 가볍게, 하지만 자세하게 묘사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가장 좋은 대상은 역시 역사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는 또 안 된다. 지루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럼? 자연의 역사를 말하면 된다. 우주의 탄생, 태양의 성장, 별의 운명! 문제는 이런 분야는 너무나 넓기 때문에 한 사람이 상세히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 이미 좋은 책이 많이 나와 있어 새로운 책이 성공하기도 어렵다. 과학책계의 레드오션이다.

그렇지만 이런 레드오션에서도 독특한 아이디어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세한 설명으로 튀는 책이 새로 번역돼 나왔다. 크리스 임피 미국 애리조나대 천문학과 교수의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다. 임피 교수는 우리나라에 번역돼 있는 몇 안 되는 우주생물학 입문서인 ‘우주생명오디세이’의 저자로, 우주와 생명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대표적인 박학자다. 입담도 좋다. 세상의 과학책을 농담이 많은 책과 없는 책으로 나눈다면, 아마 이 책은 농담이 많은 책 중 최상위에 속할 것이다(다만 이 영미식 농담이 재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덕분에 독자는 영화를 빠르게 돌리듯 맹렬한 속도로 사건을 읽을 수 있다.
시간이나 공간이 자유자재로 신축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런 느낌은 이 책의 내용이나 구성과 잘 어울린다. 우주라는 시공간의 역사를 탐색하기 위해 임피가 선택한 방법은 시공간여행이다. 우리 인류와 거리로나 정서로나 가장 가까운 달에서 시작해, 우주 전체의 얼개를 품고 있는, 한 변이 3억 광년 크기인 작은 씨앗 우주, 은하와 암흑물질, 우주 팽창과 암흑에너지까지 지금의 우주를 있게 한 요소들을 종횡무진 누빈다. 친숙한 좁은 장소에서 큰 우주로, 중력이 작은 천체에서 큰 블랙홀로, 빠른 공간에서 느린 세계로 시간과 공간이 줄었다 늘었다 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소개하는 책에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소재는 다중우주다. 우리 우주가 끝이 아니라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상상력의 극치다. 우주 역사 자체를 우주 바깥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다중우주는 과학자가 묘사할 수 있는 우주 역사의 종착역이다.

이 책은 국내에서 약 일 년 전에 번역 출간된 또 다른 책과 짝이다.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는 이 책과 반대로 우주와 물질, 시간이 과연 끝이 날 수 있을지, 끝이 난다면 어떤 식일지를 상상하고 있다. 물론 철저히 과학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추론이다. 또 종말이나 끝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상이 끝나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알려면 우주가 어떻게 이뤄져 있으며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시작되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책은 쌍둥이이며, 서로 그리스 신화 속 이면신 야누스의 앞 뒤 얼굴과 같은 관계다. 같은 작가가 이렇게 쌍둥이 책을 기획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두 책은 다 국내 최고 수준의 물리학 번역가와 우주생물학 전문가가 번역에 참여했으며,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는 2012년 아태이론물리센터 올해의 과학책 중 하나로 선정됐다.

201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글 윤신영 기자, 사진 고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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