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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일을 어렵게 하는 매력, ‘골드버그’



제목이 이상하다. 쉬운 일을 어렵게 한다? 이 복잡하고 힘든 세상, 어려운 일을 쉽게, 더 쉽게 해도 모자랄 판에 왜 어렵게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일단 해보면 헤어나올 수 없는 ‘느림’의 미학이 있는 분야가 있다. ‘쓸데없는 고퀄’이 미덕으로 칭송 받고, 복잡하고 엉뚱할수록 찬사를 받는 기계, 골드버그 장치다.
 

골드버그는 19세기에 태어난 미국의 카툰 작가 루브 골드버그의 이름을 딴 장치다. 원래 샌프란시스코의 상하수도를 고치는 엔지니어였던 골드버그는 자신의 장기였던 만화를 그리기 위해 신문사로 자리를 옮겼다. 만평을 그리던 골드버그는 희한하게도 아주 쉬운 일을 거창하고 복잡하게 하는 이상한 만화를 선보였다. 예를 들어 이를 뽑을 때 그냥 실로 감아 뽑는 게 아니다. 깃털로 새를 간질이면 새가 움직이면서 이고 있던 술병을 엎지르고, 다람쥐가 놀라서 쳇바퀴를 돌린다. 쳇바퀴가 돌며 축음기를 연주하고, 이런 식으로 기계의 움직임을 몇 단계를 더 거친 뒤 마침내 대포를 발사한다. 이는 어떻게 뽑냐고? 대포 알에 연결된 실이 뽑아준다. 이 하나 뽑으려다 전쟁까지 날 판이다. 이거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하지만 이런 발상의 엉뚱함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루브골드버그는 세계적인 언론사 뉴욕타임스에 지속적으로 기고를 했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퍼듀대는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골드버그 장치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대회는 1987년 처음 개최됐는데, 첫 임무는 ‘칫솔에 치약 짜기’였다. 사소한 일상을 거창하고 복잡하며 어렵게 만드는 과정에는 기계공학과 자연과학, 수학 지식이 촘촘히 배어든다. 뿐만 아니라 골드버그가 그랬듯이 그 내용을 미적으로도 아름답게 묘사해야 하기 때문에 이 대회는 때때로 종합예술 대회로 불리기도 한다.

골드버그 대회는 한국에서도 열리고 있다. 국립과천과학관이 2012년 여름 처음 개최했으며, 매회 과제가 바뀐다. 1회 대회 과제는 ‘풍선 부풀리고 터트리기’였고, 총 393개 팀이 참가했다. 본선 참가자들은 교사 없이 학생들끼리 조를 짜 5시간 안에 임무를 성공해야 했다. 4회를 맞는 올해 과제는 ‘공간을 확장하라’이며 빅뱅 이후 우주의 팽창을 묘사해야 한다. 8월부터 예선 접수를 시작한다(159쪽 참조).

‘쉬운 일을 어렵게, 간단한 일을 복잡하게.’ 골드버그장치가 내세우는 이런 원칙은 효율과 목적에만 몰두하는 요즘 세태를 묘하게 비트는 것 같다. 긴 절차가 일견 낭비 같아도, 때론 그 과정 자체가 소중할 때가 있다. 목표보다는 중간 절차를 통해 더 많이 배울 때도 있다. 골드버그는 독특한 만평을 통해, 우리에게 그런 ‘느림과 어려움’의 매력을 가르쳐 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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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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