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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에 유난히 굵직한 ‘사건’이 많았던 한 해였다. 연말을 맞아, 차분히 올해 어떤 일이 과학계에서 회자됐는지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가장 먼저 할 일은 당연히 올해 1년치 과학동아를 복습하는 일. 그래도 좀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지금부터 소개하는 올해의 과학책을 만나보자. 놓치기 아까운 수작들이다.(이 책들은 과학동아 편집부에서 선정했다.)
1. 인구 70억, 번창하는 인류, 사라지는 동물
2012년은 지구의 인구가 공식적으로 70억 명을 넘어섰다는 이야기와 함께 왔다. 생물이 성공했는지를 판가름하는 요소 중 하나는 얼마나 많은 자손을 오랜 세대에 걸쳐 여러 곳에 퍼뜨렸느냐다. 이 기준에 따른다면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꽤 성공적인 종이다. 오늘날 지구에 존재하는 대형 포유류 중 인류보다 개체수가 많은 종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성공이 가능했을까. 고고학자가 현생인류의 적응 방법을 꼼꼼히 복원한 ‘크로마뇽’(더숲)은 우리의 조상에 대한 지식을 업그레이드시켜준다. 우리가 동굴벽화의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던 크로마뇽인은 빙하기라는 척박하고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고 극복했다. 인류는 바로 이런 환경 적응력 덕분에 70억까지 그 수를 늘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인류가 꼭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인구폭발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계기인 농업은 인류의 삶에 최초로 문명에 의한 병을 선물했다. ‘판도라의 씨앗’(을유문화사)이 이 문제를 상세히 파헤친다. 동물은 위기에 빠졌다. 서울대공원의 돌고래 ‘제돌이’는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베스트셀러 과학책을 여럿 쓴 생태저술가의 ‘도도의 노래’(김영사)는 지금까지 발생한 멸종 사례를 세계 곳곳에서 추적한 상세한 르포다. 도도는 17세기에 사냥으로 멸종한 새. 저자는 이들의 흔적을 찾으며 생물의 보호를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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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물 멸종과 진화론 논쟁
사라져가는 동물은 보호의 입장에서도 관심이 필요하지만, 중요한 과학이론인 진화론의 증거로도 필요하다. 특히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창조과학 관련 단체의 요구로 고등학교 생물학 교과서 일부에서 시조새(사진)와 말의 진화 내용이 빠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이 내용이 ‘네이처’에 보도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단체는 11월, 지구과학의 동일과정설(모든 지질 현상은 과거에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내용)마저 부정하는 청원을 준비한다고 밝혀 또 한차례 논란이 벌어졌다.
과거 사례를 통해 진화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 올해 번역됐다. 유명한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여덟 마리 새끼 돼지’(현암사)는 주로 옛 생물을 통해 진화를 고찰한다. 같은 작가의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아카넷)은 지질학에서 시간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밝힌다. 창조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을 보려면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부키)와 ‘무신예찬’(현암사),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김영사)을 보자. 과학자와 인문학자, 작가가 대거 출동해 창조론을 무참히(?) 짓밟는다.
3. 최고의 화제, 힉스와 큐리오시티
올해 최대의 과학 이슈는 단연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힉스 입자 관측이다. 이 기회에 물리학을 제대로 알아보려 한다면, 젊은 국내 이론물리학자가 쓴 책 두 권을 놓치지 말자. ‘물리학 클래식’(사이언스북스)과 ‘보이지 않는 세계’(휴먼사이언스)는 독창적인 설명으로 물리학을 보는 눈을 바꿔준다. 글쓰기 실력을 인정 받은 필자의 문장은 우아하기까지 하다. 둘 다 힉스에 대한 책을 낸 적이 있다.
또 다른 이슈는 NASA의 화성 탐사로봇 큐리오시티의 화성 착륙. 탐사로봇 큐리오시티는 셀카를 찍은 깜찍함으로 지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큐리오시티가 화성에 간 이유는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화성에, 혹은 더 먼 우주 어딘가에 친구가 살까. 궁금하다면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현암사)를 보자. 친절한 설명으로 이 분야가 성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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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선! 선택의 과학과 실수
2012년의 마지막은 미국과 한국의 대선. 미국은 이미 끝났지만, 한국은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뜨거운 유세전에 과연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할까 궁금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선택과 결정은 누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선택의 과학’(사이언스북스)을 보면 이 숨가쁜 순간의 주인은 뇌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뇌는 느리고 부정확하고 산만한 컴퓨터지만, 생존을 위한 결정 순간에 가장 합리적이고 뛰어난 판단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반대로, 뇌는 때로 엉뚱한 판단을 한다. 냉철하게 대선 후보를 저울질하고 투표했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5년 내내 ‘내가 왜 뽑았을까’ 생각하며 후회한 사람,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자신의 뇌가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 경험은 뇌가 갖는 판단력의 한계, 즉 착각 때문에 일어난다. 나만 그런 걸까 슬슬 고민이 된다면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알키)를 읽으며 위안을 받아보자. 뇌가 원래 엉뚱하다는 것을 알면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그렇다고 5년을 후회할 실수를 되풀이 해선 안 되지만.
5. 이제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며…
머리 아픈 선택과 결정 이야기도 지나갔다. 그래도 연말은 조촐한 파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분위기 있는 자리 한번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 과학자의 애틋한 와인 사랑을 담은 특이한 책이 있다. ‘와인에 담긴 과학’(사이언스북스)을 안주 삼아 향긋한 와인 한 잔 기울이며 연말을 훈훈하게 마무리해 보자. 미성년자는 무알콜 포도주스로 대신해도 애정전선에 문제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