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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고고학

혈연관계 바탕해 인류의 기원 추적

DNA고고학,옛문화의 흔적을 발굴해 그 기원을 탐색하는 고고학이 DNA의 정체를 해명하는 유전공학과 만나고 있다.


1996년 전남 나주 복암리의 고분군(사적 제404호)에서 1천5백여년 전 삼국시대에 살았다고 추정된 사람들의 뼈가 발견됐다. 무덤 안에서 항아리 모양의 관(옹관) 3기가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모두 두사람 이상을 함께 장사지낸 듯 각 옹관마다 2개 이상의 두개골이 발견됐다.

그렇다면 이들은 생전에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을까. 같은 마을의 사람이었을까 가족이었을까. 만일 가족이라면 형제자매일까 부부일까.

 

인류의 기원 추적


친자감별법과 동일한 원리

 

오랜 세월이 지난 탓에 인골의 외형은 많이 손상돼 있었다. 따라서 육안으로 이런 궁금증을 풀기는 불가능하다. 이때 진가를 발휘하는 분야가 바로 DNA고고학이다.

 

지난 10월 19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은 비교적 보존이 잘된 3구의 인골에서 DNA를 채취하고 그 성분을 분석한 결과, 한 옹관에 있던 인골의 주인공이 같은 모계의 남녀였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나머지 1구의 정체는 남성이라는 점 외에는 알아낼 수 없었다. 연구진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사실들을 밝힐 수 있었을까.

 

DNA고고학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84년 미국의 캘리포니아대 앨런 윌슨은 죽은 유기체에서 DNA가 보존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그는 당시 1백40년 전 멸종된 얼룩말 비슷한 동물인 콰거 사체의 피부에서 DNA를 얻는데 성공했다. 이후 고고학자들은 이집트 미라를 비롯한 옛사람의 흔적에서 DNA를 추출하는 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이 문제였다. 수천년 이전의 사체에서 온전히 보존된 DNA를 발견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얻어냈다 해도 실험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양이 적었다.

 

이 문제는 유전공학에서 사용되던 중합효소 연쇄반응(PCR)을 통해 해결됐다. 소량의 DNA를 대폭 복제시키는 방법이다. DNA고고학이 학문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였다.


그렇다면 DNA고고학은 어떤 사실을 밝힐 수 있을까. 바로 인류의 기원을 찾고 족보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DNA고고학에서 사용되는 재료는 크게 두가지다. 핵 안에 23쌍의 염색체 형태로 존재하는 유전자, 그리고 핵 바깥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다.

 

사람의 핵 유전자는 10만여개다. 염기(DNA를 구성하는 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 수로는 30억쌍에 이른다. 이 많은 양의 정보를 연구에 어떻게 활용할까.

 

DNA고고학은 우선 핵 유전자를 통해 성별을 감식한다. 즉 성염색체가 XX(여성)인지 XY(남성)인지를 알아내는 일이다.

 

다음으로 ‘다변화 좌위’를 찾아낸다. DNA의 염기서열이 사람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특정 부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눈동자 색깔을 결정짓는 유전자 부위를 발견했다고 하자. 이 부위의 염기서열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따라 파란색, 갈색, 검은색 등의 눈동자 색깔이 결정될 것이다. 이 부위가 바로 다변화 좌위다.

 

아프리카 이브설의 근거


가까운 혈연 관계를 맺은 사람일수록 다변화 좌위의 염기서열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검은색 눈동자를 지닌 사람의 자식 역시 검은색 눈동자를 물려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각 사람으로부터 DNA 샘플을 얻고 다변화 좌위를 비교해보면, 이들의 혈연관계를 밝힐 수 있다. 최근 매스컴에서 자주 언급되는 ‘친자감별법’은 이런 원리를 통해 이뤄진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인골 3구의 핵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2구가 남성, 1구가 여성이라는 점을 밝혔다. 하지만 다변화 좌위에 대한 조사는 실패였다. 1구의 샘플에서 다변화 좌위의 특성을 찾아냈지만, 나머지 2구에서는 DNA가 많이 손상된 탓에 별다른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샘플만으로 3구의 혈연관계를 밝힐 수는 없는 일이다.

 

여기서 부족하나마 ‘절반의 혈연관계’를 알아내는 방법이 있다. 즉 아버지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다 해도 최소한 같은 어머니의 혈족인지를 밝힐 수는 있다. 바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이용한 방법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흔히 ‘세포내 발전소’라고 불린다. 흥미롭게도 미토콘드리아 역시 비록 소량(37개 유전자, 1만6천개 염기쌍)이지만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유전자는 99.9% 이상이 모계를 통해서만 전달된다. 아버지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자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이들은 제각기 많은 수의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다.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꼬리 부위에 위치해 난자까지 이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난자 속으로 들어간 정자의 미토콘드리아는 맥을 못춘다(수정란 초기 단계에서 파괴되거나 퇴화된다는 설명이 있다). 그 결과 수정란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난자 것만 남아 자손에게 전달된다. 같은 어머니로부터 나온 자식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모두 동일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 세대를 지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남성의 경우 결혼해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자식의 어머니 것이다. 즉 친할머니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손자(손녀)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여성의 경우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여러 세대를 거쳐도 계속 후손에게 전달된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할까.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한다. 과학자들은 변화가 많이 일어난 정도를 통해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파악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대 앨런 윌슨이 ‘아프리카 이브설’을 제기한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는 세계 여러 지역의 여성들로부터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얻어 그 변화 정도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 아프리카 지역의 여성에게서 얻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의 변화가 가장 많았다는, 즉 가장 오래 됐다는 점이 밝혀졌다. 앨런 윌슨은 이를 바탕으로 현생인류의 어머니가 대략 2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던 여인이라고 주장했다.

 

촬영 검사대에 올려진 이집트 미라.이로부터 DNA샘플을 얻어내면 성별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친족끼리 결혼했을지도

 

하지만 더이상의 추측은 불가능하다. 이들이 남매일 수도 있고, 모자일 수도 있다. 만일 이 무덤이 부부묘라면 친족끼리 결혼한 셈이다.

 

국내의 경우 DNA고고학은 이제 첫발을 내디딘 단계다. 만일 한반도에서 석기시대의 인골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로부터 DNA를 추출할 수 있다면 ‘한국인의 첫 조상’에 대해 보다 풍부한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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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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