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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이코드라마

각본 없이 역할 바꿔가며 속마음 끌어내

무대가 있고 관객이 있고 주인공이 있다면 우리는 연극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에서 미리 짜여진 각본이 없다면, 게다가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경험을 연기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이것은 더이상 연극이 아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연극과 같이 무대에서 연기를 하지만 주인공이 준비된 각본 없이 진행하는 즉흥극이다. 그리고 타인이나 상상이 아닌 주인공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기 때문에 환자에게는 치료 효과를, 일반인에게는 교육과 자기성장이 일어난다.

사이코드라마의 창시자는 루마니아의 쟈콥 모레노(1892-1974)다. 모레노는 6세 때 예술의 도시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이주해 젊은 시절을 보냈다. 모레노는 대학생 때 아이들과 연극을 하면서 아이들의 심리와 행동을 관찰했는데, 이것이 사이코드라마를 탄생시킨 최초의 씨앗이었다.
 
사이코드라마

 
극중 천사가 집에서는 악처로

바바라는 연극에 천재적이었는데, 특히 로맨틱한 역할에 소질이 있었다. 그녀는 관객 중 한 사람이며 시인이자 희곡작가인 조르쥬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곧 위기에 처했다. 연극할 때는 더없이 착하고 천사같던 바바라가 집에서는 야만적이고 포악하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모레노는 이 말을 듣고 바바라에게 야비한 연기를 시켰다. 그러자 바바라는 착한 역할 못지않게 야비한 역할을 더 잘 소화했다. 흥미롭게도 바바라가 이런 연기를 계속하는 동안 집에서는 신경질이 줄어들었다.

모레노는 조르쥬와 바바라를 같이 무대에 서게 하고 즉흥극의 장면을 두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현실문제로 선정했다. 두사람은 점점 자신들의 가정, 어렸을 때 얘기, 꿈이나 장래 계획과 같은 내용을 표현했다.

수개월이 지나자 바바라와 조르쥬의 가정생활은 안정을 되찾았다. 내면 세계를 자연스럽게 풍부하게 표현함에 따라 갈등 상황이 점점 줄어든 탓이다. 모레노는 이 경험을 통해 사이코드라마의 기반이 되는 많은 개념을 얻고 즉흥극을 사이코드라마로 발전시켰다.

정신병원에서 시행된 사이코드라마의 한 예를 살펴보자. 60여명의 환자들이 참석하고, 정신과 전문의가 연출(주치료자)을 담당했으며, 정신과 전공의, 사회복지사, 간호사로 구성된 6명의 치료팀이 보조자아(보조치료자)로 참가했다.

이코드라마는 마술가게가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됐다. 2명의 치료자가 마술가게 점원 역할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힘든 마음을 팔고, 자신이 바라는 마음을 사갈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직장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중년 남자가 나왔다. 그는 “지친 마음을 팔고 용기를 사고 싶다”고 말했다. 연출가가 “직장에서 무엇이 힘들었는가”라고 묻자 그는 “일거리가 많아 힘들다”고 대답했다.
연출가는 주인공에게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장면부터 시작하도록 요청했다. 주인공은 직장 상사(보조자아)를 뽑고 연기를 시작했다.

상사가 주인공을 불러 일을 맡기자 주인공은 공손하게 일거리를 맡았다. 얼마 후 다시 상사가 주인공을 불러 힘든 일을 시켰다. 그러자 이번에도 거절하지 않고 일거리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가끔씩 주인공이 상사가 되고 상사가 주인공이 돼 연기를 했다(역할교대). 이렇게 해서 주인공을 통해 상사의 모습을 실제적으로 표현하도록 만들었다.

연출가는 연기를 잠시 중지하고 주인공에게 “두번씩이나 힘든 일을 맡은 후의 느낌을 혼자서 독백하라”고 요청했으며, 주인공은 “힘들어도 열심히 일해야지”라고 응답했다.

이번에는 주인공을 잠시 관객석에 앉히고, 치료팀 중 한사람이 보조자아로 무대에 나와서 주인공 역할을 대신했다(거울기법). 거절하지 못하는 주인공 역할을 보조자아가 대신하고 주인공은 그 장면을 구경했다. 연출가가 주인공에게 그 장면을 보고 느낌이 어떤지 물었다. 주인공은 “상사가 자신에게 일거리를 너무 많아 주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연출가가 주인공에게 또 다른 느낌을 묻자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답답했다”고 설명했다. 이 장면을 통해 주인공이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일거리가 늘어나고 힘들어졌음이 명백해졌다.

연출가가 또다시 주인공이 거절하지 못하는 장면을 반복한 후 상사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독백으로 얘기하게 했다. 그러자 주인공은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직장상사에 대한 불만을 표현했다. 이때 또다른 보조자아가 주인공의 또다른 자기자신이 돼(이중자아) 주인공의 표현을 도와주었다. 보조자아는 주인공의 등 뒤에 서서 주인공이 말할 때 그 말을 그대로 크게 반복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말하지 못한 구체적인 불만을 대신 표현했다. 그러자 주인공은 점점 극에 몰입하고 자신이 상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분명히 충분하게 묘사했다.
 
서울 대학로에서 일반인이 참여한 사이코드라마의 한 장면

연극 끝난 뒤 주인공 독려

전형적인 사이코드라마는 무대, 관객, 주인공, 연출가, 보조자아의 5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문제를 탐구하고자 하는 자발성이 높은 사람으로 선정한다. 연출가는 사이코드라마와 인간 이해에 대해 훈련을 받은 전문가가 담당한다. 보조자아는 훈련된 전문가나 관객이 담당한다.

사이코드라마는 준비작업, 공연, 공유의 세단계로 구성된다. 앞 사례의 경우 마술가게는 준비작업 단계에 속한다. 준비작업 동안 모인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적절한 주인공을 선택하는 단계다. 공연 단계는 주인공의 갈등을 구체화시키고, 주인공이 자신의 태도와 감정을 분명하게 표출하며, 이로 인해 자신의 모습에 대해 발견하는 단계다.

마지막으로 공유 단계는 관객들이 주인공의 입장에서 서서 느낀 점을 얘기하며 주인공을 지지해주는 시간이다. 이때 비판이나 조언보다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서로 나누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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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윤성철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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