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과학으로 갈 데까지 크리스마스 파티



드레스 코드야 파티의 기본이니 이해한다고 쳐도 ‘다른 사람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장기’라니! 다함께 웃고 즐기는 파티라지만 주목받고 싶은 마음이 당연한 것. 게다가 이번 파티를 준비하는 동기는 남자사람 친구가 많기로 유명하다. 올해가 가기전에, 이번 파티에서 반드시 솔로 생활을 탈출하겠다고 다짐하며 옷장 문을 열었다. 대부분의 여자 옷장이 그러하듯, 현아 역시 빈 칸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옷이 걸려있다. 계절마다 한두 벌씩 장만하던 것이 쌓여서 처치곤란이 됐다. 유행에 맞춰서 구입했다가 몇 번 입지 않고 장식품으로 만든 옷도 많다. 아마도 현아가 뭐라고 했을지 대부분의 독자는 예상했을 것 같다.

“휴…. 입을 옷이 없어….”





비율이 패셔니스타를 만든다

모델이나 연예인이 입은 옷이 예뻐서 따라 구입했다가 실패한 경험은 누구나 있다. 그 경험에 빗대어 ‘손이모(손님, 이건 모델이고요~)’라는 유행어가 나오기도 했다. 사실 모델은 특별한 옷을 입지 않는다. 셔츠, 바지, 치마….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아이템이다. 그렇다면 모델이 입은 옷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음악론’을 통해 ‘음’과 ‘수’ 사이의 관계를 연구했다. 이 연구를 통해 사람이 보기에 아름다운 특정 숫자(비율)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당시 건축, 조각, 회화 등에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독일의 미학자 아돌프 자이징은 비례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 78명의 주장을 종합하고 고대 그리스 건축물의 각 부분을 측정해 ‘황금분할’을 찾아냈다. 황금비라고도 잘 알려진 이 비율은 기원전 430년 경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이나 기원전 140년 경에 만들어진 밀로의 비너스에서도 볼 수 있다.

황금비는 1:n=n:n+1일 때 비율을 말한다. 이를 계산하면 n값은 약 1.1.618로 이 숫자가 바로 황금비다. 자연수로 바꾸면 3:5, 혹은 5:8에 가깝다. 주변에서는 명함, 신용카드, 사진 등에서 바로 이 비율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TV나 모니터에서 가로:세로의 비율을 황금비의 근사값으로 사용한다.




건축물이나 직사각형 사물에서만 황금비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인체를 아름답게 그리기 위해서 황금비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그렇다고 사람이 그림처럼 완벽한 비율을 가질 순 없다. 머리 길이가 전체 키 길이의 1/8일 경우 인체가 아름다워 보이는 8등신이라고 한다. 머리부터 허리까지 비율이 3, 허리부터 다리까지가 5의 비율을 만들어 전체적인 신체비율까지 황금비를 이루면 금상첨화다.

초대장에 있는 ‘8등신처럼 보이는 6등신’은 분명 신체비율이 8등신으로 보이도록 만들어 오란 뜻. 한국인이 8등신이 되는데 부족한 것은 다리 길이다. 2010년 미국 듀크대 안드레 베얀 교수팀은 서부 아프리카 출신 달리기 선수들이 아시아나 유럽 출신 선수들에 비해 높은 무게 중심(배꼽)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다리가 길다는 뜻이다. 부족한 다리 길이는 높은 구두로 보완해 보자. 머리 길이가 21cm인데 키가 161cm밖에 안된다면 뒷굽길이가 7cm인 하이힐을 신는 것. 높은 구두를 신고 얼마나 오래 걸어다닐 수 있는 지와는 별개로 겉보기엔 근사한 8등신 미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8등신 모델들이 간혹 ‘워스트 드레서(worst dresser)’로 뽑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옷걸이(!)가 좋더라도 옷이 비율을 깨드린다면 아무 소용없다. 예를 들어 상의와 하의 길이 비율이 1:1인 것은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대표적인 비율이다. 황금비가 괜히 황금비가 아니다.




폭탄주가 더 잘 취하는 이유

이차, 저차, 삼차하여 파티 당일. 당최 남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선 뭘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 현아. 그래도 음주가무를 즐기는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이 있지 아무 생각없이 가는 것은 스스로에게 용납이 안된다. 한참을 고민하던 현아는 ‘음주’에서 답을 찾았다. 역시 파티에선 빼놓을 수 없는 것, 맛있는 술이다.

사람마다 음주에 대한 취향은 다양하다. 포장마차에서 기울이는 소주 한 잔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으며, 치킨과 맥주 조합이 종교의 교리처럼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사람과 만나 대화를 하는 파티 자리에서는 어떨까. 곡식으로 빚은 향기로운 곡주도 있고, 포도로 만드는 와인도 있다. 현아는 누구나 자신의 취향대로 만들어 즐길 수 있는 칵테일을 선보이기로 했다.

칵테일은 인간이 원시적으로 만들어서 거칠고 독한 맛을 냈던 과실주를 부드럽게 즐기기 위해 물이나 과즙을 섞어 마셨던 것이 발전했다. 로마에서는 와인을 생수에 섞어 마셨다는 기록이 있고 인도에서는 2000년 전에 펀치라는 칵테일을 마셨다. 칵테일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금주법이 해제된 후다. 그 전까지 과일 장식이나 주스를 섞어 일반 음료처럼 위장했던 문화가 자유롭게 풀렸다. 그 뒤 셰이킹(섞어 흔들기), 스티어링(젓기), 빌딩(직접 넣기), 레이어링(쌓기) 등의 다양한 칵테일 제조법과 재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칵테일은 종류도 어마어마하다. 위스키, 브랜디, 보드카, 진처럼 증류주에 온갖 과즙, 탄산음료, 감미료, 방향료를 섞는다. 같은 재료를 섞더라도 비율에 따라서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현아가 파티에서 즐기기 딱 좋은 술이라고 판단한 것도 이 때문.

솔로를 탈출하려는 현아에게 술은 매우 중요한 도구다. 간에서 분해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설 정도로 에탄올이 체내에 흡수되면 혈액을 통해 뇌에 침투한다. 신경 전달물질이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을 막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만들거나 운동을 조절하는 소뇌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판단 능력이 흐려지기 때문에 남녀 관계에서 약간만 호감이 생겨도 급속도로 진도(!)를 뺄 기회가 생긴다.

그렇다면 어떤 칵테일이 좋을까. 쉽게 취하게 만들기 위해 에탄올이 많이 들어있는 독한 술이 좋을까. 칵테일에 사용하는 증류주들은 에탄올 함유량은 높지만 독하게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술이 많다. 하지만 진짜 ‘작업주’는 오히려 에탄올 함유량이 낮다는 것이 정설이다. 소주 한 병을 마시기는 어렵지만 소주 한 병을 오렌지 주스1.5L와 섞으면 금세 바닥을 보인다.

탄산도 에탄올 흡수를 돕는 좋은 재료다. 혀끝에서 톡톡 튀는 자극 때문에 에탄올의 쓴 맛을 덜 느낄 뿐만 아니라 위 점막을 자극해 에탄올이 더 빠르게 흡수되도록 돕는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더 빨리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나게 마신 뒤 숙취는 어떨까. 흔히 섞어 마실수록 다음 날 숙취가 심하다고 이야기한다. 숙취는 에탄올이 몸 속에서 분해될 때 만들어지는 아세트알데히드가 축적돼서 생긴다. 즉 섞어 마시기 때문에 숙취가 심하게 온다기 보다는 마시기 쉬워 ‘많이’ 마셨기 때문에 에탄올이 많이 흡수돼 숙취가 온다.

칵테일도 마찬가지. 대부분 ‘작업주’라고 알려진 술은 쓴 맛이 거의 나지 않고 오히려 과일 주스에 가깝다. 얼음이 술을 차게 만들어 혀의 감각을 둔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무 생각없이 홀짝홀짝 들이키다가는 어느 순간 ‘훅’ 간다.





밀도가 만드는 마술 칵테일

칵테일은 맛도 좋지만 눈이 즐거운 술이다. 과일을 이용해 형형색색 액체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며, 서로 다른 색의 액체를 층층이 쌓거나 그것도 모자라 차가운 술에 불을 붙인다. 모 소설에서는 술을 ‘달을 담아 마시는 차가운 불’이라고 비유했는데 칵테일을 두고 하는 말같다.

널리 알려진 칵테일 중 ‘레인보우’라는 이름의 술이 있다. 무지개처럼 층층히 쌓인 술이다. 각 술이 서로 섞이지 않고 층으로 만들 수 있는 비밀은 ‘밀도’에 있다. 밀도는 물질의 질량을 부피로 나눈 값으로 물질마다 고유한 특징을 지닌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과 철의 밀도를 비교하면 철의 밀도가 더 크다.

밀도가 큰 물질은 밀도가 작은 물질보다 아래로 가라앉으려는 성질이 있다. 칸막이가 있는 수조 한쪽에 푸른 물감을 섞은 찬 물을 넣고 반대쪽에 붉은 물감을 섞은 더운 물을 넣은 뒤 칸막이를 제거하면 두 물이 섞이지 않고 찬물이 아래로 내려가고 더운 물이 위로 올라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레인보우의 각 층은 ‘리큐어’라고 불리는 술이다. 증류주에 각종 향신료, 과일, 설탕 등을 섞어 만든다. 들어가는 재료와 양에 따라 다양한 리큐어가 존재한다. 널리 알려진 리큐어에는 블루 레모네이드를 만들 때 사용한 ‘블루 큐라소’나 달달한 커피 칵테일인 깔루아 밀크를 만드는 ‘깔루아’ 등이 있다.

레인보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밀도가 큰 리큐어부터 차례로 붓는다. 각 리큐어의 밀도가 얼마나 되는지 이해해야 하는 것은 필수다. 보통 에탄올 함유량이 낮고, 설탕(혹은 시럽) 함유량이 높을수록 밀도가 크다. 밀도에 맞추어 차례로 액체 탑을 쌓으면 가장 위에는 에탄올 함유량이 70%가 넘는 술이 올라온다. 에탄올 함유량이 높아 밀도가 가장 낮은 이 술은 불을 붙이는 이벤트를 보여주는 데도 종종 사용된다. 에탄올의 발화점이 400℃에 이르는 만큼 차가운 불은 아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차가운 불’의 효과를 내는 셈이겠다.



누가 뭐래도 파티는 음주‘가무’

적당히 흡수한 알코올 덕분에 기분이 한껏 좋아진 현아. 단순히 오렌지 주스와 사이다, 그리고 보드카를 이용해 만든 칵테일이 주목을 받으면서 잔뜩 신이 났다. 유튜브 조회수 7억을 돌파한 명곡(?)이 나오며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두 손을 뻗어 교차한 뒤 오른발, 왼발을 번갈아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춤은 인류의 생활 모습과 행동 양식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특성을 가진다고 했다. 전세계를 강타한 이 춤도 따지고 보면 사람이 말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니던가. 게다가 과거부터 몸짓을 통해 종족의 단결과 단합, 힘을 강화했다고 한다. 작은 파티 공간 안에서 말춤으로 하나되는 이 상황이 매우 유쾌했다.

소리를 높여 노래를 하고 말춤을 추던 중 현아는 맞은편에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까부터 범상치 않은 몸놀림에 계속 주목하고 있던 터였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귀족들이 친분을 쌓기 위해 춤을 췄다고 했던가. 마주친 눈빛을 피하지 않으며 현아는 귓가에 들려오는 노래와 남자의 춤에 자신의 몸짓을 맞췄다.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201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오가희 기자

🎓️ 진로 추천

  • 의류·의상학
  • 심리학
  • 화학·화학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